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헤르난데스 남작령(2)
322화.
집사장의 안내로 응접실같은 곳으로 들어 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대리 영주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어디의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그냥 켄이라고만 전해."
"알겠습니다."
시녀가 차를 내왔다. 무슨 차인지는 모르지만 깔끔한 맛이었다. 잠시후 로브를 입은 중년인 한명이 안으로 들어 왔다.
"대리 영주인 제롬 헤르난데스라고 합니다."
"켄이라고 한다."
집사장이 대리 영주를 데리고 온다는 말에 전번처럼 또 이 영지가 친척놈에게 찬탈당한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직계 가족같았다.
"헤르난데스 남작과는 어떤 사이냐?"
켄의 질문에 제롬이라는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젊은 놈의 반말에 기분이 거슬린것이다.
"아버님이십니다."
"남작은 어딧지? 데리고 와라. 그리고 마나 스캔을 펼쳐 봐야 소용없어."
반말을 하는 켄의 서클을 알아 보기 위해 은밀히 마나 스캔을 펼치고 있던 제롬이었다.
"크흠, 죄송합니다. 저어...그런데 켄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실례가 되지만 몇서클이신지 알려 주실순 없는지요?"
마법사는 나이는 상관없다. 서클이 최우선이다. 서클이 높은 자는 낮은 자에게 반말을 하는건 당연한것이지만 젊은 나이로 볼때 서클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남작이 오면 알려 주겠다."
"그럼 어느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려 주십시요."
"무소속이야."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대리 영주인 제롬이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허름한 로브를 입은 꾀죄죄한 모습의 산발인 늙은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헤르난데스 남작이었다. 남작이 들어 오고도 일어설 생각도 하지 않은채 자리에 앉아 있는 켄을 본 남작의 눈은 일순 번쩍거렸다. 제롬과는 달리 켄이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걸 간파한것 같았다.
"좀 씻고 다녀라. 마법사라는 놈이 아무리 마법에 미쳤다고 해도 인간다운 행동을 버리면 동물이나 마찮가지다. 한가지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높은 곳으로 올라 갈수 없어. 집착을 버리고 여유를 가져.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집착에서 모든것을 해방시켜."
"아!"
남작의 마나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남작은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어 다섯번째 고리가 생성될려고 했다. 남작이 방안으로 들어 오자마자 이미 마나 스캔을 펼쳐 남작의 서클을 확인했었다. 남작이 4서클, 아들인 제롬이 3서클이었다. 둘다 거의 한단계씩 올라갈 준비는 되어 있었다. 깨달음만 얻으면 한단계 위로 올라 갈것이다. 그런 남작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제롬! 누구도 이 방으로 들어 오지 못하게끔 막아. 남작은 지금 5서클로 올라 갈려고 한다. 사일런스!"
외부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 오지 않게끔 음성 차단 마법을 펼쳤다. 당황한 제롬은 급히 밖으로 나가 지시를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켄에게 무슨 말을 할려고 했지만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지루한 시간이다. 아무것도 못한채 남작을 지켜 보기만 했다. 남작은 늦은 밤이 되어 깨어났다.
"아! 가, 감사합니다."
"클린!"
꾀죄죄한 남작을 깨끗하게 씻겨 주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축하한다. 5서클로 올라갔군."
"아, 아버님! 4서클이셨습니까?"
"그래. 그리고 방금 5서클로 올라갔다."
아들에게도 자신의 서클을 숨겼던것이다. 저런 마음가짐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 주면 않된다. 자신의 실력은 되도록 숨기는게 이 약육강식의 이계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더 높아 지는 것이다.
"한가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줘. 500년전의 알렉스 반 헤르난데스 백작과 너희들은 무슨 관계냐?"
이미 이곳이 꼬마 백작의 후손 영지라는건 파악한 상태다. 영주성 가장 높은 곳의 깃발을 보고 알아 차린것이다. 오각형안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새겨져 있는 깃발이 첨탑 꼭대기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500년전이요? 저희들은 위대한 마법의 선구자이신 알렉스 폰 헤르난데스 공작님의 직계 후손입니다."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백작이 어떻게 공작으로 올라 간거냐?"
"당시의 백작님은 8서클 유저셨습니다. 렌가스 왕국과의 전투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백작님의 서클이 왕국 전체로 알려졌습니다. 대륙 역사상 두번째로 등장한 8서클 마법사이신 백작님에게 왕국에서 공작 작위를 내려 주시고 동상을 세워 주신겁니다."
