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절도범(2)
248화.
놈에게 말을 걸자마자 놈은 도주를 감행했다. 재빠른 놈이었다. 얼마나 빠른지 육상 선수를 방불케할 정도였다. 하지만 새발의 피였다. 오늘 저 놈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홀드!"
우당탕탕.
앞쪽으로 달려 가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놈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커억! 아아악."
얼굴부터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진 탓으로 놈의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팔도 부딪혀 부러졌는지 덜렁거리고 있었다. 급히 다가간 켄은 놈의 얼굴과 부러진 팔을 고쳐 주고 피까지 지워 버렸다. 홀드를 풀어 주고 놈에게 말을 걸었다. 놈은 이미 겁에 질린듯 벌벌 떨고 있었다.
"일어나라. 따라와. 한번만 더 도주하면 이번엔 죽여 버린다."
놈이 도다시 도주하든 말든 앞장서 마트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갔다. 놈은 당황하면서도 초조한 표정으로 따라 오고 있었다. 부러진 팔이 순식간에 치료가 되어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것이다. 놈을 데리고 사무실안으로 들어 가자 크롬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 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돌아 온것이다.
"들어 와."
뒤를 돌아 보며 놈을 불러 들였다. 두려운 얼굴로 들어 온 놈은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게 스컬 갱단이라고 알고 있는것 같았다.
"누구인지요?"
"마트의 물건을 훔친 놈이다."
말이 끝나자 크롬 일당들이 일제히 눈알을 부라렸다. 자신들 가게 물건을 훔친 놈을 가만 두지 않을것 같았다. 만약 켄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저 놈은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었다. 아마 뒷골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것이다. 갱단에서 엄연한 사업가로 탈바꿈을 하는 중인 스컬 갱단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마트를 최중요시하고 있었다. 그런 보금자리를 망칠려는 놈을 그냥 내버려둘 스컬 녀석들이 아닌것이다.
"앉아라."
놈을 반대편 소파에 엉덩이를 내리며 죽을살을 하며 머리까지 푹 숙인채였다.
"훔친 물건을 꺼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놈은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 넣어 컵밥 2개를 떨리는 손으로 꺼냈다. 이곳에 들어 온것만으로도 놈은 잘게 떨고 있었다.
"왜 훔친건지 말해 봐."
"배, 배가 고파서..."
"돈이 없어? 일은?"
"모, 못하고 있습니다."
팔다리도 멀쩡한 젊은 놈이다. 그런 놈이 백수라는 말에 무슨 사정이 있는것 같았다.
"왜 못하는데?"
"어, 어디에서도 뽑아주지 않습니다.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이곳에서도 떨어졌고요."
크롬을 돌아 보았다. 그러자 크롬은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다른 놈들도 마찮가지였다.
"이곳에서 떨어진 이유가 뭐냐?"
"면접때 친한 사람들만 뽑는다고 했습니다."
"크롬! 사실이냐?"
"....예."
크롬은 절도범을 째려 보며 인정했다. 원래 마트를 만들때 빈곤층을 고용하라고 말해 두었다. 그런데도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자들만 고용한것이다.
꽝!
"죽을래?"
"어헉."
테이블이 박살나자 크롬은 물론 부하놈들까지 화들짝 놀라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다, 다시 직원들을 뽑겠습니다."
"후우, 그만둬. 지금 뽑은 직원들은 그대로 일을 시켜."
이미 늦었다. 새로 뽑을려면 지금 있는 직원들을 해고하고 다시 뽑으면 기존의 직원들이 반발할것이다. 친분이 있는 자들이기에 친분에 금이 갈것이다.
"너, 이름이 뭐냐?"
"크, 크리스입니다."
"일단 크리스를 고용해. 그리고 앞으로 설렁설렁 일하는 놈은 짤라 버려. 아무리 친분이있다고 해도 제대로 일할 생각이 없는 놈은 친분이고 뭐고 내쫒아.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스컬 갱단에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 필요했다. 이들만으로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것이 뻔했다. 언제 말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운영으로 누가 이익금을 삥땅쳐도 모를것이다. 이런 일까지 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메리카에 아는 사람이라곤 정상현과 빈센트, 그리고 몇몇 프로 선수들 뿐이다. 변호사라든가 세무사등은 한명도 모른다. 빈센트가 크롬에게 소개해 준 변호사는 마트를 개설하는데 도움을 주고 떠났다.
