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명현 현상
155화.
방금 짜낸 그릇에 담긴 마나양도 확인이 끝난 상태다. 작은 포도알 한개 정도의 마나였다. 그 정도의 마나만으로 명현 현상이 발생한것이다. 땅속에서 캔 검은 물체보다 더 많은 양의 마나였다. 마법 주머니안에서 상급 동충하초 20개를 꺼냈다. 이 정도면 방금 그릇에 담긴 석청과 같은 양의 마나였다. 갑자기 켄이 품속에서 동충하초를 꺼내자 일행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했다.
"20개의 상급 동충하초라면 방금 먹은 그릇에 담긴 석청과 같은 효과를 낼것이다. 누가 실험해 보겠나?"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너희들이 믿지 못하니까 실험을 하는게 아니냐?"
"......"
그런 말은 누구라도 믿지 못할 말이었다. 믿는 사람이 미친 놈이다.
"첸!"
"예. 보스."
텐트안에서 급히 나온 첸이라는 사내에게 동충하초를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딱딱한 동충하초를 그대로 먹을순 없었다.
"이걸 빻아라. 이대로는 먹을수 없을테니까 가루로 만들라는 말이다."
슈란달이 그릇안에 동충하초를 넣고 주워 온 돌로 빻기 시작했다.
"그대로는 먹기 힘들테니까 물에 타서 먹어."
꿀꺽꿀꺽.
첸이라는 사내가 뚝딱 한그릇을 비우고는 정말로 석청을 먹은 군이라는 사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좀처럼 첸이라는 사내에게 명현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근한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런 이상 현상도 없자 모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나 스캔으로 군이라는 사내와 첸이라는 사내의 몸을 비교하고 있었다. 군이라는 사내가 마신것은 액체 모양의 꿀이다. 하지만 첸이라는 사내는 가루로 만들긴 했지만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큰 가루, 즉 고체다. 몸으로 흡수되는 성질이 다른것이다. 고체보다는 액체가 더 빨리 흡수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발현되는 명현 현상에도 차이가 날것이다.
"30분안에 명현 현상이 발생할테니까 조금 더 기다려."
켄이 장담한대로 30분이 지나자 첸이라는 사내는 갑자기 자리에 주저 앉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보, 보스...모, 몸이...엄청 춥습니다."
"불을 피워."
랑타르 형제가 급하게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을 피웠다. 그러는 사이에 첸이라는 사내는 모포를 몇개나 덮고는 덜덜 떨고 있었다. 입술도 파리한게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이군."
명현 현상은 사람마다 나타 나는 증상이 다른다는걸 이미 조사해 알고 있던 왕청은 정말 동충하초에 고려 인삼이나 석청에 들어 있는 약효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런데 몇개의 동충하초를 먹어야 그런 효과를 볼수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선인이라는 이 자는 이미 알고 있는듯했다.
'정말 선인일까?'
갑자기 선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속에서 어떤 수련을 쌓아 무언가를 감지할수 있는 능력을 발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에서도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정말 그런 자라면 쉽게 대할수 없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능력만으로도 추측하기 힘들 정도다.
까마득한 절벽위에 있는 석청을 완벽한 모습으로 채취하는가 한편 동충하초의 숨겨진 약효도 알아 낸 자다. 이런 능력자라면 친분을 나누어 두는게 이득이다. 급한 일이 발생했을때 도움을 받을수도 있는 일이고 다른곳에 있는 동충하초를 구분해 달라고 부탁을 할수도 있는 일이다.
"명현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상급 동충하초 20개면 명현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대충 그 정도면 충분하다. 허약한 체질이라면 더 적어도 된다. 저 놈은 몸이 튼튼해서 늦게 나타났을뿐이다."
"그럼 하급 동충하초는 몇개 정도면 나타 날수 있는 겁니까?"
"상급의 절반이 중급, 중급의 절반이 하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상급중에는 중급의 서너배가 되는 것들도 존재한다."
마나가 들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 놓으면 아마 약효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럼 그것은 최상급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렇다."
"좋습니다. 그럼 선인님이 제시한 가격에 모두 매입하겠습니다. 아, 전 왕청이라고 합니다."
"박건이다."
이름만 들으면 조선족같았다. 하지만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이름을 안것만으로도 한걸음 다가 간것이다.
"그럼 최상급은 어떤 가격으로 매입하면 되겠습니까?"
