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직전에 얻은 깨달음 (1)
죽음 직전에 얻은 깨달음 (1)
지니에게 모든 명령을 전달하자 정진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전에 무작정 찾아뵙던 사람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아 그 독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친구로군요”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이런 부탁드려 죄송하지만, 저 좀 살려주세요. 지금 저를 죽이려는 자들이 저를 찾고 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혼자 살다 보니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무례한 것은 알지만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정진기가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저들이 제 눈을 실명시켜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전화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6개월 동안 저에게 아주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도와주십시오. 지금 제 상황이 정말 위급합니다.”
“갑자기 이런 전화를 받으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때 만난 당신은 나쁜 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안 좋은 일에 연루되었나 보군요. 위기에 처하셨다니 그냥 넘길 수는 없고 제가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어디로 찾아가면 됩니까?”
정진기에게 내가 있는 현재 위치와 내가 올라가고 있는 방향 그리고 어느 곳에서 올라와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정진기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마을 쪽으로 오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곳에 이미 저를 잡겠다고 사람들이 지키고 있을 겁니다. 혹시나 하여 드리는 말씀인데 누군가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절 찾는 것을 포기하시고 돌아가 주십시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고 눈도 안 보이시는데 정상까지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 길을 잃지만 않는다면 지금 있는 위치에서 정상까지 4시간이면 올라갑니다. 혹시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이틀 안에 저를 찾지 못하신다면 그냥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를 찾겠다고 산에서 소리쳐 부르지 마십시오. 정진기 님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조심히 피해서 정상으로 올라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감사는 제가 성민 씨를 만나서 직접 듣기로 하죠”
“예 알겠습니다.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전화를 끊었다.
이제 기억을 최대한 살려 정상까지 올라가 정진기가 나타날 때까지 숨어 있기만 하면 된다. 지금 서 있는 이 위치에서 정상까지 거리를 꼼꼼히 기억해낸 다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전 나는 주위에서 나무를 하나 주어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했다. 이곳으로 등산하러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정말 가끔 등산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길을 하나 만들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누가 봐도 동물 길처럼 보였다.
거기다 최단 시간 내에 산을 넘기 위해 지형을 무시하고 만든 길이기에 경사도 심했다. 손에 든 나무를 의지해 조심히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를 그렇게 올라가고 있을 때 뒤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
모든 백업을 완료되자 집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지니가 백업을 모두 한 모양이야. 단 한 번의 실수로 10년간 살던 내 아지트가 날아가 버렸네'
이 집에 사는 동안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올 것을 대비해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인터넷을 보고 폭발력이 강한 가스와 화학물질 등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어 설치해 놨다.
처음에는 좀 조잡했지만, 아버지를 구하러 가기 전에 혹시 이곳이 노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폭탄들을 강화해 두었다. 한 곳이 터지면 연쇄 반응으로 순식간에 집 전체에 화염이 휩싸인다.
특히 정보를 보관하고 있던 지하실이 제일 큰 피해를 주게 설계했다. 그곳에 정보는 절대 외부로 나가면 안 됐으니까.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큰데? 저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 아니겠지? 혹시 산불이라도 나게 되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돼버리잖아? 아 젠장. 이번에도 내가 또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
아까 내 아버지 행세를 했던 놈이 혼잣말 한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없어진 것을 아직 보고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너무 큰 소리와 산불로 이목이 쏠리면 이곳에 다른 감시자가 올 것이고 처음에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집을 확인하다 보면 내가 도망간 것을 알게 될 거다.
이곳은 제일 가까운 마을에서 5Km 떨어져 있지만,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 산불이 나면 그전에 내가 먼저 타 죽을 수도 있잖아? 그 생각을 못 했네?'
길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나는 발을 헛디뎌 밑으로 굴러버렸다.
'아 놀라라. 앞이 안 보이니까 정말 미치겠네'
다시 일어나 길을 잡았다.
'내가 예상한 지점이라면 지금 구른 것을 생각해 이쪽이 내가 가던 방향일 거야. 얼마나 길에서 이탈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실수하면 안 돼. 더 조심히 이동하자'
한 번의 실수.
그 실수로 나의 길은 전혀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출발은 같았다 하더라도 1도의 각도만 틀어져도 전혀 다른 곳으로 도착하는데 나는 자그마치 10도가 넘는 각도를 꺾어버렸다.
그곳은 바로 절벽이었다.
다행인 것은 떨어지는 절벽이 아니라 오르는 절벽이었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위치가 어딘지 모르겠어. 아까 넘어지고 나서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
정말 이렇게 시력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하지 말자. 이 상황에서 긴장하게 된다면 더 큰 실수를 하게 될 거야'
집에서 나온 지 꽤 된 모양이었다. 배에서 주책없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저주인가? 설마 나도 이곳에서 굶어 죽는 것은 아니겠지? 아냐 이런 생각 하면 절대 안돼. 난 살 수 있어. 긍정적인 생각만 하자. 나를 도와주러 정진기 씨가 오고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자 다시 용기가 솟았다.
