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니루이스란 대륙(1)
308화.
이곳은 니루이스란 대륙이 틀림없었다. 예전과 똑 같은 두개의 달이 어느날 밤하늘에 떠 올랐기 때문이다. 달의 떠오르는 방향으로 볼때 동쪽 끝이 니루이스란 왕국이고 서쪽이 마케아 마법 왕국이다.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탓으로 어느쪽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계곡의 위치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에 마케아 마법 왕국 근처라면 계곡을 따라 내려 간다면 마케아 마법 왕국으로 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원 이동한 좌표가 틀렸을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산이 사라지고 사막이 되어 버렸지만 좌표가 맞다면 이곳은 예전에 죽음의 산맥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그런 죽음의 산맥이 맞다면 동쪽엔 브리보아 왕국, 서쪽엔 코스모 왕국이 위치하고 있다. 결정했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브리보아 왕국으로 가기로 했다. 동쪽으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먼곳으로 이동해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갈들을 잡아 모아 두었다. 매일 전갈만 먹은 탓으로 살이 쏙 빠진 상태다.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달빛이 있는 밤에 이동하기로 하고 준비를 했다. 물은 셔츠를 적셔 놓은것이 전부였다. 출발하기 전에 물을 잔뜩 마셔 놓았다.
터벅터벅.
긴나무 막대기로 땅을 짚으며 달빛을 받으며 밤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몬스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사막에는 어떤 몬스터가 사는지도 모른다. 식량으로는 말려둔 전갈을 먹고 목이 마르면 전갈을 잡아 날것으로 먹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런 일이 일주일이나 계속되자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마나 연공은 매일 두번씩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몸은 마를대로 마른 상태다. 전갈만으로는 수분을 보충할수 없었다. 임시 방편에 불과했다. 빨리 물을 찾아야 했다. 길이 두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던 계곡물이 흐르던 메마른 계곡과 절벽이 갈라져 좁은 협곡이 드러나 있는 곳이다. 마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수 있을 정도로 당연히 좁은 협곡 사이의 길은 막혀 있을것이라고 판단했다. 가던 길을 직진하기로 했다. 여전히 어디에서도 물은 찾을수 없었다. 이러다가 말라 죽을것이다.
건장한 체격이었던 몸은 이미 뼈가 앙상한 살가죽만 남은 상태였다. 밤에는 이제 달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한밤중에 더이상 이동할수도 없었다. 어쩔수없이 날이 희미하게 밝기 시작하는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고 있었지만 체력은 물론 물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걸음거리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정신도 가물거리는게 더이상은 무리였다. 그늘진 절벽 아래에 앉아 제발 굳어진 마나가 풀리길 기원하며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
빌링턴은 상인다. 서대륙의 토르치 왕국에서 동대륙의 로드 왕국으로 죽음의 사막을 건너 상행을 하는 상단주다. 토르치 왕국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옷감을 가지고 로드 왕국으로 가져가 팔고 그곳에서 메플 시럽과 치즈라는걸 가져와 토르치 왕국에 판매하는 무역상이다. 일년에 한번씩 상단 마차 30대를 끌고 이동하는 대규모 상단으로 수행하는 상인들과 짐꾼, 용병들을 모두 합쳐 200명이나 된다. 원래는 이번 상행부터 아들에게 물려주고 완전히 은퇴를 할 생각이었지만 꿈자리가 심상치 않아 늙은 몸을 이끌고 마지막 상행에 나선것이다.
"아버님! 절벽쪽에 한사람이 앉아 있는게 이상하다고 합니다."
"이상하다고? 죽은거냐?"
"아직 숨은 붙어 있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의 신발이나 복장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도 없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빌링턴의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꿈이 현실로 다가 온것이다.
"당장 포션을 먹이고 그 자를 살려라."
"예엣? 그 귀한 포션을요?"
"어허! 사막의 율법을 잊은게냐?"
"아, 알겠습니다."
사막의 율법은 사막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으며 만난 사람을 환영해 주며 서로 물을 나눠 마신다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돕는 것이다. 이미 죽었다면 장례를 치루어 주기도 한다. 그런 율법을 어기면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져 용병들이 호위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한다. 대부분 사막에서 조난 당하는 자들은 용병들이다.
사막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약초를 채집하러 오거나 몬스터를 잡아 한몫 잡기위해 사막에 대한 별다른 지식도 없이 들어와 조난당하는 용병들이 많은 실정이다. 그런 조난당한 용병들을 구해 주지 않으면 다른 용병들에게 상단의 평판이 바닥을 쳐 어느 누구도 용병으로 호위를 할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율법은 지금은 용병이 아니더라도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돕고 돕는 것이다.
