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석청 채취
154화.
"내일은 마을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동충하초는 얼마나 캤는지 알수 없을 정도였다. 정신없이 캐야만 했기 때문이다. 높은 산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저녁때쯤 도착했다. 마을 어귀에는 라쥬와 라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많이 캤어요?"
"그래. 깜짝 놀랄꺼다."
다음날 아침 창고에 모여 이번에 캔 동충하초를 등급별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전번에 캔것보다 더 많았다. 높은 산의 경사진곳을 돌아 다니며 캘려면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했지만 평지에선 그런 제한도 없었다. 하급품이 2342개, 중급품이 1108개, 상급품이 237개였다. 총 3687개였다. 엄청난 양이다. 합계를 들은 이들이 모두 쩍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전번에 캔것과 합치면 무려 6032개다.
총 합계를 들은 이들이 또다시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마 평생동안 캘것을 이번에 모조리 캐버린것이다. 켄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도 땅속에서 마나를 많이 품고 있는 검고 둥그스럼한 것을 3개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직 뭔지는 모른다. 하루종일 중개상인 반찬드라를 기다렸지만 찾아 오지 않았다. 3일이 지나서야 마을로 반찬드라가 당니귀 한마리를 끌고 찾아 왔는데 등산복 차림의 건장한 체격의 사내 3명과도 함께였다. 한명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 뒤의 두명은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후후후, 조직 냄새가 풀풀 나네.'
정말 반가웠다. 옛생각이 새록새록 돋아 나게 하는 놈들이었다. 동충하초가 많다는것을 알고 있는 반찬드라가 폭력배들을 끌고 온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이곳 고산족들과는 달리 동아시아쪽의 한국이나 일본, 중국인같은 얼굴이었지만 머리를 짧게 깎은게 중국인처럼 보였다. 만약 이들이 협박을 한다면 반쯤은 죽여 놓을 생각이다.
"어서 오게."
"죄송합니다. 의뢰인이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 모셔 오느라 늦었습니다."
"그런가."
키도 크고 건장한 이들을 본 슈란달은 조금 위축된듯했다.
"신기한 것을 보여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석청을 따는 것도 구경할겸 겸사겸사 찾아 온것입니다."
역시 중국인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중국말로 하는걸 반찬드라가 통역해 주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바로 석청을 따러 가도 되겠습니까?"
"가자."
슈란달과 랑타르 형제, 그리고 반찬드라와 중국인 3명이 함께 갔다. 반나절 거리의 가까운 절벽에 있는 석청은 절벽위로 올라갈 길이 없어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대체 몇미터 높이인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곳이다. 절벽 근처에는 대나무 숲이다. 랑타르 형제가 대나무를 베어 큰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석청을 따면 넣을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글 아이!"
누구도 듣지 못할 정도로 나즈막하게 마법을 시전해 절벽위에 있다는 석청을 찾아 보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벌들이 날아 다니며 하얀색의 커다란 벌집이 8개나 매달려 있었다. 한개의 크기가 적어도 1미터 이상이다. 그중 두개는 절반 정도 크기와 20센티 정도 크기였다.
"저어, 선인님! 저 석청을 어떻게 딸 생각이십니까?"
"걱정마라. 그런데 저걸 몽땅 다 따버리면 벌들은 죽어 버리나?"
"그, 그건...잘 모릅니다. 아마 다른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그럼 작은건 남겨 두고 큰것만 따자."
작은 벌집 두개는 남겨 놓을 생각이다. 벌들도 먹고 살길을 열어 줄 생각이다. 석청 생각이 나면 이곳으로 다시 와 늘어난 벌집을 따 갈수 있도록 남겨 둔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랑타르 형제는 대바구니를 만든후 이번엔 대나무 껍질을 벗겨 밧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뭐 하냐?"
"밧줄을 만들어 저곳으로 올라가 늘어 뜨린 밧줄을 타야 석청을 딸수 있지 않겠습니까?"
빠랑개들이 그런식으로 석청을 채취하는것 같았다.
"밧줄은 필요없다."
"옛?"
"저위에 있는 큰 석청 여섯개만 딸 생각이니까 바구니를 두개만 더 만들어 놔."
랑타르 형제가 대바구니 두개를 완성시키면 석청을 딸 생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어 봐."
중국인의 말에 반찬드라가 통역을 할려고 했다. 하지만 반찬드라가 막 입을 열어 통역을 할려고 할때 켄이 한발 앞섰다.
