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니루이스란 대륙(2)
309화.
또한 헤르난데스 공작이라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헤르난데스 백작이 공작 작위까지 올라간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르난데스 공작이 대마도사라면 적어도 7서클이상이다. 동명이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확인이 필요했지만 용병들에게 그런걸 물어 볼수가 없었다. 지금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상태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다. 괜히 책 잡힐 말은 하지 않는게 좋을것이다. 그레이트 오크들은 아마 오르크 부족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무슨 변수가 생겨 죽음의 산맥을 나가 인간 세계를 침략한것 같았다.
"어이! 송장, 정말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거야?"
덩치가 큰 옆에 있는 평범한 체격의 놈이 송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지금은 참았다.
"그렇습니다. 이름도 몰라 상단주님이 라크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 송장! 이거 먹고 살좀 쪄라. 나중에 갚아야 돼. 알지? 얼마나 못 먹었으면 뼈마디에 살가죽만 덮어 씌워 놓은거 같아 불쌍해서 주는거다."
"감사 합니다. 이름을 알려 주시면 나중에 갚겠습니다."
"난 로지이고 이 녀석은 리신이야."
로지라는 용병이 시커먼 육포같은걸 한개 주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지만 전갈도 생으로 씹어 먹은 켄이었다. 전갈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다. 딱딱한 육포를 조금씩 씹어 먹었다. 노린내가 진동을 했지만 얼마든지 먹을수 있었다.
"로지! 체력을 회복할려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잘 먹어야지. 그것 밖에 없어."
당연한걸 물어 보았지만 심심한 김에 대화를 계속했다.
"혹시 용병들중에 마법사는 있습니까?"
"마법사? 상단에서 일하는 1서클 마법사인 아슈린이 있는데 왜?"
"1서클요?"
"그래. 아슈린 마법사 덕분에 사막에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1서클이라면 마법사축에도 들지 않는다. 정식 마법사라면 적어도 3서클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래도 1서클이라고는 하지만 마법사라면 포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포션을 달라고 할지 고민을 해 보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어딘지요?"
"토르치 왕국의 소렌드 남작령으로 가는거다."
처음 듣는 왕국 이름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서대륙에는 500년전에는 코스모 왕국, 바테 왕국, 마케아 마법 왕국, 테시로 왕국이 있었다. 그런 왕국들이 오크들에 의해 멸망 당하고 새로운 왕국이 들어선것 같았다. 그날 저녁 무렵부터 짐수레의 가장자리를 잡고 천천히 걷는 연습을 했다.
하루에 두끼로 수프를 먹으며 물은 마음대로 마실수 있었다. 아슈린이라는 마법사 덕으로 물만은 풍부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걷고 있는 모습을 용병들이 호기심이 일었는지 지켜 보고 있었다. 몇걸음 떼지도 않았음에도 절로 식은땀이 흘러 나왔다.
"헉헉헉! 힘드네."
"쉬엄쉬엄 하게나."
"아, 오셨습니까?"
상단주인 빌링턴이 언제 다가 왔는지 말을 걸어 왔다.
"이제 이틀후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네. 자넨 어디로 갈건가?"
"......"
"음...기억을 잃어 아무것도 모르겠군. 자네 혹시 글을 읽을줄 아나?"
"글요? 글자를 봐야 읽을수 있는지 없는지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빌링턴이 폼속에서 책자 한개를 꺼내 읽어 보라고 했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팔락.
"...헤, 헤르난데스력 535년. 3월 5일. 생애 24번째 상행 준비를 했다. 이번 상행..."
"그만, 이리 주게."
빌링턴 상단주의 일기장같았다. 전번에 이 대륙으로 왔을때 대륙 공용어를 배워둔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연도(年度)가 헤르난데스력이었다. 이상했다. 이 대륙에서는 대륙년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헤르난데스력이란걸 처음 들었다. 아마 오크들을 물리친 헤르난데스를 기리기 위해 그런식으로 연도를 정한것으로 추측할수 밖에 없었다.
"자네 갈곳이 없으면 우리 상단에서 일해 보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상단에 도착하면 아들 녀석을 찾아 가게."
"알겠습니다."
빌링턴은 라크가 꿈속의 귀인인지 아는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 손안에 두어 살펴 보기로 했다. 마침 글을 읽을줄 알았다. 탈주 노예도 아닌것 같았다. 노예 인장은 몸 어디에도 없었다. 사막을 왜 헤매고 다닌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린 탓으로 물어 볼수도 없었다. 드디어 사막을 벗어났다. 모두가 들뜬 표정들이었다. 30미터는 될법한 큰성벽이 가로 막고 있는 안으로 들어가자 푸른 풀들과 이름모를 나무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돌아 다니고 있었다.
