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켄

317화. 마법사 라크(2)

317화.

젤톤은 아직도 반말을 하고 있었다. 마법사라면 당연히 존대를 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몇달동안 반말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존대말은 나오지 않을것이다. 젤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젤톤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며 경비병 놈들을 째려 보았다.

"나와라!"

겁에 질린듯 벌벌 떨면서 주춤주춤 앞으로 나온 놈들에게 다가가 뺨을 한대씩 후려쳐 주었다. 그것으로 그날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어 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놈들은 지옥에서 살아 돌아 온듯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젤톤이 그냥 두지 않을것 같았다.

"송장...아. 미안! 라크라고 했지? 근데 젠티르와 저 용병들은 뭐야?"

"아슈린 마법사를 납치하고 인질로 잡아 날 죽일려고 유인한 놈들이야. 저 언덕에 움막이 있던 곳으로 가면 용병 7명이 죽어 있을꺼야."

"내게 넘겨줘."

"뭐? 넘겨주면 그냥 풀어 줄려고? 내가 암살을 몇번이나 당했는데도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도 넘겨 달라고? 않돼! 납치범을 잡으면 공개 처형을 한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아?"

젤톤은 더이상 내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젠티르와 용병놈들을 끌고 외성안으로 들어 서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미 성벽에서 큰폭발음으로 인해 몰려 들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곧장 놈들을 끌고 빌링턴 상단으로 향했다. 젤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따라 오고 있었다. 이미 빌링턴 상단에서는 젠티르가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상단 정문에 부상단주인 네이슨이 나와 있었다.

"라크! 이게 무슨 짓인가?"

"젠티르는 납치및 협박범으로 현장에서 잡아 온거다."

"뭐라고? 당장 풀어 주게."

네이슨은 아직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것 같았다.

"젤톤! 내가 풀어 주어야 하나?"

"......"

"풀어 줄 필요가 없다는데?"

확대 해석을 해 젤톤의 말을 대변하자 젤톤의 이마에 내천자가 그려졌지만 아무런 말은 없었다.

"공개 처형을 할꺼다. 그렇게 알려 줄려고 찾아 온거야."

"부상단주! 아버지를 불러와."

퍽!

"악!"

젠티르의 외침에 놈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주었다.

"이놈! 당장 도련님을 풀어라."

"놈이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

"부상단주! 입 조심하게."

"젤톤, 끼어 들지마!"

젤톤이 끼어들자 즉시 켄이 나서 제지했다.

"자네도 이쯤에서 화해를 하게."

성문밖에서는 편안한 말투로 대하더니 이곳에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반존대를 하는 젤톤이다.

"내가 왜?"

"자네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이곳으로 데려 온게 아닌가?"

정곡을 찌르는 젤톤은 이미 켄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젠티르를 죽여 봐야 이득이 되는건 없다. 자신에게 암살범을 보낸건 쥬미르 상단주다. 용병놈의 진술에 따르면 상단주가 직접 지시했다고 했다. 자기 아들이 누명을 씌인 범인이란게 들통나자 화가 난 상단주가 켄의 입을 막을려고 암살자들을 보낸 것이다. 아들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게 늘리 알려지면 상단 운영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왜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거지? 마법사의 생리를 모르는군. 잘 봐."

용병 한놈을 시범적으로 죽일려고 마법을 시전할려고 할때였다.

"멈추게."

상단안에서 큰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급히 달려왔다. 쥬미르 상단주였다.

"라크! 자네가 마법사라고? 왜 그런걸 숨기고 있었나?"

"숨긴게 아니라 기억이 난거다. 상단주가 보낸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해 여기를 맞은후 내가 마법사란걸 알아 차린거다."

쥬미르 상단주는 켄의 말에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자신이 암살자를 보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할순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암살자를 보냈다니!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아무리 자네가 마법사라고 해도 용납할수 없는 일이네."

"지랄하네. 마나의 맹세를 아나?"

마법사가 마나의 맹세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서클 고리가 무너져 폐인이 된다. 그런탓으로 마법사는 왠만해서는 마나의 맹세는 하지 않는다. 자신의 뜻을 확실히 관철시키기 위해선 어쩔수 없이 마나의 맹세를 하기도 한다.

"안다면 당장 마나의 맹세를 할께.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곧바로 알수 있을꺼야. 그렇지 않아?"

"음...일단 들어 가서 이야기하세."

궁지에 몰린 상단주는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이곳은 지켜 보는 눈들이 너무 많은 탓에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상단주가 암살범을 보냈다는 말에 많은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단주의 제안을 받아 들여 안으로 들어 갔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며 저놈들을 잘 감시해."

안으로는 젤톤을 데리고 들어 갔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상단주와 부상단주, 젤톤과 켄이 앉았다.

