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재래 시장 바잘(1)
156화.
현금 3억엔을 들고 올려면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너무 컸다. 위험 부담이 그만큼 늘어 나는것이다. 혹시라도 막대한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난다면 강도들이 떼지어 달려 들것이다. 이 지역은 옛날에 반군 활동을 하던 게릴라들의 거점이 있는 곳이다. 그런 반군들이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음, 그럼 나중에 내가 중국으로 직접 석청을 가지고 갈테니까 그때 줘."
"감사합니다."
무슨 방법으로 이 커다른 석청을 옮길지는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선인에게는 간단히 석청을 채취하는 방법과 옮기는 방법까지 있는것 같았다. 대체 어떤 능력인지 궁금했지만 물어 볼수도 없었다. 석청이 고려 인삼과 같은 효과를 볼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확인된 만큼 저 석청만 입수한다면 사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것이다.
다음날 아침 춥다며 벌벌 떨고 있었던 첸이라는 사내는 동충하초의 약효를 모두 흡수했는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왕청의 뒤에 시립해 있었다. 그에 반해 석청을 먹은 군이라는 사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왕청의 부하가 깨어 날때까지 어쩔수 없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다.
"선인님은 어느 나라 출신입니까?"
"나? 한국인이다."
태어난 곳은 일본이지만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한국인이 이곳 네팔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선인은 등산복 차림도 아니었다. 코트를 입고 있을 뿐이다. 저런 복장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이상한것이었다.
"수련을 하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이해가 되었다. 어떤 수련인지는 모르지만 도를 닦은 선인이라는 말이다. 젊은 나이에 어떤 수련을 하면 신기한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 봐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도 수련 방법이나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서(秘書)같은건 절대로 입에 담지 않는다.
"그럼 이제 수련이 끝난겁니까?"
"스승님이 하산하라고 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있었다. 이들이 의심하지 않게끔 한편의 소설을 쓰야 했다.
"그럼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 다닐 생각이다."
어디로 간다고 하면 왕청이라는 자가 귀찮게 할것 같아 두리뭉실하게 답해 주었다.
"그, 그럼 중국으로 가시지요."
"중국도 물론 가 볼 생각이다."
"그럼 다음에 방문할때 모셔도 되겠습니까?"
"중국으로 가자고? 알았다. 다음에 같이 가자."
중국으로 먼저 건너가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던 켄은 밤이 되자 계약한 정령들을 모두 불러 이곳을 구경하라고 했다. 정령과는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굳이 불러 내지 않아도 켄이 보는것과 생각하는건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는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일것이다.
정령들을 한꺼번에 모두 불러 내는건 처음이다. 신이 난 정령들은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만끽했지만 도시가 아닌 산골이어서 볼것도 없었다. 보이는건 오로지 높은 산들뿐이다. 그래도 새로운 공기와 처음 보는 나무, 풀등을 만져 보면서 신기해 했다. 이들은 이미 이 세계가 다른 차원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령중에 다른 차원을 경험한 정령은 거의 없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한밤중에 깨어난 군이라는 사내가 왕청의 뒤에 시립해 있었다. 놀고 있던 정령들이 깬 사람이 있다고 알려 주어 알고 있었다.
"군의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대신 감사드립니다."
"그것도 자신의 복이다."
"그럼 저희들은 그만 내려 가 빠른 시일내에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왕청과 반찬드라가 서둘러 산을 내려 갔다. 석청을 아공간에 집어 넣고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마을로 돌아간 켄은 동충하초를 판 대금을 분배할려고 슈렌댁을 슈란달 집 창고로 불렀다. 창고에 설치되어 있는 켄이 거주하는 텐트에 모인 슈란달 부부와 아들 라쥬, 랑타르 형제, 그리고 슈렌댁이 자리에 앉아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텐트 중앙에 수북히 쌓인 돈다발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얼마큼의 돈다발인지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일것이다.
"먼저 산위에서 캔 동충하초만 팔았다. 반찬드라가 그만큼의 자금밖에 없다고 했거든."
왕청이 돈을 준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슈란달과 랑타르 형제는 알고 있었지만 슈렌댁에서 새삼 그런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모두 2천 63만 루피다."
"이, 이천만 루피가 넘는다고요?"
"와아~"
슈렌댁과 라쥬가 어지간히도 놀란듯했다.
"선인님이 제시한 가격 그대로 다 받았다네."
"아, 감사합니다."
슈란달이 슈렌댁에게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럼 모두 7명이니까 공평하게 나누겠다. 일인당...2백 94만 7천 1백 42루피다."
