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세계로 (1)
한국을 떠나 세계로 (1)
사흘이 지나고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냈는가?”
“평소처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이 전화가 그리 반갑지는 않게 됐다. 국방부 장관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 테라포밍을 좀 더 편하게 진행하려 한 것인데 일이 커지다 보니 이제 쓸데없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처지가 돼 버린 것이다.
내가 저질러 놓은 잘못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나서서 도와준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주제넘게 나와 나의 모든 것을 국가에 귀속하기 위해 법안까지 바꾸려는 것을 보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해타산이라도 맞으면 모른 척하고 넘어가며 돈이라도 챙기겠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물품 대금은커녕 하염없이 퍼줘야 할 상황이었다.
우리가 밀어주고 있는 자연의 기 사학재단에서 졸업한 학생들이 세운 기업들이라면 수백 조를 사용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돈을 벌어서 기술 개발은 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면서 호의호식하던 재벌 기업의 부를 더 축적해 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머리에 똥만 찬 놈들. 이런 놈들이 국가를 운영하니 나라가 이 꼴이지. 곧 있을 중국과의 전쟁으로 한국 땅을 넓힐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버리고 기업에 빌붙어 스스로 개가 되려 하다니.”
저들이 전쟁을 선택한 이유는 기업들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인공위성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입기 시작한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중국까지 전쟁이 일어나자 손해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올라가 버렸다.
많은 그룹사가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건설했는데 그로 인해 손해가 더 커진 것이다.
그렇다고 베트남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건설한 공장 운영이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베트남도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고 이 여파로 아시아 전체가 출렁거리고 있으니. 그나마 삼별 그룹만 나의 조언을 따라 큰 손해를 피했다.
정말 회사가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하여 정치권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중국과의 전쟁으로 지금까지 입은 손해를 메꾸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전쟁으로 돈을 벌려고 했더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업이 말도 안 되는 기술력으로 무기 산업부터 건설, 식량, 운송 산업 등 사회 전반적인 모든 산업에서 독점하게 된 것이다.
바늘 틈만큼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들어가겠지만, 아무리 봐도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말 그대로 경쟁력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넘사벽 같은 존재였다.
기업들은 무기를 팔아 매출을 올리고 전쟁이 끝나면 건설을 해 또다시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그게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힘든 건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원해 주는 기업이 없다 보니 국회도 망가져 갔다.
그나마 실권을 쥐고 있어 여당은 야당보다 여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많은 흑자를 보고 있는 지오 그룹이 여당에 알아서 기부를 해주면 좋으련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정치계와는 인연을 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부도 하지 않고 뇌물도 주지 않으니 정계의 눈 밖에 난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정계는 비밀리에 우리 회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 모두가 상장하지 않은 법인 회사라 모든 이득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분명 세금 포탈이나 여러 가지 비리가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또한 우리 회사가 해외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그만큼 많은 돈을 해외로 송금하고 있었기에 정계는 그 부분도 집중적으로 조사해 나갔다.
기업이 정계와 싸워 이길 수 없으니 내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머리 숙이고 들어오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카와 꼬박 반나절을 상의했고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이제 계획한 것을 진행하기 위해 밑밥을 뿌려야 했다.
“그날 연구실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 주제도 모르고 설쳤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기술력을 개발했어도 정계와 재계 간에 이해관계가 있는데, 저도 기업인으로서 기존 업체와의 관계를 무시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자숙하려 합니다.”
“앞으로 국가를 위해 할 일이 태산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쓰나?”
미치지 않고서야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런 기술력을 가지고 국가에 끌려다니는 것 자체도 우스운 일이니까.
“아닙니다. 이번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님은 아셔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 이번 주에 미국 본사에 다녀와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글쎄요? 저도 본사에서 왜 들어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아무 정보도 받지 못했거든요.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해외로 나가다니 그건 안 될 말이네.”
“저도 기업에 묶여 있는 처지이기에 본사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가 독립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네.”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아직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이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거든요.”
“그게 뭔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해주겠네.”
“한국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넓어지면 모르겠지만, 한국 정부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습니다. ”
“땅을 원하는 건가? 그렇다면 함경도 전체를 지원해 주겠네. 그것도 모자라면 자강도와 양강도까지 지원해 주도록 하겠네.”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호주나 미국 정도의 땅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뭘 하는데 그리 넓은 땅이 필요한가?
“그건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그 회사에서는 자네가 원하는 땅을 확보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한국보단 강대국이니까요.”
“지금 우리도 도약하고 있지 않나? 이번 전쟁만 끝나면 한국의 역사는 다시 써지게 될 걸세.”
'물론 저로 인해 도약하는 것을 잘 압니다. 단지 정치권이 너무 썩어서 미래로 달려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문제죠.'
“그럼 그 후에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꼭 연락해주게. 우리의 미래에 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 말일세. 그럼 잘 다녀오고 몸조심하게.”
“잠시 다녀오는 건데 그동안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럼 그동안 잘 지내십시오.”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 겁니다. 한국의 정치권이 지금의 과학력을 따라오지 않는 이상 제가 한국에서 사업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날 회의한 결과를 알려준다는 것이 깜빡할 뻔했군. 자네가 말한 모든 사업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네.”
“모두 다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날 그곳에 계시던 부통령님과 다른 장관님들은 제 의견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만장일치로 통과된 겁니까?”
“그날 장관들의 대화가 자네에게는 기분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 다 같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네. 그러니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자네가 좀 이해를 해주게.”
“뭐 별거 아니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든 사업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네.”
“그래 주십시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휴가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1년만 쉬자. 걱정할 테니까 지영이는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지?'
“지영아? 내 방으로 와봐.”