그런 공작 작위가 지금은 남작 작위까지 내려간 상태다. 공작이 오크들을 죽인후 산화한후 직계 후손들의 마법 실력이 점점 하락되어 영지도 쇠퇴되어 가던중 브리보아 왕국에 후계자 다툼이 발생해 줄을 잘못선 관계로 남작 작위로 강등되었다. 원래는 반대편에 선 귀족들의 작위를 모두 회수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가는게 일반적이지만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8서클 유저를 배출한 가문을 몰락시킬순 없어 남작으로 강등시키고 영지 대부분을 몰수당한채 변방 구석으로 내몰린것이다.
그때부터 왕국이 어떻게 되든 일체의 관심을 끊고 마법 실력을 높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까닦에 내전으로 브리보아 왕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왕국인 바스티안 왕국이 들어 서고도 살아 남을수 있었으며 바스티안이 왕국이 또다시 무너지고 로드 왕국이 들어선 현재도 변방 구석에서 영지를 겨우 유지할수 있었다고 했다.
"저어, 켄님! 그런데 켄님은 왜 그런 500년전의 선조님에 대해 묻는 것입니까?"
"생전에 백작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거냐?"
"서, 설마...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남작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허겁지겁 응접실을 나갔다가 잠시후 금박으로 치장된 책자를 한개 들고 왔다. 헤르난데스 가문에는 영주 대대로 전해져 내려 오는 전설이 있었다. 헤르난데스 가문 초대 공작이신 알렉스 폰 헤르난데스 공작님이 자신이 죽은후 언젠가 찾아 오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 분은 자신을 백작이라고 부르며 찾을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봉해 놓은 책을 해제시켜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다는 전설이다. 실제로 봉인된 책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 봉인을 해제할려고 해도 해제할수 없었다는 말이 영주 대대로 전해 내려 오고 있었다. 무려 8서클 유저인 초대 공작님이 봉해 놓은 봉인서다.
"저어, 켄님! 이 봉인서를 해제시킬수 있겠습니까?"
남작이 들고 들어온 책을 본 켄은 책에서 마나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책이 봉인되어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책을 받아 들고 살펴보자 간단했다. 8서클이상의 마나만 주입시켜면 해제되는 봉인서다. 간단하게 해제하고 남작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해제시켰다."
"예엣? 가, 감사합니다."
너무 간단하게 해제시켜 깜짝 놀란 남작은 봉인 해제되었다는 책을 조심스럽게 넘겨 보았다.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제를 시켰는지는 모른다. 떨리는 손으로 첫장을 읽어본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호, 혹시 이름이 야마모토 켄이십니까?"
"귀청 떨어 지겠다. 조용히 말해."
"아, 죄송합니다."
"맞아. 내 이름이 야마모토 켄이다."
이계로 처음 왔을때 사용했었던 이름이다. 저 책에 자신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것 같았다.
"아! 마, 마스터를 뵙습니다."
남작이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최상의 예를 취하며 아들에게 눈짓을 하자 영문도 모른채 제롬은 얼떨결에 남작을 따라했다.
"백작이 남긴 책이냐?"
"그, 그렇습니다."
"뭐라고 씌여져 있나?"
남작은 제롬을 한번 바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영주에게만 허락되는 책같았다.
"알렉스 폰 헤르난데스 공작님께서 후손에게 남겨 놓은 책으로 언젠가 이계에서 마스터가 찾아 올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스터는 야마모토 켄이라는 차원 이동자이며 마스터로 모시고 있었던 덕분에 마법 성취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마스터님 덕으로 영지를 되찾을수 있었으며 브리보아 왕국도 번영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야마모토 켄이라고 하는 마스터가 찾아 오면 자신을 대하듯 최상의 경배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백작이 말한 마스터가 바로 나다. 몇달전에 차원 이동해 왔다. 절대 비밀이다."
"무, 물론입니다."
어떻게 500년전의 사람이 다시 찾아 올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남작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할수 있었다.
'이계의 드래곤?'
이계에도 드래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라면 500년이상이나 생존할수 없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 절대로 무리다.
"그런데 영지 꼴이 말이 아냐. 영지민들은 비쩍 마른게 사람사는 영지로 보이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마법에 너무 열중하는 바람에..."