타닥타닥.
무언가 튕기는 듯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언제 기절한것인지 기억에 없었다. 너무 목이 말랐고 체력도 한계에 도달해 마지막으로 마나 연공으로 굳어진 마나를 풀려고 시도했었다. 그때부터 기억이 없는 것이다. 밤이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근처에서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했다.
"여긴 어디지? 윽!"
탈진, 탈수 증세로 인해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대로 누운채 고개만 돌려 주변을 살펴 보았다. 군데군데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근처에는 사람들이 누워 잠들어 있었으며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복장으로 볼때 용병처럼 보였다.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어두운 탓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다. 용병들에게 구조된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린후 할일도 없어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굳어진 마나를 풀어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거친 용병들이 과연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신을 데리고 갈지 의문이다. 골드라고 있다면 의뢰를 하겠지만 수중엔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물 한모금을 먹여 주고 내팽겨칠게 뻔했다. 그런 팽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나를 풀어야 한다.
"후~웁. 후~웁!"
조용히 마나 연공을 시작하자 몸속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포션을 마신 기억이 없는데도 포션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용병들이 포션을 먹여 준것으로 생각되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몇배의 보상을 해준다고 다짐했다. 용병들에겐 포션은 목숨줄이나 마찮가지다. 너무 비싼 나머지 포션을 구입할수 없는 용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귀한 포션을 자신에게 사용한것이다. 포션의 기운이 몸속에 감돌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포션의 마나를 이용해 굳어진 마나를 풀어야 했다. 마나 연공으로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는 그대로 흩어지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포션에 담겨져 있는 마나는 어떨지 급히 운용을 해 봤다. 밤새도록 노력한 끝에 겨우 성공했다. 하지만 깨알정도로 금이 갔을뿐 더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실망스럽진 않았다. 한번 금이 간 이상 마나 연공으로 점점 갈라진 금을 넓혀 굳어진 마나를 풀수 있다는 희망에 절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깨어 났나?"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얼마만에 들어 보는 대륙 공용어인지 모른다. 눈을 슬며시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했다.
"윽!"
"그냥 누워있게. 탈진된 상태로 몸을 움직일수 없을걸세."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머리에는 터번을 쓰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었다.
"자네는 왜 이런 사막에 홀로 있는건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 상실증으로 위장했다. 마땅한 변명이 없었다. 차원 이동했다고는 말해 줄수 없었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믿는다고 해도 귀족에게 상납품으로 보내 질지도 모른다.
"음...탈진으로 그렇게 된것 같군. 사막에선 종종 있는 일이라네. 머리속까지 타 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기억이 날아가 버리는것이지. 근데 이름은 기억나나?"
"모릅니다."
"...음. 그럼 임시로 이름을 지어야겠군. '라크'라는 이름은 어떤가? 사막의 생존자라는 뜻이라네."
"라크! 라크! 감사합니다."
이름같은건 아무것이나 상관없었다. 마나만 풀면 자신의 이름을 찾을수 있는 일이다. 일부러 라크라는 이름을 몇번이나 부르며 기억하는 시늉을 했다.
"라크! 난 빌링턴이라고 하네. 빌링턴 상단의 상단주라네. 우리들은 지금 토르치 왕국으로 돌아 가는 길이라네. 자네를 버리지는 않을테니 걱정말게."
기억을 잃었다는 이 자가 꿈속의 귀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상행을 하기 일주일전 기이한 꿈을 꾸었다. 황금으로 빛나는 전설의 피닉스가 상공을 빙글빙글 선회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으로 날아 들어 온것이다. 해몽은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 몸을 이끌고 상행에 나선것이다.
"일단 따뜻한 수프로 몸을 녹이게나."
상단주가 무슨 지시를 하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나무 접시를 들고 와 수프를 떠 먹여 주었다. 얼마만에 먹어 보는 제대로 된 식사인지 모른다. 꿀맛이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중에 최고였다. 단한접시에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얻어 먹는 처지에 더 달라고는 차마 입을 뗄수 없었다.
덜컥덜컥.
짐수레에 누워 있는 탓으로 수레가 덜컥거릴때마다 등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이런식이라면 마나 연공도 할수없다. 깨알같은 금을 더 넓히긴 위해선 당장이라도 마나 연공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다가 다시 갈라진 금이 굳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덜컥거리는 마차에서 고생한 끝에 저녁이 되자 겨우 마차가 멈추었다. 야영 준비와 저녁 준비로 부산을 떨고 있는 용병들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을때 아침에 수프를 가져다 준 남자가 자신의 몸을 들고 옮겨 주었다.
