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슈퍼 볼(2)
218화.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바라 보는 정상현이 얄미웠지만 자신의 눈에 아픈 아이가 들어 온 이상 모른척할수도 없었다.
"후우, 알았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해."
"감사합니다."
정상현이 환한 얼굴로 말을 건 백인 여성에게 부탁을 했다.
"전 탑 월드 스포츠의 CEO인 프린스 정이라고 합니다. 케빈의 일로 잠시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졸리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로 만날려는거죠?"
"졸리와 매닝은 물론 케빈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음, 잠시 기다려 보세요."
백인 여성이 케빈을 안고 있는 졸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졸리는 백인 여성의 말을 듣고는 켄과 정상현쪽으로 얼굴을 슬쩍 돌려 바라 보고는 다시 백인 여성에게 무슨 말을 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는지 확실히 말해 주면 만난다고 했어요."
백인 여성이 다시 돌아와 졸리의 말을 전했다. 졸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처음 보는 자가 만나자고 하면 덥석 만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케빈을 치료해 준다고 말할순 없었다. 이곳에는 지켜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슈퍼 볼 경기가 끝난후에 졸리에게 설명하고 치료를 해도 되었다. 하지만 이미 한번 거절한 사람이 다시 만나 준다는 기약은 없었다.
"졸리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해."
"죄송하지만 다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정상현의 정중한 부탁에 백인 여성은 인상을 조금 찡그리고는 다시 졸리에게로 향해 데리고 왔다. 졸리의 품속에 안겨 있는 케빈은 5살정도로 보였다.
"졸리! 얼마전까지 하워드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하나?"
"슈퍼 볼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의 큰부상을 입었었어요."
졸리는 조금 긴장된 표정이었다.
"그런 하워드가 어떻게 단시간에 완쾌되어 경기에 참가할수 있었을까?"
"......"
"당신! 이름이 뭐지?"
"저, 저요? 앤이라고 해요."
처음 말을 걸어온 백인 여성이 조금 놀란듯하면서도 이름을 말해 주었다. 지금 이곳엔 이들외에는 다른 가족들은 옆에 없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절대 비밀이다. 하워드는 내가 치료해 주었다."
"예엣?"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조용히 해. 케빈의 다리도 당장 치료할수도 있다."
"그, 그 말이 정말인가요?"
졸리와 엔은 깜짝 놀라며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그래. 하워드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면 이해가 될것이다."
"그, 그렇게 된것이군요. 정말 케빈을 치료할수 있겠어요?"
졸리는 이해가 된것같았다.
"문제없어."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전 졸리에요. 이 애는 케빈이고요."
"갓 핸드라고 불러. 그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하프 타임이 거의 끝나갈 시간이다. 졸리와 앤의 안내로 귀빈석을 나서 아래로 내려 갔다. 내려 가면서 정상현은 매닝과의 에이전트 계약에 대해서 졸리와 논의했다. 졸리는 확답은 할수 없다며 남편인 매닝의 말을 들어 봐야 한다고 했지만 매닝도 케빈이 치료가 되면 계약을 맺어 줄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앤은 자신의 남편도 에이전트 계약을 맺게 해 달라고 했다.
지금 있는 에이전트와는 마음이 맞지 않아 다른 에이전트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털어 놓았다. 정상현은 치료가 끝난후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선수들이 있는 라커룸으로 내려간 졸리는 경비원에게 무슨 말을 하고는 라커룸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 갔다. 경비원과도 잘 아는 사이인지 그대로 통과였다. 방안은 의무실로 보였다. 큰침대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는 룸이었다.
"케빈을 침대에 눕혀."
케빈은 졸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을려고 했다. 그런 케빈을 졸리는 다독이기 시작했다.
"케빈! 엄마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엄마는 항상 케빈 옆에 있을꺼야."
케빈의 손을 쥐어 주며 간신히 침대 눕히는 모습에 켄이 나섰다.
"케빈! 한숨 자렴. 슬립!"
순식간에 잠에 빠져든 케빈을 지켜본 졸리와 앤은 입을 벌리고는 켄을 바라 보았다.
"이제 치료를 시작할꺼야.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않돼. 약속할수 있지?"
"무, 물론이에요."
"저, 저도요."
"그럼 치료가 끝날때까지 조용히 지켜 보기만 해."
엔다이론을 불러 치료를 시작했다. 다리가 마비되어 말라 비틀어진 케빈의 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었다. 그런 광경에 지켜 보던 졸리와 앤, 정상현까지 점점 눈이 커지고 있었다. 너무 놀라운 모습인지 졸리는 두손으로 입을 막고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것 같았다.