"허억! 그, 그렇게 많습니까?"
"와아아~! 부자다!"
"그런데 선인님까지 합하면 모두 8명인데 왜 저희들 7명만으로 나누는겁니까? 선인님이 가장 많이 가져 가야 할텐데요."
랑타르가 의아해했다. 동충하초를 많이 캔것은 모두 선인님 덕분이다. 선인님이 없었다면 절대 무리였다. 그런데도 선인님은 자신의 몫을 계산하지도 않고 모두에게 나누어 줄려고만 했다.
"절반 이상은 선인님이 가져 가셔야 합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음, 좋다. 그럼 너희들에겐 일인당 2백 90만 루피씩 주고 나머지인 4만 7천 1백 42루피씩을 합친 33만 루피를 가져 가겠다."
"그, 그렇게 적게 가져 가셔도 됩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슈란달 가족은 3명이니까 8백 70만, 슈렌댁과 랑타르 형제는 2명씩이니까 5백 80만씩이다."
계산을 마친 켄은 돈다발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이 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만약 소문이 난다면 도둑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천 루피짜리 백장씩 묶은 다발이 슈란달 가족 눈앞에 87개와 슈렌댁과 랑타르 형제 앞에 58개씩이 쌓이자 새삼 엄청난 다발에 입이 쩍 벌어지며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는지 잘게 손발을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평원에서 캔 동충하초는 팔지도 않았는데도 막대한 돈을 번것이다. 그것까지 합치면 단번에 부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만 해도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부자다.
"자아, 그럼 돈을 가져가 잘 숨겨 놓고 석청을 나누어 줄테니까 크고 넓직한 바구니를 가지고 다시 다시 모여. 아, 꿀이 흘러 내릴지도 모르니까 비닐 같은게 있으면 가져 오도록 해."
"헉! 서, 석청도 나눠 주시겠단 말입니까?"
"그래. 나누어 준 석청은 절대 팔지마라. 약으로 사용하라고 주는거다. 나누어 줄때 다시 설명해 줄테니까 당장 움직여."
수북한 돈다발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온 보자기에 둘둘 말아 감고는 품에 꼭 앉고 텐트를 나서는 일행들의 얼굴은 모두가 흥분된 표정들이었다. 모두 텐트를 나가자 아공간에서 석청 한개를 꺼내 놓았다. 잠시후 제각기 큰바구니를 들고 온 일행들이 다시 텐트에 모였다. 정확히 삼등분해 나누어 줄 생각이다.
"커터!"
손가락을 석청으로 가져다 대며 자르는 시늉을 하며 조용히 마법 주문을 외웠다. 손가락 만으로 정확히 삼등분으로 갈라지는 석청을 보고 있던 일행들의 입이 벌어지며 다물어지지 않았다. 잠시 정적에 물든 텐트안이 랑타르의 외침으로 깨어졌다.
"어, 어떻게 저럴수가..."
역시 랑타르는 선인님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다른 이들도 믿기지 않는 일에 다시한번 선인님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덩어리씩 담아라. 꼭 필요할때만 덩어리를 조금 떼어내 짠 꿀을 먹어야 한다. 절대 한꺼번에 모두 짜내지 마라. 짜내 놓으면 약효가 점점 줄어든다. 한그릇 이상은 절대 먹지 말고 아이에겐 조금만 먹여라. 병이 발생했을때나 기력이 딸려 힘이 없을때 부상을 당했을때 먹으면 호전될꺼다."
"가, 감사합니다."
모두들 황송해 하며 조심스럽게 석청을 들고 나갔다. 밤에는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마나를 녹이면서 정령들을 불러내 이 세상을 구경하라고 하며 밤을 지새웠다.
"저어, 선인님! 내일 아침 일찍 모두 시장에 갈려고 합니다. 선인님도 가시겠습니까?"
"시장?"
"예. 돌푸 바잘(Dorpu Bazaar)이라는 시장으로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이 근처에서 가장 큰 시장입니다."
"같이 가자."
이곳의 시장이 어떤곳인지 구경하고 싶었다.
"그럼 내일 해가 뜨기전에 출발할수 있게끔 준비를 해 놓겠습니다."
