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슈란달(1)
152화.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짊어진 일행들이 산을 내려 가고 있었다. 모두 7명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일인지 모두들 짐이라곤 하나도 없이 맨몸이었다. 단한명만 무언가를 업고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켄 일행들이었다. 가장 뒤쪽에서 따라 오는 켄을 슈란달이나 랑타르 형제가 힐끔힐끔 뒤쪽을 바라 보며 앞서 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일행들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올라 올때보단 가벼워진 짐이었지만 모두들 한짐씩 짊어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은 짐이었다. 가장 무거운 식량은 많이 소비한 덕에 가벼워졌다지만 그래도 무거운건 마찮가지다. 특히 슈렌댁은 아이까지 있는 상황이다.
짐을 싸는 모습을 바라 보고 있던 켄은 이들을 도와 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들은 켄을 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를 하든 선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할것이다. 모두가 짐을 싸면서도 켄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어제밤까지 있었던 텐트라는 물건이 깜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전혀 모를 정도다. 빈손으로 서 있는 모습이 숨길곳은 전혀 없어 보였다. 텐트와 동충하초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혹시 다른곳에 숨겨 놓은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선인님이 하시는 일에 워라고 추궁할수도 없었다.
"짐은 다 쌌나?"
"그, 그렇습니다."
바닥에 있는 짐들은 출발하자고 말하면 짊어 질것이다.
"짐들을 한곳에 모아."
"옛?"
무슨 뜻인지 모르는듯 잠시 머뭇거리든 일행들이 한곳에 짊어질 짐들을 모아 놓았다.
"모두들 눈을 감아. 내가 뜨라고 할때까지 절대 눈을 뜨지 마."
영문도 모른채 켄의 지시대로 순순히 모두들 눈을 감았다. 그런 이들의 눈을 모두 확인한후 바닥의 짐들을 마법 주머니에 쓸어 넣었다.
"자아, 모두 눈을 뜨라."
"허억! 지, 짐들이..."
"사, 사라졌다."
"조용히 해. 내가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 필요할때 꺼내 줄테니까 걱정할건 없어. 그럼 내려 가자."
멍하니 귀신에 홀린듯한 표정들인 이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산을 내려 가기 시작했다. 슈란달은 아무런 짐도 없이 맨몸으로 걷고 있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많던 짐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선인님의 재주로 어디에 숨겨 놓았을테지만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을뿐이었는데 깜쪽같이 사라진것이다. 선인님의 텐트나 동충하초도 그런식으로 사라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일행들은 다른 사람들이 야영하고 있는 곳은 피했다. 선인님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마을에 가서도 소문을 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근 10여일을 걸어서 여러 산을 넘고 넘어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 왔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가파른 언덕위에 십여호의 집들이 보였다. 드문드문 언덕어림에 세워져 있는 집들도 있었다. 언덕은 모두 논밭으로 개간되어 있었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를 간지럽히자 기분이 좋아졌다. 풀이라곤 마른풀들밖에 볼수 없었던 높은 산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푸르름을 자랑했다. 논밭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늙은이나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었다. 마을로 점점 다가 가자 이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과 수심이 교차되었다. 마을이 보이면 기뻐해야 정상인데도 왜 그런지 알수가 없어 물어 보았다.
"기뻐지 않나?"
"기쁩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그, 그건..."
동충하초를 캘수 있는 계절엔 마을에는 노약자와 아이들만 남아 있다고 했다.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산을 탈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올라 간다. 그런 마을은 유령 마을로 변해 누군가가 죽어 버리면 장례식조차 치룰수가 없다. 가끔 한두명씩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다고 했다. 그런 점이 걱정되어 얼굴에 수심이 어려있는 것이었다. 짐을 가득 짊어진 일행들이 마을로 들어 서자 마을 어귀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반겨 주었다. 마을이 보일쯤에 이들에게 짐을 꺼내 주었다. 맨몸으로 마을로 들어 서면 도둑을 만난것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것이다.
"엄마~!"
한여자가 빠르게 달려 오고 있었다.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여자 애로 콧등 아래쪽에는 보라색의 작은 보석으로 보이는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누나!"
라쥬가 누나라고 외치며 달려 나갔다. 슈란달의 딸이었다. 슈렌댁을 반겨 준건 늙은 노인이었다. 시어머니라고 했다. 랑타르 형제는 가족이 없는 탓으로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
"라쥬 아버지! 많이 캤는가?"
"그럭저럭요."
