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내 눈에 다 보여(3)
173화.
"저, 정말 그 돈을 줄건가?"
"그래. 독이 없다면 사과하는 의미로 준다."
"그럼 어떤식으로 검사를 할건가? 연구소에 의뢰를 하면 결과가 나올때까지 며칠은 걸릴텐데?"
중년인은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손님으로 대접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말을 놓든 말든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금붕어를 키우고 있나?"
"금붕어?"
"이 하수오를 금붕어나 열대어가 들어 있는 어항에 집어 넣어 보면 알수 있잖아. 독이 없다면 금붕어는 이상이 없을테니만 독이 묻어 있다면 그 독이 물에 녹아 금붕어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독이 심할 경우 죽을수도 있겠지."
"그렇군. 잠깐만 기다려. 옆집에서 빌려 올테니까."
중년인이 가게 밖으로 뛰어 나갈려다가 다시 돌아왔다.
"같이 가세."
가게 주인이 어항을 빌리러 간 사이에 켄이 무슨 수작을 부려 놓을지 몰라 되돌아 온것이다. 그런 주인을 따라 옆가게로 갔다. 그 가게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흥미를 느낀것인지 가게 안쪽에서 금붕어 한마리가 놀고 있는 어항을 들고 와 같이 가자고 했다. 두 가게 주인이 대화를 하는 사이에 이 가게에도 독이 있는 약초가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감지되지 않았다.
"몇뿌리를 넣으면 되나?"
"일단 한뿌리만 넣어 봐."
하수오 한뿌리는 손에 든 중년인이 어항에 뿌리부터 집어 넣었다. 절대로 금붕어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 중년인이 집어 넣은 하수오를 자세히 살펴 보고 있던 켄은 역시라고 생각했다. 하수오에 묻어 있던 독이 조금씩 물에 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뿌리만으로는 금붕어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다.
"세뿌리를 집어 넣어."
한뿌리를 집어 넣고 금붕어를 지켜 보던 가게 주인이 화를 낼려고 할때 금붕어를 제공해 준 옆가게 주인이 켄의 말에 호응을 해 주었다.
"집어 넣어 봐."
"사기꾼이라니까. 만약 이번에도 이상이 없다면 자네는 이 물건까지 계산해야 돼."
켄을 사기꾼으로 몰아 부친 주인은 세뿌리를 집어 넣었다. 그러자 잠시후 금붕어가 지금까지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요동을 치고 있던 것이다. 저대로 놔 두면 죽을것이다.
"어때? 조용하던 금붕어가 갑자기 왜 저럴까? 저대로 놔 두면 금붕어는 죽는다."
켄의 말에 금붕어 주인이 하수오를 어항에서 빼냈다. 하지만 이미 독이 물에 녹아 있는 상태다.
"빨리 금붕어를 꺼내고 어항을 깨끗하게 씻고 물을 갈아 줘."
금붕어 주인은 금붕어를 어항에서 꺼내 손에 들고는 어항을 집어 들고 자신의 가게로 뛰어갔다.
"아, 아냐! 저건 금붕어가 약초 성분을 흡수하고 건강해진 결과야."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늘어 놓는 주인이었다. 약초 성분을 금붕어가 그렇게 빨리 흡수할순 없는 것이다. 또한 금붕어가 약초 성분을 흡수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잠시후 옆집 가게 주인이 어항을 들고 다시 돌아 왔다. 금붕어는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죽었나?"
"음, 죽기 일보직전같네."
"내가 살려 볼께. 큐어!"
이들이 듣지 못할 정도의 나즈막한 소리로 해독 마법을 펼쳐 주었다. 그러자 금붕어는 언제 독에 중독되었다는듯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봐! 사기꾼이야. 무슨 수작을 부린게 틀림없어."
"수작? 그럼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말로 해석되도 되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금붕어가 저럴수가 있지?"
"당신이 이해를 하던 하지 않던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야. 저 하수오를 먹은 손님이 만약 좀전의 금붕어처럼 되면 어쩔래? 그 사람이 중독되면 당신 가게는 물론 당신도 끝장이야."
현실을 말해 주었다. 주인은 믿고 싶지 않을것이다. 자신의 가게에서 독이 묻어 있는 약초를 판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면 큰타격을 받을것이다. 심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자네 누구한테 하수오를 구입한건가?"
"자네도 알고 있는 황하정이라는 중개 업자한테 구입했어."
"하아, 그 자는 질이 않좋다고 소문이 난 자 잖아."
"그, 그럼 혹시...자네 잠깐만 기다리게."
주인장은 켄을 바라 보며 기다리라고 한뒤 가게 안쪽으로 급히 뛰어 들어 갔다.
