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재래 시장 바잘(2)
157화.
켄의 말이 끝나자 라쥬와 라세가 옥신각신하며 이게 좋다느니 저게 좋다느니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냥 다 사라."
더이상 두고 볼수 없었던 켄은 두종류 모두 다 사라고 했다. 제각기 두권씩 손에 든 공책을 보고는 너무 적다고 생각해 박스를 통채로 사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모습에 지켜 보고 있던 다른 애들의 눈이 커지며 놀라워하는 한편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 애들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서, 선인님! 이걸 다 가져 갈려면 너무 무겁다고 아버지한테 혼날텐데요?"
"걱정마라. 아무리 무거워도 옮길 방법이 있어."
라세가 걱정했지만 라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선인님이 어떤식으로 물건을 옮기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물건이 깜쪽같이 사라져 다시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해 본것이다.
"주인장! 이것하고 저것 두 박스까지 포함하고 저 연필도 한박스를 계산해."
"어이쿠, 감사합니다."
한꺼번에 공책과 연필을 이렇게 많이 구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쥬! 지켜 보는 애들에게 공책과 연필을 한개씩 나눠줘라."
"예옛? 아, 알겠습니다. 야! 모두 모여. 선인님이 주시는 선물이야."
"......"
라쥬의 말을 들은 애들이 머뭇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지 망설이고 있는것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사서 들고 갈수가 없어 이걸 다 버릴수 밖에 없어. 그래서 버리기엔 아까워 나누어 주는거야. 빨리 와라. 늦게 오면 받고 싶어도 못 받아."
켄이 설명을 해 주자 슬그머니 한두명씩 다가 왔다.
"자, 받아."
그런 애들에게 라쥬가 노트 한권과 연필 한개씩을 나누어 주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줄을 서! 줄! 줄 서지 않으면 안준다~."
신이 난듯한 라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애들을 관리했다. 시장 바닥에 소문이 돈것인지 노트를 받아 갈려는 애들이 점점 불어 나고 있었다. 이러다간 받지 못하는 애들도 있을 것이다.
"주인장! 공책하고 연필 몽땅 다 팔아."
"헉! 저, 정말이십니까?"
"얼마야?"
놀란 노점상이 제정신이 아는듯했다. 주인장이 말하는 대로 값을 치룬 켄은 몰려 오는 애들에게 노트와 연필이 다 없어질때까지 나누어 주었다. 시장에 선인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쫘악 퍼졌다.라쥬가 선인님이 주는 것이라며 일일히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도 소문을 들었는지 몰려와 누가 선인인지 확인할려는 사람들로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했다. 노트와 연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많은 애들이 받아 갔지만 나중에 소문을 듣고 온 애들은 받지 못하는 애들도 많았다.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시장 구경을 나서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선인이래?"
"애들에게 공책을 공짜로 나누어 주었대."
"정말 선인일까?"
소곤거리는 어른들과 뒤를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로 인해 제대로 시장 구경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옷을 사고 싶어 하는 라세를 따라 옷을 파는 노점상으로 향했다. 바닥에 알록달록한 옷들이 놓여져 있는 노점상의 옷들 위에 빨래줄에 걸려 있는 팬티들이 보였다.
"저건 빨아서 말려 놓은것을 파는거냐?"
"푸웃! 아니요. 먼곳에서 저런것을 파는게 여기라고 잘 보이라고 저렇게 해 놓은거에요."
얼굴을 붉히며 설명해 주는 라세였다.
"네가 사고 싶은걸 다 사라. 계산은 내가 할테니까."
"정말요?"
라세가 동그렇게 눈을 뜨고는 좋아했다.
"그래."
"그럼 머리핀이나 장식같은것도 사도 되요?"
"사고 싶은건 다 사라."
라쥬와 다른 노점상을 구경하러 갔다. 이곳에는 나중에 들러 라세가 고른 물건값을 치룰 생각이다. 속옷이 늘려 있는 곳에 라쥬와 켄이 서 있으면 라세가 부끄러워 맘대로 고르지 못할것이라고 판단해 자리를 비켜 준것이다.
"응? 장작도 파네."
니루이스란 대륙에서도 도시에선 저렇게 장작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높은 산이 아닌 이상 주변에 나무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무를 팔고 있는게 신기했다.
"저건 관솔이란거에요. 소나무 송진이 몰려 있는 것으로 술쏘시개나 밤에 불을 밝히는데 사용하는 거에요."
라쥬의 설명에 그런 장작이라면 팔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이 따로 있는것 같았다.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 이곳에 저런 관솔은 장사가 될것 같았다. 어린 여자 아이가 바닥에 천을 둘러 쓰고 앉아 관솔을 팔고 있었다.
"라쥬! 너희 집에도 관솔이 필요하냐?"
