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 (2)
침입 (2)
정진기가 보여 준 기라는 것은 확실히 지금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가 보여준 것들을 지금 당장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이곳에는 장비가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집으로 정진기를 데리고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 집은 나를 숨길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기에 누구에게도 노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정진기를 이용한 실험은 접기로 했다.
대신 이곳에서 3일을 더 지내며 기라는 것을 느끼고 설명을 들었다.
그에게 기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의 몸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며칠 동안 배운 거라고는 기의 운용법밖에 없었다.
“단지 며칠 배운 것으로 몸이 이렇게 바뀐다고?”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몸에 흐르는 에너지가 뭘까?”
기는 아니라고 했으니 다른 미지의 에너지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정진기가 알려준 기의 운용법으로 흐름이 느껴졌고 미미하게나마 제어할 수 있었다.
기는 아니지만 특별한 에너지.
“이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에너지가 나에게 활력을 주고 있어.”
내 몸에 그런 에너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길 리가 없었기에 에너지가 생길만한 일들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다.
불현듯 10년 전 그곳에서 도망치기 전날 아버지가 새벽에 잠자는 나를 깨우신 후 내 팔에 주사한 약물이 생각났다.
“이것은 기억력을 높여주기 위해 내가 개발한 약물이다. 아직 인체 실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많은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받은 제품이야.
이 약물이 너의 기억력을 증가시켜 줄 거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을 거야. 네가 비밀을 풀기 전까지는 말이다. 팔을 걷어라.”
그 주사를 맞고 특별히 기억력이 좋아진 것 같진 않았다.
“왜 지금 당장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가 주신 USB 메모리가 생각이 났다.
“그것 말고라도 아버지가 연구한 내용을 보면 상당히 심도 있는 연구를 하셨을 텐데 USB 메모리에 저장된 자료들은 내가 충분히 예측할 만한 자료들만 들어있었어.
아버지가 나를 탈출 시기키 위해 너무 급하게 나오시느라 더 많은 자료를 USB 메모리에 담지 못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USB 메모리를 만지작거리던 내 눈에 지워져 잘 보이지 않던 용량 표시가 보였다.
지금이라면 512G짜리 USB 메모리도 50만 원 아래의 가격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10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G 단위 USB 메모리가 아주 고가로 판매되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M 단위 USB 메모리가 판매될 때였다.
그런데 당시에 만든 128G 메모리를 내가 들고 있다.
이 메모리는 주문 제작을 하지 않으면 구할 수도 없는 아주 특별한 물건이었다.
거기다 이 USB 메모리는 특수하게 만들어져 어떠한 외부 충격에도 내부의 자료가 유실되지 않게 만들어진 제품이다.
물론 아버지가 USB 메모리를 구매할 때 본인 돈으로 구매하시지는 않으셨겠지만 '왜 이렇게 큰 용량이 필요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이 안에 들어있는 자료의 총 용량은 몇백 M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큰 용량을 가진 메모리를 왜 구매하신 거지? 혹시?”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았다.
파티션 정보를 확인해보니 총 128G 용량의 메모리 중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2G뿐이었다.
“어 이상하네? 나머지 126G의 용량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
나는 USB 메모리 안에 숨겨져 있던 암호화 된 파일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떠한 프로그램도 이 파일을 열 수가 없었다.
“당연한 얘기야. 나라도 중요한 파일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거야. 하물며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온 실험에 관련된 파일을 그냥 두실 리가 없어.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해 암호를 걸었을까?”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에 파일을 분석해 보았지만 일치하는 파일 형식을 찾지 못했다.
“설마 아버지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 파일을 암호화하신 건가?”
그날부터 AI 프로그램인 지니를 이용해 USB 메모리를 분석했다.
아버지보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기에 쉽게 암호를 해독할 줄 알았지만, 한 달 동안 겨우 파일의 형태밖에 알아낼 수 없었다.
내가 사용하는 AI 프로그램은 분석 및 암호 해독, IP 추적, DNA 분석 등 인간이 하기에는 지루하고 단순한 일들을 시키기 위해 9년 전에 만든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자료들이 늘어나면서 AI도 계속 업데이트했고 지금은 간단한 대화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다만 메인 서버가 성능이 낮아 높은 지능을 가지진 못했다.
24시간 내내 AI가 암호를 푸는 동안 내 몸에 잠재된 에너지를 제어하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시 10일 정도가 지나자 내 몸에 있던 에너지를 아주 조금 내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나의 감각은 조금 더 민감해졌다.
20일쯤이 지나자 기억력도 기존에 비해 좋아졌고 온몸에 힘이 넘쳤다.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빨라졌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이건가? 그런데 왜 주사를 맞고 나서는 반응이 없다가 1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반응하는 거지?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말씀을 하셨으니 분명히 실험에 성공한 것이 확실한데 관련 자료가 없단 말이야?
그날 아버지가 이에 관련된 힌트만 주셨어도 지금보다 진도가 더 빨리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이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따랐으나 의문을 푸는 방법이 없었기에 암호화가 풀릴 때까지 기를 제어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AI 프로그램이 나에게 신호를 주었다.
“드디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파일의 암호를 풀었다.”
바로 파일을 확인해 보았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실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화면에 보이는 아버지의 등 뒤로 많은 동물이 우리 안에 가둬져 있었다. 그중 실험용 쥐를 한 마리 꺼내더니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방에다가 넣었다.
“무슨 실험을 하시려는 거지?”
이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 실험은 고체가 아닌 생명체가 여러 가지 힘을 받았을 때 몸의 일부가 변화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만약 이 실험으로 인해 생명체가 고체처럼 물질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인간은 이제 생존을 위해 지금처럼 살아갈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럼 실험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황당한 말이었다.