"음, 내 먼저 사과함세. 자네가 마법사인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을걸세. 사과하는 의미에서 충분한 보상을 하겠네. 그것으로 젠티르를 풀어 주게."

"...음."

협상을 제안하는 상단주의 말에 어떻게하면 좋을지 생각을 해봤다. 이곳으로 올땐 상단주를 족칠 생각이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은 후련해 지겠지만 아무런 이득이 없다.

"라크! 좋게 끝내자. 빌링턴 상단이 없으면 남작령은 곤란해져."

젤톤이 협상하라고 종용했다.

"좋아, 그럼 보상안을 말해 봐."

"100골드! 어떤가?"

"100골드? 아슈린은 납치 당했었다. 또한 아슈린을 보호 할려든 용병도 부상을 당했어, 그들에 대한 보상은?"

자신의 몫은 물론 다른 이들의 보상까지 받아내야 했다.

"음, 그럼 아슈린에게는 10골드. 용병에게는 5골드. 어떤가?"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부상단주가 가지고 온 묵직한 주머니를 받고는 이것으로 모든 은원은 없다고 하며 밖으로 나갈려고 할때였다. 아들에게 상단을 물려주고 은거를 하고 있던 빌링턴 전상단주가 사건을 들었는지 찾아 왔다.

"라크! 자네가 마법사였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기억을 찾았거든요."

"음...이야기는 모두 들었네. 내 사과함세. 못난 아들과 손자때문에 자네가 큰 피해를 입었다더군."

"몇번이나 죽을뻔했지만 모두 잊어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럼 전 그만 가 보겠습니다."

빌링턴 전상단주는 켄을 잡을수 없었다. 상행을 하기전에 꾼 황금색 피닉스가 품속으로 들어온게 바로 저 라크라는 마법사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치해둔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미 다시 품속으로 끌어 들이기엔 너무 깊은 골이 생긴것이다. 다행히 무사히 은원은 정리된것 같았다.

"가자."

상단 밖으로 나간 일행은 곧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잡아 놓은 용병들은 경비대에 넘겨진 상태다. 그들은 생사는 장담할수 없다. 아마 노예 인장이 찍혀 팔려 나가든지 공개 처형을 당할것이다. 여관에서 아슈린에게는 50골드, 로비와 리신에겐 10골드씩 건네 주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걸 받아도 되는겁니까?"

"갑자기 왠 존대냐? 평소대로 반말해. 리신, 네가 받지 않는다면 모두 로지에게 준다."

"하하하, 그렇지! 나도 갑자기 존대를 할려니까 입이 오글거리더라고. 이건 받을께. 고맙다."

아슈린에게 슬립 마법 아티팩트를 팔고 사온 포션 두병을 받아 들고 방안으로 들어 갔다. 하급과 중급 포션 한병씩이다. 한꺼번에 두병을 입안에 털어 놓고 마나를 녹이기 시작했다. 포션은 트롤의 피를 마법사나 신관이 정제해 만든다. 트롤의 피에는 독성이 강해 그대로는 사용할수 없다. 마법사는 자신의 마나로 독성을 제거하고 신관은 신성력으로 제거한다.

그런 포션에는 마나와 신성력이 남아 있는것이다. 등급이 올라 갈수록 마나를 더 많이 쏟아 부어 정제를 하기에 그만큼 더 많은 마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포션이라고 부르는건 마법사가 만든 포션이다. 신관이 만든 포션은 신성 포션으로 그 효능이 탁월하다. 마법사가 만든 포션과는 견줄수도 없을 정도의 치료 효과를 볼수 있는 만큼 굉장히 비싸다.

"후~웁! 후~웁!"

가늘고 긴 호흡이 밤새도록 소곤거리고 있을때 숨을 멈춘 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제 됐다.'

기분이 날아 갈듯했다. 당장 샐라임을 불렀다.

- 호호호, 축하드려요.

- 부탁한다.

이제 샐라임을 부를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녹인 상태다. 샐라임은 더이상 역소환되지 않을 것이다. 녹인 마나로 샐라임을 유지하면서 샐라임이 다시 마나를 계속 녹이기 때문이다. 샐라임에게 도움이 되게끔 켄도 다시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대체 며칠동안 방구석에 틀어 박혀 있는거냐?"

"배 고프다. 밥 먹으로 가자."

무려 일주일만에 방에서 나왔다고 했다. 며칠이나 지났다는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이나 지났을줄은 몰랐다. 이제 아공간을 맘대로 열고 닫을수 있다. 굳은 마나가 모두 녹진 않았지만 시간 문제다.

"뭘 그리 실실 쪼개냐?"

기쁜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는지 로지가 태클을 걸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간만에 푸짐하게 식사를 하고 모두를 방으로 불렀다.

"동대륙으로 갈려고 한다. 먼저 아슈린 넌 어쩔래?"