"석청을 채취하는 장면은 누구에게도 보여 줄수 없어."
"응? 중국어? 중국어를 할줄 아나?"
"물론이다."
켄의 유창한 중국어에 듣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란듯했다.
"네가 선인이라고 불리우는 자냐?"
"그렇게 부르더군."
중국의 조직중 하나인 청방의 중간 보스인 왕청은 대리인인 반찬드라의 흥미로운 말을 듣고 호기심에 직접 이곳으로 찾아 왔다. 동충하초에 그런 약효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었다. 무려 석청이나 고려 인삼과 같은 효능이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동충하초가 굉장한 약재이긴 하지만 석청과 고려 인삼과도 버금가는 약초라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정말이라면 새로운 발견으로 더 높은 가치로 판매를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러 온것이다. 석청을 따는 것을 구경하는건 덤이다. 그런데 반찬드라가 말한 선인이라는 자가 유창한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이토록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할 정도라면 중국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혹시 다른 조직에서 동충하초를 구입하기 위해 보낸 자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지만 그런 자가 굳이 석청과 동충하초를 비교해 보이지는 않을것이다. 자신의 조직만 알고 있는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 자가 어떤 조직에 속해 있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 난 상태다. 하지만 석청을 채취하는 장면을 보여 줄수 없다는 말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먼길을 온만큼 꼭 구경하고 싶었다.
"히말라야 석청을 만드는 벌들은 굉장히 사납다고 들었다. 쏘이면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
슈란달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피스 라보리오사(Apis Laboriosa)라는 벌로 꿀벌중에 가장 사나운 놈들로 면역이 없는 사람이 쏘이면 죽을수도 있다고 했다. 빠랑개들은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야자수 나무과에 속하는 망싱(Mangshing)이라는 나무 껍질을 벗겨 얼굴에 뒤집어 쓴다고 했다. 그물망처럼 생긴 망싱 껍떼기는 자연산 보호망이다.
"선인님! 다 만들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랑타르 형제가 대바구니 3개를 완성시켜 놓았다.
"좋아. 모두 벌에 쏘이고 싶지 않으면 멀찍히 물러 나라."
연기도 피우지도 않고 어떤식으로 석청을 채취하는지 보고 싶었던 이들은 켄의 말에 어쩔수없다는듯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자욱한 연기를 피워 벌을 약하게 만든후에 절벽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석청을 채취하는게 빠랑개들이 전통적인 석청 채취 방식인데도 선인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것 같았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석청을 따는지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슈란달과 랑타르 형제가 먼곳으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반찬드라가 데려온 중국인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석청을 따는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흥, 가지 않을수 없을껄.'
벌들이 놈들을 습격하면 도주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 실라이온!
- 부르셨어요.
- 그래. 저 위에 있는 벌 몇마리를 끌고 와 이들을 공격해 도주하게 해.
- 호호호, 알겠어요.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온은 바람으로 감싼 벌 20여마리를 끌고 오자 혼비백산한 반찬드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주해야 합니다."
헐레벌떡 도주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절로 실소를 자아냈다. 아무리 담이 큰 조직원들이라고 해도 작은 벌들을 상대로 주먹을 휘두를순없는 일이다. 저들도 이 벌에 쏘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다급히 도주하며 뒤를 돌아 보며 의아해 하는 이들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벌들이 접근하고 있는데도 저 선인이라는 자는 도주할 생각이 전혀 없는것 같았다. 저 벌들에 면역이 있는지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모습이 믿겨 지지가 않았다. 중국인들이 완전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벌들로 쫒아 버리고는 실라이온에게 석청을 채취하라고 했다. 어떻게 채취하는지는 머리속으로 이미지를 그려 주었다. 뿌리까지 완전히 채취하지 않고 조금 남겨 둔채로 따게했다.
작은 크기의 두개는 그대로 남겨 두는 한편 여왕벌을 찾아 작은 크기로 옮겨 놓으라고도 했다. 랑타르 형제가 만들어 놓은 대바구니안에 반찬드라가 가지고 온 큰비닐을 넣고 그 안에 실라이온이 온전한 모양으로 따 가지고 온 석청을 두개씩 넣었다. 워낙 석청의 크기가 큰탓으로 대바구니 밖으로 삐져 나올 정도였다.
- 수고했어.
