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동충하초(1)
149화.
막대기로 발밑을 짚어 주었다. 영문도 모른채 땅을 판 라쥬는 놀라워했다. 아직 동충하초의 뿔이 땅위로 올라 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켄에게는 애벌레 머리쪽에 솓아난 것이 뿔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여기."
라쥬가 조심스럽게 땅을 파는 것을 본 켄은 이러다가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릴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마나 서치에 잡힌 동충하초는 엄청 많았다. 땅위로 뿔이 솓아나 있는 것인지 땅속에 숨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들이 찾지 못한 것이 이렇게 많을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도 파."
대부분 켄이 짚어 주는 곳은 마른풀들로 뒤덮혀 있는 곳이다. 뿔이 땅위로 솓아나 있지 않은 탓으로 눈으로는 찾을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모두 내려와!"
라쥬 혼자서는 무리였다. 위쪽에서 동충하초를 찾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내렸다. 이미 라쥬가 캐는것을 멍하니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내려온 이들에게 언덕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땅을 짚어 주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른풀로 뒤덮힌 땅을 짚어 주는 켄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 보던 이들이 땅을 파자 동충하초가 드러났다. 놀라워 하면서 조심스럽게 캐기 시작한 이들은 짚어 주는 곳마다 동충하초가 있자 신이 난 표정으로 열심히 땅을 팠다.
"이제 그만하고 조금 쉬자."
조금 지쳤다. 쉴새없이 경사진곳을 계속 걸어 다녀야 했으며 마나 포션도 들이켜야 했다.
"아! 감사합니다. 선인님! 여기 물 좀 드시겠습니까?"
"고맙다."
랑타르가 패트병에 들어 있는 물을 건네 주었다. 물은 시원했다. 눈을 녹인 물인것 같았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며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경외로운 눈으로 켄만 주시하고 있었다.
"다시 시작할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럴즈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마나가 감지되었다. 동충하초가 깨알 반만큼의 마나를 품고 있다면 이것은 작은 머루알 정도의 마나를 품고 있는 것이 감지된 것이다.
"랑타르! 이곳을 30센티정도 파라."
퍽퍽퍽.
가타부타없이 켄의 말에 따라 땅을 파는 랑타르는 힘든줄도 몰랐다. 이렇게 쉽게 동충하초를 찾을수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라쥬 아버지가 건이라는 이 분은 선인이라고 이미 말해 주었다. 라쥬 어머니의 삔 발목을 순식간에 치료해 주었다고 했다. 실제로 라쥬 어머니는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언제 발목이 다 나았는지 평소처럼 약초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해 물어 보자 조심스럽게 라쥬 아버지가 말해 주었다. 절대 선인께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도 신신당부까지 했다. 땅속에 숨어 있는 동충하초는 절대 찾을수가 없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땅을 팔수도 없는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눈으로 찾는게 더 빠르다.
예전부터 동충하초의 가격이 알려 지면서 5, 6월이 되면 몇만명의 사람들이 동충하초를 찾아 다닌다. 요즈음은 하루에 다섯 뿌리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경쟁도 심해진 상태다. 대신에 예전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예전에는 5, 6월 한철에 동충하초로 일년의 벌이를 했지만 지금은 몇배로 가격이 치솟았다고 하지만 캘수 있는 양이 너무 적어 근근히 일년 벌이를 할 정도다.
이 일도 몇년이 지나면 더욱 어려워 질것이다. 하지만 선인님은 어떻게 동충하초가 땅속에 있는것을 알고 지적을 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라쥬 아버지 말대로 선인이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선인이 땅을 깊게 파라고 했다.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땅을 파자 무언가 거무튀튀하고 둥그스럽한게 보였다.
"그것을 이리 줘."
"여, 여기 있습니다."
역시 이건 동충하초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의 마나를 품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아나?"
"모, 모릅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 보았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횡재한 기분으로 품속의 마법 주머니안에 집어 넣은 켄은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이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가, 가시지요."
라쥬 아버지가 천막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가기 시작했다.
"랑타르! 혹시 너희들은 점심은 먹지 않냐?"
"그, 그렇습니다. 이곳까지 옮길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랑타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하긴 이 높은 산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는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중에 식량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하루에 두끼도 아껴 먹어야 할것 같았다.
'어쩔수 없군.'
