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청방 장로들(1)
160화.
"아줌마! 이걸로 꿀물 네잔만 만들어 주세요."
소파로 돌아 오자 왕청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혼자서 그 많은 술을 드신겁니까?"
"몇병 마시지도 않았어. 간만에 마시는 술이라 자꾸 땡기더라고."
"취, 취선(醉仙)이시군요."
"취선?"
이번엔 취선으로 바뀌었다. 산신(山神)에서 선인(仙人)으로, 그 다음엔 취선(醉仙)이란다.
"자아, 한잔씩 쭉 들이켜. 석청 꿀물이다."
"예엣? 서, 석청요?"
가정부 아줌마가 가지고 온 꿀물을 말해 주자 왕청이 깜짝 놀랐다.
"네 석청에서 떼어낸 것이 아니니까 걱정마. 마셔. 너희들도 마셔. 숙취가 사라질꺼다."
"가, 감사합니다."
*******
오후의 비행기로 상하이로 향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몸을 숨긴채 왕청 일행을 따라갔다. 이미 한번 경험한적이 있는 왕청 일행은 뒤도 돌아 보지도 않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떤 방법으로 따라 오는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상하이의 푸둥 공항에서도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충하초가 많은 탓으로 큰트럭을 끌고 와 짐을 싣고는 한시간정도를 달려 산속으로 들어 갔다. 벤츠의 뒷좌석에 편히 앉아 창밖을 구경하며 상하이가 굉장히 큰도시라고 짐작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도시라고 들은적이 있지만 정말 그런것 같았다.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 가옥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수십채나 들어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왕청이 목적지에 다 왔다고 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물어 보지도 않았다. 넓은 정원에는 갖가지 열대수들과 정원석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건물들은 복도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복도위쪽도 비를 맞지 않게끔 지붕이 씌워져 있는 구조였다. 지붕은 모두 기와로 뒤덮혀있었다. 왕청의 안내로 한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안은 모두 현대식이었다. 있을건 다 있었다. 넓은 소파와 벽 한쪽에는 바(Bar)까지 갖추어져 있는 내부였다.
"이곳에서 쉬고 계십시요. 잠시 볼일을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필요한건 군에게 말하면 됩니다."
"알았다."
왕청이 밖으로 나가자 군은 한쪽에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서 있었다.
"여기 와서 편히 앉아."
"괜찮습니다."
"술이나 한잔 할래?"
"......"
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군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농담이다. 앉기 싫으면 커피나 두잔 내와."
홀짝.
"여긴 어디냐?"
맞은편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군에게 물어 보았다.
"청방 본부입니다."
"청방?"
청방은 상하이 최대 조직이라고 했다. 청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청방은 곡물 운송업을 하던 수로 노동자들이 증기선의 등장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자 상하이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와 조직된 단체로 운송업 경험을 살려 아편 유통으로 풍부한 자금을 확보해 상하이 전체를 장악했다.
국민당 시절엔 보스가 장군으로 임명되어 상하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그런 조직도 일본군의 침략에 대항해 맞서 싸웠지만 패배한 탓으로 상하이가 함락되자 보스가 조직원들을 버리고 홍콩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와해 직전까지 갔었지만 음지로 스며들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일본군이 사라지자 다시 상하이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100년이 넘은 조직이란 말이군.'
일본의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 구미(山口組)가 1900년 초반에 결성되었다. 항만 노동자 30여명으로 결성된 조직으로 지금은 일본 최대 조직이다. 그 야마구치 구미안에서도 여러 파들로 갈라져 있는 상황으로 몇번이나 파벌 싸움이 벌어졌었다. 켄도 그 야마구치 구미에 속한 야쿠자로 코도카이(弘道会)에 속해 있었다. 그런면에서는 청방이나 야마구치 구미의 초기 조직원들은 항만 노동자라는 점이 똑 같았다.
저벅저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왕청과 노인 두명이 같이 들어왔다. 뚱뚱한 몸집의 노인과 평범한 체격의 노인으로 두 노인 모두 눈 만큼은 날카로워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노인네들 같았다. 왕청이 안으로 들어서자 군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네들을 향해 달려가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청방 조직내에서 힘께나 쓰는 노인들같았다.
"크흠."
그런 노인들이 자신들이 들어 왔음에도 인사도 하지 않고 다리를 꼰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켄이 못마땅한지 헛기침을 했다.
"누구냐?"
"......"
켄의 반말에 할말을 잃은 노인들은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취선님! 장로분들이십니다."
"장로?"
"예. 8대 장로분들중 이분은 탕웨이님이시고 저분은 등평님이십니다."
