153화. 슈란달(2)
152화.
"바깥에 작은 창고를 만들어 닭과 염소를 넣어둬. 사람이 거주하는 방안에 저런 동물들이 있는건 건강상 좋지 않아. 이번에 캔 동충하초를 팔면 그 자금으로 충분히 만들수 있을꺼다."
"그, 그건..."
켄이 잘 몰라서 한말이었다. 한겨울철엔 이곳은 엄청나게 춥다. 만약 밖에서 동물들을 키운다면 얼어 죽는다.
"왜? 할말있으면 해."
"그, 그게 한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닭과 염소가 얼어 죽습니다."
"......."
그렇게 추운줄은 몰랐다. 하긴 고지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추운지는 모르지만 슈란달의 말을 듣고는 굉장히 추울것이라곤 짐작되었다. 산위에서도 한밤중엔 엄청나게 추웠다.
"그럼 집을 더 크게 증축시켜 동물들을 먼곳에 놔둬."
"그렇게 하겠습니다."
생각같아선 부엌도 다른곳에 설치해 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마 난방을 겸한 부엌일것 같았다.
"아범아! 선인님께 대접할게 없구나. 염소라도 잡거라."
염소라는 말에 켄은 깜짝 놀랐다. 보통 야생 동물이나 가축은 노린내가 많이 난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으로 볼때 저 염소도 냄새가 심할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됐다. 굳이 귀한 염소를 잡을 필욘없어."
아공간을 열수 있게된 지금 아공간안에는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깊은 산골에 사는 이들에게 비린내가 나는 바다 생선은 입에 맞지 않을것이다. 과일이나 고기를 꺼내 주면 될것같았다. 그러나 적당한 고기가 없었다. 바다 게인 킹 크랩도 특유한 냄새가 난다. 줄수 있는건 밀가루와 과일뿐이다.
'아! 쌀이 있군.'
묵은 쌀이긴 하지만 먹을수 없는건 아니다. 쌀로 밥을 지으면 될것같았다.
"라쥬! 따라 와라."
라쥬는 이번에는 선인님이 무얼 꺼내 놓을지 기대감에 부푼채 환한 얼굴로 따라 나섰다. 다른 이들도 이미 무엇 때문에 라쥬를 데리고 나가는지 짐작하곤 기대하고 있는것 같았다. 잠시후 라쥬가 낑낑대며 들고 온 물건을 보고는 모두가 의아해했다. 큰포대 자루를 들고 온것이다. 얼마나 무거운지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오는 라쥬가 불쌍해 보일정도였다.
"헉헉!"
"고생했다. 다시 갔다와라."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라쥬는 다시 달려 나갔다. 이번에 들고 온것은 프라이팬과 냄비같은거였다. 프라이팬도 크고 작은 여러개가 있었고 냄비도 마찮가지였다. 저 귀한 물건을 어디서 가지고 온것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 볼수가 없었다.
"슈란달! 창고에 가면 저런 포대가 2개 더 있어. 슈렌댁과 랑타르 형제집에 한개씩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뭐가 들어 있는지요?"
"쌀이다."
"헉! 쌀이요?"
나중에 안것이지만 이들에게 쌀은 귀한 물건이었다. 이들이 짓는 농사는 기장이라는 곡식이다. 기장으로 떡 비슷하게 만들어 먹는다. 그런 기장과 감자, 옥수수가 주식이다. 고지대 살고 있는 탓으로 쌀을 재배하지 못하는것이다. 대신에 밭에 기장이나 감자, 옥수수를 재배한다고 했다. 쌀이라는 말에 또다시 모두가 놀란것같았다.
라쥬 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라쥬와 함께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길이 질퍽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을 구경은 금방 끝났다. 10여 가구만 있는 마을에 볼것도 없었다. 라쥬가 지붕으로 올라 가면 먼곳까지 잘 보인다고 했다. 지붕은 평평했다. 난간이 없는 옥상위에 올라 온듯한 기분이었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계단식 밭이 장관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과 먼곳에 보이는 높은 산, 언덕 아래에 흐르고 있는 조그마한 냇가등 별장이라도 한개 지어 놓으면 좋을듯해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고산 지대다. 일반인이 생활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일 먼저 고산병을 걱정해야 한다. 추운 겨울에는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도 쉽지 않는 곳이다. 그런것을 모르는 켄이다.
저녁 식사는 쌀과 감자, 콩, 볶은 야채를 곁들인 것이다. 그런것을 한곳에 버무려 손으로 집어 먹는 스타일로 켄은 아공간에서 꺼낸 스푼으로 퍼 먹었다. 스푼을 건네 주었지만 이들은 손으로 먹는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아버지! 동충하초는 많이 캤어요?"