"그런데 자네는 하수오에 독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안건가?"
옆집 가게 주인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내 눈에는 다 보여."
"...크흠."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긴 이 세계의 사람들이 마나에 대해 알리가 없었다. 안쪽으로 뛰어갔던 주인이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두포대를 들고 왔다.
"이, 이 물건에도 독이 있는지 알아봐 주게."
주인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켄에게 부탁했다.
"음, 이것들 전부 다 버려. 모두 다 저 하수오와 똑 같은 독이 들어 있으니까."
털썩.
급기야 주인장은 가게 바닥에 주저 앉아 허탈한 표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저, 정말인가? 정말 이것들에도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믿지 못하겠다면 정식으로 연구소 같은곳에 의뢰해 봐."
"내 이 새끼를 그냥...."
벌떡 일어난 주인장은 누구를 향해 버럭 화를 내며 두 주먹을 꽉 쥔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약초를 판매한 자가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살인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나? 취선이다."
"취선?"
옆 가게 주인의 물음에 답해 주자 다른 사람들처럼 의아해 했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거든."
"음, 그럼 자넨 약초를 구입하러 온건가?"
"아니, 구경하러 왔어. 심마니 일을 해 볼까 하는데 어떤 약초가 있는지 알아야 할것 같아서."
솔직히 말해 주었다. 감출 일도 아니었다.
"그런가. 그럼 약초를 캐면 우리 가게로 가져 오게. 모두 다 구입해 주겠네."
"왜 자네 가게인가? 우리 가게로 가져 와. 제값에 모두 구입해 줄테니까."
두 가게 주인이 서로 자신의 가게로 가져 와 달라고 다투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독을 알아낼 정도의 켄이 약초를 캐러 다는다면 많은 약초를 캘것이라고 예상해 자신의 가게에 팔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싸우지들 마! 캐면 둘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팔아 줄께. 그런데 산삼도 이곳에서 취급하나?"
"천종 산삼같은건 너무 귀해 구할수가 없고 장뇌삼은 있네."
"장뇌삼?"
"천종 산삼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란 것에 비해 장뇌삼은 산삼의 씨를 뿌려 키운 삼이네. 산양 산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 구경해 보겠나?"
옆 가게 주인을 따라 갔다. 사각형의 나무 상자를 한깨 꺼내온 주인은 장뇌삼이란걸 보여 주었다. 다른 약초에 비해 마나는 조금 더 많이 들어 있었지만 석청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생각같아선 천종 산삼을 보고 싶었지만 없는걸 볼순 없는 것이다.
"약초는 어느 산에 가면 많이 캘수 있나?"
"자연산 약초라면 어느 산이든 상관없지만 지리산 약초는 비싸게 취급되네."
지리산으로 약초를 캐러 가야 할것 같았다. 산삼과 하수오, 영지 버섯등등 여러 가지 약초를 설명해 주었지만 대충 흘러 들었다. 약초에는 희미하게나마 마나를 품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에 들어가 어떤 약초인지 잘 모르겠다면 전화를 하라며 전화 번호까지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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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내일부터 일주일 정도 지리산에 갈테니까 저녁 준비는 하지 않아도 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은 아줌마가 가지고 가."
장기간 보관할수 없는 채소같은건 모두 가져 가라고 했다. 가정부 아줌마는 집안 청소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지리산으로는 빈손으로는 갈수 없었다. 아공간에는 식량이나 물같은 것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지만 빈손으로 산을 올라 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할것이다. 남들에게 보여 주기위해 어쩔수 없이 등산복과 배낭, 신발을 구입하고 스틱도 한개 구입했다.
약초를 캘 작은 괭이와 호미도 준비해 두었다. 벤츠를 타고 약초를 캐러 가는 사람은 켄밖에 없을것이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차가 벤츠밖에 없어서였다. 다른 차도 구입해 놓아야 할것 같았다. 지리산을 올라 가는 등산객은 많았다. 그런 등산객들과 떨어진 거리에서 산을 올라가고 있던 켄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길이 없는 곳으로 들어갔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산을 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나 서치를 펼치며 산을 오르며 마나가 감지된 곳을 찾으면 어김없이 약초라고 짐작되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 풀을 뿌리까지 조심스럽게 캐 아공간에 보관했다. 약초에 관해선 초짜인 탓으로 약초의 어떤 부위가 약재로 사용되는지 몰라 통채로 캐어 보관할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나가 어려있는 부분이 약초로 쓰이겠지만 그 부분만 뜯어 가지고 가는것 보단 통채로 가져 가는게 어떤 약초인지도 알기 쉽기 때문이다.