아직 어두운 길을 따라 돌푸 바잘이라는 시장으로 향하는 일행들이 일렬로 늘어서 걸어 가고 있었다. 라쥬와 라세는 신이 난 표정으로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모두들 등에 커다란 대바구를 진 상태로 천같은 끈으로 고정시켜 이마에 천을 걸쳐 걸어 가고 있었다. 저런식으로 짐을 운반하면 목이 아프지 않은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엔 동충하초를 같이 캐던 멤버중 라쥬 어머니를 대신해 딸인 라세가 합류한 상태다. 시장으로 간다고 모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 모양이지만 허름해 보였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산골 마을에서 옷을 살 돈이 넉넉하진 않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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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푸 바잘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특히 이 맘때쯤은 동충하초를 캔 자금으로 호주머니가 풍족해진 덕으로 시장이 더 붐빈다고 했다. 7일장이지만 주변에 여러 건물들이 들어 서면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나는 추세였다.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장 바닥에는 좌판들이 늘려 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여자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이들도 많았지만 남자들과 별 차이가 없이 허름한 옷들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슈란달이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청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은 따망족이라는둥 여러 종족들을 보며 설명을 해 주었지만 한귀로 흘러 들으며 좌판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각종 과일이나 장작을 팔기도 했고 옷이나 공책, 소금, 옥수수, 감자, 채소등등 많은 물건들이 팔고 있는 좌판들로 제법 구경거리가 쏠쏠했다.
"환전소로 먼저 가시지요."
요근래 들어 큰도시에 있는 은행에서 동충하초 시즌이 끝나는 계절에 서는 장날이면 환전소를 운영한다고 했다. 고액 지폐인 1천 루피로는 잔돈을 받을수 없어 작은 지폐로 환전해 사용해야 한다며 가장 먼저 환전소를 들러기로 했다. 전투 경찰로 보이는 자가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일행은 제각기 돈을 환전했다.
켄도 이곳의 물가를 전혀 몰라 얼마큼의 돈을 환전해야 하는지 몰라 대충 1만 루피를 환전해 놓으면 어느 정도의 물건을 살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좌판에는 가격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파는 사람과 흥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흥정을 하지 않고 부르는대로 사 버리면 바가지를 쓴단다. 슈란달은 이곳에서 잡화점 가게를 운영하는 처남집에 들런다고 했다. 제각기 볼일을 보고 처남이 운영하는 잡화점에 모여 마을로 돌아 가기로 하고 뿔뿔히 흩어졌다.
"선인님은 저하고 같이 가시지요."
슈란달을 따라 잡화점을 들렀다. 슈란달의 처남이라는 자와 대충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곤 본격적으로 시장 구경을 나섰다. 그런 켄을 라쥬와 라세가 쫄쫄 따라 다녔다.
"응? 이곳에도 귤이 있잖아."
작은 크기의 귤이지만 먹어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한겨울이면 자주 까먹던 귤이었다.
"저 귤은 얼마냐?"
"물어 볼께요."
라쥬가 좌판에 귤을 쌓아 놓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격을 물었다.
"한개에 10루피다."
"8루피라면 한개 살께요."
"좋다."
라쥬가 품에서 돈을 꺼내 계산했다. 아버지인 슈란달에게 용돈을 받은것 같았다.
"선인님! 여기요."
"고맙다."
아이에게 사 주지는 못할망정 얻어 먹는 켄이었다. 노란색 귤을 라쥬가 건네주자 까서 입안에 넣었다. 조금 시큼한 맛이었다. 달콤함은 덜했지만 얼마만에 먹어 보는 귤인지 시큼함도 달게 느껴졌다.
"이봐! 모두 얼마냐?"
키가 큰 켄이 나서 귤 좌판상에게 가격을 묻자 조금 놀란듯 하면서도 위축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저, 전부 사신다면...1400루피만 받겠습니다. 200개가 넘는 귤입니다."
"좋다. 몽땅 다 사겠다."
"가, 감사합니다."
가격 흥정도 전혀 하지도 않고 부르는데로 값을 치루어 주고는 라쥬 외삼촌이 운영하는 잡화점으로 배달해 놓으라고 말해 두었다. 라쥬와 라세, 그리고 켄은 귤을 까 먹으며 다시 사장을 돌아 다녔다.
"너희들은 살게 없냐?"
"연필과 공책을 살려고요."
"전 옷이요."
"파는 곳으로 가자."
선물로 사 줄 생각이다. 라쥬를 따라 간곳은 박스안에 공책과 연필이 수북히 담겨져 있는 노점상이었다.
"맘에 드는건 다 사 줄테니까 맘대로 골라라."
켄의 말을 들었는지 노점상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라쥬에게 이것저것을 권했다. 그런 모습을 다른 애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정말 맘대로 골라도 되요?"
"그래."
- 작가의말
오타 지적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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