이들이 더욱 오해를 할것이지만 어쩔수 없었다. 켄의 입이 한개 더 늘어난 탓으로 누군가는 굶어야 할지도 몰랐다. 솔직히 삶은 감자와 옥수수 가루를 뭉친것을 먹고 싶지 않았다. 천막으로 내려온 이들에게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한뒤 켄 혼자서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채였다. 그런 행동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말리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라쥬! 들어 와서 이걸 밖으로 옮겨."
좁은 천막에 모두가 들어 가기엔 너무 비좁았다. 천막 밖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라쥬를 불러 천막안에 꺼내 놓은 식빵과 메이플 시럽, 그리고 오크통에 담긴 맥주를 옮기도록 했다. 무거운 오크통은 켄이 직접 들었다.
"선인님! 이게 다 먹는거에요?"
"그래. 빨리 옮겨라."
천막안으로 들어 온 라쥬는 눈이 동그래졌다. 하얀 빵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라쥬가 들고 나오는 빵을 본 천막 밖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천막 어디에도 저런 빵은 없었다. 저런 하얀 빵은 도시가 있는 시장으로 가야했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빵을 받아."
"아, 예."
비닐 시트가 깔린 바닥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평범한 빵이지만 이들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모두들 군침을 흘리며 자리에 앉자 켄이 먼저 넓은 평평한 접시에 메이플 시럽을 부어 놓았다.
"이렇게 찍어 먹어."
식빵을 찢어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먹어라고 하자 조심스럽게 식빵으로 손을 가져 가는 이들이었다. 특히 어린 라쥬는 아버지가 식빵으로 손을 내밀자 재빨리 큼지막한 식빵을 한개 집어 정신없이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한번 맛본 메이플 시럽의 달콤함에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빵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컵은 없나?"
"커, 컵이요?"
"물을 담는 컵 말이다."
"아, 컵은 없고 차를 마시는 그릇은 있습니다."
"그럼 그릇 네개를 가져 와."
라쥬 아버지가 눈짓을 하자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안으로 들어가 그릇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릇은 두개뿐이었다.
"두개 밖에 없어서요."
부끄러운듯 살짝 고개를 숙이는 라쥬 어머니였다.
"너희들은 종교로 금지되어 있는 음식이나 술 같은게 있나?"
"저희 종족은 없습니다. 다만 마을안에서 살생은 하지 않습니다."
"......"
섬뜩한 말에 대꾸할 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럼 마을 밖에선 살인이 심상찮게 발생한다는 말인가. 그런 뜻으로 들렸다. 이들이 믿는 종교는 라마교와 민간 신앙이라고 했다. 라마교는 티벳 불교였으며 민간 신앙은 샤머니즘에 가까웠다. 마을에 있을땐 라마교를 숭배하고 이런 산에 오를땐 산신에게 공물을 받치고 무사 귀환을 빈다고 한다. 어째든 먹을것에 제한이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너희들 그릇이 있으면 가져 와라."
랑타르 형제가 가져온 그릇에 오크통을 열고 맥주를 가득 부어 주었다. 라쥬 아버지와 켄 자신의 그릇에도 가득 부은후 마시자고 했다.
"이건 무엇인지요?"
"맥주다."
"아! 이 비싼걸...감사합니다."
맥주가 이들에겐 비싼것같았다. 나중에 안것이지만 이들이 마시는 술은 집에서 기장(黍)이라는 벼와 비슷한 것을 발효시킨 창이나 뚝바라고 하는 막걸리와 비슷한 술을 마신다. 맥주같은 술은 큰시장으로 나가야 살수 있는 비싼 술로 취급되었다.
"한두잔씩만 마셔. 너무 많이 마시면 일 하는데 지장을 초래한다."
"아, 알겠습니다."
꿀꺽꿀꺽.
단숨에 한그릇을 비우는 이들에게 다시 한잔씩 따라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라쥬는 배를 두드리며 더이상 못 먹겠다고 투덜거렸다.
"남은건 천막안에 넣어 둬. 저녁 식사로 먹든 내일 아침에 먹든 알아서 먹어."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쉰후에 동충하초를 캐러 갈까 아니면 지금 바로 갈까?"
"바, 바로 가겠습니다."
이들은 신이 난 상태다. 켄이 짚어 주는 곳만 파면 노다지가 쏟아지는 판에 이렇게 편히 앉아 쉬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그리고 한가지 미리 말해 두지만 동충하초는 모두 한곳에 모아 판후에 인원수대로 공평하게 돈을 나눈다. 사비나의 애기도 물론 한사람 몫으로 계산한다."
