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블랙 드래곤 브라이스(2)
144화.
"죄송하지만 그것만은 허락할수 없습니다."
"음...어쩔수 없군. 그럼 다른 방안을 강구해 봐야겠다."
"그냥 믿어시죠. 제 말은 사실이니까요."
"믿고 싶지만 믿을수 없는 일이다."
켄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읽을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당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마법을 시전할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브라이스라는 드래곤이 어떤 행동을 한다면 선빵을 날릴 생각이다. 싸움은 선수를 치는게 절반은 먹고 들어 간다.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을때 엘레스라는 엘프가 방으로 들어 왔다.
"응? 저건 뭐지?"
엘레스 뒤쪽에 책 한권이 둥둥 떠서 따라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을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특이했다. 투명한 인간 모습을 한 여자가 책을 들고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았지만 틀림없는 투명 인간 여자였다.
"역시 알아 보는군."
"......"
뭘 알아 본다는 것인지도 모른채 멍하니 투명 인간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엘프에게서 뻗어져 나온 가느다란 마나가 투명 인간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쉴새없이 엘프의 마나가 투명 인간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때 엘프가 마나를 공급해 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저 투명한 여자가 보이지?"
"그, 그렇습니다. 대체 저 여자는 뭡니까?"
"정령이다."
"정령이라고요?"
이 대륙에 정령사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 굉장히 희귀한 존재로 정령 마법을 사용해 정령을 부린다고 했다. 정령 친화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절대 정령을 소환할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자신에게는 저 정령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다면 정령 친화력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엘레스! 이 자에게 정령과 계약을 맺어 줘라."
"알겠습니다. 절 따라 오세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 오라는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켄은 얼굴을 붉히며 따라 나섰다. 그런 켄을 쳐다 보지도 않은채 브라이스는 엘레스가 가지고 온 드래곤 계보라는 책을 살피고 있었다.
*******
"정령과 계약을 맺을려면 먼저 정령 소환진을 그려야 합니다. 제 친구인 엔다이론을 알아 보셨다면 정령 친화력은 굉장하므로 계약은 문제없을거에요."
"엔다이론? 그럼 그 투명한 여자의 이름입니까?"
"호호호! 그렇답니다. 물의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이랍니다."
정령 소환진을 그리면서 엘리스는 설명했다.
"지금 당신이 그리고 있는 마법진을 기억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하지만 이 정령 소환진은 정령석이 없으면 그리지 못해요."
엘리스의 허락을 받고 정령 소환진을 메모리 마법을 사용해 기억해 두었다. 마법진은 마나석이나 마정석 가루로 그리지만 정령 소환진은 정력석 가루로 그리는 것이다. 골드 드래곤인 이카리스는 자신에게 마법에 관한 기억은 주입해 주었지만 정령에 관한 일은 없었다.
"다 됐어요. 소환진 중앙에 올라가 어떤 정령과 계약을 할지 마음속으로 떠 올리며 마나를 소환진에 주입하면 정령이 등장할거에요."
"정령은 어떤 종류가 있는겁니까?"
"4대 정령이라는 물, 불, 바람, 대지외에 어둠, 빛, 번개등 모든 세상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정령이 들어 있답니다. 그런 정령들중에 자신이 원하는 정령을 떠 올리시면 되요."
너무 광범위했다. 그런 정령들중에 어떤것을 떠 올려야 할지 몰랐다.
"모든 정령을 떠 올리면 어떻게 됩니까?"
"호호호! 당연히 자신과 친화력이 있는 정령이 소환되겠죠. 하지만 정령과 계약해 소환하면 자신의 마나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정령을 유지할수 있답니다. 강한 정령과 계약해 소환하면 그만큼 소모하는 마나가 많아 진답니다. 마나를 유지할수만 있다면 친화력이 있는 어떤 정령과 계약해도 상관없어요."
계약자의 친화력에 따라 정령을 소환해 계약을 맺더라도 마나가 별로 없으면 소환을 오래 유지할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드래곤은 어떤 정령과 계약합니까?"
"위대한 존재분들은 굳이 정령과 계약하진 않습니다. 정령들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강한 위대한 존재들이시니까요."
"그럼 어떤 정령은 어떤 일을 할수 있는지 설명을 해 주십시요."