"따라 갈래요."

아직 아슈린은 2서클을 만들만큼 마나를 모으지 못한 상태다. 마나 연공법이 형편없는 것인지 아니면 아슈린의 자질이 모자라는 것인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호위 의뢰를 끝내면 용병단으로 돌아 가는 거냐?"

"그래. 난 1년정도만 더 용병 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작은 술집을 차릴꺼다."

"리신! 너는?"

"난 당장 고향으로 돌아 가도 돼. 하지만 이 녀석을 혼자 놔 둘수 없어 당분간 같이 있을려고. 나중에는 고향에서 땅을 사서 농사나 짓고 살꺼다."

용병들은 의뢰를 한번씩 나가면 제법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자신의 무기나 장비 구입에 큰돈이 들어가고 고된 일로 인해 의뢰가 끝나면 대부분 술이나 여자에게 탕진해 버려 손에 남는게 없다. 알뜰하게 모으면 시골에 땅을 살만큼 벌수 있지만 그렇게 모으는 자는 거의 없다. 용병 생활을 처음 할땐 그런 꿈에 부풀어 있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에 회의를 느껴 하루 벌고 탕진하는 삶이 깊숙히 침투해 나이가 들었을땐 할일이 사라져 빈민가로 흘러 들어가거나 나이가 들기전에 영지 병사로 들어가는게 용병들의 삶이다.

"그럼 이걸 한개씩 받아."

품속에서 주머니 두개를 꺼내 한개씩 건네 주었다.

"이게 뭔데?"

"열어봐."

제각기 주머니를 열어 본 로지와 리신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행한 의뢰비다."

"이, 이게 대체 얼마야?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는거야?"

"이런 큰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움막 생활을 한거냐?"

"백골드씩이다. 움막 생활은 그럴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마직막으로 이 돈으로 마차를 한대 구해줘. 동대륙으로 갈테니까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 줘. 동대륙으로 갈수 있는 지리를 잘 아는 마부도 구해 주고."

그렇게 부탁을 하고 둘이 나가자 아슈린에게도 주머니 한개를 건네 주었다.

"제게도 주시는거에요?"

"그래. 천골드가 들어 있는 마법 주머니다."

"마, 마법 주머니요?"

깜짝 놀라는 아슈린이었다. 마법 주머니는 굉장히 비싸다. 가장 작은 것도 몇백 골드를 상회한다. 아슈린에겐 천 골드보다는 마법 주머니가 관심을 끌었다.

"이런걸 받아도 되는지요?"

"그동안 고생한 대가다. 네 덕분에 이제 마법을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아! 고마워요."

"너도 여러가지 준비를 해둬. 동대륙까지는 한달이나 걸린다며?"

아슈린도 이동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밖으로 나가자 켄 혼자만 남았다. 지금도 샐라임은 굳은 마나를 녹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상태라면 동대륙으로 도착할때쯤이면 완전히 녹일수 있을 것이다. 로지와 리신이 구해온 마차는 이두 마차였다. 제법 큰 마차로 튼튼해 보였다. 마부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 출발할꺼냐?"

"내일 갈려고."

"그럼 파이츠 무역 도시까지 같이 가 줄께."

파이츠는 사막을 빠져 나와 처음으로 들런 도시다. 동대륙에서 사막을 건너 오는 상인들이 집결하는 도시로 그곳에서 토르치 왕국 상인들과 다른 왕국에서 온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기고 다시 물건을 구입해 동대륙으로 건너 가는 상인들로 북적거리는 무역 도시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면 마부도 쉽게 구할수 있다고 했다. 동대륙에서 건너 온 상인들은 제각각이다. 큰무리로 한꺼번에 건너 오지만 개중에는 개인적으로 짐을 싣고 오는 상인들이나 짐을 지고 오는 영세 상인들도 많다고 했다. 그런 영세 상인중 한명을 마차에 짐을 싣어 준다는 조건으로 마부로 고용해 준다고 제안하면 거절하는 상인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마차에 짐을 실을수 있는 만큼 가져 갈수 있는 짐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그닥. 다그닥.

이른 아침 마차가 출발했다. 파이츠 무역 도시까지는 3일이나 걸린다. 서둘러 가고 싶었지만 마차 의자가 불편해 엉덩이에 뿔이 날 지경이다. 조금만 빨리 달려도 덜컹거리는 마차의 의자는 나무로 만들어 진탓으로 엉덩이가 덜썩거렸다.

"이건 대체 뭐냐?"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로지와 리신이 야영 준비를 할때 아공간을 열어 텐트를 꺼내자 기겁하는 둘이었다. 설명하기도 귀찮아 작은집이라고 대충 얼무버린후 텐트를 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야아~! 정말 좋다. 리신! 이런게 있다는게 믿어지냐?"

"아티팩트가 아닐까?"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