"음...개당 8만 루피가 적당하겠다."
"그 가격에 매입하겠습니다. 그럼 최상급만 따로 구분해 주십시요."
텐트로 들어간 켄은 상등급 동충하초를 모두 꺼내 최상급으로 분류할수 있는 것들을 골라 냈다. 역시 최상급품은 갯수가 적었다. 상급 362개중에 20개를 사용해 남은 것 중에 최상급품은 불과 24개밖에 없었다.
"모두 몇개입니까?"
"최상급품은 모두 24개다."
왕청이라는 사내는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컸다. 그런 표정을 본 켄은 이해할수 있었다. 마나에 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마나가 많이 농축되는 물건이 그렇게 흔할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동충하초는 모두 2천여개입니까?"
"아니다. 반찬드라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한번 더 캐러 갔었거든. 모두 6032개를 가지고 있다. 아, 저 첸이라는 남자에게 사용한 20개를 빼면 모두 6012개다."
동충하초 갯수를 들은 왕청과 반찬드라는 입이 쩍 벌어졌다. 너무 놀란것이다.
"유, 육천개라고요?"
왕청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 만큼의 자금은 가져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유 자금으로 더 가져 오긴했지만 최상급이라는 것을 매입하면 딱 알맞는 자금뿐이었다. 동충하초 거래는 무조건 현찰 박치기다. 외상 거래는 있을수 없다.
"저어, 자금이 많이 부족합니다. 시간을 주시면 가져 오겠습니다."
"그런가? 그럼 우선 가져 온 자금만큼 매입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석청은 얼마에 파실겁니까?"
마나가 엄청 들어 있다는 것을 안 켄은 팔 생각이 없었다. 한그릇정도에 작은 포도알만한 마나가 담겨 있다면 한개에 얼마큼의 마나가 들어 있는지 엄청난 양이다. 그런 것을 안 이상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행인 고산족들을 생각하면 팔아 돈을 나누어 주는게 좋을것 같았다.
"음...딱 2개만 팔겠다. 한개에 엔화로 1억엔! 그 이하로는 절대 팔지 않겠다."
쩌어억!
듣고 있던 모두의 입이 한없이 벌어졌다. 입이 찢어질 정도였다. 고산족 일행들은 엔화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억'이라는 소리에 놀란것이다.
"에, 엔화로 1억엔이요?"
"그래. 석청 한그릇으로 명현 효과를 볼수 있다. 자연산 고려 인삼과 마찮가지 효과인것이다. 자연산 고려 인삼 한뿌리가 얼마나 하는지 알고 있지? 저 석청 한개가 고려 인삼 몇개에 해당될까? 아마 몇백개는 될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완전 헐값이다."
"하, 하지만 석청은 다른곳에서도 구할수가 있습니다. 1kg에 4만 루피면 충분히 살수 있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사."
"......."
단호한 대답에 할말을 잃은 왕청이었다.
"다른 석청이 어떤지는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이 석청은 확실히 명현 현상이 발생한다. 그만큼 약효가 뛰어 나다는 것이다. 그런걸 날로 먹을려고 하면 탈 난다."
"그럼 다른 석청을 감정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가져 와 봐. 벌집에서 짠것과 벌집 그대로의 석청을 가져 와."
"알겠습니다. 반찬드라! 가까운 마을로 가서 석청을 구해 와라."
반찬드라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돌아 올수 있을 것이다. 이곳 마을에는 석청을 상비해 두고 있었다.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어쩔수 없이 반찬드라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텐트로 들어간 켄은 조금 쉴 생각이다. 텐트 밖에선 슈란달 일행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 반찬드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왔다.
"헉헉헉! 가지고 왔습니다."
등에 지고 있는 배낭을 내리고는 비닐 봉지 두개를 꺼내 보였다. 봉지를 풀어 헤치자 석청과 짜낸 꿀이 들어 있었다.
"감정해 주시겠습니까?"
"알았다."
이미 마나 서치는 끝낸 상태다. 비닐 봉지에서 꺼냈을때 파악을 해 놓았다. 덩어리로 유지하고 있는 석청에는 역시 마나가 많이 함유되어 있었다. 하지만 덩어리에서 짜낸 석청은 그렇지가 않았다. 마나가 많이 사라진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진다고 생각되었다.
"이건 짜낸지 얼마나 지난건가?"