"......"
폭탄이나 마찮가지 발언에 모두들 할말을 잃은것 같았다. 그렇다고 반대를 할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캐서 모아 놓은 것도 합치는 겁니까?"
"합치고 싶나?"
서로들 얼굴을 바라 보며 주저하는듯 했다. 지금까지 많이 캔 사람도 있을것이고 적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합치겠습니다."
라쥬 아버지가 먼저 나섰다. 가족 3명이 캔 양이 가장 많을것이다. 그런데도 합치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이들도 더이상 주저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랑타르 형제도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의를 했다. 이들 중에 가장 환한 표정으로 동의한 사람은 애기 엄마인 사비나였다. 애기를 업고 혼자서 동충하초를 캐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 중에 가장 적은 양을 캐었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좋다. 나중에 딴말 하지 마라. 그럼 가자."
제각기 이번엔 배낭을 짊어 메었다. 주머니안에 캔 동충하초를 넣기에는 주머니가 너무 작았다.
꿀꺽.
일행의 맨앞에 걸어 가며 마나 포션으로 마나를 충당한 켄은 오전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마나 서치를 펼쳤다.
"여기. 여기."
막대기로 땅을 툭툭 찍으며 말해 주자 한사람씩 조심스럽게 땅을 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땅을 파면서도 웃음과 감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이전처럼 힘들게 바닥을 기면서 찾아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너무 간단하게 동충하초를 캐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비탈길을 걸어 가며 땅을 찍고 있던 켄은 문득 이런식으로 모조리 캐어 버리면 내년에는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충하초는 버섯의 한종류라고 했다. 버섯이라면 갓이 열려 포자를 날릴것이다. 그 포자가 땅속으로 스며 들어 애벌레의 몸에 기생하는 것이다. 그런 버섯이 포자를 날릴 시간도 주지않고 모조리 남획해 버린다면 다음 시즌에는 동충하초를 캘수 없게 될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하나 건너 한개씩 찍어 주는 방법으로 변환했다.
켄은 모르고 있었지만 동충하초는 4년이라는 기간동안 서서히 생성되는 것으로 올해 모조리 캔다고 해서 내년에 메말라 버리는것이 아니다. 4년후에는 수확량이 확 줄어 들겠지만 당장은 아닌것이다. 어째든 그런것을 모르는 켄은 방법을 달리했다. 하지만 켄이 아무리 남획을 한다고 해도 이 넓은 초원에 동충하초가 사라져 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것이다. 이 근처에만 줄어 들겠지만 네팔이나 티벳 고원에 걸쳐 자생하는 동충하초는 찾기가 어려울 뿐이지 땅속에는 많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하자."
아직 해가 질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바로 코앞이 눈이다. 쌓인 눈으로 인해 더이상 위쪽으로는 캘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눈속의 동충하초도 얼마든지 캘수가 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눈사태가 발생할수도 있었다. 아무리 동충하초가 비싸다고 해도 눈사태에 휩쓸려 죽어 버린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모두들 아쉬운 표정이었다. 더 캐고 싶은것 같았다. 그렇다고 더 캐자는 말은 할수가 없었다. 켄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막으로 내려온 일행은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오늘 캔 동충하초를 꺼내 놓았다. 수북히 쌓인 동충하초를 본 이들은 모두가 입을 쩍 벌릴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이 캐었을줄은 몰랐던것이다.
"대, 대체 몇개나 캔것일까요?"
"일단 나중에 세어 보도록 하고 잘 보관해 둬."
"이 많은 양을 어디에 보관하죠? 도둑이 들지도 모르는데요?"
이곳에는 도둑들이 들끓는다고 했다. 지금은 세가족밖에 없지만 아래쪽의 캠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탓으로 도둑이나 도박이 성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딜 가더라도 도둑맞지 않게끔 반드시 배낭에 동충하초를 모두 넣어 가지고 다닌다. 만약 도둑이 잡히면 사람들이 찢어 죽여 계곡으로 던져 버린다는 말도 했다. 일년에 몇사람은 그렇게 죽으며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게 고산병이다. 산을 잘 모르는 자들이 동충하초를 캐러 높은 산으로 올라와 고산병에 시달리거나 추위와 굶주림에 죽는 사람도 많다. 낮은 15도정도로 따뜻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엄청나게 춥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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