생명체에 여러 가지 힘을 주게 된다면 죽는 게 당연했다.
한데 아버지는 이 당연한 진리를 위배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10년 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을 위해 시간을 낭비했나? 란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보고 있는 동영상을 끄고 같은 폴더에 있는 마지막 동영상을 실행시켰다.
아버지는 실험용 쥐를 실험실에다 넣은 후 기계를 작동했다. 처음 본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실험용 쥐가 죽어갈 거로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서서히 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지? 진짜 성공하신 거야?”
아버지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말씀하셨다.
“역시 예상대로 생명체가 위협을 느끼자 고체처럼 돌로 변하고 있다. 이전 실험에서는 세포 일부만이 돌로 변하였지만, 지금은 실험용 쥐 자체가 돌이 되었다. 압력을 좀 더 가해보도록 하겠다.”
아버지가 실험실의 압력을 가하자 쥐는 돌보다 좀 더 딱딱한 물질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고 아버지가 서서히 압력을 풀기 시작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지자 실험용 쥐는 천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는 바와 같이 위험이 사라지자 쥐는 모든 세포를 변화시켜 원래의 형태대로 모든 세포를 복구시켰다. 같은 조건과 같은 물질로 실험을 수천 번 진행하였지만, 이 쥐 한 마리만이 온전하게 살아난 것이기에 이 실험은 더 많은 시간과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실험에 실패한 쥐들도 신체 일부가 지금 본 것처럼 고체로 변화된 것이 발견되었기에 모든 데이터를 규합하여 원인을 찾을 예정이다. 앞으로 원인을 찾아 성공률을 높일 예정이며 그 후 다른 개체로 실험하려고 한다.”
나는 다른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아버지는 본인이 만든 약물을 토끼와 개, 돼지, 원숭이 등의 동물들에 주사한 후 실험체들을 적외선, 자외선, 가시광선,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자기장, 방사능 등에 노출된 방에다가 넣고 실험을 하셨다.
대부분의 실험체가 보기에도 잔인할 정도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들이 촬영되어 있었고 실험하는 장면은 일자별, 시간별, 종류별 순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원소들을 모으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다.
보통은 중성자와 양성자, 전자의 개수로 물질을 형성하는데 외부에서 강한 힘으로 이 원소들을 모으거나 분리하게 되면 물질이 변하게 된다.
말은 쉽지만, 너무 작은 단위이기에 이 물질들을 제어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 실험은 원소를 분리하고 재결합하는 것이기에 이 과정에서 생명체는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실험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압력에서 살아남은 실험체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몸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어서.
말이 되지 않는 이 일로 인해 몇 가지 가능성이 생겼다.
영상 파일들을 훑어보다가 인간이라고 되어 있는 폴더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 파일을 실행시켰다.
“지금까지 실험을 통해 생명체들도 자신의 생명이 위급해질 때 몸을 고체화시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변화된 세포를 분석해 약물로 만들었고 이 약물들을 통해 좀 더 지능이 높은 실험체들도 변화되는지 연구할 예정이며 그 첫 번째 실험체로 나의 몸에 내가 개발한 이 약을 주사한 후 경과를 지켜볼 생각이다.”
그 말을 끝낸 아버지는 본인의 팔에 실험 약을 주사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 이후 동영상은 아버지 본인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맨 마지막 동영상을 확인해 보았는데 아버지의 몸은 특별한 징후나 변화가 없어 보였다.
“나의 몸에 주사한 약물 실험은 실패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 세포들의 변화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변화가 오는 것 같지만, 아직 그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실험을 해야겠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제약 회사에서 나를 퇴출하려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실험 장소를 찾기 전까지 이 실험을 보류하려고 한다.”
그 이후의 영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내 몸에 주사한 약이 미완성된 약이란 말인가? 설마 아버지가 나를 실험체로 사용한 거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실험체로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
아니야. 영상을 보면 아버지가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직접 물어보자.”
이 영상의 암호 해독하고 있던 얼마 전 마온 제약의 CCTV를 감시하고 있던 지니가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냈다.
9년 넘게 감시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기에 돌아가신 줄 알았지만, 아버지는 누군가 밀고 있는 휠체어에 앉아 마온제약 밖으로 나오신 것이다.
아버지가 조폭에게 제약 회사를 만들자고 제안하자 조폭의 두목이 “마약을 온 누리”에 라는 회사명을 이야기했고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마온 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제약 회사를 차렸다.
이 어이없이 만들어진 회사가 현재 시총 1조가 넘는 큰 회사로 발전한 건 아버지의 힘이 컸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혹시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큰 이득이라 생각해서인가?”
어쨌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거기다 아버지를 구출한다면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들을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이제 아버지를 구출할 방법만 생각해내면 돼. 아 그렇지. 아버지가 주신 생화학 폭탄이 있잖아”
아버지가 주신 생화학 폭탄을 분석해 놓은 자료를 찾았다.
아마 14살 때였을 거다.
아버지가 주신 숙제를 풀다가 너무 진도가 나가지 않자 아버지가 주신 바이러스를 분석하기 위해 앰풀을 조심히 깨트린 적이 있었다.
성분 분석이 끝나고 그 상태로 농사를 짓겠다고 밖으로 나왔는데 집 안에 있던 모든 농작물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 후 집안을 소독한다고 상당히 고생했었다.
생각보다 살상 능력이 뛰어나 실수라도 이 물질이 공기 중에 퍼지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아 마비만 되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두었던 것이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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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재미있는 글로 독자님들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 놓고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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