마을 사람들의 물음에 얼무버린 슈란달은 켄에게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슈란달을 따라 가며 마을을 둘러 보았다. 돌담이 마을 입구부터 늘어서 있었다. 얇은 석판같은 돌을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담벼락을 쌓을 정도로 흔해 빠진것 같았다. 길은 질퍽거렸다. 며칠전에 비가 온 탓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슈란달을 따라 가는 켄을 라쥬 누나라는 애가 힐끔힐끔 누군지 궁금한 얼굴로 엿보고 있었다.
"자네들은 반찬드라가 오면 부를테니까 푹 쉬게."
모두 제각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님! 돌아 왔습니다."
슈란달에게 어머님도 살아 계신것 같았다. 돌담으로 둘러 쌓인 마당으로 들어 서자 바로 외쳤다.
"아버지! 할머니는 아파요."
"어디가 아픈거냐?"
"몰라요. 그냥 누워 있기만 해요."
헐레벌떡 방문을 열고 뛰어 들어간 슈란달의 어머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으로 들어간 켄은 놀랄수 밖에 없었다. 이게 집인지 천막인지 모를 정도였다. 바닥도 모두 흙바닥이었다. 한쪽 구석에 흙으로 만들어 놓은 화덕같은게 있었고 야영할때 사용했던 돌무더기로 만든 작은 화덕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닭 두마리와 염소까지 한방에 있었다. 동물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것 같았다. 벽도 흙벽으로 곳곳에 허물어져 돌들이 드러난 곳도 있었다. 슈란달의 어머니라고 하는 노인은 흙바닥에 깔려 있는 짚으로 엮어 만든듯한 돗자리에 누워 모포를 덮고 있었다.
'이런 원시적인 생활이라니...'
방안을 보고 적잖이 놀라고 있는 켄에게 슈란달이 간절한 눈으로 바라 보며 머리를 숙였다.
"선인님! 저희 어머님을 살려 주십시요."
"비켜 봐라."
급히 자리를 비켜준 슈란달을 대신해 누워 있는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마나 스캔!"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무슨 병에 걸려 있진 않는것 같았다. 다른 건강한 사람들보다 마나가 많이 부족한게 노환같았다. 마나 스캔만으로는 정확히 알수가 없어 물의 정령인 엔다이론을 불렀다. 치료에 특화된 엔다이론이라면 알수 있을것이다.
- 엔다이론!
- 부르셨어요.
- 살펴 봐 줄래.
- 알았어요.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엔다이론에게 설명은 필요없었다.
- 못 먹어서 이런 상태에요. 영양 결핍과 노환이 겹친것 같네요. 포션 한병이면 거뜬히 일어 설꺼에요.
- 고맙다.
슈란달의 딸인 라세는 아버지가 데리고 온 키가 큰 젊은 이방인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애원을 하자 깜짝 놀라며 엄마를 바라 보았지만 엄마도 간절히 젊은 남자를 바라 보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물어 볼수도 없었다. 그런 남자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지켜 보고만 있자 어리둥절할수 밖에 없었다. 뭘 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었지만 동생인 라쥬조차 흥분된듯한 얼굴로 할머니만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자 차마 물어 볼수가 없었다.
'뭐 하는 사람이지?'
관광객이라면 가끔씩 마을을 찾아 오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과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이 남자는 아무런 짐도 없었다. 그런걸로 짐작할때 관광객은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동안 할머니를 지켜 보던 남자가 무언가 조그마한 병에 담긴 붉은 물 같은걸 할머니 입에 넣고 있었다.
'주술사인가?'
주술사라면 아버지가 애원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데려 온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런 주술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적도 없었다. 이 근처의 주술사는 3일을 걸어 가야 하는 마을에 있다. 그 주술사도 아니었다.
"어머님!"
아버지의 외침에 생각에서 깨어난 라세는 또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잠만 계속 자던 할머니가 깨어 난것이다.
"죽을때가 되니 아범을 볼수가 있구만..."
"죽기는 왜 죽어요. 오래 사셔야죠."
"아니다. 기력이 없어 이렇게 일어 날수도..."
벌떡.
몸을 가눌수도 없었던 할머니가 누운 자리에서 바닥을 짚고 벌떡 일어나자 라세는 화들짝 놀랐다.
"하, 할머니...괘, 괜찮아?"
"이, 이게 어떻게 된거람? 몸이 날아 갈듯 가볍구나."
할머니의 말을 들은 라세는 젊은 이방인 남자를 바라 보았다. 그때와 동시에 아버지와 엄마가 젊은 이방인 남자 앞에 엎드려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선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님을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해. 할머니는 몇년은 정정하실꺼다."