뚱뚱한 노인이 탕웨이고 다른 노인이 등평이다. 그런데 통역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중국 이름과 한국 이름으로 통역되고 있었다. 한국인이 되기로 머리속에 각인된 상태에선 통역도 한국어로 되는것 같았다. 아마 한국 한자에 없는 중국 한자 이름을 사용해서 그런것 같았다. 가끔씩 일본어로 통역되기도 하는 언어도 있었다.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한국어나 일본어 두개를 말할수 있는 켄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래? 취선이다."
본명을 말해 주진 않았다. 취선이라는 이름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앞으로 취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될것같았다.
"크흐흠, 반갑네. 자네가 용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찾아 왔네."
"물건을 깜쪽같이 사라지게 하거나 꺼낸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또한 동충하초도 등급을 선별할수 있는 재주가 있다고?"
두 노인이 서로 질세라 침을 튀겨가며 질문을 해댔다.
"자넨 끼어 들지 말게."
"뭐라고?"
"내가 먼저 말하고 있었네."
"흥. 똑같이 말했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울 기세다. 두 노인의 눈에서 불똥이 튀며 서로 으르릉거렸다.
"저어, 장로님! 체통을 지키십시요."
"크흠."
"흐흠."
보다못한 왕청이 끼어 들었다. 왕청은 이미 예상했었다. 취선이라는 분을 만나면 자중해 달라고 당부를 했음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두 장로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티격대격하는 사이다. 두 장로 모두 서로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으로 한명이 무얼 하면 반드시 따라한다. 자기가 더 우위에 있다는걸 과시하고 싶은것이다.
경쟁이 너무 심해 방주가 몇번이나 자제를 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런 장로들이 취선의 소식을 듣고는 찾아 온것이다. 아무리 장로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분이 아니다. 만약 취선이 화를 낸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티벳에서 자신들을 습격한 놈들은 손도 대지 않고 제압한 취선이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마음속으로는 고문이라도 해서 알아 내고 싶을 정도다.
"석청은 어디에 숨겨 놓았나?"
"꺼내 보게."
"시끄러!"
따발거리는 노인네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한명이 말하면 다른 한명이 곧바로 말하는 식이다.
"알고 싶은게 있으면 한명씩 천천히 말해."
"내가 먼저 하지."
"아니야. 내가 먼저다."
"에이씨! 왕청! 끌어내."
더이상 참을수 없어 두 장로들을 밖으로 내치라고했다.
"취, 취선님! 죄송합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럼 두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해. 단판 승부로 승자가 먼저 질문하는거다."
왕청의 사과에 화가 수그러진 켄은 타협점을 내 놓았다.
"왕청이 심판이다."
"장로님들! 하시겠습니까?"
"물론이다."
"하자."
두 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승부를 했지만 등평이라는 자의 승리였다. 승리한 등평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승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뚱뚱한 탕웨이는 분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등평을 노려 보고 있었다.
"카하하하! 봤나? 내 주먹을! 크하하하!"
"흥!"
등평은 주먹을 내보이며 바위로 이겼다며 으쓱대고 있었다.
"동충하초는 어떤식으로 선별하나?"
"내 눈에는 다 보여."
"엥? 그게 대답인가?"
"그럼 보이는걸 보인다고 하지 뭐라고 해?"
질문한 등평은 적잖이 실망한 얼굴이었다.
"큭큭큭큭, 이젠 내 차례야. 비켜."
등평을 밀쳐내고 앞으로 나온 탕웨이는 좀전의 승부에서 진 탓으로 침울했었던 표정과는 달리 의기양양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했다.
"자네의 눈에는 뭐든 다 보인다면 물건을 한개 감정해 주게."
"물건?"
"골동품이네."
"아!"
골동품이라는 말에 등평이 뭔가를 알고 있는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다면야 어쩔수 없지만..."
"가져와 봐."
"같이 가세. 함부로 들고 다닐 물건이 아니라네."
대체 어떤 골동품이길래 저러는지 호기심이 동한 켄은 탕웨이를 따라 나섰다.
"네것도 가져 와."
"흥, 내 물건도 함부로 들고 다닐 물건이 아냐."
이 두명이 제각기 골동품을 가지고 진품인지 아닌지 경쟁하고 있는것 같았다. 보나마나 자신의 물건이 진품이라고 우기고 있을것이다. 탕웨이를 따라 들어간 곳은 붉은 양탄자가 바닥에 깔려 있는 큰방이었다. 그 방안의 다른 방문을 열고 들어 가자 또다른 큼직한 방에 도자기, 그림, 접시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청자기(靑磁器)가 진품인지 아닌지 감정해 주게."
