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청방 장로들(2)
161화.
산수화 앞에서 그림을 바라만 보고 있는 켄을 청방 장로인 등평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탕웨이를 실컷 놀려 주었는데 만약 자신의 산수화가 진품이 아니라면 개망신을 당할것이다. 탕웨이가 어떤 말을 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진품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긴장이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어, 어떤가?"
"900년전의 물건이 맞아."
"아. 고맙네. 정말 고맙네."
덥썩.
등평은 켄의 한손을 잡고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저, 정말 저게 900년전의 물건이 맞다는 말인가?"
"틀림없어."
"어, 어떻게 그걸 알수 있단 말인가?"
"내 눈에는 다 보여."
"......."
탕웨이는 정신줄을 놓았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크하하하하! 진품이 맞다. 앞으로 자넨 골동품을 수집하지 말게. 그런 썩은 눈으로 무슨 골동품을 수집한단 말이냐."
"이익!"
울그락붉그락해진 탕웨이는 부화가 치미는지 씩씩대며 방을 나가 버렸다.
"하아~!"
"왠한숨이냐?"
왕청이 세상이 다 무너지듯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탕웨이님이 저렇게 화를 내면 며칠동안 부하들을 들들 뽂거든요."
앞날이 걱정되어 한숨을 내지은것이다. 장로인 탕웨이님은 한번 토라지면 왠만해선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걱정할건 없어. 술 한병 들고 가서 살살 달래면 되니까."
"등평님도 자제좀 해 주십시요. 밑에 애들만 죽어 납니다."
"이게 다 늙은이들의 소일거리야.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가만히 있어 봐라. 금방 망령이 들테니까. 감추어둔 술을 들고 갈테니까 취선도 함께 가세. 별호에 걸맞게 한잔함세. 왕청, 너도 같이 가자."
"저, 저는..."
술이라는 말에 왕청은 켄을 보고는 말문을 흐렸다. 이번에 또 골아 떨어질것 같아서였다. 술이라면 조직안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센편이지만 취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아마 장로들도 같이 술자리를 하면 질려 버릴것이다. 그런 왕청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평은 자신의 수발을 드는 시종을 불러 어떤 지시를 하고는 탕웨이의 거처로 향했다.
"들어 가겠네."
"혼자 있고 싶다. 들어 오지마."
벌컥.
들어오지 말라는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문을 연 등평은 의자에 앉아 아직도 씩씩거리는 탕웨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술이나 한잔하세. 취선도 같이 왔다네."
"자네들끼리 마셔."
"에이, 왜 그러나. 자네답지 않게. 골동품은 또 구하면 되지 않나. 취선과 함께 가면 더 좋은 물건을 구할수 있을걸세."
탕웨이의 눈이 번쩍였다. 그런 생각을 못한것 같았다.
"자네 나하고 지금 당장 가세."
"어허, 왜 그리 서두르나. 취선도 조금 쉬어야하지 않겠나. 짝짝!"
등평이 손뼉을 마주 쳤다. 그러자 시종이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고와 테이블위에 올려 놓고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아, 내가 아끼는 술이네. 자네가 같이 먹자고 그렇게 난리를 치던 그 술이란 말일세."
"흥."
탕웨이는 등평의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도 나무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술인데 그러나?"
"금존청(金尊淸)일세."
처음 들어 보는 술이었다. 중국에는 워낙 술 종류가 많아 그중에 명주로 소문난 술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금존청은 고관대작들이 주로 마시는 굉장히 비싼 술이라고 했다.
"자아, 한잔씩 마셔 보게. 금존청중에서도 굉장히 오래 묵은 술이네."
쪼르르.
금존청 한병을 순식간에 사라졌다. 네명이 마시다보니 입가심도 못했을정도다.
"쩝, 입만 버렸네."
"자네가 이해하게. 워낙 구하기 어려운 술이어서 이것 밖에 없다네."
몇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장로님! 규중입니다."
"들어와라."
규중이라는 탕웨이의 시종은 한남자를 데리고 왔다. 안으로 들어 온 중년의 남자는 덜덜 떨고 있었다. 골동품 가게 주인으로 탕웨이에게 도자기를 판 장본인이었다.
"네놈이 감히 내게 가짜를 팔아?"
"아, 아닙니다. 진품입니다. 저명한 감정사에게 감정을 받아 확실히 진품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감정 확인서도 드린걸로 아는데요."
"...음."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 취선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골동품 가게 주인놈을 믿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상하이시(上海市) 위원회(委員會) 서기(書記)이신 한정(韓正)님과도 거래를 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가짜를 취급할수 있겠습니까. 한정님 이전의 위정성(兪正聲)님도 단골이었습니다."
