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조언 (1)
아버지의 조언 (1)
“뭐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는 놈이 있다고?”
“그렇다니까.”
“어떤 놈인데?”
“팬시 연구소라고 들어본 적 있지? 거기 대표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연구원만 수백 명 뽑았다는 그 조그만 회사?”
“그래 그 회사. 하지만 작은 회사는 아니야. 그 회사 매출이 4조 가까이 되니까”
“생긴 지 몇 년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벌써 매출이 4조라고? 그런데 왜 나에게 보고를 안 했지? 다른 곳에서 잡아먹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인수·합병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군.”
“오빠를 무시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오빠 능력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이게 말끝마다···.”
이수연은 오빠의 말을 끊었다.
“됐고. 아버지가 절대 그 회사는 건드리지 말라고 오빠에게 전해 주래.”
“뭐? 아버지가 직접?”
“그뿐만이 아냐. 아버지가 그 대표랑 잘 지내래.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아버지가 직접 그런 말씀을 하셨단 말이지?”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물어보던가. 그자에게 삼별 전자를 경영해 보라고 했는데 그자가 거절했어.”
“뭐?”
충격이었다.
본인에게도 몇 년 전에야 겨우 능력을 인정받아 삼별 전자의 사장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어. 뭐 어쨌든 오빠가 조금만 실수해도 차기 회장은 바로 그놈에게 넘어갈 수도 있으니 잘해. 내가 오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엉뚱한 놈에게 삼별 전자를 넘겨 주는 것보다는 그래도 가족이 회장 되는 게 나으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야. 자신 없으면 나를 넘겨 주던가. 내가 잘 이끌어 나갈 테니까.”
수연은 나에게 받은 USB 메모리를 오빠 이규만에게 넘겨 주었다.
”이건 그놈이 준 거야.”
“이게 뭔데?”
“그놈이 말하길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메모리의 마지막 단계라더군. 그 이상은 같은 기술로 만들 수 없다던데? 정말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술의 한계가 있긴 한 거야? 정보가 있으면 같이 공유 좀 해. 오빠.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말이야.”
이규만은 깜짝 놀랐다.
자기 수족인 연구진 하나가 앞으로 10년 안에 현재 생산 방식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보고서를 제출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소자와 방식을 연구 중이었는데 아직은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생판 보지도 못한 놈이 동생을 통해 그 말을 전달한 것이다.
“그놈이 뭘 안다고 이딴 걸 주고 지랄이야.”
이규만은 받은 USB 메모리를 집어 던지려 했다.
“오빠. 잠깐. 그 USB 메모리 던져도 상관없지만, 이 얘기는 듣고 던져.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삼별 전자 주식 1조 3천억 어치를 넘겨주고 구매하신 거야”
“뭐?”
동생의 말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다 판매 금액에 5%를 로열티로 줘야 해.”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아버지가 하셨다고?”
“아까도 말했지만 믿기 힘들면 아버지에게 직접 가서 물어봐.”
“좋아. 내가 한번 봐주지. 아버지를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속에 말도 안 되는 것이 들어 있다면 팬시 연구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없애버리고 말겠어.”
“나도 원하는 바야.”
한편 아들이 죽어 상심이 큰 RG 그룹 회장이 담당 검사의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조폭들이 아드님에게 전화한 증거를 확보하였습니다. 아드님이 타고 온 차량이 그곳에 있었기에 납치된 것인지는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 조폭들이 아드님과 비서를 상해치사한 것은 확실합니다. 조폭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쌍칼파 두목 조두팔이가 모든 부하에게 그곳으로 모이라고 문자 보낸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을 그놈들이 납치해 때려죽였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조폭들도 모두 죽었다고?”
“그게 저희도 의문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현재 그들을 해부하고 있지만 특별한 징후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한가지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그게 뭔가?”