“알았어.”
지영이가 바로 들어왔다.
“왜?”
“내일 미국 갈 거야. 여권 좀 준비 해줘.”
“미국은 왜?”
“그럴 일이 생겼거든. 너도 같이 갈 거니까 여권 준비해.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까 장모님 걱정하지 않으시게 출장 간다고 전하고.”
“알았어.”
지영이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아버지가 계시는 실험실로 이동했다.
내가 들어갔는데도 아버지는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아버지. 실험은 잘 되세요?”
“집중하는 거 안 보여? 말 시키지 마.”
“알았어요. 식사나 같이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바쁘니까 못 먹어. 지영이보고 이곳으로 배달해 달라고 해.”
“알았어요. 알았어. 그냥 들으세요. 저 1년간 잠적할 거에요.”
그때야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보셨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사고가 아니고 수습이에요. 한국 정부가 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거든요. 그동안 사고 친 것이 미안해서 도와준 건데 정계가 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네요.”
“그러게 내가 시대에 너무 앞서는 기술력은 보이지 말라고 했잖니.”
“이미 수습하기에는 늦었어요. 내일 지영이랑 미국 갈 거예요. 아버지도 같이 가실래요?”
“싫다. 지금 실험의 막바지라 1초가 아쉬운데 가긴 어딜 가? 잘 쉬다 와라.”
“알았어요. 그리고 회사는 팔아요.”
아버지가 다시 한번 놀랐다.
“뭐? 전 세계를 독식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인데 이런 기업을 살 수 있는 곳이 어딨다고? 나눠서 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느 곳도 우리 기업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을 텐데?
그렇다고 네가 싸게 팔 놈은 아니고. 얼마에 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직접 운영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해라.”
“그래서 제가 살 거예요.”
“뭐? 네가?”
“해외에 모아둔 자금이 있거든요.”
“얼마나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정쩡한 금액에 판매하면 정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세상에 불법적인 자금이 얼마나 많은지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지금까지 해외에서 해킹, 사기, 도박, 불법 비자금, 세금 포탈 등 신고하기 힘든 돈만을 루퍼가 해킹해 미카에게 넘겼고, 미카가 그 돈을 아주 잘게 쪼개 추적하기 아주 힘든 계좌로만 이동시켜 다시 모은 후 여러 분산 투자로 자금을 세탁했다.
거기다 GPS 사건의 희생양으로 죽은 자들과 이번 중국 전쟁으로 죽은 자들이 가지고 있던 비자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다.
그렇게 세탁한 돈으로 금융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이제 이 금융 회사에 팬시 연구소와 지오 전자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업을 판매해야 했는데 정부의 의심을 피하고자 우리가 가진 모든 회사를 주식 시장에 상장하기로 했다.
정부와 기업이 우리가 가진 모든 회사를 눈독 들이고 있어 쉽게 상장할 거로 분석했다.
우리가 상장하면 정부는 모든 자금을 동원해 우리 기업을 통째로 구매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본인들이 원한다고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백억 달러는 기본이고 수천억 달러도 넘게 가지고 있는 놈들이 여럿 되더라고요. 그 돈을 좀 모아봤어요.”
“위험한 것은 아니니?”
“루퍼와 미카가 손썼으니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다행이구나. 그럼 우리 실험실을 옮겨야 하는 거니?”
“한동안은 괜찮으니 이곳에서 편안하게 실험하시고, 제가 1년 동안 다른 곳에 연구소를 새로 만들 테니까 그때 이동하시면 돼요.”
“생각해 둔 곳은 있니?”
“바닷속이나 우주에 연구소를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하면 우주 전함이나 우주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제일 큰 문제는 강력한 에너지원인데 조만간에 해결할 수 있을 듯해요.”
“우주 전함이라. 그건 좋은 생각이구나. 어차피 화성으로 이동하려면 유인 우주선도 있어야 하니.”
“아버지의 노력으로 화성에 생각보다 많은 생명체가 적응하고 있잖아요.”
“내가 생각했지만, 나도 의외란다. 꼭 유전자 변형을 해야 화성에서 적응할 줄 알았는데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아도 적응할 수 있다니.”
“그럼 연구 잘하시고 1년 후에 봬요. 내일은 바로 공항으로 직접 가야 해서 인사 못 드려요.”
“그래 알았다. 잘 쉬어라.”
“네.”
나는 연구실을 나와 지영이와 함께 퇴근했다.
다음날 우리는 지오 항공에서 만든 전용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지영이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유명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서 미국에 온 거 아니었어?”
“맞아.”
“그런데 이렇게 식사와 쇼핑만 하고 있어도 돼?”
“너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 왔다며? 대통령 미팅 때 제안한 일들 모두 통과됐다고? 그럼 앞으로 상당히 바쁠 텐데 이렇게 신경 쓰지 않고 있어도 되는 거야?”
“괜찮아. 우리 직원들 못 믿어? 내가 없어도 잘 처리할 거야.”
“우리 직원들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하는 건 나도 알지. 그래도 이렇게 바쁜 시기에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곳에서 시간 보내고 있으니까 이상하잖아.”
“그동안 너무 바빠서 우리 둘이 같이 있던 시간이 얼마 없었잖아.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모처럼 시간 뺀 거야. 그러니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시간을 즐기세요. 여왕님.”
“뭐 그렇다면 나야 좋지.”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가고 싶은 곳이야 많지.”
“그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다니며 이 시간을 즐기자.”
“그래도 왠지 불안한데?”
이때 갑자기 우리 앞에 밴이 정차하더니 나와 지영이를 강제로 태우고 출발했다. 경호원들이 손쓸 틈도 없이 말이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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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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