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티벳 타망족(2)
148화.
스마호라는 말은 들은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물어 보고 있었다.
"스마호가 뭔지 아냐?"
"모르는데요."
"너도 모르냐?"
"예."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켄은 아차했다. 지구라고 해서 입에 벤 일본어로 스마트폰이 있는지 물어 본것이다.
"스마트 폰을 말하는 거다."
"아! 스마트 폰이라면 저희들은 없습니다. 동충하초 중개상인 반찬드라가 가지고 있는걸로 압니다."
아쉬웠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의 아버지 집에 전화를 해 볼 생각이었다. 드래곤 로드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전화를 해 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그 반찬드라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으로 찾아 올것입니다. 매년 동충하초를 구입하러 찾아 왔으니까요."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중개상이 이곳으로 올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산 아래로 내려 가도 되었지만 굳은 마나도 녹일겸 이곳에서 지내도 될것같았다. 한가지 우려 되는 점은 춥다는 것이다. 몸은 온도 조절 마법이 걸려 있는 코트로 인해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매서웠다.
"저어, 산신님!"
"난 산신이 아니다. 케...아니 건이라고 불러."
아직 확실히는 알수 없지만 아버지를 살릴수 없다면 굳이 일본에 갈 필요는 없었다. 좋은 일이라곤 전혀 없었던 일본 생활이었다. 어릴적엔 이지메를 당하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도 못한채 폭주족에 가입해 나중에는 야쿠자 길로 들어서 이용만 당한것이다. 그런 일본에 좋은 기억이 남아 있을리가 없었다. 아버지 집에 전화를 해 본뒤에 로드가 말한대로 정말 아버지나 야쿠자 시절의 아니키(兄貴.형님)가 없다면 한국으로 가 볼 생각이다. 아버지 나라인 한국은 어떤곳인지 둘러 볼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한국 이름을 사용할 생각이다.
"저어...건님! 천막으로 가시지요."
"가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모두들 키가 작았다. 켄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이들을 따라 천막으로 걸어 갔다. 천막앞에 도착한 일행들중 중년인이 천막을 걷어 제치자 천막안에는 중년 여인이 초딩으로 보이는 애를 끌어 앉고 있었으며 이십대 중반쯤되어 보이는 여자는 갓난 애기를 품에 꼭 끌어 앉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 산신님!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중년 여인이 켄과 눈이 맞자 덜덜 떨면서 더욱더 아이를 끌어 앉고 애걸했다.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산신(山神)이 아니다."
켄의 말을 믿지 못하는지 아직도 떨고 있는 모습에 중년인이 버럭 화를 냈다.
"여편네야! 그만 떨어! 라쥬가 겁내잖아. 건님이라고 하는 분이시다."
보다못한 중년인이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떨림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와 함께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여인도 얼굴을 돌려 건을 바라 보았다.
"저, 정말 산신님이 아니십니까?"
"그래.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천막안은 마른풀이 깔려 있었으며 한쪽에 모닥불을 피울수 있게 돌로 둥글게 화덕같은것을 만들어 놓았으며 근처에 마른 나뭇 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땔감으로 사용하는것 같았다. 구석엔 마른풀위에 짚으로 짠것으로 짐작되는 돗자리같은게 깔려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시, 식사는 하셨는지요?"
"난 배고프지 않으니까 아직 식전(食前)이라면 모두들 식사 해."
사실 배가 고프긴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수 있을것 같았다. 모두들 옷도 허름하고 천막도 비닐 시트같은걸로 장대에 삼각형으로 걸어 놓은 구조였다. 이십대 여인은 아기를 앉고 천막을 나가 다른 천막으로 들어 가고 두청년도 자신들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럼 차(茶)라도 한잔 하시지요?"
그릇 한개를 꺼내 켄 앞에 놓고 주전자에 담긴 차라고 하는 것을 부어 주었다. 그런데 희멀건한게 입맛이 싹 달아 날것같은 차였다. 이게 맛코리(マッコリ.막걸리)인지 차(茶)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손님을 대접하는 성의를 봐서라도 입에 대지 않을수도 없었다.
'웁!'
시큼했다. 발효가 된것같았지만 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소한것도 아니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켄으로써도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들의 식사는 삶은 감자와 옥수수 가루를 버무린것으로 손으로 둥글게 말아 집어 먹는 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이가 힐끔힐끔 켄을 훔쳐 보고 있었다.
"전 슈란달이라고 합니다. 여편네는 쿰바라고 하고 아들은 라쥬입니다. 그런데 건님은 어디서 오신 분인지요?"
"한국에서 왔다."