- 오랜만입니다.
"그래. 잘 지내나?"
- 덕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메리카에서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는 정상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라틴의 전화 번호를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
- 메라틴요? 무슨 일이 발생한겁니까?
정상현에게 마트일을 설명해주었다.
- 그런 일이라면 변호사보다는 세무사를 찾아 보는게 좋을것같습니다.
"알았다."
정상현도 로스에는 알고 있는 세무사는 없다고 했다. 어쩔수없이 메라틴에게 전화해 부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 누구지?
"나다. 공원 벤치에서 네 허리를 고쳐준 사람이다."
- 아, 오랜만입니다.
"너에게 한가지 부탁을 할려고 전화했어. 네가 다니는 UCLA 대학에 세무사 일을 할려고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줘."
메라틴에게 마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크롬들도 모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 알겠습니다. 찾아 보겠습니다.
"이 전화 번호로 연락해. 될수 있으면 빠르게 알아봐."
메라틴에게 연락이 올때까지 이곳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한국으로 돌아가 영화도 찍어야 했다. 왔다갔다 하기엔 너무 피곤한 일이다.
"크롬! 이 근처에 집 한채를 알아봐. 단독 주택이면 좋겠다."
"아, 알겠습니다."
"크리스! 넌 이제 이곳에 고용되었다. 너희들 크리스에게 만약 손을 댄다면 죽는다. 명심해."
"그, 그런일은 절대로 없을겁니다."
크롬은 부하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돌아 보았다.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크리스! 넌 이걸 가져가라. 그리고 이것도 받아. 사고 싶은걸 사라. 일 하면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말해."
"가, 감사합니다."
크리스에게는 훔친 물건을 그대로 선물해 줬다. 돈도 조금 쥐어 주었다. 한달 정도는 충분히 먹고 살수 있을것이다.
"크롬! 너희들만 잘 먹고 잘 살라고 도와 주는게 아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라고 시작한 일이다. 명심해. 다시 한번 눈 밖에 난다면 모든것이 끝장난다는 것을."
"며, 명심하겠습니다."
"크리스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할꺼다. 그렇게 알고 있어. 크리스, 나가자."
크리스를 데리고 마트를 나왔다. 크리스는 여전히 불안한지 어쩔줄을 몰라했다. 크리스는 이 마트는 스컬 갱단이 운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 상태다. 스컬 갱단이 새사람이 되어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마트를 개점한거다. 갱단이라고 해도 스스로 들어 가는 자는 드물다. 먹고 살길이 막혀 어쩔수없이 가입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이곳 다운 타운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찾는건 하늘에 별따기다. 다운 타운 출신이라는 말에 수백번은 면접에 떨어졌다. 먹고 살기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고용해 주는 곳은 없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어쩔수 없이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어 간다. 약 장사나 위조품 판매, 삐끼등의 자잘한 일을 하며 근근히 먹고 살지만 그런 일은 주위의 눈총이 따겁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당당히 가슴을 펴고 돌아 다닐수 있는 직업을 다운 타운에 살고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한다. 어떤 일이라도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된다. 이제 직업을 찾았다. 스컬 갱단이 운영하는 곳이지만 엄연한 마트다. 앞서 가는 동양인이 누군진 모르지만 스컬 갱단이 이 자의 말에 꼼짝도 못하고 슬슬 기고 있었다.
"넌 무슨 일을 했었냐?"
"약 장사를 했었습니다."
"그래? 근데 왜 그만둔건데?"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약 장사를 하는 놈들은 자신들도 약에 빠져 드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해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폐인이 된다. 약을 구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에 자연스럽게 빠져 들어 평생을 감옥에서 썩는다.
"식사나 하러 가자. 네가 먹고 싶은 곳으로 안내해."
크리스의 안내로 식당으로 들어가 큼직한 스테이크를 먹었다. 크리스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었지만 그런 행동을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런 모습에 이계에 처음 도착해 산속에서 배가 고팠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일이 없으면 다운 타운을 구경시켜 줘."
"알겠습니다."
다운 타운은 현지인이 아니면 잘 들어 가지 않는다. 특히 저녁 시간대부터는 발길이 뚝 끊긴다고 한다. 어디서 무장 강도가 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로 주변에는 나이든 사람들이나 중년인들이 뉴욕과 마찮가지로 의자에 앉아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노점상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가방이나 옷, 악세사리등을 팔고 있었다.