위정성이라는 말에 탕웨이와 등평은 조금 놀란듯했다. 위정성은 전대 상하이시 위원회 서기로 지금은 중국 공산당 서열 4위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자와 친분이 있다는 말은 골동품 주인놈을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사실인지 허풍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네 가게로 가 보자. 정말 네가 진품만을 취급하는지 알아 보면 되지 않겠나?"
".....음, 가자."
탕웨이가 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취선이 놈의 가게를 확인하면 저 놈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명이 날것이다. 상하이 번화가에서 자리하고 있는 놈의 가게는 규모가 꽤 컸다. 중국이 점점 발전하면서 30여년 전부터 골동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라 이런 골동품 전문 가게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밝은 실내에는 골동품들이 예상외로 적었다. 이곳으로 오기전까지는 가게안에 골동품을 진열해 두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을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저희 가게는 최고의 진품만을 취급합니다. 그래서 다른 가게와는 달리 골동품들이 적습니다."
주인장은 가게 자랑을 했다. 다른 가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어필하고 있었다.
- 실라이온! 건물에 숨겨놓은 물건이 있는지 살펴봐 줘.
물건이 너무 적었다. 모두 진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최고급 진품이라면 진열해 놓을 사이도 없이 수집가에게 팔려 나갔을것이다.
- 건물 지하에 저런 물건들이 많이 있어요. 저기에 진열되어 있는 그릇이나 접시와 똑 같은 것이 몇개 있어요.
- 알았다. 들어 가라.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온을 되돌려 보내고 이번엔 대지와 불의 상급 정령을 불렀다.
- 노에스! 샐라임! 실라이온이 말한 그릇과 접시를 살펴 봐줘.
- 맡겨 주세요.
똑 같은 물건이 있다는 것은 수상했다. 같은 모양의 같은 문양이 그려진 골동품도 물론 있을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물건은 대량으로 찍어 낼때 만들지 옛날의 도공들이 문양까지 똑같은 물건은 잘 만들지 않을것이다.
"자아, 얼마든지 감정해 보시죠."
진열되어 있는 물건이 모두 진품이라고 자신이 있는지 당당하게 얼마든지 살펴 보라고 했다.
"감정해 보게."
"몇년전의 물건인지 각물건마다 써 놓도록 해."
정령에게 부탁하면 몇년전의 물건인지 순식간에 알수 있었다. 그럴때에 노에스와 샐라임이 돌아왔다.
- 이 세계의 가짜는 신기하게 만드네요.
- 가짜라고?
정령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노에스가 가짜라면 가짜가 확실했다.
- 예. 저기 진열되어 있는 술병같은 도자기는 600년전의 물건인데 지하에 있는 똑 같은 것은 받침대 부분이 600년전의 것이고 윗부분은 200년전의 것을 서로 접합시켜 칠을 해 다시 구운거에요. 저쪽에 있는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큰접시도 300년전의 접시에 다시 칠을 해 구운것이고요. 어떤것은 그릇이나 도자기는 옛날 것인데 아래에 새겨 놓은 글씨는 몇십년이나 몇년전의 것으로 지하에 있는 물건은 거의 다가 그런식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 그럼 저 탕웨이라는 노인의 물건도 그런식으로 만든거냐?
- 아니요. 그건 위조된 흔적이 없었어요.
- 고맙다.
노에스의 설명을 들은 켄은 황당할 정도였다. 짝퉁 천국이라는 중국이라지만 그런식으로 위조를 할줄 몰랐다. 잔머리 굴리는데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는 중국이었다. 가게 주인이 각각의 물건마다 몇년전의 것인지 종이게 적어 골동품 앞에 놓아 두었다. 노에스가 알아 본대로 모두 큰차이가 없었다. 진열되어 있는 것은 유명한 사람이 만든것인지 가치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진품이었다.
"모두 진품이다."
"예엣? 벌써 다 살펴 보셨습니까?"
이상한 사람이었다. 청방 소속의 원로들이 데려 온 감정사라는 자는 원로들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툭툭 해대는가 한편 물건도 자세히 살펴 보지도 않고 진품이라고 감정했다. 저 젊은 사람이 감정사인지 헷갈릴정도였다. 감정사가 저런식으로 감정을 할리가 없었다. 골동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 같았다.
"그런데 왜 내게 판 물건은 휘종의 물건이라고 했나?"