"있으면 좋죠. 밤에 불을 밝혀 공부도 할수 있고요."
"그렇냐? 그럼 모두 다 사가자."
"예."
라쥬가 관솔파는 애에게 가격을 물어 흥정했다. 깎을려는 라쥬와 조금만 깎아 줄려는 애와의 공방전이었다.
"라쥬! 깎지 말고 부르는데로 셈을 치룰꺼다."
"예에..."
시무룩한 표정의 라쥬였다. 깎을수 있는데 깎지 못한게 분한것 같았다. 관솔은 잡화점으로 배달시키고는 라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계란을 사라고 매달리는 여자애가 불쌍해 보여 계란을 모두 사 버리자 옆에서 계란을 팔고 있던 중년 여인도 사 달라고 했다. 한개에 20루피에 판매하고 있는 계란을 모두 구입했다.
그러자 또 그 옆의 노점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던 여인이 옥수수도 사라고 애원했다. 큰포대에 담겨져 있는 옥수수도 다 사버렸다. 한번도 가격 흥정은 하지도 않았다. 부르는 값에 사 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한다는 마음이었다. 아공간에는 이카리스 레어의 황금들이 산을 이루고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막대한 양이 고히 잠들어 있었다. 물 쓰듯 펑펑 돈을 써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구입한 물건은 무조건 라쥬 외삼촌 잡화점으로 배달시켰다. 시장을 돌아 다니며 주로 아이들이 팔고 있는 물건은 모조리 다 사 주었다.
"라세! 다 고른거냐?"
"예."
라세가 보따리 한개를 보여 주었다. 이미 포장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산을 하고 이번엔 라쥬 옷을 사러 갔다. 두툼한 외투를 파는 건물안에 자리한 가게였다. 그곳에서 라쥬와 라세의 옷을 서너벌씩 사고 라쥬의 부모와 할머니 옷까지 구입했다. 대충 살건 다 사고 애들 외삼촌이 경영하는 잡화점으로 향하고 있을때 바람을 타고 구수한 냄새가 풍겨져 왔다.
"무슨 냄새냐?"
"군옥수수를 파는 냄새에요."
"그래. 사러 가자."
옥수수를 먹으며 걷고 있을때 슈란달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쪼르르 달려간 라쥬가 아버지 품에 안기며 즐거워했다. 회색 석판같은것과 갈색 덩어리를 자루에 담아 팔고 있는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던 슈란달이었다.
"저건 뭐지?"
"소금과 설탕입니다."
니루이스란 대륙과 비슷했다. 이곳에서도 소금은 저런식의 석판같은 모양이었다. 고산족은 고지대 살고 있는 만큼 소금이 굉장히 귀했다. 먼곳에서 운반해 오는 소금은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모두 구입해. 내가 계산할테니까."
"예엣? 선인님께서요?"
"그래. 주인장! 여기있는 소금과 설탕을 모두...아, 그러면 안되겠군."
이곳의 소금과 설탕을 모두 다 구입해 버리면 소금을 사 갈려는 사람들이 난처해 질것이다. 물론 다른곳에서도 팔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다 구입해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절반씩만 구입한다고 정정했다.
"우리는 잡화점에 가 있을테니까 살 물건이 있으면 사 가지고 와."
라쥬 외삼촌이 운영하고 있는 잡화점 앞에는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 물건을 지켜 보고 있는 중년 남자와 라세와 라쥬 또래의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물건들을 살펴 보고 있었다.
"외삼촌!"
"어서 와라. 시장 구경은 재밌었냐?"
"예."
"그런데 이게 다 뭐냐? 왠 물건들이 이렇게 많이 배달오는 거냐?"
배달해 오는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누가 이 물건을 보낸 것인지 알고 있었다. 라세와 같이 있는 젊은 남자라고 했다. 매형은 그 남자가 선인이라며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선인 덕분에 동충하초로 큰재미를 보았다며 라세와 라쥬를 이곳에서 지내며 학교까지 보낼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애들 외삼촌인 티무르라고 합니다."
"반갑다. 건이다."
"들어 가시지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차 이야기가 나오자 산위에서 맛보았던 차가 떠올랐다.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의를 생각해 입만 댈 생각으로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빠! 라세하고 시장 구경을 하러 가도 되요?"
"늦지 말아라."
"예."
"라쥬! 이걸 가지고 가라. 다 써고 와라."
"감사합니다."
애들 4명이 서둘러 나갈려는 것을 본 켄은 라쥬를 불러 2천 루피를 건네 주었다. 2천 루피를 확인한 라쥬와 라세, 그리고 외사촌들이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가 봐라."
"예에~! 빨리 가자."
후다닥 달려 가는 애들을 지켜본 티무르가 한마디했다.
