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암살
315화.
몇번이나 권유를 하고도 넘어 오지 않자 경비 대장은 단념하는 눈치였지만 언제든지 찾아 오라고 했다. 경비병들을 따라 외성안으로 들어 갔다. 밤새도록 비를 맞은 덕에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여관방을 한개 잡고는 목욕물을 부탁했다. 목욕물 값을 치루어야 했지만 지금은 부자다.
어제 마지막으로 죽인 놈의 품속에는 무려 5골드나 들어 있었다. 일반 평민들이 거의 2년이나 생활할수 있는 거금이다. 아공간에는 넘치도록 많은 금화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런 푼돈에도 지금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었다.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따듯한 식사를 하자 노른함이 느껴져 침대에 드러 누워 잠을 청했다.
똑똑.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노크 소리에 잠이 깨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푹 잔것이다.
"송장 해결사! 로지다."
"들어와."
문을 열어 주자 로지가 덥썩 팔을 잡으며 어디 다친곳은 없는지 호들갑을 떨었다.
"얌마! 떨어져. 너! 그런 취향이냐?"
"킥킥킥킥."
"야아! 제대로 살아 있네. 넌 참 대단한 놈이야. 어떻게 광란의 암살자라고 소문난 제이콤을 죽일수 있었냐?"
"그게 누군데?"
로지는 어제밤에 자신이 성문 아래서 죽인 자가 누군지 말해 주었다. 이곳 토르치 왕국에 소문이 자자한 놈으로 소드 익스퍼트 초급이라고 했다. 그놈에게는 현상금이 10골드나 걸려 있다고 했다.
"뭐? 10골드? 경비 대장은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때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을꺼야. 당장 경비대로 가봐."
로지와 리신을 데리고 경비대로 가자 경비 대장인 젤톤이 행정관을 불러 10골드를 건네 주었다.
"축하한다. 한잔 사."
"알았어. 오늘밤은 먹고 죽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고 잠이 깬 켄은 어제밤에 로지와 리신에에 의뢰를 한 기억이 떠 올랐다. 앞으로도 계속 습격이 있을 것이다. 광란의 암살자가 실패한 이상 전문적으로 암살업에 종사하는 어쌔신이나 광란의 암살자라는 놈보다 더 상위의 놈을 보내 올것으로 예상되었다. 한달에 10실버씩 계산해 석달동안 호위하는 계약이다. 거처도 완전히 여관으로 옮겼다. 더이상 움막을 짓고 생활할 필요도 없었다.
자금은 풍부했다. 여관 밖으로 나가면 모두의 주목을 받기 일쑤였다. 송장 해결사라면 이제 소렌드 남작령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결코 달갑지 않는 별명이었지만 일일이 뭐라고 할수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이 되어 여관안에 틀어 박혀 마나 연공만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켄에게 로지와 리신이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호위 계약탓으로 그들도 여관방에 죽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켄의 방 양옆방에 한명씩 방을 잡아 주어 대기하고 있는 나날이 며칠이나 이어지자 더이상 의뢰를 못한다고 투덜대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한달에 1골드씩 지불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좋아하는 단순한 녀석들이었다.
"라크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아슈린이 찾아 온것은 그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곳으로 오기전에 켄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물건부터 꺼내 봐."
아슈린이 꺼낸 물건은 포션 5개와 10골드였다. 상급 2개와 중급 3개로 10골드는 수고비로 아슈린에게 모두 건네 주었다.
"라크님도 돈이 필요하실텐데요?"
"지금은 필요없어. 날 습격한 놈들 물건은 내것이라고 하더라고."
"아!"
바로 알아 차린 아슈린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골드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이 마법등이 필요하면 가져 가라. 선물이다."
"감사해요."
아슈린이 아티팩트 반지를 어떻게 팔았는지 재잘되었지만 한귀로 흘러 들으며 빨리 돌아 가길 기다렸다. 포션을 마시고 당장에라도 굳은 마나를 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시간을 재잘거리고 아슈린이 돌아 가자 바닥에 주저 앉아 중급 포션 3병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마나를 녹이기 시작했다. 콩알만큼 녹아 있던 마나는 중급 포션의 힘을 빌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마나 연공을 하며 녹인 마나는 밤톨만한 정도였다. 더이상 진전이 없자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출출한 배를 채우고 있을때 로지와 리신이 급히 내려와 호위를 무시한다는등 투덜대며 잔소리만 잔뜩 늘어 놓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로지와 리신에게 스스로 나올때까지 누구도 들여 보내지 말라고 말해 놓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상급 포션 2병을 들이켰다. 밤통만한 마나와 상급 포션 두병에 들어 있는 마나를 합쳐 샐라임을 소환했다. 샐라임을 소환하더라도 몇분 버티지는 못할것이다.