"그, 그건 제 불찰입니다. 저도 헷갈리는 유명한 물건은 전문 감정사를 초빙해 감정을 합니다. 그 감정사를 믿은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여기있는 진품중에 마음에 드시는 물건을 한개 드리겠습니다."
"....흠."
탕웨이는 고민하는듯했다.
"모두 진품이란 말이지?"
켄에게 다시 확인을 하는 탕웨이였다.
"내 눈을 믿어. 모두 진품이다. 하지만..."
"하지만?"
켄이 뜸을 들이자 모두의 눈길이 쏠렸다.
"이곳에 있는 물건은 모두 진품이지만 지하에 있는 물건은 위조품이다."
"저, 정말인가?"
"틀림없어."
이번엔 모두의 눈길이 가게 주인에게로 향했다. 설명을 하라는 뜻이다.
"여긴 지하는 없습니다."
"없다고? 있으면 어쩔래?"
"그, 그건...죄송합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지하 공간은 비밀 장소입니다. 장로님들이 오해를 할까봐 거짓말을 한것입니다. 지하에 있는 위조품들은 제 안목을 기르는 훈련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입니다. 이곳을 보다시피 위조품은 단한개도 진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요."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는 가게 주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일단 지하로 가 보세. 안내하게."
가게 안쪽으로 주인을 따라 들어간 일행은 주인이 책장을 옆으로 밀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나자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 비밀방이란 말이지."
지하에는 거대한 금고와 각종 골동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겉모습만으로는 진품인지 위조품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게 위조품인가?"
"대부분 가짜다."
"음, 진짜같군."
도자기 한개를 손에 든 탕웨이는 믿을수 없는 얼굴이었다.
"응? 저건 위에 진열해 놓은것과 똑 같군."
"저것도 똑 같다. 저기! 저기! 저것도 똑 같고."
"어떻게 된거냐?"
등평과 탕웨이가 어리둥절했다. 가게안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과 똑 같은 물건이 너무 많았다.
"모두 안목을 단련시키는 훈련용입니다."
주인이 말하는 훈련용치고는 너무 많았다. 또한 똑 같은 물건이다.
"솔직히 말해라."
켄은 이미 주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세하게 눈동자가 계속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눈동자다. 무언가 불안한것이다.
"솔직히 털어 놓지 않으면 고문을 하겠다."
"고, 고문이라니요?"
"잘 봐라."
지하 진열장에 있는 위조 항아리 한개를 향해 손가락을 내리 긋는 시늉을 했다.
서걱.
무언가 잘리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는데 항아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켄이 입을 열었다.
"왕청! 저 항아리를 만져봐."
왕청이 항아리를 손에 들려고 하자 항아리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수직으로 날카롭게 잘려 완전히 반으로 쪼개진 상태로 옆으로 쓰러졌다.
"헉! 저, 저럴수가!"
"...음."
"네놈이 만약 바른대로 실토하지 않으면 손가락부터 저렇게 해 주겠다."
덜덜덜.
너무 놀란 가게 주인은 벌벌 떨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식으로 도자기를 쪼갤수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가만히 선채로 골동품을 감정하는가 한편 지하에 숨은 공간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자다. 그런 자의 손가락이 칼보다 날카로웠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내리 그으면 저렇게 잘릴수 있을까. 아마 무리일것이다. 저런 자가 협박을 하고 있었다. 청방 소속의 장로들보다 두려운 자였다.
"그, 그게...이 물건들은..."
가게 주인의 설명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권력자나 목에 힘 좀 주고 다는다는 사람들에겐 진품을 판매하고 졸부들이나 골동품에 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겐 윗층의 진품을 구경시켜 주며 나중에 포장할때 살짝 바꾸거나 아니면 다음날 다시 찾아 왔을때 이미 위조품으로 바꿔치기를 해 놓은 것을 판매한다고 했다. 부자가 아닌 이상 골동품을 구경하고 살까말까 망설이는게 인간의 심리다. 그런 자의 심리를 파악해 다음날부터는 고객이 관심을 보였던 물건을 바꿔치기 해 놓거나 은행에 돈을 출금하러 간 사이에 바꾸어 놓기도 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위조품을 판매한것이다.
"자, 장로님에게는 진품만을 판매했습니다. 믿어 주십시요."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조직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형적인 협박을 했다. 이미 건수가 잡힌 가게 주인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직의 말을 들을수 밖에 없다. 평소에 상납금을 얼마나 내는지는 모르지만 가게 주인은 고생 좀 할것이다.
"저 금고를 열어 봐라."
"그, 금고요?"
"열기 싫어?"
"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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