남작에게 일어나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영지 사정에 대해 물어 보았다. 영지는 척박한 땅이라고 했다. 바닷가가 하루 거리에 있지만 높은 절벽 아래에 있는 까닦에 이용할수가 없다. 바닷 바람이 너무 강해 농작물도 잘 자라지 않는 곳으로 특산물도 없는 상태다. 영지 수입이라고는 서쪽에 있는 높은 산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사냥해 부산물을 팔아 근근히 영지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메플 시럽 권리와 벽돌이나 시멘트 권리는 어떻게 된거냐?"
"권리라니요?"
자세히 설명해 주자 전혀 모른다고 했다. 500년이나 지난 상태다. 그동안 무슨 일로 인해 권리를 잃어 버린것같았다.
"마법 주머니는 가지고 있지?"
"그, 그게...돈이 궁해 판 상태입니다."
마법 실험을 위해 자금이 부족해 마법 주머니까지 팔아 버렸다고 했다.
"아공간 오픈!"
"아!"
"허억! 아, 아공간!"
제롬이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남작은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것 같았지만 제롬은 아니었다. 아공간에서 골드와 금괴를 꺼냈다. 응접실 한쪽 구석이 조그마한 산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 골드와 금괴를 다시 마법 주머니 두개를 꺼내 쓸어 담고는 남작에게 건네 주었다.
"영지 운영 자금으로 한개를 사용하고 나머진 너희들 마법 실험을 하는데 사용해."
"가, 감사합니다."
"이번엔 빈창고가 있으면 안내해. 밀가루를 꺼내 주겠다."
남작과 제롬을 따라 지하로 내려 갔다. 지하를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지하에 밀가루를 꺼내 놓으면 금방 눅눅해져 굳어 버릴것이다.
"지하가 아닌 지상에 창고는 없는거냐?"
"있습니다만 지하에 보존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어떤 물건을 꺼내 놓더라도 절대로 상하지도 않고 곰팡이가 필 우려도 없었다. 창고의 절반 정도가 찰 정도로 밀가루를 꺼내 놓고 소고기는 물론 돼지 고기도 꺼내 놓았다. 다음날 아침 만찬에 초대되었다. 남작 가족 모두가 모인 만찬이다. 긴테이블 상석에 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사양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남작 영지로 주인인 남작이 상석에 앉아야 한다며 사양한것이다. 남작의 직계 가족은 모두 6명이다. 장남인 소영주 제롬과 부인인 샤미에게서 얻은 아들인 루카스와 딸인 에미안, 그리고 남작의 동생인 마리오가 한가족이다. 동생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마법 실험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인 소영주 제롬과 동생인 마리오가 3서클, 손자인 루카스가 13세로 1서클, 손녀인 에미안이 아홉살로 지금 마법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며 유일하게 며느리인 샤미만이 평범한 마법 가족이다.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을때 샤미만이 식사를 하는둥마는둥 얼굴이 어두웠다. 식사를 마치고 차 한잔씩을 마시고 있을때 왜 그런지 물어 보았다. 남작이 며느리를 슬쩍 바라 보고는 입을 열었다.
"후우, 며느리 집안인 슬라프 남작령이 지금 영지전중입니다. 도움을 요청해 왔지만 저희들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도울수가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샤미가 사과했다. 분위기를 망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지전? 슬라프 남작령이 어려운가?"
"그렇습니다. 상대는 다이트 백작령으로 왕국에서도 몇손가락안에 들어 가는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백작령과의 영지전은 슬라프 남작령과 백작령 경계 부근에서 발견된 금광이 발단이었다. 금광에 욕심을 낸 다이트 백작이 금광을 차지하기 위해 영지전을 벌인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 내가 가서 도와줄께."
"예엣? 마스터께서요?"
"그래. 슬라프 남작을 나몰라 할순 없잖아. 당장 슬라프 남작령으로 갈테니까 길안내를 할 사람을 불러와."
이런 약소 영지에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슬라프 남작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일것이다. 영지전이 끝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슬라프 남작령까지는 10일이나 걸립니다."
"내가 누구냐? 그곳 좌표만 알면 바로 이동할수 있다."
"아! 하지만 좌표는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문제없어. 텔레포트 마법 몇번으로 이동하면 돼."
샤미가 몇번이나 감사한다며 머릴 숙이며 자신의 호위 기사를 소개해 주었다. 슬라프 남작령 소속의 이반이라는 기사로 익스퍼트 중급이라고 했다.
"그럼 다녀 오겠다. 아, 그리고 영주성을 새로 지어야겠다. 자금 걱정은 말고 성주성을 세울 부지를 알아 봐."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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