골목길로 들어 서자 바닥에는 쓰레기 천지였다. 벽에는 이상한 그림으로 페인팅되어 있는 곳도 있었고 낙서를 갈겨 놓은 곳도 있었다. 그런 낙서중에는 이곳이 어느 갱단 구역이라고 경고하는 문구도 있다고 했지만 영어를 읽을줄 모르는 켄은 알아 볼수 없었다.
"넌 어디에 사냐?"
"이곳에서 좀더 들어 간 곳입니다."
"가 보자. 근데 혼자 사냐?"
"아니요. 부모님과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크리스가 살고 있는 곳은 허름한 아파트였다. 3층에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 서자 주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런곳에 동양인이 들어 오는건 생소한 일이다. 모두 무슨 일인지 궁금한듯했다.
"크리스! 일은 찾았어?"
주방에서 뭘 하다가 나온것인지 중년의 흑인 여인이 손을 닦으며 현관쪽으로 나왔다.
"누, 누구니?"
"인사해. 일자리를 구해 주신 분이야."
"아, 메리에요. 감사해요."
"핸드라고 불러."
크리스의 어머니인 메리 부인이 소파로 안내했다. 잠시후 마실것을 내 와 테이블에 올려 놓고 어떤 일자리를 찾아 준것인지 궁금한듯 크리스에게 물어 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 거니?"
"새로 생긴 타운 마트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어요."
"크리스를 잘 부탁드려요."
"걱정마. 일만 열심히 하면 그만큼 보답도 있을꺼야."
벌컥.
그때였다. 누군가 현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케티! 갑자기 그렇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오면 놀라잖니?"
메리 부인의 말에 책을 품에 앉고 있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를 타이르자 그 애는 혀를 한번 쏙 내밀고는 소파에 앉아 있는 켄을 확인했는지 눈이 커졌다.
"누, 누구세요?"
"크리스 일자리를 찾아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오빠! 일자리 찾은거야?"
"그래."
눈이 동그래진 케티는 믿기지 않는지 수시로 켄을 힐끗거리며 크리스에게 몇번이나 물어 보고 있었다.
"케티라고? 난 핸드다. 고등학생?"
"예. 12학년이에요. 근데 핸드 아저씨가 타운 마트를 운영하는거에요?"
"아니, 자금을 대 주었다."
"아, 그럼 실제적인 경영자나 마찮가지잖아요? 그들은 유명한 갱단인데 협박을 받은 거에요?"
스컬 갱단의 평판이 나쁜것 같았다. 아마 모든 갱단들이 다 그럴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게 갱단이다. 평판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 반대다. 내가 협박한거다."
"예엣?"
"그놈들이 갱생하게끔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케티는 물론 메리 부인도 이해가 되지 않을것이다. 크리스는 이미 경험을 했기에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케티! 정말이야. 직접 봤어. 이 분에게 크롬이 쩔쩔 매고 있었어."
"근데 오빠는 그런 마트에서 일해도 괜찮은거야?"
"괜찮다. 스컬 갱단은 앞으로 나쁜짓은 하지 않을꺼다. 다른 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 활동까지 할꺼다. 그들이 변했다는 것을 지켜 보면 알꺼다."
하루이틀만에 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점차로 인식 변화를 꿰해야 한다. 크롬 일행 모두가 스스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케티, 넌 대학교 진학을 하는거냐?"
"아니요. 일자리를 찾아 봐야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다.
"대학은?"
"......"
케티는 엄마를 바라 보며 아무런 말도 없었다. 메리 부인 또한 얼굴이 그늘이 어려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까지는 가지 못하는것 같았다.
"공부는 잘 하냐?"
"그럭저럭요."
"대학 가고 싶어?"
"......"
아무런 말도 없는게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면 바로 말했을것이다.
"대학 가고 싶다면 보내 줄께. 크롬에게 말해 놓을테니까 타운 마트 장학생으로 대학에 가라."
"저, 정말이에요?"
"그래. 앞으로 타운 마트에서는 이익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꺼다. 대학 졸업할때까지 학비는 전액 지원해 주고 매달 생활비도 많지는 않지만 지급해 줄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켄의 말을 듣고 있는 메리 부인은 물론 크리스까지 놀라며 감사 인사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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