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창고지기 라크(2)
311화.
마법이 많이 발전한것 같았다. 자신이 전번에 이 대륙으로 왔을땐 아티팩트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마법 주문의 간략화는 물론 아티팩트까지 양산하고 있는것이다.
"그럼 이걸 가져 가서 팔고 포션을 구해 와라."
오른손가락에 끼여져 있는 실드 마법과 통역 마법, 투명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 반지를 빼내 테이블위에 올려 놓았다.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은 맨손가락에서 반지가 나타나자 아슈린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아, 아티팩트 반지?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 거죠?"
"실드 마법과 통역 마법, 그리고 반지가 보이지 않게끔 하는 인비저빌리티 마법이 걸려 있다."
"이, 인비저빌리티 마법이라고요?"
아슈린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투명 마법인 인비저빌리티 마법은 무려 6서클 마법이다. 그런 마법진을 새겨 놓은 아티팩트 반지다. 반지에 걸려있는 실드나 통역 마법은 나름대로 가치는 있겠지만 인비저빌리티 마법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런 반지가 있다는게 소문이 난다면 마법사들이 달려와 서로 구입할려고 난리를 칠것이다.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게 아니라 연구용으로 구입하게 될것이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이 몇서클인지 아냐?"
"마, 말로만 들어 보았어요. 무려 6서클이라고요. 만져 봐도 되요?"
"살펴 봐라."
아슈린이 아무리 살펴 봐도 전혀 모른다. 마법진이 보이지 않게끔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알아 본다고 해도 전혀 이해도 못할것이다. 반지를 자세히 살펴 보던 아슈린은 잠시후 반지를 내려 놓고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직접 껴봐."
다시 반지를 집어 들고 손가락에 끼운 아슈린은 또다시 놀랄수 밖에 없었다. 큼직한 반지가 자신의 가는 손가락에 딱 맞게 저절로 줄어 든것이다. 자동 조절 마법까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 어디에도 반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감촉은 선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걸 팔아 골드 조금과 나머지는 모두 포션으로 바꿔와."
"아, 알겠어요. 시간이 걸릴것같은데 괜찮겠어요?"
"상관없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급하게 팔지 않아도 돼. 그리고 돈이 있으면 조금만 빌려줘.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서 옷도 사지 못하는 상황이야."
아슈린에게 3실버를 받았다. 자신도 돈이 별로 없다며 미안해 했다. 그날 저녁이후로 아슈린은 매일 저녁 찾아와 마법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물었다. 이런 일이 며칠이나 계속되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슈린이 백작령에 있다는 마법 상점으로 출발한 아침에 창고로 젊은 청년 한명이 찾아왔다.
"네가 송장이라는 놈이냐?"
이제 제법 살이 붙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송장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런데도 대뜸 송장이라고 부른 젊은 놈의 말에 발끈했다.
"넌 누구냐?"
"누구냐고? 날 알아 보지 못하는거냐?"
"처음보는 새끼를 너 같으면 알수 있겠어?"
"뭐라고? 트룹은 어딧냐?"
창고 책임자인 트룹을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실수를 한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사과할 마음은 없었다. 이제 굳은 마나도 아슈린이 가져온 포션 덕으로 콩알만큼 풀어진 상태다. 아직 그걸로는 마법을 전혀 시전할수없는 상태다.
"본관에 있을꺼다."
"이 새끼 너! 두고 보자."
화가 난듯한 놈이 건물 정면의 본관쪽으로 빠르게 걸어 갔다. 누군지 궁금했지만 이곳에는 지금 혼자뿐인 관계로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창고의 물품을 정리하고 있을때 트룹과 좀전에 왔었던 젊은 놈이 들어왔다.
"라크~! 자네 무슨 짓을 한것인가?"
"무슨 짓이라니요?"
"도련님께 큰실례를 하지 않았나?"
트룹의 뒤쪽에서 씩 웃고 있는 놈의 얼굴을 한대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놈은 상단주의 아들이었다.
"실례라니요?"
"막말을 하며 손까지 댈려고 했다며?"
"예엣? 이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무슨 손을 댑니까?"
살이 많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갈대같은 몸이다. 먹을것이 변변찮아서 완전히 예전의 몸 상태를 찾을려면 시간이 걸릴것이다.
"크흠, 어서 사과하게."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요?"
"뭐라고?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도련님이란 말일세."
"제가 뭘 잘못했다면 당연히 사과를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단 말입니다."