- 샐라임!
- 호호호, 이제야 불러 주시네요.
- 지금은 급해. 빨리 굳은 마나를 녹여줘.
- 알겠어요.
샐라임의 힘을 빌어 굳은 마나가 녹기 시작했다. 점점 녹고 있는 마나에 심취해 있을때 샐라임이 더이상은 무리라고 하며 소환 해제되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이제 1서클 마법은 사용할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이제는 마나 연공으로도 굳은 마나가 녹는 속도는 점점 빨라 질것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로지와 리신은 방문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툭툭.
벌떡.
채재쨍.
"나야! 집어 넣어."
둘의 다리를 툭툭 쳐 깨우자 갑자기 벌떡 일어난 둘이 무기를 빼어 들고는 그대로 벨 기세였다.
"말로 깨워. 그러다가 정말 송장이 될꺼야."
"내려 가서 뭐 좀 먹자."
수프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시원한 맥주도 들이켰다.
"이제 수련은 끝난거야?"
"수련?"
"수련이 아니면 하루종일 뭘 하고 있었는데?"
"아직 멀었다."
멀었다는 말에 둘이 한숨을 내지었다. 또 지루한 모양이었다. 1골드를 준다는 말에 그렇게 좋아하던 녀석들이 또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용병들이 한곳에만 틀어박혀 있는게 지루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그럼 전에 살던 언덕으로 가자."
먹을것을 한가득 손에 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무너진 움막에 도착해 로지와 리신에게 서로 몸도 풀겸 대련을 해 보라고 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직 한번도 둘이 대련같은건 해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럼 너희들은 어떤 수련을 하는데?"
"제각기 무기를 휘두르는게 고작이야."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적이 없는 용병들은 눈대중으로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것을 흉내내며 무작정 무기를 휘두른다고 했다. 답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기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마나 연공법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앉아. 그냥 술이나 마시자."
가져온 술이 동이 나고 음식도 사라지자 언덕을 내려가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에는 아슈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예."
아슈린은 빌링턴 상단을 완전히 나왔다고 했다. 켄이 어떤식으로 상단에서 쫒겨 났는지 전모를 알아 차리고 화가 나 상단을 그만 두었다며 이제 갈곳이 없다며 꼽사리를 낄려고 했다. 그렇다고 나가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아슈린에게 방 한개를 잡아 주었다. 아슈린은 자신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어 나온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아슈린에게는 2서클 고리를 만들만큼 마나를 모으면 서클 고리를 만드는 일을 도와 준다는 약속이었다.
대신 자신의 방을 함부로 찾아 오지 말라고 했다. 로지에게 부탁해 부르면 찾아 오라고 말해 두었다. 왜 부르는 것인지 파악한 아슈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요즈음은 마나를 녹이는 재미가 붙었다. 예전에는 현상 유지가 겨우였지만 지금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었다. 그러는 어느날 밤 마나 연공을 하고 있을때 불길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마법사는 예감이 뛰어나다. 특히 고서클 마법사일수록 그런 예감은 절대로 무시할수 없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로지와 리신에게 방안으로 들어 오라고 했다. 아슈린은 굳이 부르지 않았다.
"쉿! 밤 손님이 찾아 올것 같다."
"......"
무슨 일인지 물을려고 하는 로지의 입을 막고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지는 창문쪽으로 리신은 방문옆으로 이동해 경계를 했다. 얼추 한시간정도 시간이 흘렀을때 스스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뱀이 기어 가는듯 작은 소리였다. 경계를 하고 있지 않다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라고 무시했을것이다. 잠시후 창문 아래쪽으로 작은 대롱이 한개 들어 오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저 연기가 독연인지 수면연인지는 모른다.
꽝.
그때 로지가 창문을 후려쳐 열어 제쳤다.
퍽!
2층 창문에 매달려 대롱을 입에 물고 연기를 불어 넣던 검은 복면을 한 놈의 이마에 직통으로 창문틀이 부딪힌 충격에 놈은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급히 로지가 창문 아래를 살펴 보자 절뚝거리며 놈은 도주하고 있었다. 그런 놈을 급히 쫒아 갈려는 로지를 제지했다. 놈은 이미 도주로를 확보해 두었을것이다. 전신이 검은색 복장으로 볼때 어쌔신이라고 짐작되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암살 시도가 또다시 재개된것이다.