전문가도 아닌데 도자기만 보고 진품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라니 기가 찰뿐이었다. 하지만 켄에게는 다른 감정가들이 절대로 흉내낼수 없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이 도자기는 몇년전의 물건이지?"
"송나라 황제였던 휘종(徽宗)시대의 물건이라네."
"그래서 지금부터 몇년전의 물건이야?"
몇년전의 물건인지 알아야 감정을 할수 있다. 그것도 만든 년대만 알뿐 더 자세한 것은 모른다. 켄만의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수없는 일이다.
"......"
탕웨이는 몇년전의 인물인것까지는 모르고 있는듯했다.
"왕청! 검색해 봐."
급히 스마트 폰을 꺼낸 왕청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북송 시대 8대 황제로 망국의 천자(天子)로 불리는 휘종은 예술에 너무 심취하는 바람에 국정을 돌보지 않아 간신배들이 판을 치는 상황으로 곳곳에 난이 발생해 급기야 금(金)에 포로로 잡혀 가는 신세가 되었다...휘종은 우과천청 운파처(雨過天靑 雲破處. 비온뒤의 구름사이로 비친 푸르름)를 추구한 청자기(靑磁器) 제작을 명했다."
"왕청! 설명은 필요없어. 그 휘종이라는 인물이 지금부터 몇년전의 인물이냔 말이다."
"그러니까...휘종은 1082~1135년까지 생존한 인물로 지금부터 약 900년전의 인물입니다."
"900년? 알았다."
대지의 정령인 노에스를 불러 냈다. 이 푸른색 자기를 감정하기 위해서다. 흙에 관해선 뭐든 알고 있는 대지의 정령이라면 이 청자기가 몇년전에 만들어 진것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 노에스! 부탁한다.
- 이미 다 끝냈어요. 이 물건은 300년전의 물건이에요.
- 고맙다.
노에스가 돌아 가자 궁금한 표정으로 켄을 주시하고 있는 탕웨이에게 감정 결과를 말해 주었다.
"이 물건은 300년전의 물건이다. 절대 900년전의 물건이 아냐."
"뭐라고? 그, 그게 정말인가?"
"믿지 못하겠다면 믿지마."
"크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내 그럴줄 알았어."
감정평을 들은 등평은 배를 움켜쥐고 탕웨이를 한끗 비웃었다.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탕웨이는 믿지 못하겠다는듯 붉어진 얼굴로 켄에게 따졌다.
"저명한 감정가도 이게 진품이라고 했네. 자넨 무슨 근거로 가짜라고 하는건가?"
"진품이 있으면 비교해 줄수 있겠지만 이것 한개만으로는 몇년전의 물건인지만 알수 있어. 300년전의 물건이니까 골동품이 맞잖아."
"큭큭큭큭. 그렇게 자랑하더니 꼴 좋다. 큭큭큭."
등평의 비웃음 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 탕웨이는 잡아 먹을듯한 사나운 눈초리로 소리쳤다.
"네것도 감정을 받아 봐."
"왜? 내것도 가짜이길 바라는건가? 누구와는 달리 내 물건은 진품이야."
등평도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좋아. 내 방으로 가세."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앞서가는 등평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경쟁 상대인 탕웨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듯한 느낌이었다.
"규중! 천지(天地) 골동품 쥔장놈을 잡아 와."
"명!"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탕웨이는 방밖으로 나가자마자 부하를 불러 자신에게 골동품을 판 가게 주인을 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등평은 탕웨이의 심정을 알수 있었다.
'큭큭큭, 오늘은 최고의 기분이다. 아, 후련해.'
등평의 방도 탕웨이의 방안과 비슷했다.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다른 방에 여러 가지 골동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걸 감정해 보게."
산수화였다. 역시 북송의 8대 황제였던 휘종이 직접 그린 산수화로 먼산에 구름이 걸려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풍경이었다. 화폭만 보고도 오래된 물건이란걸 단번에 짐작할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산수화를 감정해야 했다.
- 엔다이론. 이 그림이 몇년전에 그려진 것인지 알수 있어?
- 물론이에요. 물과 섞인 검은색 먹물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물기가 사라지지만 물을 다시 섞으면 그 당시의 물을 알아 볼수가 있답니다. 계속 흐르는 물이 아닌 이렇게 고정되어 있는 물기라면 살펴보면 얼마나 지난 것인지 알수가 있는거죠. 이 그림은 900년전에 그려진것이에요.
- 고맙다.
- 작가의말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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