"4대 정령만 설명해 드릴께요. 물은 정령은 치유및 정화, 불의 정령은 소멸, 바람의 정령은 순환, 대지의 정령은 생성을 관장한답니다. 또한 정령은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정령왕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등급이 올라 갈수록 공급해 주어야 하는 마나도 많아진답니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달랐다. 모든 정령과 계약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켄이 정령 소환진으로 올라서자 엘레스가 정령 소환 주문을 영창했다.
"세상 만물을 관장하는 이들이여 소환에 응해 주십시요. 발동!"
화아악!
발동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정령 소환진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엘레스의 주문 영창을 듣고 있던 켄은 즉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 집중했다. 4대 정령 모두와 계약하기로 마음 먹고 마나를 주입시켰다.
잠시후 더욱 환한 빛이 소환진에서 터져 나오며 투명한 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결 모양으로 출렁되는 여자와 머리 카락이 화염으로 둘러 쌓여 활활 타오르고 있는 여자,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소환진 위를 빙글빙글 날아 다니는 여자, 소환진 위에서 묵묵히 켄을 바라 보고만 있는 여자들로 총4명이었다.
"우리들을 부른게 당신이에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켄은 깜짝 놀랐다. 4명의 여자들이 켄을 바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하고 계약을 맺겠나?"
"호호호! 좋아요.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은 켄님과 영혼의 맹약을 맺습니다. 영혼의 끈이 끊어질때까지 함께 할것이며 서로를 존중하며 보호할것을 맹세합니다."
"야마모토 켄은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과 영혼의 맹약을 맺는다. 영혼이 끈이 끊어질때까지 함께 할것이며 서로를 존중하며 보호할것을 맹세한다."
켄의 말이 끝나자 머리속이 한번 화끈해 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혼의 맹약이 새겨진 것이다. 다른 정령들과도 똑같은 맹약을 맺었다. 모두 상급 정령들이었다.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 불의 샐라임, 바람의 실라이온, 대지의 노에스였다.
"호호호, 주인님은 특이한 분이시군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다시 부를때까지 돌아가."
계약한 정령들이 사라지자 정령 소환진의 빛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럴때였다.
"저하고도 계약을 맺어 주세요."
"응?"
꺼져가는 소환진 바닥 아래서 검은 물체가 얼굴만 드러낸채 말을 걸어 왔다.
"넌 누구지?"
"어둠의 중급 정령이에요."
"그래. 계약하자."
켄의 마음속 어딘가에 어두운 면이 숨어 있었던것 같았다. 떠올리지도 않았음에도 어둠의 정령이 등장한것을 보면 알수 있는 일이다. 어둠의 중급 정령 타냐스와 계약을 맺은 켄은 빛이 완전히 사라진 소환진에서 내려 왔다.
"축하 드려요. 설마 그 많은 정령들과 계약을 할줄은 몰랐어요. 특히 어둠의 정령은 저도 처음 보는 정령이에요."
"덕분에 무사히 계약을 맺을수가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소환진에 정령이 등장하면 어떻게 계약을 하는지 알려준 엘리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브라이스님에게로 가시죠."
"브라이스님은 어떤 분이신지요?"
"그건 제 입으로 말해 줄순없습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 보세요."
딱 잘라 거절하는 엘레스에게 더이상 물어 볼수가 없었다. 황금방으로 엘레스와 켄이 들어 서자 브라이스는 보던 책을 덮었다.
"정령과의 계약은 무사히 치루어졌나?"
"덕분에 사대 정령과 계약할수 있었습니다."
"그럼 물의 정령을 소환하게."
"엔다이론!"
물의 상급 정령을 부르자 허공에 투명한 물체가 나타났다. 출렁거리는 투명한 드레스가 마치 바람에 나풀거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엔다이론은 브라이스를 보고는 급히 켄의 뒤로 몸을 숨기고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브라이스의 정체를 파악한것 같았다.
"엔다이론에게 네 기억을 전해 내 머리속에 전이하게."
켄이 말한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정령과 계약시키는 한편 그 정령에게 기억을 전해 주어 진실밖에 말하지 못하는 정령의 기억을 전해 받을려고 하는 블랙 드래곤인 브라이스였다.
- 엔다이론! 동굴에서 고문받는 장면부터 이 대륙으로 오기까지의 기억을 전해 줘. 그리고 겁 먹을 필욘없어.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나도 그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
- 알겠어요.