산위로 조금씩 올라 가며 약초를 찾고 있을때 근처에 조금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귀한 약초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오른쪽 위에서 강한 기운과 인간의 기운까지 감지되었다. 자신처럼 약초를 캐는 사람같았다. 그 강한 기운은 아마 산삼이 아닐까했다. 그 인간이 산삼을 발견한것이다. 서둘러 그 위쪽으로 올라갔다.
한시간 정도면 해도 질것같았다. 산속은 빨리 어두워진다. 더구나 이렇게 우거진 숲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이 산삼을 캐는 것을 보고 산삼도 구경할 생각이다. 경계를 할것이지만 말 몇만디를 나누면 해결될것이다. 조금 약한 기운의 약초는 내버려 두었다. 올라 가는 길에 캐도 되지만 산삼을 캐는 사람이 사라질것이 걱정되어 나중에 캐기로 하고 산삼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응?"
분명히 강한 기운과 인간의 기운이 감지되었는데도 인간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두개의 기운이 계속 감지되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것인지 인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 보았지만 수풀만 우거져 있을뿐이었다. 그 수풀 아래에 인간이 숨어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켄이 올라 오는 것을 보고 산삼을 빼았기지 않을려고 숨어 있는것 같았다.
"거기 숨어 있지 않아도 되니까 나와."
"......"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분명이 수풀 아래에 있는데도 일부러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 수풀 아래에 숨어 있잖아? 당신것을 빼았을려고 온게 아냐. 그냥 나와도 돼."
"......."
여전히 반응이 없자 켄은 대지의 정령인 노에스를 불렀다.
- 노에스! 숨어 있는 사람이 어떤 자인지 알아 봐.
- 알록달록한 복장으로 단도와 철로 만든 검은 막대기를 가지고 있어요.
- 검은 막대기?
철로 만든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이라면 생각나는게 있었다. 즉시 어떤 것인지 노에스에게 알려 주자 맞다고 했다. 총이었다. 알록달록한 복장을 한채 총을 가지고 숨어 있다면 군인이다. 그것도 북조선군일 가능성이 컸다. 한국 군인이라면 혼자서 이런 곳에 숨어 있진 않을것이다.
"그레이트 실드!"
만약을 위해 방어 마법을 시전하고는 놈을 불렀다.
"숨어 있다는걸 알고 있다. 키타쵸센(北朝鮮.북한)에서 온 스파이냐?"
부스륵.
수풀이 흔들리며 땅아래서 한사람이 불쑥 솓아 올랐다. 역시 땅아래에 숨어 있었던것이다.
"키타쵸센이라니요?"
노에스가 말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자의 질문에 아차 싶었다. 일본에서는 북한을 키타쵸센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칸코쿠(韓国)라고 부르지만 북한은 북한이라고 부르지 않고 키타쵸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북한보다는 키타쵸센이라는 말이 익숙해 자연스럽게 나와 버렸던 것이다. 이 자는 키타쵸센이 뭔지 모르는것 같았다.
"북한을 말하는거다. 넌 북한에서 넘어온 스파이냐?"
"스파이? 간첩을 말하는 거군요. 그런거라면 안심하십시요. 전 한국의 군인으로 하계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고요."
"훈련이라고?"
"제가 좀 특수한 부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민간인에게 자세한 사항은 말해 줄수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고 절 어떻게 찾은겁니까?"
만약 이 일이 부대에 알려 진다면 훈련 점수는 많이 깎여 버릴것이다. 절대로 민간인에게 들켜서는 않되는 훈련이다. 이 깊은 지리산에 설마 민간인이 들어 올줄은 몰랐다. 등산객같은 차림이었지만 길도 없는 이곳으로 온것이 수상했다.
"약초를 캐던 중이다. 약초꾼은 눈이 좋아야 하거든. 네가 숨어 있던 곳이 우연히 보였을뿐이었다."
"심마니였군요."
약초를 캐는 사람을 심마니라고 하는것 같았다.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그럼 넌 약초를 캐러 온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약초에 관한 지식이 없어 약초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해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산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이지?"
"예? 산삼이라니요?"
안심이 되었다. 저 군인이 산삼을 찾아 내진 않은것이다.
"비켜 봐라."
군인이 그 자리에서 비켜 주자 숨어 있던 수풀 바로 옆에 산삼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동 시장의 가게 주인이 보여 주었던 잎사귀와 모양이 똑 같았다.
"이게 산삼이라는거다."
"예엣? 사, 산삼이라고요?"
"그래. 넌 눈앞에 있으면서도 알아 보지 못한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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