"애들에게 그렇게 큰돈을 주면 버릇이 나빠집니다."
"괜찮아.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라쥬가 동충하초를 캐느라 고생이 많았어. 그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돼."
할말이 없어진 티무르는 차 한잔을 내 왔다.
"드셔 보시지요. 밀크 티입니다."
"밀크 티?"
홍차였다. 이곳에서 홍차를 마시게 될줄은 몰랐다. 달착지근한게 입에 맞았다.
"맛있네. 한잔 더 부탁해도 되나?"
"얼마든지요."
두잔째 홍차를 비웠을때 일행들이 한두명씩 짐을 가득 지고는 잡화점으로 돌아 왔다. 마지막으로 슈란달이 도착하자 놀러 나간 애들이 돌아 오면 마을로 출발할것이다. 시장은 점심 무렵부터 한산해 진다고 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서둘러 볼일을 보고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 갈려고 서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들을 기다리며 잡화점 내부를 구경했다. 온갖 잡동사니를 다 팔고 있었다. 농기구나 생필품, 주방 도구 심지어 옷까지 팔고 있었다.
"너희들 필요한 것들을 이곳에서 골라라. 다 사 줄께."
"약초 판 돈이 많습니다. 저희들이 사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쓸때가 없어. 그래서 사 줄려는 거다. 맘대로 골라."
머뭇거리는 일행에게 다시 말하자 하는수 없다는듯 이것저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형! 저렇게 많은 물건을 어떻게 옮길려고요?"
모두들 엄청난 짐을 가지고 있었다. 밖에 쌓여있는 물건만 해도 들고 가지 못할 정도다.
"선인님이 알아서 옮겨 주실꺼다."
이곳으로 오면서 미리 말해 주었다. 짐 걱정은 말고 사고 싶은건 모두 사라고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신기한 재주로 짐을 옮길수 있는 선인이 함께하는 이상 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늘 짐 때문에 사고 싶은걸 사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었다. 하지만 이번 시장길엔 그런 짐 걱정은 없었다. 선인님으로 인해 두둑한 자금을 품속에 넣고 있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잡화점의 한쪽 벽이 텅하니 빌 정도로 물건을 구입한 일행들은 조금 미안해 했다. '너무 많이 산것이 아닌지'하는 눈빛들이었다. 그런 표정과는 전혀 상관없다는듯 켄이 물건값을 치루고 있을때 애들이 돌아왔다.
"모두 모였으면 가자. 짐들은 모두 바깥의 짐들 옆에 놔둬."
수북히 쌓인 짐들을 보고는 저걸 어떻게 옮길지 궁금한 표정으로 모두들 켄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두 눈을 감아라. 뜨라고 할때까지 절대로 눈을 뜨지 마라."
라세와 라쥬 외삼촌 가족들을 제외한 이들은 이미 몇번이나 경험이 있어 곧바로 눈을 감았지만 다른 이들은 뭐가 뭔지 몰라 아직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을 감아라...블라인드!"
화들짝 놀라 눈을 감는 이들을 보며 혹시 몰라 주변을 암흑으로 만드는 블라인드 마법을 시전하고 아공간을 열어 쌓인 짐들을 모두 넣어 버렸다.
"눈을 뜨라."
"허억! 사, 사라졌다."
"아, 아버지! 짐들이 없어요."
"조용해라. 선인님이 하신 일이다."
애들 외삼촌과 라세의 외침에 슈란달이 재빨리 진정시켰다.
"처남! 나중에 보세."
"사, 살펴 가십시요."
티무르는 매형이 선인의 도움을 받아 큰돈벌이를 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던 짐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것이다. 살짝 눈을 뜨고는 어떻게 하는지 살펴 보았지만 전혀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눈을 뜨라는 외침과 함께 환해진 눈앞에 이미 짐들은 사라지고 없었던것이다. 마치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매형이 말한 선인이 틀림없는것 같았다. 선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렇게 짐을 사라지게 할수는 없는 일이다.
마을로 돌아 가는 발걸음은 모두 가벼웠다. 저녁 무렵에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또다시 슈란달 집의 창고안에 쌓인 물건을 옮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 짐들은 대체 뭐죠?"
슈렌댁이 산처럼 쌓인 물건을 보고는 의아해 했다. 모두 켄이 구입한것이다.
"내가 산거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
충동 구매로 인해 물건이 너무 많았다. 이들이 나누어서 가져 간다고 해도 너무 많은 물건들이었다. 생강만 해도 몇 자루나 되었다. 그런 생강을 세집이 나눈다고 해도 모두 소비하기전에 썩어 버릴것이다. 귤만 해도 몇군데에 있는 것을 모두 사 버려 너무 많은 양이었다. 감자는 씨감자로 사용하면 되기에 보관해 놓아도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썩어 버리는 것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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