정령과 영혼의 계약을 맺으면 서로 기억을 공유한다. 엔다이론은 이미 켄의 기억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정령과의 대화는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면 대화가 가능해진다.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엔다이론이 브라이스의 머리속으로 들어 갔다가 나왔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듯한 브라이스는 잠시후 번쩍 눈을 뜬후 입을 열었다.
"음, 자네 말이 사실이군. 그곳에 구울이 등장하다니...이상하군. 어째든 골드 일족에게 확인을 해 봐야겠다. 이곳에서 내가 돌아 올때까지 기다리게."
"그럼 레어를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엘레스! 구경시켜 줘라."
"따라 오세요."
황금방을 나가자 사각형의 대리석같은 반들거리는 바닥을 밟으며 넓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방의 한쪽 벽을 엘프인 엘레스가 건드리자 아무것도 없었던 벽이 사라지며 각종 무기가 안치되어 있는 방이 드러났다. 칼집이나 손잡이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소드나 통짜 미스릴로 만든 무기등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즐비했다. 게중에는 아티팩트로 만들어 놓은 무기들도 많이 있었다.
'무기 수집이 취미인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장식되어 있는 아티팩트로 보이는 작은 단검을 손에 들고 빼어 봤다.
스윽.
부드럽게 하얀 속살을 드러낸 단검은 통짜 미스릴로 만든것이었다. 은색으로 빛을 발하는 단검은 보기에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멋지군."
이 정도의 단검이라면 꼭 가지고 싶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방을 나서자 엘레스가 다른 벽면을 건드렸다. 벽이 사라지자 일순 뿜어진 황금 빛에 의해 급히 눈을 가릴수 밖에 없었다. 잠시후 눈을 뜨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황금이 눈에 들어 왔다.
촤르륵.
누구인지 모르는 인물상이 그려져 있는 황금 주화가 손바닥 아래로 물이 흘러 내리듯 쏟아져 내렸다. 황금산 대부분은 이 황금 주화였다. 주화들 옆에는 이름모를 보석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엄청난 부자네."
"호호호호."
켄의 말에 엘레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념으로 주화를 몇개 가져가고 싶었지만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입맛을 다시며 방을 나서자 엘레스가 또다시 벽을 건드렸다. 이번 방은 각종 병들이 선반위에 진열되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몇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확인인 병은 포션과 각종 마법 시약들이었다.
바닥의 상자를 열자 하얀색의 마나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마정석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마나석은 처음보았다. 최상급 마나석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급 이상의 마나석들이었다. 미스릴 단검이나 황금 주화보다 마나석을 가져 가고 싶었다. 이것도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방을 나서자 또 엘레스가 벽한쪽을 건드렸다. 이번 방은 서고였다.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게 지구의 도서관을 방불케했다.
"대체 몇권의 책이 있는 겁니까?"
"총 32,341권의 책이 있어요."
"굉장하네요."
이 대륙의 책은 희귀하다. 종이가 없는 탓으로 동물이나 몬스터 가죽을 얇게 가공해 양피지로 사용한다. 책은 대부분 귀족들의 전유물이며 굉장히 비싸다. 그런 책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저벅저벅.
대체 어떤 종류의 책들이 있는지 서고를 둘러 보았다. 1서클부터 9서클까지의 마법 서적은 물론 마나 연공법, 검법, 무슨 연구 일지같은 종류의 책등 이곳에 있는 책이 한권이라도 외부로 유출된다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서적들이 꽉 차 있었다. 마법 서적을 살펴 보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이곳의 책들도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읽어 볼수 있다. 서고를 둘러 보고 나서자 엘레스는 더이상 벽을 건드리지 않았다. 보물 창고는 이게 전부인것 같았다.
"엘레스님은 엘프이신데 왜 이곳에 있는겁니까?"
"브라이스님이 저희 마을을 보호해 주시는 대가로 제가 이곳에서 시중을 들고 있답니다."
일종의 계약 관계같았다. 황금방으로 다시 돌아 온 켄은 엘레스가 끓여준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루룩.
"음, 이 차가 어떤 차이길래 이렇게 향기로운 것입니까? 마나도 들어 있는것 같고요."
"세계수 잎으로 끓인 차랍니다."
"세, 세계수 잎이라니요?"
"켄님은 다른 차원에서 온탓으로 세계수에 대해 잘 모르겠네요. 세계수란...."
- 작가의말
즐겨 찾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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