"하, 한국요? 코리아라고 하는 그 나라입니까?"
"그렇다."
라쥬 아버지는 물론 부인과 아들까지 눈이 커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것 같았다. 이런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국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흥미로웠다.
"한국에 아들놈이 일하러 간 상태거든요."
"한국에?"
"예. 한국에서 일하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갔지만...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라쥬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덩달아 부인의 얼굴에도 수심이 어려졌다.
"저어, 건님이 한국에서 오셨다면 제 아들놈 좀 찾아 봐 주실수 있겠습니까?"
아들 이름은 라체라고 했다. 2년전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갔는데 처음 몇번은 편지와 돈을 보내 왔는데 그 후로는 연락이 끊어 졌다고 했다.
"한국 어디에 있는지 아나?"
"집에 가면 편지에 주소가 적혀져 있습니다."
"한국에 가면 알아봐 주겠다."
"고맙습니다."
라쥬 아버지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몇번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동충하초 채취 기간중엔 외부인은 산으로 들어 올수 없는데 건님은 이곳에 어떻게 오신건지요?"
"배낭 여행을 하던 중에 길을 잃고 헤매고 구릉에서 굴러 짐까지 모두 잃어 버렸다."
"아! 그래서 아무런 짐도 없었던 것이군요. 그, 그런데 불덩어리가 건님 몸속으로...아, 아닙니다."
라쥬 아버지는 하던 말을 그만 두었다. 물어 봐도 될것이 있고 물어선 않되는 것도 있었다. 그냥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높은 곳까지 아무런 짐도 없이 올라 오는 관광객이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동충하초를 캐는 이 시기엔 산으로 올라오는 외부인을 철저히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들어 온것인지 구릉에서 굴러 떨어져 짐까지 잃어 버렸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상처를 입었어야 했다.
또한 산 정상을 향했다면 일행도 있어야 한다. 혼자서 이런 산속을 돌아 다는다는 것은 수상했다. 혹시 몰래 동충하초를 캘려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금방 머리속에서 지워졌다. 검은 공간에서 떨어진 것을 감출려고 거짓말을 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그 높은곳에서 떨어 졌는데도 아무런 상처도 없었으며 타망족 못지않게 말도 유창했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정말 산신님이 아니신가?'
산신님이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괴이한 일이다. 본인 스스로 부인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믿는척해야 했다. 괜히 의심하는 낌새를 보인다면 무슨 사달이 날지 전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의 그릇을 정리하는 부인이 몸놀림이 이상했다. 무언가 불편한듯한 자세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식후에도 그런 행동이 이어지자 물어 보지 않을수 없었다.
"부인은 어디가 아픈가?"
"아, 발목이 삐어서 그렇습니다."
"발목? 한번 봐도 되겠나?"
조금 주저하는듯 했지만 라쥬 아버지인 슈란달이 눈짓을 했다.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린 부인의 오른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저런 발목으로 용케 신음 한번 내뱉지도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힐링!"
겨우 조금 녹인 마나를 사용해 치료 마법을 시전해 주었다. 이걸로 또 마나가 간당간당해 졌다. 하지만 한번 녹기 시작한 마나는 자주 사용해 주어야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 대륙에서 이미 한번 경험해 본적이 있었다.
"아!"
"저, 저럴수가..."
"어, 엄마..."
퉁퉁 부었던 발목이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았던것처럼 변해 버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라쥬 아버지와 라쥬는 깜짝 놀란듯했다.
"사, 산신님!"
라쥬 어머니인 쿰바는 건이라고 하는 한국인이 자신의 발목을 한번 보고는 무언가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삐었던 발목이 깜쪽같이 나아 버리자 즉시 바닥에 엎드렸다. 역시 산신님이 틀림없었다. 산신님이 아니라면 이렇게 순식간에 치료할수는 없었다. 타망족 주술사도 이렇게는 못하는 일이다.
"산신이 아니라니까. 일어 나라."
"산신님이 아니시라면 어떻게..."
슬슬 짜증이 날려고 했다. 한번 말하면 재깍 이행할것이지 뭔 대꾸가 이렇게 많은지 한대 쥐어 박을수도 없었다.
"명령이다. 일어 나!"
강한 어조로 다그치자 그제야 주섬주섬 라쥬 어머니는 일어 났지만 켄의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라쥬 아버지는 물론 라쥬까지 멍한 표정으로 켄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탁.
그런 이들의 정신을 일깨워 줄려고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딱!
"정신 차려!"
"아!"