성벽은 바람막이용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시 하루를 더 가면 상단이 있는 목적지라고 했다. 빌링턴 상단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상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접근해 왔다.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몇대의 짐수레의 짐을 상인들에게 보여 주며 흥정을 하고 처분하고 있었다. 거의 절반의 짐이 매매되고 나머지는 상단으로 가져가 다시 다른 상인들에게 넘겨진다고 했다. 상단에서 큰여관을 통채로 빌려 켄에게 배정된 방은 짐꾼들과 함께 쓰는 공용방이었다. 짐꾼 20명이 함께 누을수 있을 정도로 넓은 나무 바닥이었다.
"난 체리다."
"반갑다. 라크라고 불러."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릴 잡았다. 그러자 옆자리의 청년이 이름을 말해 주었다.
"라크! 기억 상실이라고?"
"그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많이 도와줘."
"근데 상단주와는 무슨 말을 한거냐?"
짐꾼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글을 읽을줄 아는지 묻길래 안다고 했어."
체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리고 듣고 있던 짐꾼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일순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말실수를 한것을 알아 차렸다. 이 대륙에서는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 귀족이나 상인등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특한되어 있는것이다. 때문에 상단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이들 짐꾼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입장이 될것이다. 회계 처리같은 일에 종사하게 될것으로 짐작되었다.
"라크! 잘 부탁한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살자."
"근데 넌 귀족은 아니지?"
"기억을 잃어서 몰라."
귀족과 평민의 입장은 천지차이다. 어떤 왕국에서는 귀족이 평민을 죽이더라도 아무런 불만도 토로할수 없을 정도로 귀족의 권위는 막강하다. 이곳 소레사 왕국에서도 그처럼 귀족의 힘이 강한지는 알수 없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귀족이라면 평민들은 슬슬 피하는 존재다. 꼭두새벽부터 움직인 상단은 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켄은 짐수레에 누워 가고 있었다.
"송장! 소렌드 남작령에 도착하면 뭘 한건데?"
"로지! 라크라고 불러. 상단에서 일 할꺼다."
용병인 로지가 계속 송장이라고 불렀다. 장난삼아 부르는것 같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울컥하지 않을수 없었다.
"호오, 이제 말도 까네?"
"송장취급하니까 까는거야."
"큭큭큭...로지! 너 그러다가 라크가 만약 귀족이라면 네 목은 이거야."
덩치가 큰 리신이 로지를 향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로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쳇! 귀족이 혼자서 사막에서 헤매냐? 귀족이라도 해도 몰락 귀족이 분명해."
몰락 귀족은 아무런 권력도 없다. 재산도 변변치 않아 평민이나 거의 다를바없는 대우를 받는다. 오히려 평민들이 무시하고 따돌리기까지 한다. 그런 이유로 몰락 귀족들은 자신이 귀족이었다는것을 숨기고 생활하기까지 한다.
"로지! 리신! 우리 그냥 까 놓고 말 놓자."
"하하하하, 좋아."
"그런데 아슈린이라는 마법사는 어딧는데 한번도 눈에 보이지 않는거냐?"
"상단주 뒤의 마차에 타고 있어서 그래."
지금 타고 가는 짐수레는 행렬 중간 정도다. 마차 서너대와 30대의 짐수레가 일렬로 이동하고 있었다. 앞쪽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아슈린 마법사를 어떻게 하면 만날수 있지?"
"상단에서 일 한다며?"
상단 직속 마법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상단에서 마주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기억 상실에 대해서 물어 볼려고?"
"그래.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잖아. 근데 너희들은 용병단이야?"
"응, 트블러 용병단으로 용병단 전체가 이번 의뢰를 받은거야. 이제 한동안 쉬겠지. 석달간 고생했으니까."
트블러 용병단은 빌링턴 상단의 의뢰를 도맡아 수행한다고 했다. 다른 용병단에서는 빌링턴 상단 전속 용병단이라고까지 부른다. 빌링턴 상단주와 용병 단장이 먼친척이라고 했다. 해가 질쯤 소렌드 남작성에 도착했다. 모두가 흥분된 표정들이었다. 상행이 끝난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들뜬것이다. 외성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상단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남작성에 있는 유일한 상단이라고 했다. 빌링턴 상단은 소렌드 남작과 무슨 관계가 있을것이다. 왕국 수도가 아닌 귀족 영지에서는 상단은 반드시 영주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 영주 직속 상단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무슨 관계가 없으면 상단 운영에 차질을 빚게된다. 영주의 한마디에 상단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라크! 우리들은 잠자는 사막이라는 여관에 있을꺼야. 언제든지 찾아와."