"아! 감사합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할머니가 선인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리며 고개를 숙였다.
"서, 선인님이 절 고쳐 주셨다고요? 귀한분의 은혜에 감사드려요."
"그만 하고 편히 앉아."
부담스러웠다. 늙은 노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꾸벅 대는게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앞니가 2개 빠진게 말을 할때마다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웃음을 꾹 참을수 밖에 없었다.
"선인님도 누추하지만 자리에 앉으시지요."
돗자리가 깔려있는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성의를 생각해서 자리에 앉아도 되지만 늙은 노인을 앞에 두고 앉을수가 없었다.
"라쥬! 창고같은게 있으면 안내해라."
라쥬가 아버지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쪽이에요."
라쥬가 안내한 창고같은 곳에는 1미터정도 높이의 청색 원통이 몇개 놓여 있었으며 농기구도 바닥에 놓여 있었다.
"넌 밖에 나가서 기다려."
"예."
라쥬가 밖으로 나가자 켄은 아공간을 열었다. 이제 굳은 마나가 3분 2정도 녹은 덕분으로 아공간을 맘대로 열수 있었다. 아공간에서 예전에 여러 물건을 집어 넣은것 중에 큼지막한 카펫을 꺼냈다. 일본의 백화점을 털었을때 집어 넣어 놓은것이다. 일반적인 일본 가정에선 이런 카펫을 바닥에 깐다. 하지만 흙바닥에 그대로 깔아 놓으면 금방 더럽혀져 버릴것이다. 그래서 카펫 타일도 꺼내 놓았다. 카펫 타일은 가로 세로 300센티정도의 카펫으로 이것을 서로 연결해 바닥에 깔고 그 위해 부드러운 카펫을 올려 놓을 생각이다. 꺼낸김에 부드러운 담요도 3장을 꺼내 놓았다.
"라쥬! 들어와."
삐거득.
창고문을 열고 들어온 라쥬는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 창고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물건들이 창고 어디에 있었는지 어리둥절했지만 선인님이 신기한 재주로 꺼내 놓은것이라고 생각했다. 무거운 짐까지 모두 깜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선인님이 이런것까지 꺼내 놓을줄은 몰랐다. 라쥬의 놀란듯 하면서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본 켄은 즉시 라쥬에게 지시했다.
"이것만 들고 따라 와라."
"예."
카펫 타일만 들고 낑낑거리며 따라 오는 라쥬와 켄이 집안으로 들어 오지 모두가 라쥬를 보고 저게 뭔가 하는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슈란달! 이걸 바닥에 깔아."
"이게 뭔지요?"
"카펫 타일이라는거다. 이런식으로 이어 붙여 깔면 된다."
카펫 타일에는 서로 맞물릴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었다. 서로 연결시키 간단히 바닥에 깔수 있는 구조였다. 라쥬가 몇번이나 창고를 들락거리며 카펫 타일을 방으로 옮기는 한편 슈란달은 카펫 타일을 바닥에 깔고 할머니와 라쥬 어머니, 딸은 방의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다. 부엌쪽과 동물들이 있는 근처를 제외한 모든곳에 카펫 타일이 깔렸다.
"저 돗자리는 버려."
"옛?"
버리라는 말에 놀란듯 주춤거리던 슈란달이 아깝다는 눈으로 어쩔수 없다는듯 켄의 지시에 따랐다.
"라쥬! 아버지와 함께 창고의 남은 물건들을 모두 가져 와라."
돗자리를 들고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간 라쥬는 잠시후 아버지와 함께 카펫과 부드러운 모포에 얼굴을 파 묻은채 싱글벙글 웃음이 달린채 들고 왔다. 슈란달도 왜 돗자리를 버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 표정이었다. 큼지막한 카펫이 바닥에 깔리고 모포는 한쪽 구석에 놓아 두었다.
카펫과 모포를 본 이들은 모두가 놀라워했다. 특히 라쥬 어머니와 딸은 몇번이나 카펫과 모포를 쓰다 듬으며 부드러운 감촉을 만끽하고 있었다. 켄이 라쥬를 데리고 창고로 갔을때 슈란달과 모티가 자신의 딸과 어머니에게 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딸인 라세는 믿을수 없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건강해 졌다는걸 알고 손녀에게 믿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아직 믿을수 없었던 라세는 라쥬가 들고 온 물건을 보고는 조금은 의심이 수그러졌지만 나중에 들고 온 물건을 보고는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분명히 선인이라는 남자는 빈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올수 있는지 선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