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직전에 얻은 깨달음 (2)
죽음 직전에 얻은 깨달음 (2)
정연이를 따라 집으로 이동했다.
정연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들에게 다시 잡혔다는 생각보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정말 간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이 간사함이 첫 번째 죽음의 위기에서 나를 살아남게 도왔는지도 몰랐다.
결국, 저 사람들은 내가 죽는 것보다 나를 살려 내가 가진 정보를 취득하는 게 더 중요했을 테니까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었니?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이 사람이 내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만으론 아버지와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진짜 아버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겠구나'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난 후 더 신경 써서 그의 목소리를 분석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온종일 길을 잃고 헤맸으니 오빠 배고프겠다. 내가 빨리 밥 차려줄게”
“그럼 나 화장실에 좀 데려다줘. 밥하는 동안 좀 씻어야겠다.'
“알았어! 이리와”
집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만약 아까 그 폭발음이 내 집이 터지는 소리였다면 이 짧은 시간에 집을 다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연이가 나를 화장실로 안내해 주었고 내가 벗은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손을 더듬으며 내 칫솔을 찾았다. 분명 내 칫솔이었다.
'그렇다면 집이 폭발한 것이 아니었나 보네. 그럼 뭐가 터진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근처에서 뭔가 터질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박성민”
나는 반문하듯이 말했다.
“네?”
“일어나라고 박성민”
엄청난 고함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얼굴로 빗물이 흘러 내렸다.
'어? 꿈이었나?'
그때 무언가에 번개가 맞은 것처럼 엄청난 소리가 내 근처에서 들렸고 바로 우지직 소리가 났다.
'이 근처 나무가 번개에 맞은 것 같은데?'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점차 크게 다가왔다. 생각은 짧았고 나는 곧장 앞으로 뛰었다.
쿵. 우지직. 쿵
정말 간만의 차이로 쓰러지는 나무에서 피할 수 있었다.
“헉. 헉. 헉.”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는 정말 하늘까지 나를 죽이려 하네.”
허탈하고 정말 억울했다.
그리고 바로 누가 듣든 말든 상관치 않고 소리쳤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도 잘살아 보려고 했단 말이야. 엉엉.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하고 싶었던 것 하나도 못 하면서 10년이나 숨어 지냈던 게 너무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처럼 학교나 다니면서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을 거야. 남들은 지금 내 나이에 대학교에서 연애하면서 즐겁게 지내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처음이었다.
이렇게 목 놓아 울어본 것이 말이다. 어머니가 날 버리고 도망갈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비가 너무 많이 와 내 눈에서 떨어지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빛줄기가 점점 더 거 세져 갔다. 꼭 내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평범하게 살 거야. 절대 화학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그때 또다시 내 머리 위에 번쩍였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가 쓰러지고 10초 정도가 지나자 아주 강한 천둥소리가 났지만 나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성민 씨, 성민 씨, 정신 좀 차려보세요. 성민 씨”
누군가 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려 하였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이곳에 누워 있는지 생각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였지만,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떠지지 않는 아침처럼 모든 것이 몽롱했다.
내 머릿속에 남은 마지막 기억은 번개 맞은 나무를 피하고 울고 있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기억이 끊어졌다.
'설마 그 와중에 번개까지 맞은 거야? 이런 미친'
“하하하”
미친 듯이 웃었다.
“왜 그래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성민 씨?”
내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자 정진기가 걱정되는 듯이 물었다.
“네 괜찮아요. 너무 기뻐서 웃는 거예요. 그런데 절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안 나타나길래 직접 찾으러 다녔어요.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걱정도 됐고요. 성민 씨가 설명한 대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찾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나마 시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에 번개가 내리치더라고요
그리고 10분쯤 지났나? 같은 자리에 다시 번개가 내리치더군요. 전에 제가 말했죠? 기가 모이는 곳이 느껴진다고요. 성민 씨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조금 특별해서 번개가 계속 같은 자리만 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쪽으로 와 본 거예요. 그런데 바로 오지는 못했어요. 그 후로도 같은 자리에 계속 번개가 내리쳤거든요”
“그럼 제가 계속 번개에 맞은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한 시간 넘게 같은 자리로 번개가 내리쳤으니까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많이 걱정했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네요. 정진기 님을 만난 것도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었나 보네요
그런데 움직일 수 있겠어요?”
“네. 움직일 수 있어요.”
“충격받으시겠지만 지금 이야기 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눈이 안 보인다고 하시니.”
“또 뭐가 있나요?”
“지금 온몸이 화상을 입었어요. 몸 전체가 화상으로 일그러졌거든요. 얼굴도 그렇고 온몸이요.”
“네?”
번개를 그렇게 맞았는데 살아난 것만으로도 용했다.
'그래 어쩌면 더 잘된 것일지도 몰라. 나의 신분이 사라진 거잖아? 이제 지문도 사라졌고 내가 누군지 밝히지만 않으면 나는 박성민이 아닌 거야'
이런 일을 많이 당해서 그런가? 정진기의 그 말을 듣고도 무덤덤했다.
“괜찮아요.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거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네요. 그런 마음이 정신을 강하게 하거든요. 좋은 자세에요”
일어나려고 했지만 잘 일어나지지 않았다.
정진기 씨의 도움을 받아 몇 번을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부는 일그러졌을지언정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하늘에서 내 소원을 들어준 것이야.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다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살자.'