아직 몸을 움직일수 없는 상태다. 저녁도 수프였다. 아침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빌링턴 상단주는 아침에 잠깐 말을 건후로는 더이상 찾아 오지 않았다. 수프를 가져다 주는 남자외에는 누구도 말도 걸지 않고 방치해둔 상태다. 오히려 그게 고마웠다. 마나 연공을 마음대로 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새도록 마나 연공을 해도 현상 유지가 고작이었다. 그것만해도 감지덕지할 정도다. 깨알정도의 금이 절반이나 굳어 버려 그것을 밤새도록 넓히는 작업이었다.
빨리 체력을 회복해 걸을수 있다면 걸어 가면서 마나 연공으로 현상 유지를 하고 밤에는 누운채로 연공해 굳은 마나를 조끔씩 풀면 될것같았다. 상단주에게 포션을 더 달라고는 차마 말할수 없었다.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과 멀건 수프만으로는 체력 회복이 더뎠다. 해골 바가지처럼 홀쭉해진 상태로 근육이 전혀 없는 상태다. 용케 이런 상태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침부터 이동을 할때엔 짐수레에 누워 손발을 움직이며 누워서 할수 있는 운동을 했다. 발끝을 앞으로 쭉 펴고 힘을 준 상태로 5초정도 정지하면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당겨진다. 이런식으로 반복하면 몇킬로 거리를 걷는것과 마찮가지 효과를 볼수있다.
"응?"
상단 행렬은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역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단이 좁은 협곡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 협곡은 막혀 있을것이라고 판단해 가지 않은 곳이다.
"후우! 이제 거의 다 왔다."
"협곡을 지나고 3일후면 도착한다."
용병들이 지껄이는 대화를 듣고 종착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걸 알수 있었다. 의뢰가 끝나면 누구 엉덩이를 때린다든지 누가 가슴이 크고 찰진다는등 으레 용병들이 그렇듯이 음담패설을 늘어 놓고 있었다.
"이곳이 먼옛날에는 죽음의 산맥이었다는게 믿어지냐?"
"그 옛날에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는걸 감사해라. 네 실력으로는 오크 왕국의 오크들에게 잡아 먹혀 버렸을꺼다."
"흥! 네놈도 마찮가지잖아."
눈을 감고 있던 켄은 깜짝 놀랐다. 이곳이 죽음의 산맥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먼 옛날인지는 모르지만 죽음의 산맥이 죽음의 사막으로 변한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확인이 되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용병분들, 한가지 물어 봅시다. 죽음의 산맥은 뭐고 오크 왕국은 뭔지 설명좀 해 주시죠."
"응? 산송장이 말도 하네?"
"킥킥킥...기억을 잃은채 용케 이런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 남은 자야. 사막의 율법이 아니었다면 저런 비쩍 마른 송장은 구하지도 않았겠지. 참 운이 좋은 놈이야. 설명해 줘라. 저 운을 우리들에게 좀 나눠 달라고 해."
비꼬는 것인지 생명력이 질기다고 감탄하는 것인지 알수 없었다.
"나중에 우리들을 만나면 이야기 값으로 술한잔 사야 돼. 지금부터 500여년전의 일이야. 이곳은 수목이 우거진 숲으로 몬스터들이 들끓어 죽음의 산맥으로 불리우고 있었다고 해. 그런 죽음의 산맥을 장악하고 있던 그레이트 오크들이 서대륙을 침범해 한개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오크 왕국을 건설했어. 오크들은 다른 왕국으로는 침범하지 않은채 웅크리고 있었지만 60년정도 후에 그런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서대륙을 일통하고 죽음의 산맥을 넘어 동대륙으로 향하고 있을때 대마도사이신 헤르난데스 공작님이 마케아 마법 왕국의 살아 남은 마법사들과 함께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 메테오라는 마법을 펼쳐 죽음의 산맥위에 운석이란걸 떨어 뜨린거야. 수많은 운석들이 비 오듯 산맥위에 떨어진 결과 산맥의 지형이 바뀌고 산맥에 있던 수많은 오크들이 죽어 버렸지만 그 여파로 인해 서대륙은 물론 동대륙도 큰피해를 입었어. 보다시피 이렇게 죽음의 사막으로 변해 버린거고."
키가 큰 덩치의 용병이 말한 내용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500년이나 지났다고?'
- 작가의말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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