“혹시 몇 년 전에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던 무원 바이러스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알고 있네”
“회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3년 전쯤 조폭들이 무원 바이러스에 중독돼 몰살되다시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원 바이러스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습니다. 백신도 나와 있으니 누군가 발견만 해준다면 죽을 수가 없죠. 그런데 그들은 너무 늦게 발견돼 거의 다 죽었습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야생 동물들에게 모두 뜯어 먹혔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상황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야생 동물이 시체를 너무 많이 뜯어 먹어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지만 100명이 넘는 조폭들이 모두 같은 자리에 쓰러져 있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죽은 지 2~3일 정도 된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특히 몇몇 시체들의 쓰러져 있는 방향이 도망가려고 했던 것으로 봐서 이 생각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을 납치해 때려죽인 후 그들이 전부 바이러스로 인해 몸이 마비돼 쓰러졌다는 말인가?”
“수사 방향이 그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조폭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병원에 잘 가지 않기에 집단으로 발병할 확률이 높거든요. 만약 아드님께서 납치됐든 직접 가셨든 간에 1시간 정도만 늦게 가셨어도 화를 피하실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운도 없는 놈이군. 그럼 내 아들이 왜 그곳으로 갔는지 알아봐 주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담당 검사가 나가자 최갑수 회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새끼들이 내 아들을 납치해 죽였다면 내 모든 재산을 걸어서라도 그놈들 뿌리를 뽑아 버리고 말겠어.”
누구에게 한 말일까?
같은 시간.
“아 도대체 모르겠다. 아버지가 좀 도와주시면 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에는 도통 오지를 않으시네. 차라리 숙부님에게 부탁해볼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절대 안 되지. 지니야 아버지 어디 계신지 추적해 줘”
“지금 홍대에서 식사 중입니다.”
“홍대에 계신단 말이지? 잘 걸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지영아. 빨리 따라와. 급해.”
“왜 갑자기?”
“빨리 오라니까. 늦게 가면 놓칠 수도 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지영이는 바로 나를 따라 뛰어 내려왔다.
“좀 급하니까 빨리 홍대로 가주세요. 다른 차 한 대도 같이 따라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홍대에 도착하자 지영이 팔짱을 끼고 아버지가 식사하는 식당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어? 우성이 형 아냐? 어쩐 일이세요. 이곳엔?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얼굴을 보신 아버지가 식사하다 사레가 걸리셨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으시며 어정쩡한 대답을 늘어놓으셨다.
“어? 어. 친구랑 식사 중이었어.”
“아? 친구분? 되게 이쁘시다. 형 능력 좋은데요? 합석해도 되죠? 형수님?”
형수님이란 소리에 연희는 얼굴이 붉어졌다. 거절하고 싶은 아버지의 눈빛을 읽지 못한 연희는 합석을 승낙했다.
“네. 괜찮아요”
“마음씨도 정말 고우셔라.”
“지영아 자리에 앉자.”
“어? 어.”
이 상황을 이해 못 한 지영이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형이 잘생기긴 정말 잘 생겼구나. 주위 시선이 모두 형에게 쏠려 있잖아요.”
“그럴 리가? 널 쳐다보는 거겠지?.”
“난 지금까지 살면서 나보고 잘 생겼다고 말한 사람은 내 옆에 지영이 밖에 없거든요.”
“야. 내가 언제?”
“처음 만난 날 그랬잖아? 잘 보니까 귀엽고 잘 생겼다고?”
“제가 봐도 잘 생기셨는데요. 정인 씨.”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대신 식사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딱히 정해진 건 아니거든요.”
“그럼 모든 일정은 형수님에게 맞춰 드릴게요. 괜찮지 지영아?”
지영이가 쳐다본 나의 눈빛에서 절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어. 괜찮아.”
“그러실 필요 없는데?”
“무슨 소리세요? 제가 아주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의 부인이 되실지도 모르는데 잘 해드려야죠. 안 그래요. 형님?”
“너 왠지 이빨을 갈면서 아주 강하게 발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그럴 필요 없어.”
“너무 거절하지 마세요. 형님. 형수님은 좋아하시는 게 뭐에요?”