트블러 용병단의 본거지라고 했다. 한동안 그곳에서 쉰다고 했다. 상단 입구에서 용병들은 모두 떠나갔다. 용병 단장만이 상단주와 만나 의뢰금을 수령한다고 했다. 상단인만큼 규모가 대단했다. 정면의 2층짜리 큰건물과 넓은 공터옆에 창고가 여러개 있었으며 마주보는 반대편 먼곳에는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라고 했다.
정면의 큰건물 뒤에는 상단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다고 했다. 환한 횃불이 밝혀져 있는 창고쪽으로 짐수레를 끌고가 짐을 옮겨 놓자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다. 임시로 고용된 짐꾼들은 하나둘씩 수당을 받아 떠나갔고 상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부에 집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떠나자 남아 있는 사람들은 20여명이었다. 빌링턴 상단주는 다른 상인들과 함께 큰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자아, 우리들도 가서 식사를 하자."
창고에서 마주 보이는 반대편 건물로 향했다. 숙소라고 한곳이지만 식당겸 숙소였다. 식당에는 이미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수프와 검은 빵이었다. 조금씩 빵을 찢어 수프에 찍어 먹었다. 딱딱한 빵이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지구에서는 이런 빵은 먹지도 못할 것이다. 너무 딱딱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 구워 놓았길래 이렇게 딱딱한지 돌멩이나 마찮가지였다. 그렇더라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모두들 허겁지겁 쑤셔 넣고 있었다.
"체리! 매일 이런 빵을 먹는거야?"
"그래. 맛있지? 다른곳에선 이런 것도 못 먹어."
지금은 맛있게 먹고 있지만 매일 이런 빵을 먹으라고 하면 먹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막에서 전갈만 먹던걸 생각하면 감지덕지한 빵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요사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편해졌다고 더 편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상단 직속 짐꾼들의 방은 여관의 공용방과 비슷했다. 넓은 마루위에 제각기 담요를 깔고 얇은 홑이불을 덮고 잔다.
"라크! 이걸 깔고 자."
"고맙다."
체리가 자신의 홑이불을 건네 주었다. 체리는 담요를 둘둘 말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모두들 피곤한지 코고는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주욱 훑어 보고는 마루 바닥에 정좌를 하고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누워서 연공을 했지만 정좌를 한 상태가 좀더 효율적이다.
"후~웁! 후~웁!"
짐꾼들의 코고는 소리는 금새 잊혀지고 낮은 숨소리만이 들려 오고 있었다. 새벽부터 짐꾼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이들이었다. 켄도 큰건물쪽으로 나무 막대를 짚으며 걸어 갔다. 아직도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선 제대로 걸을수 없다.
"누구지? 처음 보는 자인데?"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비교적 깨끗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제지를 했다.
"라크라고 합니다. 상단주님이 부상단주님을 찾아 가라서 해서 온겁니다."
"아! 자네가 사막의 송장..크흠...라크라는 자이군. 따라 오게."
로지 놈이 송장이라고 말한탓에 모두에게 송장이라고 알려진것 같았다. 결코 달가운 별명이 아니었다. 사무실같은 곳으로 따라 들어 가자 나무 의자에 자리를 권했다.
"부상단주님에게 이미 말은 들었네. 글을 읽을줄 안다고?"
"예."
"그럼 이걸 읽어 보게."
두툼한 책자를 한개 건네 주며 정말 읽을수 있는지 시험을 하고 있었다.
팔락.
"만물이 소생하는 봄 향기가 진동하는 밤. 밝은 달빛을 받으며 후드를 뒤집어 쓴 한 인영이 엉덩이를 흔들며 잰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됐네. 글을 아는군. 자네는 창고 재고를 관리하는 일을 할걸세. 창고에 가면 트룹을 찾아 가서 일을 배우게.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리게. 그 꼴로는 돌아 다닐수 없을께야."
중년인이 안쪽으로 들어 갔다가 옷가지를 들고 나와 따라 오라고 했다.
"이곳이 앞으로 자네가 생활할 방이네. 빨리 돈을 모아 밖에서 생활하도록 힘 쓰게나. 자네의 월급은 3실버네. 하지만 자네에게 사용한 포션값 10골드를 다달이 1실버씩 제하고 다시 음식값으로 1실버를 제하고 남은 1실버가 실질적으로 자네가 수령할수 있는 월급이라네."
"감사합니다."
일단 이곳에 붙어 있어야 했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돈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몸을 씻고 이 옷으로 갈아 입고 창고로 가 보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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