"어쌔신같다."
"후우, 너희들 앞으로 경계를 철저히 서야겠다."
"걱정마. 근데 어떻게 안거냐?"
어쌔신이 숨어 있다는걸 어떻게 안것이냐고 로지가 물어 왔다.
"내 눈에는 다 보여."
"......"
"어째든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날부터 로지와 리신은 평소의 나태한 행동과는 달리 철저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달 이상이나 암살 시도가 없었다. 이제 3서클정도의 마법을 사용할수 있을만큼 마나를 녹인 상태다. 이 정도면 상급 이상의 어쌔신이 아닌 이상 충분히 처리할수 있다.
"요즘 너희들 또 느슨해진것 같다."
"지루해서 그래. 어쌔신 새끼, 올라면 후딱 올것인지 뭘 하고 있는지...이번에는 작살내 버릴께."
"로지, 너나 작살나지 않게 조심해."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그날 밤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꼭 무슨 일이 발생할것같은 느낌이었다. 로지와 리신, 그리고 아슈린까지 불렀다. 어쌔신 놈이 이번엔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암살에 성공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왔을것이다.
스스스스.
이번에도 창문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즉시 마나 서치를 펼쳐 놈이 익스퍼트인지 살펴 보았다. 익스퍼트가 될만큼의 마나는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특이한 마나가 감지되었다. 마나석이 감지된것이다. 즉시 알아 챘다. 놈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아티팩트를 구하기 위해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창문까지 접근한 놈이 조용히 읊조렸다.
"슬립!"
털썩.
거의 동시에 세명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지와 리신, 아슈린이 슬립 마법에 당해 잠이 든것이다. 2서클정도의 마나가 담겨 있는 슬립 아티팩트였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놈이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목표물을 찾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 놈이 막 한발을 떼었을때 갑자기 놈의 움직임이 굳은듯이 정지해 버렸다. 홀드 마법으로 놈을 묶어 버린것이다. 놈은 어쌔신이 틀림없을것이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쉽사리 입을 열진 않을것이 분명했다.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놈의 목에 박아 주고 놈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어냈다. 역시 아티팩트 반지였다. 품속을 뒤져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웨이크 업!"
잠이 든 3명을 깨우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들이 바닥에 죽어 있는 복면인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허억!"
"헉! 어떻게 죽인거냐?"
"운이 좋았다. 너희들이 쓰러지고 놈이 창문을 열고 들어 올때 단검을 던져 버렸어. 그 결과가 저거다."
"말도 않돼."
직접 보지못한 이상 믿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아슈린만이 마법으로 어떻게 한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쓰러진거냐?"
"이거다. 슬립 마법이 내장된 아티팩트를 사용한거야."
아티팩트 반지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로지와 리신이 침을 흘리며 가지고 싶어 했지만 줄수는 없는 일이다.
"아슈린! 이 반지를 팔아 포션을 구해와."
"알겠어요."
"누가 아슈린하고 같이 갈래?"
"내가 갈께."
로지가 가겠다고 나섰다. 여비로 3골드를 건네 주며 아침 일찍 출발하라고 했다. 암살이 실패한 이상 한동안 암살 시도는 없을것이다. 다음날 아침 암살법을 잡았다는 말에 경비 대장이 찾아와 놀랍다며 다시 경비대에 들어 오라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그런 일이 있은후 3일뒤 남작성에서 기사 한명이 찾아와 소렌드 남작이 호출했다며 가자고 했다. 반강제나 마찮가지였다. 여기서 거부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내성안으로 들어 가면서 기사가 남작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 주었지만 한귀로 흘러 들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작님! 테라스입니다. 라크를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 오게."
기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소렌드 남작 집무실로 보였다. 멀뚱멀뚱 남작을 바라 보고만 있자 자신을 데리고 온 테라스라는 기사가 인상을 구기며 호통을 쳤다.
"꿇어라!"
이곳으로 오면서 남작님을 만나면 곧바로 바닥에 양무릎을 대고 꿇으며 머리를 조아리라고 했다. 귀족앞에서의 평민들의 일반적인 행동이지만 이제 마법도 사용할수 있는 만큼 귀족앞에서 마법사가 무릎을 꿇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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