“책 읽는 거요?”
'아버지답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으세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요.”
“아 그럼 LP 카페 좋아하시겠다.”
“네 정말 좋아해요.”
“발산역 근처에 노르웨이 숲이라고 LP 카페가 있거든요. 생각보다 분위기 있고 좋아요. 그곳으로 가시죠.”
“네.”
“그럼 결정됐으니 바로 나가시죠.”
아버지는 팔려가는 소처럼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그러나 LP 카페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고급 술과 안주를 먹으며 분위기가 한 것 무르익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내 실험실 침대에 묶여 있었다.
“깨어나셨어요. 아버지?”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게 제가 도와 달라고 할 때 좀 도와주시지 그러셨어요? 꼭 이렇게 납치까지 하게 만들어야겠어요? 이 방에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버지와 나뿐인데 말이에요.”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이것 좀 풀어다오.”
“싫은데요. 아버지의 얼굴과 몸매를 100세 할아버지로 만들어 버릴 거에요.”
“내가 좀 거절했다고 장난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
“그래서 다음부터 또 도망 다니실 건가요?”
“알았다 절대 도망 다니지 않으마.”
“약속하신 거죠?”
“그렇다니까.”
“알았어요. 한 번만 믿어 드리죠.”
침대에 묶이신 아버지를 풀어드렸다.
“이놈의 자식이. 힘이 있다고 아버지를 이렇게 학대하다니.”
“왜 이러세요. 아버지? 지금 역사의 큰 획을 그으려고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여자나 만나고 있으면 되겠어요? 그것도 저보다 어려 보이는 딸 같은 아가씨를 말이에요? 저기 식사 준비했으니까 드세요. 속 쓰리실 텐데 말이에요.”
그 속이 그 속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식사하셨다.
“이거 정말 맛있구나.”
“그럼요. 아버지를 위해서 오늘 새벽에 한국 최고의 요리사에게 직접 주문해 만든 음식들인데요. 당연히 맛있어야죠.”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을 느끼셨는지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식사를 다 하신 후 나에게 물었다.
“그래 뭘 도와주면 되냐?”
“지니의 성능을 올리려고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요. 제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인간 DNA 방식을 이용한 차세대 컴퓨터 기술이거든요. 이 논문 한번 보세요.”
아버지는 신중하게 논문을 확인하셨다.
“인간의 DNA에 정보를 기록하는 것처럼 정보를 담고 싶다는 말이구나. 거기다 뇌에 능력을 컴퓨터로 만들고 싶고?”
“네 맞아요. 지금 이 방에 3배 정도를 지니 시스템으로 만들어 사용 중인데 아직 성능이 모자라거든요. 그래서 컴퓨터 기술을 끌어올려 보고싶어요. 아버지 이론을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니가 특정 분야에 발달하여 있지만, 그 외 부분은 상당히 취약하거든요.”
“무슨 이야기인 줄을 잘 알았다. 그럼 제일 먼저 뇌를 만들어 보면 되겠구나.”
“뇌를 만들어요?”
“그래. 너는 직접 뇌를 볼 수 있으니 생물학적 뇌가 아닌 물리학적 뇌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인간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신호는 전기 신호니까.”
“예 알았어요”
원소 방에 들어가 아주 작은 뇌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됐어요?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죠?”
“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니 이 뇌의 신호가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건 네가 연구해서 처리해야 할 부분이야.”
“컴퓨터는 0과 1로 신호를 주고받잖아요? 그럼 뇌도 같은 방식으로 주고받을까요?”
“그것도 네가 밝혀야 할 과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0과 1은 아닌 것 같다. 눈으로 확인된 영상이나 귀로 듣는 소리,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순식간에 기억나는 것은 0과 1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그럼 아버지의 뇌를 좀 봐야겠네요.”
“노트북 하나를 다오.”
“왜요?”
“효율적으로 실험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이거 사용하세요.”
아버지는 모니터 화면에 사과를 띄워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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