"그래. 선인님 덕분에 정말 많이 캤다."
"그럼 외삼촌집에 가서 공부해도 되요?"
슈란달의 딸인 라세는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이곳에선 애들이 학교를 갈려면 엄청 나게 먼곳까지 걸어 가야 했다. 해가 뜨기전에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동하면서 각각의 마을에 있는 아이들과 합류해 같이 걸어 가는 식이다. 학교에 가서 두세시간 공부를 하고 또다시 먼길을 돌아 와야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 와야 한다. 곰이나 늑대가 살고 있기 때문에 밤에는 위험하다. 그런 지역인 후그리트 마을에 살고 있는 딸이 상설 시장이 있는 도시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외삼촌집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고 싶어했다.
"보내 줘."
"예엣?"
망설이는 슈란달에게 켄이 끼어 들었다. 켄은 중학교때 이지메를 당하지 않았다면 야쿠자의 길로 들어 서지도 않았을것이다. 어른이 되어선 공부를 하지 못한게 후회스러웠다. 그런 후회가 남지 않게끔 어릴적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라쥬! 너도 공부하고 싶냐?"
"....예에."
라쥬도 제대로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무서운 아버지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라쥬는 작게 대답하며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둘다 보내 줘. 자금이 부족하면 동충하초를 캐러 가면 되잖아."
"아! 알겠습니다.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선인과 함께라면 동충하초는 얼마든지 캘수가 있다. 굳이 경쟁이 적은 높은 산으로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하루 거리의 넓은 평원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하루에 한뿌리도 캐기 어려운 곳이다. 높은 산으로 올라 갈려면 준비가 만만치 않다. 지고 가야할 짐은 물론 고산병도 걱정해야 한다. 고산족들이야 평소에 생활하는게 높은 고지대이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산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렇지가 않는 것이다.
만약 고산병에 걸린다면 누군가에게 의지해 산을 내려 와야 한다. 그러면 의지하는 그 사람도 동충하초를 캘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한 고지대의 산으로 들어 가는 자들은 고산족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근처의 평원에는 일반인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어 동충하초가 가장 먼저 사라진다.
동충하초는 허가를 받은 자들만 캘수가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밀려 오는 사람들로 인해 아래쪽 평원에는 동충하초 씨가 마른 것이다. 지금쯤 평원에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을것이다. 동충하초를 캘수있는 시기도 얼마남지 않았다. 땅위로 머리를 내민 것은 없을지라도 선인님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땅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귀신처럼 찾을수 있는 재주를 지니신 분이다.
"와아!"
라세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라쥬도 기분이 좋은지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반찬드라는 언제 오나?"
"음, 아마 10일정도는 걸릴겁니다."
"10일?"
반찬드라는 하루 먼저 산을 내려 갔다. 그런데도 이곳까지 오는데 10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반찬드라가 살고 있는 곳은 도시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까지 가서 다시 이곳으로 올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릴겁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10일동안 이곳에서 할일이 전혀 없었다. TV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는 곳이다. 심지어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곳이다. 너무 심심한 곳이다. 어쩔수 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을 해야 했다. 슈란달의 자식들이 학교를 보낼 자금을 마련해 주며 시간을 보내면 될것 같았다.
"라쥬! 슈렌댁과 랑타르 형제를 불러 와."
서둘러 나가는 아들을 본 슈란달은 동충하초로 인해 불러 오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쌀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랑타르 형제가 무슨 일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 오자 잠시후 슈렌댁도 라쥬와 함께 들어 왔다. 랑타르 형제와 마찮가지로 슈렌댁도 바닥에 깔린 물건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흙바닥이 아닌 푹신한 모포같은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반찬드라가 이곳으로 올려면 10일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 동충하초를 캐러 갈 생각이다. 이번에 캐는 동충하초는 라세와 라쥬를 학교에 보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캐러 가는거다. 너희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미리 말해 주는거다."
"그럼 아저씨하고만 가는 것입니까?"
"너희들도 가고 싶나?"
"가고 싶습니다."
"저도요."
모두가 가고 싶어 했다. 원래는 슈란달만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모두가 갈려고 자청하는데 데려 가기로 했다. 많이 갈수록 그만큼 캘수 있는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좋다. 모두 함께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 근처에 있는 평원으로 갈테니까 8일정도 머물 준비를 해서 아침 일찍 찾아와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죠?"
슈렌댁이 바닥에 깔린 카펫을 만져 보고 있었다. 슈렌댁의 질문에 슈란달 가족이 켄을 바라 보았다.
"아, 선인님이 주신 거군요."
"슈렌댁 집에도 깔고 싶나?"