"와아아아아!"
후반전 경기가 시작된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경기에는 관심도 없었다. 경기 보다고 더 신기한 광경을 조금도 놓치지 않을려고 눈에 불을 켜고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겐 관심도 없이 켄은 할일만 묵묵히 했다. 원래는 케빈의 비틀어진 다리만 치료해 주고 가느다란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붙어 걸어 다닐수 있도록 놔 둘 생각이었지만 슈퍼 볼 경기가 끝난후 매닝과 함께 걸을수 있도록 근육까지 늘게 해줄 생각이다.
비틀린 다리를 완전히 치료한후 포션을 먹여 세포를 활성화시켜 다리 근육을 붙여 주었다. 물론 리커버리 마법도 함께 펼쳐 주었다. 포션만으로는 근육을 늘릴순없기 때문이다. 숨을 죽이며 지켜 보고 있는 졸리와 앤, 상현이는 간간히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흘러 나오는 신음을 막을려고 해도 너무 놀라운 광경에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치료는 끝났다. 웨이크 업!"
조용히 마법 주문을 외워 케빈을 깨웠다.
"아! 케, 케빈!"
눈을 뜬 케빈에게 달려든 졸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앤과 정상현도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맘! 울지마. 으아아앙."
"케빈! 울지 마렴. 엄마도 울지 않을께."
"케빈을 걷게 해 봐."
"케빈! 함께 걸어 보자."
켄의 말에 졸리는 케빈을 침대 아래로 안아 내리고는 두발로 서게 했다.
"앤! 당신도 도와줘."
"아, 알겠어요."
졸리와 앤이 케빈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천천히 잡아 당기자 케빈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 맘! 다, 다리가 움직여."
"케, 케빈!"
졸리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앤도 같이 따라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동적인 장면에 초를 치는 일이 발생했다.
꽈앙.
의료실 룸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침대에 누운 선수 한명을 의료진이 데리고 왔다. 너무 큰 소리에 의료실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토, 토니!"
"앤! 당신이 여긴 왜 있어?"
"토니! 어디 부상을 당한거야?"
"후우, 그래."
거대한 몸집의 자이언츠 선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토니는 앤의 남편인것 같았다. 의료실에 앤이 있는 모습에 토니도 놀라고 있었다.
"토니! 어떻게 된거야?"
"별것 아냐. 허벅지 인대가 늘어 난것 같아."
토니의 말에 앤은 급히 켄을 바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 다른 사람은 나가라고 해."
"스탭 여러분들에겐 죄송하지만 토니하고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잠시 자리를 비워 주세요."
앤이 토니가 누워있는 카트를 끌고 온 스탭들을 밖으로 내 보냈다.
"앤! 무슨 일로 내 보내는거야?"
"토니! 이 분은 갓 핸드라는 분이세요. 토니도 케빈을 알죠? 보세요. 케빈은 두 다리로 걷고 있어요. 여기 갓 핸드라는 분이 고쳐 주셨어요."
케빈에게로 눈을 돌린 토니는 입이 쩍 벌어졌다. 팀의 쿼터백인 매닝의 아들인 케빈은 팀 전체가 잘 알고 있었다. 케빈의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케빈의 집에서 바베큐 파티도 자주 했었다. 그런 케빈이 두 발로 서 있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
"토니! 당신의 부상을 이분이 치료해 주실꺼야. 대신 에이전트 계약을 이 분과 맺어야 한대. 치료를 하면 당장 필드로 나갈수 있어."
"저, 정말 필드로 나갈수 있다고? 정말입니까?"
앤을 바라 보든 토니는 급히 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에게는 제가 필요합니다."
"알았다. 그대로 있으면 돼."
토니는 인대가 늘어 났다고 했었다. 그런것쯤은 힐링 마법 한방이면 간단하게 치료할수 있다. 토니의 부상당한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는 누구도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힐링 마법을 펼쳤다.
"힐링!"
일부러 손바닥을 허벅지위에서 몇번을 흔들고는 치료가 다 끝났다고 말해 주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일분도 채 지나기도 전에 치료가 끝난다는 말에 토니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일어나 봐."
황당한 얼굴로 일어난 토니는 바닥에 부상당한 오른 다리를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가 않은 것이었다.
"이, 이럴수가..."
가볍게 걸어 보고 뛰어 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필드로 가서 매닝에게도 말해. 케빈이 걸을수 있게 되었으며 케빈과 함께 우승을 즐기고 싶으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해 줘."
"아, 알겠습니다. 앤! 나중에 보자."
토니는 케빈을 다시 한번 바라 보고는 급히 문을 박차고 나갔다.