- 그런데 이 석청이라는 것엔 독이 들어 있어요.
- 독?
- 예. 이것을 많이 섭취하면 중독되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석청에 독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 고맙다. 나중에 부를테니까 그만 들어 가라.
- 나중에 꼭 불러 주세요.
- 그래. 약속하겠다.
실라이온이 돌아 가자 이번엔 엔다이론을 불러 독만 정화해 달라고 했다. 엔다이론이 독을 정화하고 돌아 가자 큰소리로 일행을 불렀다. 벌들이 없는지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 온 일행들이 대바구니에 안에 삐죽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석청을 보고는 턱이 빠질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석청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떤식으로 저렇게 딴거지?"
"완전한 석청입니다. 부서진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석청이라면 대체 얼마나 할까요?"
마지막의 반찬드라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주목되었다. 정말 부서진곳이 단한군데도 없었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완벽한 모양의 석청과 똑 같았다. 이런 모양의 석청을 이대로 판매한다면 엄청난 가격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석청을 따는 빠랑개들은 흔들리는 밧줄위에 매달려 긴대나무 칼로 잘라 바구니안에 떨어 뜨리는 식으로 작업을 하기에 이처럼 온전한 석청을 딸수는 없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저 까마득한 절벽위로 올라가 온전한 석청을 따 가지고 내려 올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는 기사(奇事)였다. 역시 선인이 아니라면 절대 할수없는 일이라고 새삼 느낄수 있는 일이었다.
"이 석청을 파십시요."
선글라스를 쓴 중국인이 갑자기 존대말을 하며 팔라고 종용했다. 굉장히 흥분된 표정이었다.
"그건 나중에 협상을 하고 지금은 명현 현상을 실험할때다."
"아! 그, 그렇군요."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시킨 왕청은 흥분된 마음을 조금 가라 앉힐수 있었다. 히말라야 석청은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부분 가짜지만 진품이라면 굉장히 비싸다. 만약 저렇게 온전한 모양의 석청을 가지고 간다면 대체 얼마큼의 가치일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반찬드라! 석청을 얼마큼 먹으면 잠이 드는지 알아 봤나?"
"예.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반그릇에서 한그릇 정도 먹으면 잠이 들거나 발작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래. 일단 자리를 옮기자. 천막을 칠수 있는 곳으로 가서 실험해 보자."
랑타르 형제와 슈란달과 반찬드라, 그리고 중국인 두명이 한개의 조로 짜서 대바구니를 한개씩 들고 천막을 칠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석청의 만만치않는 무게에 따라 오는 이들의 얼굴에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2미터에 가까운 석청이 모두 6개다. 그런것이 두개씩 담겨져 있는 대바구니는 엄청 무거웠다. 석청의 두께만해도 30센티에 가까웠다. 무겁지 않을수가 없었다. 몇번을 쉬어 가며 겨우 천막을 칠수 있는 곳까지 온 일행은 서둘러 천막을 쳤다. 중국인들은 미리 준비해 왔는지 텐트를 치고 있었다. 슈란달 일행이 처 놓은 천막안으로 들어가 켄 자신이 머물 텐트를 꺼내 밖으로 내밀자 이미 익숙해진 랑타르 형제가 텐트를 대신 세워 주었다.
"석청을 한그릇만 짜내."
슈란달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빈그릇에 석청을 짜냈다. 희멀건한 석청이 채워지자 이제 실험할 사람이 필요했다.
"누가 마셔 보겠나?"
"제가 하겠습니다."
랑타르가 자청했다. 하지만 랑타르는 안된다. 서로 짜고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반론할수도 있는 일이다. 중국인들에게 실험해 보는게 변명의 여지가 없을것이다.
"너희들중 누가 해봐."
"군! 네가 해라."
"명!"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자가 인상을 구기고는 뒤에 있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군기가 바짝 든것인지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꿀꺽꿀꺽꿀꺽.
시원하게 그릇을 비운 사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30분정도가 지났을때 갑자기 사내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어...모, 몸이 무거워진것 같습니다."
"텐트로 들어 가서 누워라."
"명!"
명령에 칼같이 반응하는 사내는 텐트 안으로 들어 갔다.
"넌 옆에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지켜 봐라."
"명!"
켄은 마나 서치로 석청을 살펴 보았다. 특별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석청은 마나를 품고 있었다. 크기에 따라 마나양이 모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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