"어제 저녁에 짜낸 것이라고 합니다."
"음..."
하루가 지난 것이다. 단하루만에 이토록 많은 마나가 흩어졌다면 며칠만 지나면 마나는 거의 사라질것으로 예상되었다. 고산족들이 약으로 사용한다는 말은 마나외에 다른 약효가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마나가 없더라도 약효만 유지된다면 충분히 약으로 쓸만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이 덩어리와 덩어리에서 짜낸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짜낸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효가 많이 사라진다. 덩어리에서 짜내면 곧바로 복용하는게 온전히 약효를 흡수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믿기지 않으면 실험을 해 봐도 좋다. 이 두 종류의 석청을 가지고 각각 실험해 보자. 갓 짜낸 석청과 이미 시간이 지난 것으로 실험을 해 보면 확실히 알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복용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음...믿겠습니다."
이 선인이라는 자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치의 떨림도 없이 자신있게 말하는 표정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럼 복용할때만 짜내라는 말이군요."
"그렇다. 그리고 이 석청은 독 성분이 없는거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반찬드라가 가지온 석청엔 독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거다."
반찬드라와 고산족인 슈란달이나 랑타르 형제는 믿지 못하는듯했다. 자신들이 가끔씩 먹는 석청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이것에 들어 있는 독에 내성이 생겨서 아무렇지도 않는거다. 석청을 처음 먹는 사람이이라면 아마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나거나 할것이다.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을꺼다. 석청의 약효와 함께 독 성분까지 몸안으로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 그게 사실이라면 석청을 먹고 죽은 사람은...독에 당했다는 말이군요."
켄의 설명에 고산족 일행은 금방 이해가 된듯했다. 그런 일이 가끔씩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에겐 절대로 석청을 많이 먹게 하진 않는다.
"석청에 독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인님의 말대로 저 석청에 독 성분이 없다면 제시한 가격 그대로 개당 십억 루피에 모두 구입하고 싶습니다."
왕청은 욕심을 냈다. 확실한 물건은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라면 오히려 다른 물건과 비교하면 헐값이라고 느껴졌다.
"말했을텐데. 2개만 판다고."
"3개! 3개만 팔아 주십시요. 더이상은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음...어쩔수없군. 좋아. 3개를 팔지. 대신에 자금을 마련해 올때 스마트 폰을 한개 가져 와."
"감사합니다. 스마트 폰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숨을 죽이며 둘의 협상을 듣고 있던 일행들의 정신이 공황 상태로 빠져 들었다. 석청 3개를 무려 30억 루피에 팔고 그걸 또 애원하며 팔아 달라고 하는 중국인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반찬드라가 말한 2345개의 동충하초를 먼저 계산하겠습니다. 하급품이 1563개..."
왕청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산위에서 채취해 구분하고 제시한 동충하초 가격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급품 가격이 7백 81만 5천, 중급품이 6백 57만, 상급품이 6백 25만으로 총 합계가 2천 63만 루피입니다. 상급품에는 부하에게 먹인 20개를 포함시킨 가격입니다. 이 돈은 곧바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동충하초는 몇개인지 알려 주십시요."
"하급 2342개, 중급 1108개, 상급 213개, 최상급 24개다."
"그럼..."
왕청은 부지런히 계산을 했다.
"하급이 1천 1백 71만, 중급이 1천 1백 8만, 상급이 1천 65만, 최상급이 192만으로 총 합계가 3천 5백 36만 루피군요."
계산을 끝낸 왕청도 입이 쩍 벌어 질수 밖에 없었다. 한사람에게 이런 가격에 동충하초를 매입한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그럼 석청 3개까지 포함하면 엔화 3억엔, 그리고 루피로는 3천 5백 36만 루피가 되겠군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자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보관해 주십시요."
"걱정마라. 이 상태 그대로 보관해 놓겠다."
왕청이 반찬드라에게 눈짓을 했다. 당나귀에서 짐을 끌어 내린 반찬드라가 단단히 묶어 놓은 것을 풀자 돈다발이 드러났다.
"세어 보십시요. 2천 63만 루피입니다."
"됐다. 믿어 주지."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빠른 시일내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그런데 엔화로 현금 3억엔을 이곳으로 가져 오기가 쉽지않습니다만 혹시 통장을 가지고 계신다면 송금을 하는 식으로 이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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