"우리들도 올라 가자. 졸리와 앤은 케빈의 양손을 잡고 걸을수 있게 도와 줘."
모두가 가족 귀빈석으로 돌아 왔지만 경기에 열중한 상태로 케빈이 걷고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시합은 3쿼터가 얼마남지 않았는데 17-29로 자이언츠가 지고 있었다. 등번호 37번인 토니는 OL(Offensive Linemen. 오펜시브 라인맨)으로 이미 복귀해 있었다.
토니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QB(Quarterback.쿼터백)인 매닝은 가족 귀빈석쪽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런 매닝에게 졸리가 손을 흔들며 케빈을 번쩍 들어 올려 보여 주자 매닝은 환한 얼굴로 변해갔다. 그때부터 슈퍼 볼 경기는 더욱 박진감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자이언츠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진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드디어 4쿼터 마지막 남은 시간 11초를 남겨 두고 패트리어츠 진영 20야드까지 접근했다.
아직 24-29로 5점이나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3점인 필드 골만으로는 역전할수 없었다. 반드시 6점짜리 터치 다운을 노려야 한다. 아직 공격 기회는 두번이나 남았다. 두번의 공격으로 슈퍼 볼의 승자가 가려 질것이다. 3rd 공격은 실패했다. 매닝이 패스한 볼을 패트리어츠 수비수의 방해로 터치 라인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하워드가 캐치하지 못한것이다. 공격이 실패하자 즉시 타임 아웃을 신청해 시간을 멈추었다. 타임 아웃은 전후반 각각 세번씩 사용할수 있다. 시간을 멈추지 않으면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 공격 진형을 짜기도 전에 게임은 끝나 버린다.
이제 남은 공격은 단 한번밖에 없었다. 시간도 6초밖에 남지 않았다. 매닝을 중심으로 공격진이 원진을 이룬후 공격 진형 태세를 취했다. 쿼터백인 매닝의 구령과 함께 볼을 건네 받은 매닝은 터치 라인 밖에 자리하고 있는 하워드를 향해 패스를 했다. 무사히 패스를 캐치한 하워드는 터치 라인 안쪽으로 몸을 눕혔다. 수비수가 안쪽에서 밀어 젓치자 공격수들이 달려와 하워드를 밀기 시작했다.
삐이익.
경기 종료 시간이 울림과 동시에 뉴욕 자이언츠에서 심판에게 챌린지를 신청했다. 챌린지는 애매한 심판 판정을 받아 들이지 못한 팀이 신청하는 것으로 챌린지에 실패하면 타임 아웃도 한개가 사라져 버린다. 챌린지 신청에 심판들이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스타디움의 대형 비젼에는 하워드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잡은 슬로 비디오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와아아아아!"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팬들은 터치 다운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볼을 잡고 있는 하워드의 몸이 같은편 공격수들에게 떠밀려 볼이 터치 라인 흰색선 위쪽에 걸쳐 있다가 수비수들에게 떠밀려 나온 장면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잠시후 심판도 터치 다운 판정을 내렸다.
"우와아아아아!"
뉴욕 자이언츠 팬들의 엄청난 함성과 함께 가족 귀빈석도 들썩거렸다. 서로를 얼싸 안고 광분에 휩쌓인것이다. 스타디움 위에서는 종이 테이프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며 승리를 축하하는 한편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 중에 기자들이 필드로 달려가 선수들의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비원들이 그라운드를 빙 둘러 싼채 흥분한 관중의 난입을 막고 있을때 가족석에 있던 가족들도 그라운드로 내려 가기 시작했다. 필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선수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특히 쿼터백인 매닝은 기자들에게 빙 둘러 쌓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승리를 만끽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인터뷰를 하던 선수들이 긴대열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 대열 중앙으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든 전직 NFL 선수였던 자가 자이언츠 선수들이 만든 대열 안으로 천천히 걸어 오며 한명 한명에게 트로피를 살짝 내밀었다. 자이언츠 선수들은 그런 빈스 롬바르디에 입을 맞추거나 쓰다듬는 방식으로 트로피는 단상으로 천천히 옮겨지고 있었다.
단상에는 NFL 커미셔너가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건네 받아 뉴욕 자이언츠 구단주에게 트로피를 수여하고 축하 메세지를 건넸다. 구단주의 짧은 우승 소감과 함께 MVP로 선정된 쿼터백인 매닝이 얼굴에 눈물을 줄줄 흘러 내리며 케빈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올라와 소감을 말한후 빈스 롬바르디를 들어 올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본 켄은 상현이에게 그만 돌아 가자고 했다. 이미 패트리어츠 팬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스타디움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즐겨 찾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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