트룹은 사과를 종용했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자 젊은 놈은 한동안 째려 보고는 두고 보자는 말한마디를 남겨 둔채 사라졌다.
"자네 큰 실수를 한걸세. 각오하고 있어야 하네."
트룹이 경고를 하며 본관쪽으로 달려갔다. 그날 저녁 부상단주의 호출을 받았다.
"자네 일을 그만 두어야겠네. 내일 아침 일찍 상단을 나가게. 가 보게."
일방적인 통보였다. 트룹이 경고한 것이 이런 것이었다. 그렇다고 따질 마음도 전혀 없었다. 이 대륙은 그런 세상이었다. 자신이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상단주가 최고 권력자다. 이 일을 상단주가 아는지는 모르지만 안다고 해도 자기 아들을 감쌀것이 눈에 선했다.
"알겠습니다. 일찍 나가겠습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뱉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아슈린이 돌아 올때까지 이 남작령을 벗어 날순 없었다. 돈이라곤 아슈린에게 받은 3실버와 한달간 일해 받은 1실버를 합한 4실버가 전재산이다. 그 4실버로 몇달정도는 버텨야 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안하네. 나도 어쩔수 없었다네."
아침 일찍 상단을 떠나기 전에 창고로 가서 트룹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도련님이 아슈린 마법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네. 그런 아슈린이 매일 밤 자네 방을 찾아 간다는 소문이 돈거야."
"제가 기억을 잃었다는건 알지 않습니까? 우연히 아슈린 마법사를 만나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슈린 마법사는 절 연구해 본다고 찾아 온것입니다."
"음, 그랬었군.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비추어지지 않았다네. 이제 뭘 할건가?"
"찾아 봐야죠."
상단 밖으로 나가는건 처음이었다. 소렌드 남작령 외성은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 다니고 있었다. 아직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외성을 모두 둘러 보기로 했다. 상점과 여관, 빈민촌등 할일도 없이 돌아 다닌후 잠자는 사막이라는 여관을 찾아갔다. 트블러 용병단의 본거지에 있는 로지를 찾아 간것이다. 하지만 트블러 용병단은 의뢰를 받아 남작령을 나간 상태라고 했다.
빵가게를 찾아 1쿠퍼짜리 흑빵을 한개 사서 입에 물고는 외성밖으로 나갔다. 외성밖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농기구를 들고 나가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따라 나가 이곳으로 오면서 본적이 있는 얕은 산속으로 들어 갔다. 그곳에 임시로 움막을 짓고 아슈린이 돌아 올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적당한 곳을 찾아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 얼기설기 엮어 조잡한 나무집을 만들었다.
웅크리며 들어가야 할 정도였지만 밤이슬만은 피할수 있다는것에 만족했다. 3일에 한번씩 외성안으로 들어가 흑빵을 사 오는것과 우물에서 물을 퍼 오는것외에는 움막에 앉아 마나 연공만 했다. 그런 생활이 이주일쯤 되었을때 용병 차림의 건장한 사내 5명이 움막으로 찾아 왔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좋은 일로는 찾아 오지 않았다는걸 알수 있었다.
"네놈이 송장이냐?"
"라크라고 불러! 무슨 일로 온거냐?"
"이 송장 새끼가! 오크간을 씹어 먹었냐? 죽고 싶냐?"
"킥킥킥...어차피 죽을꺼다."
놈들의 말에 위기를 느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죽일 생각으로 찾아 온것이다.
그그그극.
급히 움막의 나뭇가지 한개를 잡아 당겨 손에 쥐었다. 그탓으로 움막이 폭삭 주저 앉았다. 움막을 지지하고 있는 중추적인 역활을 하고 있던 나뭇가지였다. 무기를 든 5명을 상대로 승산은 없지만 도주할수는 있을 것이다. 왼손가락을 슬쩍 바라 보며 언제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발동시킬지 가늠하고 있을때였다.
"그만 해라. 온전한 상태로 데리고 오라고 했잖아. 송장! 얌전히 따라와라. 쥬미르 상단주가 널 데리고 오라고 했다."
거짓말이 아닌것 같았다. 무슨 일로 상단주가 보자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만약 이곳에서 도주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다. 의뢰를 받은 용병 놈들이 끝까지 추격해 올것이다. 결론은 따라 가기로 했다. 용병들은 상단의 창고로 데리고 갔다. 본관이 아닌 창고쪽이어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창고밖에는 짐꾼들은 물론 상단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짐꾼들중 자신과 친분이 있는 체리의 얼굴에 안쓰러운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무슨 큰일이 벌어진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런 창고안으로 들어서자 부상단주는 물론 트룹이 잡아 먹을듯이 째려 보고 있었다.