“저 지금부터 성민이란 이름 대신 정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병원에 입원할 때도 정인으로 사용해 주시고요”
“그러도록 할게요. 그나저나 걷는 건 안 되겠어요. 119에 신고해서 헬기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죠”
“그건 안돼요. 절 찾는 사람들이 이곳에 쫙 깔렸을 거예요”
“그래도 이 상태로는 이동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화상은 시간이 생명이라고 들었거든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온몸이 너무 아팠다.
“제가 잘 둘러 대 줄게요. 이 산 전반에 번개가 하도 많이 내려쳐서 번개에 맞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그럼 부탁합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119 측에 꼭 당부해 놓을게요”
정진기가 119에 신고를 하고 난 후 30분 정도가 지나자 헬기가 나타났다. 그 헬기를 타고 한국대 병원으로 이동했다.
전신 3도 화상으로 인해 수개월 동안 18번이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동안 정진기가 병원에 관련된 모든 일 처리를 도와주었다.
정진기는 자연의 기라는 수련원을 운영하는 원장이었다. 나이는 48살이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름 이쪽 분야에서 알아주는지 회원도 생각보다 많았고 그들이 도움을 주어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생면부지인 나로 인해 경제 활동에 타격이 큰데도 불구하고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매주 2번 이상 왕복하며 나를 간호해 주었다.
경찰 조사에서 나를 자연의 기 회원이라고 이야기해주었으며 같이 산행 중 번개를 맞아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진술했다.
“정진기 님을 만나 생명을 다시 얻었어. 그분이 그 자리에 안 오셨다면 내가 번개를 맞아 살았다 하더라도 아마 그곳에서 굶어 죽었거나 또 다른 이유로 살아남지는 못했을 거야. 어쨌든 안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후로도 나를 세세하게 챙겨주시고 경찰 조사에서도 나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셨는데 고마움을 전할 수가 없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 고마움을 전달할 방법이 생각났다.
“그래 내 재산의 반을 드리자. 어차피 그때 죽었으면 내가 가진 재산 모두 날리는 거였잖아. 5천억도 죽을 때까지 다 쓰지 못해. 그런데 안 받으시면 어쩌지? 아 그래. 지금 하시는 수련원을 좀 더 큰 게 하라고 권해드리면 받지 않으실까?”
다시 생각해보니 수련원이야 100억만 투자해도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론 부족해. 그러지 말고 사회 봉사단체를 만들게 해드려도 될 것 같은데? 아 그래 기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익혀두는 것이 좋다고 했어.
그렇다면 사학재단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관련 법령을 좀 찾아봐야겠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학교 교육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재단을 만들면 5천억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땅도 한 100만m² 정도는 있어야 이것저것 건설해 넣을 수 있을 듯한데? 부족하면 내 돈도 밀어 넣자. 솔직히 100억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잖아. 정 뭐하면 벌어서 쓰면 되지. 자 그러면 이 부분은 이 정도면 됐고. 호칭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내가 아무리 혼자 살아서 안하무인이라고 해도 생명의 은인에게 그것도 나보다 28살이나 많은 연장자에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이름에 님을 붙이고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예의가 없어 보였다.
“사부님? 좀 가식적이지 않나? 삼촌? 이건 존경심이 없어 보여. 숙부? 그래 우리 아버지보다 몇 살 아래 시니까 숙부님으로 하자. 한데 숙부는 결혼해야 얻는 호칭이잖아? 에이 모르겠다. 정 뭐하면 결혼도 시켜드리자.
그건 그렇고 지니가 있어야 이 일을 시키는데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나간 후에 천천히 진행하자. 지금 당장은 전신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아무것도 못 하잖아. 미라도 아니고 이거 원.”
번개를 맞아 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맞은 번개로 인해 한쪽 안구의 신경이 살아난 것이다. 한국대병원 의사들은 내 눈도 번개를 맞아 실명한 줄 알고 검사를 진행하였는데 오른쪽 눈은 치료할 수 없지만, 왼쪽 눈은 치료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단지 안구 기증을 받아야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긴 것이다. 피부 이식 수술을 25번째 받을 때 한국대 병원에서 코마 상태인 환자가 나타났고 그 사람의 유지를 받들어 몸 전체를 기증해 주었다.
때마침 병원에 안구를 기증받을 사람이 둘밖에 없어 그 사람과 내가 한쪽씩 나눠 기증받을 수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나 안대를 풀었다.
안구에서 붕대를 푸는 날 나는 다시 앞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물론 한쪽뿐이었지만 다시 불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축복인 줄은 그 전까지 미처 몰랐었기에 나는 이 눈을 소중히 하려고 안경을 썼다.
그렇게 한국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날 한국에서 알아주는 성형외과를 찾아가 다시 입원했다.
그곳에서 전신에 화상 흉터를 없애는 대수술을 받았다. 화상으로 인해 손상된 피부색과 고르지 못한 피부를 수술하는 것이었다.
담당의는 나의 놀라운 회복력에 감탄했다.
이 정도 대수술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의 회복력이 워낙 좋아서 단기간 내에 성형이 모두 끝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년이 넘는 기간을 병원에서 보낸 후 정진기가 있는 자연의 기 수련원으로 이동했다.
“오셨어요?”
나는 다짜고짜 정진기에게 큰절을 했다.
“아니 왜 이러세요?”
정진기가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였지만, 나의 뜻을 굽히지 않고 큰절을 했다.
“살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연이 있어서 도운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런 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감사 인사를 이렇게 드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그 정도면 됐습니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그리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인연이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저 바쁘지 않으시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은데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보은을 하기 위해 우리는 정진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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