"물론이에요. 하지만 이건 굉장히 비쌀것 같아서요...귀한 쌀도 주셨는데..."
"잠시만 기다려."
누군 주고 누군 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창고로 간 켄은 랑타르 형제와 슈렌댁에게 줄 카펫 타일과 카펫을 꺼내 놓고 밖으로 나갈려가다 슈렌댁의 애기가 생각났다. 아공간에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일회용 기저귀를 몽땅 다 주면 좋아 할것 같았다. 일회용 기저귀를 찾아 그리 크지 않은 창고가 가득찰 정도로 꺼내 놓고 기저귀 3개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켄이 방으로 들어서자 손에 들린 사격형의 비닐같은게 뭔지 궁금해 했다.
"랑타르와 슈렌댁은 집으로 돌아 갈때 창고에 있는걸 가져 가. 그리고 이건 슈렌댁에게 주는거다."
"이게 뭐죠? 팬티?"
팬티라고 말하면서 슈렌댁은 얼굴을 붉혔다. 일회용 기저귀는 처음 보는것 같았다. 기저귀 그림이 그려져 있음에도 애기용이란걸 모르고 있었다.
"그건 애기용 일회용 기저귀다. 여기에 S라고 쓰여져 있는건 제일 작은거고 그 다음이 M이고 가장 큰게 L이다. 애기에게 입혀 보고 몸에 맞는걸 사용해."
"아! 이게 일회용 기저귀군요."
"한번 사용한건 버려. 아깝다고 계속 사용하면 애기가 병이 날테니까 명심해."
"명심할께요."
이런 물건이 있다는건 들어 본적이 있지만 보는건 처음이다. 큰도시로 가면 살수 있다고 했지만 굉장히 비싸다고 했다. 그런 물건을 준것이다.
"창고에 가득 있으니까 모두 가져 가라."
"옛? 이런게 창고 가득 있다고요?"
"그래."
"가, 감사해요."
당장 창고로 달려 가고 싶었다. 이 물건만 있으면 더이상 힘들게 똥빨래를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자아,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일찍 찾아 오겠습니다."
창고로 간 일행은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일회용 기저귀를 보고는 입이 쩍 벌려졌다. 저걸 옮길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다.
"라쥬! 넌 슈렌댁이 짐을 옮기는걸 도와 줘라. 바닥에 카펫을 어떻게 까는지도 도와 주고 나서 랑타르의 집에 가서도 알려 주고. 그리고 슈렌댁과 랑타르는 저 중에 어떤걸 가져 갈지 서로 결정해."
창고 앞쪽에 카펫과 모포가 두군데 나누어져 놓여 있었다.
"전 아무것이나 좋습니다."
랑타르가 남자답게 어떤것이든 좋다고 했다. 슈렌댁이 밝은색을 고르자 남은것을 랑타르가 가져갔다. 슈란달은 물론 라쥬 어머니와 라세까지 슈렌댁의 애기용 기저귀를 옮겨 주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동충하초 멤버가 모두 모였다. 이번엔 라쥬는 가지 않는다. 어른들만 가는 것이다. 슈렌댁은 여전히 애기를 업고 있었다.
"그럼 출발하자."
슈란달이 길 안내를 했다. 하루거리의 평원이라고 했다.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많이 캐와라."
"아버지! 어머니! 다녀 오세요."
평평한 지붕위에서 라쥬와 라셀,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배웅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힐끗 한번 바라본 슈란달은 묵묵히 길을 걸었다. 오전중에 높은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고 했다. 지름길이라며 그 산 아래에 평원이 있다고 했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산어림에서 특이한 것이 보였다.
"저건 뭐지?"
"산신님에게 봉양하는 탑입니다.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것이죠."
산을 타는 고산족들은 이런 돌탑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돌로 쌓아 만든 돌탑의 비어 있는 공간에 물건을 공양해 안전을 비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처음 산을 내려 올때 본적이 있었다. 슈란달 일행이 과자같은걸 올려 놓고 잠시 손을 마주대며 고개를 숙여 안전을 기원하는 모습에 경건함이 느껴졌었다.
공양을 마치고 산을 넘자 산 아래에 광활한 평지가 보였다. 평지 양쪽과 먼앞쪽에는 높은 산이 우뚝 서 있는 분지였다. 저곳이 목표로 하는 평지였다. 평지에는 돌과 마른풀로 뒤덮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평지를 돌아 다니며 동충하초가 숨어 있는 땅을 짚어 주었다. 땅속에 숨어 아직 뿔이 지상으로 드러나 있지 않는 것이 굉장히 많았다. 전번과 마찮가지로 한개 건너 한개씩만 짚어 주는 식으로 채집을 시작했다. 그렇게 8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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