"라크! 당장 이실직고해라."
처음 보는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무엇을 말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크! 상단주님의 말대로 당장 말해. 네놈이 훔쳐간 물건은 어디냐?"
부상단주의 말에 이제야 저 중년인이 상단주라는걸 알수 있었다.
"부상단주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훔쳐간 물건이라니요?"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말게. 이미 자네를 봤다는 증인까지 있는 상태야."
"증인? 제가 무슨 물건을 훔친겁니까? 그리고, 그 증인이란 사람은 누구인지요?"
도둑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여기서 자칫 잘못 대응한다면 고문도 서슴치 않는 세계에서 팔다리 한개쯤은 사라져 버릴수도 있다. 무턱대고 따라 오는게 아니었다. 이미 바닥에 쏟아진 물이다. 다시 주워 담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누가 누명을 씌운 것인지 진범을 잡기 위해서라도 요목조목 따져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해야 한다.
"빌리! 어제밤 네가 본것을 다시 말해 봐라."
건장한 체격의 한사람이 나섰다. 자신도 알고 있는 자였다. 상단에서 짐꾼으로 일하는 자다.
"어제밤 늦게 오줌을 싸기 위해 숙소를 나섰을때였습니다. 창고쪽에서 불빛이 어른거려 수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럴때 창고문을 열고 나오는 자의 얼굴을 봤습니다. 송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증인도 있는 상태다. 훔친 물건은 어디에 있는거냐?"
"부상단주님! 빌리의 말을 믿습니까?"
"당연히 믿는다. 이런 일에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꺼다."
"모두 빌리의 말을 믿습니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주욱 돌아 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버퍼! 놈을 데려가서 토해내게 해."
상단주의 말에 자신을 데리고 온 용병들중 한명이 나섰다. 고문을 하라는 지시에 앞으로 나선것이다. 이대로 끌려 가선 않된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부상단주가 대답을 했다.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자신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이상 끝까지 말을 들어 줄것이다. 의문점을 점점 제기해 더욱 자신의 말을 듣게 해야 한다.
"어제는 칠흑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네."
"그런 밤에 횃불을 밝히면 멀리서도 잘 보이겠죠?"
"당연하네."
점점 부상단주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젠 반쯤은 넘어온 상태다.
"저 멀리서도 잘 보이겠죠?"
창고 반대편 숙소를 가르켰다. 모두의 시선이 숙소쪽으로 돌아갔다.
"......."
적어도 백미터 이상이다. 그런 거리에서 아무리 횃불을 밝히고 있다고 해도 얼굴이 잘 보일리가 없었다.
"빌리! 숙소 앞에서 본거야?"
"그, 그렇습니다."
"부상단주님! 제가 빌리에게 몇가지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물어 보게."
이미 부상단주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것 같았다. 빌리는 큰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빌리 네가 창고를 봤을때 창고문은 닫혀 있었나?"
"여, 열려 있었다."
"그런 창고에서 내가 나왔단 말이지?"
"그, 그렇다."
아직 본론에도 들어 가지 않았는데도 빌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가 어느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냐?"
"오, 오른손이다."
"왼손에는?"
"작은 상자가 한개 들려 있었다."
먼거리에서 그것도 깜깜한 밤에 아무리 횃불을 들고 있다지만 확실히 알아 볼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넌 마법사냐? 마법사라며 이글아이 마법을 시전해 먼곳도 볼수있다."
"아니다. 하지만 밤눈이 좋다."
"만약 내가 도둑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창고안으로 들어 가는데 환한 횃불을 밝히고 그것도 창고문을 활짝 열어 제친채 안으로 들어가 나오면서 여전히 횃불을 버젓이 들고 나오는 도둑이 있다고 생각하냐?"
"그, 그건...."
그제야 뭐가 잘못된것을 안것인지 빌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창고는 밤에는 항상 경비를 선다. 그런 경비들은 어디에 있었지?"
"......"
"누구의 지시로 거짓말을 하는것이냐?"
"......."
빌리에게 호통을 쳤다.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빌리였다.
"부상단주님! 어떤 물건이 사라진겁니까?"
"...음. 보석일세."
부상단주는 상단주를 힐끗 바라 보고는 말해 주었다. 빌리의 말을 믿지 않는것이다.
"어디에 그 보석이 있었던겁니까?"
"저 큰상자안에 들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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