귀신을 보는듯한 표정의 라쥬 아버지는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후 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부인과 아들인 라쥬까지 따라했다. 무슨 참배를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켄은 기분이 상했다. 저런식의 참배는 일본에선 죽은자들을 기리는 행동이다. 나라가 다르다곤 하지만 기분이 좋을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티를 낼수는 없었다. 이들만의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을뿐 뭐라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선인(仙人)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번엔 선인이랬다. 산신에서 선인으로 변모를 한것이다.
"하아~"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이상 이해시키기도 힘들것 같았다. 이미 치료를 목격한 이상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것이다. 경외의 눈으로 바라 보는 이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냈으면 약초를 캐야 하지 않나?"
무슨 할말을 찾는다는게 약초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아, 그, 그렇군요. 선인님은 누추하지만 쉬고 계십시요."
퍼뜩 정신이 든것인지 천막안에 있는 손잡이가 짧은 괭이 같은걸 제각기 한개씩 들고 천막 밖을 나서는 이들을 따라 켄도 따라 나섰다. 어떤식으로 동충하초라는 약초를 캐는 것인지 지켜볼 생각이다. 천막 밖에는 두 청년과 애기를 업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이름은 뭐지?"
"저, 전 사비나라고 해요."
"전 랑타르라고 하고 제 동생은 랑티구르라고 합니다."
애기 엄마가 사비나고 형제중 키가 조금 큰 청년이 형으로 랑타르, 그리고 동생이 랑티구르였다.
"동충하초를 어떻게 캐는지 구경할테니까 작업을 해봐."
"어서들 가세. 경쟁자들이 없을때 한몫 잡아야 하네."
이곳에는 이들 세 가족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모두 하늘이 찢어지는 굉음에 놀라 급히 산을 내려 갔다고 했다. 남아 있던 이들에게는 행운이었다. 경쟁자들이 모두 사라져 약초를 독점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사진 언덕에 엎드려 바닥을 기듯이 이동하며 마른풀 사이에서 눈에 불을 켜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때 랑타르라는 청년이 동충하초를 찾았는지 괭이로 바닥을 가볍게 내려 찍고는 흙더미를 들어 올려 손으로 무언가를 꺼집어 냈다. 흙이 묻은 것을 가볍게 털어 내고는 바깥쪽 주머니안에 조심스럽게 집어 넣었다. 그런식으로 동충하초를 찾아 캐고 있는 이들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만약 저곳에서 굴러 떨어 진다면 목숨은 없다고 봐야 했다.
굉장히 가파른 언덕은 아니지만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굴러가 버릴것이다. 높은곳에는 아직 녹지 않는 눈들도 많았다. 만약 눈사태가 발생한다면 피할곳도 없는 곳이다. 목숨을 걸고 동충하초를 캐는 이들이다. 동총하초가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식으로 작업을 하는 이들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팔아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아직 어떤식으로 거래를 하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중개상이라는 반찬드라가 찾아 오면 알수 있을 것이다.
거의 한시간 이상을 꼬박 지켜 보았다. 한참을 지켜 보다가 켄도 1미터정도 되는 나뭇가지 한개를 들고 언덕에 올라 동충하초라는 약초를 찾아 보았다. 그렇다고 바닥을 기면서 찾진 않았다. 마른풀들 사이로 작은 검은색의 가느다란 막대기같은 것이 불쑥 솓아나 있으면 그게 바로 동충하초다. 아래쪽에서 저들이 움직인 방향으로 천천히 올라가며 찾아 보았지만 한뿌리도 찾을수가 없었다.
꿀꺽.
위쪽의 일행들은 가끔씩 땅을 파는게 찾은 사람도 있는것 같았다. 그런 이들에 반해 한뿌리도 찾지 못한 켄은 오기가 생겼다. 마나 포션을 들이키고 마나 서치를 펼쳤다. 깨알같은 마나를 품고있는 동충하초를 마나 서치를 사용해 찾을 생각인것이다. 저들에게는 반칙이었다. 레드 카드로 퇴장을 당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의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것이다.
"라쥬!"
슈란달의 아들인 라쥬를 부르는 소리가 비탈진 언덕에 메아리쳤다. 일행들의 뒤쪽에서 라쥬를 부르자 일제히 뒤돌아 본 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했다. 라쥬가 아버지를 바라 보자 고개를 끄덕여 주는 장면이 눈에 들어 왔다. 조금 겁을 먹은 표정으로 천천히 언덕을 내려온 라쥬는 어쩔줄을 몰라했다.
"겁 먹지 않아도 돼. 넌 내가 막대기로 짚는 땅을 파라. 그곳에 동충하초가 있어. 우선 여기."
- 작가의말
오타나 이상한 내용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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