'내가 전화한 지 얼마나 지났지? 한 2시간쯤 지났나?'
설상가상 싸늘한 바람이 불더니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주위가 습해지기 시작했다.
'안돼. 지금 이 상황에서 비까지 온다면 길 찾기가 더 어려워질 거야. 우선 움직이자. 비가 오더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
나는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내 앞에 돌이 만져졌다.
'이곳이 그때 봤던 그 절벽 쪽인가?'
그렇다면 나는 왼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만약 그곳이 아니라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자꾸 나의 기억을 부정하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해. 믿자. 나의 기억을 믿고 움직이자'
절벽을 손에 대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을 때 내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이 비로 인해 내가 이 숲에서 타 죽는 일은 없어진 거야. 또한, 비가 내려 내 냄새를 씻어주니까 추적자들이 개를 데리고 와도 날 찾을 수 없어'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가졌지만 바로 따라오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건 배고픔과 추위로 인해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 생각을 던져 버리기 위해 정진기 씨를 만나 구조되는 상상을 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오른손에 대고 있던 돌벽이 사라졌다.
'돌벽이 사라졌다는 것은 다시 오르막이 이어진다는 건가?'
나는 다시 위로 올라갔다.
'무작정 위로 올라가면 산 정상에 등산로가 나타나게 될 거야. 그곳까지만 이동해도 정진기 씨와 만날 확률이 높아져'
그때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이런 집이 폭발해 버려서 정진기 씨랑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정진기 씨가 무전기를 들고 왔을 리도 없고. 아 젠장. 눈이 안 보인다고 머리까지 안 돌아가네. 왜 이렇게 멍청해졌지?'
나의 행동에 다시 한번 후회를 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되돌려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우선 올라가고 나서 생각하자'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들고 있던 지팡이에 바닥이 짚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올라갔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빨리 이동했어도 떨어질 뻔했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선 후 자리에 앉자 엎드렸다.
지팡이를 들어서 밑으로 내려보았다. 팔과 지팡이의 길이를 모두 합쳐 250cm 정도 되었는데 바닥에 걸리는 것이 없이 허공이었다.
지팡이를 다시 올리고 옆에 있던 돌을 주워 바닥으로 던져 보았다. 돌이 맞으면서 떨어지는 소리가 3~5초 정도 들렸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로 가늠해 보면 최소 10m 이상의 절벽이야. 이런 곳이 있었던가? 왜 갑자기 절벽이 나왔지? 분명히 난 한 방향으로만 이동했는데 혹시 내가 잠시 쉬는 사이 내가 방향을 틀었나?'
정말 심각하게 내가 온 길들을 다시 되짚어 생각해봤다.
'지금 내가 올라온 시간이 최소 20분 이상. 그러면 1분에 여섯 걸음을 움직였다고 해도 60m는 이동했을 거야. 그것도 오르막으로만 올라왔잖아? 내가 매번 다니던 길에서 봤을 때는 오른쪽으로 보이던 절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혹시 내가 누워서 잤던 곳이 내가 생각했던 그곳이 아니었나? 출발 지점이 다르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어.'
한번 꼬이기 시작한 기억으로 인해 나의 위치는 완전히 소실되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모르겠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기에 불안감도 커졌다.
'고민하지 말고 다시 내려가자. 이곳에 있어봤자 해결되지 않아. 앞이 확실히 절벽이라면 내가 분명히 잘못 올라왔을 거야. 문제는 내가 왔던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건데 어쩌지?'
그래도 나는 밑으로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왔다.
비로 인해 온몸이 젖었고 등과 엉덩이는 진흙까지 덕지덕지 붙어 버렸다. 올라올 때는 10분이 넘게 걸렸는데 내려갈 때는 3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내려왔다고 생각해 아까 마지막으로 만졌던 절벽을 찾았다. 나는 손을 뻗어 올려 바위를 더듬어 봤다.
'내 손 위까지 돌이라서 절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냥 바위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생각했던 절벽이 아닐 수도 있어. 조금 더 이동해 보자”
될 수 있는 한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방위만 알아도 내 위치를 알 수 있겠는 데 정말 답답하네. 햇볕이라도 들어야 방위를 알 수 있는데 비까지 오니. 그나저나 슬슬 몸이 추워지네'
절벽을 내려오면서부터 빗줄기가 굵어졌고 그 비를 계속 맞아서 온몸이 으슬으슬하며 한기가 느껴졌다.
'안 되겠다. 잠시 자리를 잡고 비라도 피하자.'
그 자리에 나무 두 개를 꼽았다.
다시 이 자리를 찾아왔을 때 내가 가던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몇 시간 전에 올라올 때 내가 왔던 방향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무를 꼽은 방향을 기준으로 6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얼마 이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무를 만났다. 나무 밑에 앉아 등을 기댔는데 춥고 배가 고파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오빠 한참 찾았잖아? 어디 갔었어?”
“어?”
내 앞에 정연이가 서 있었다.
“어. 아···.”
“내가 얼마나 찾은 줄 알아? 이 산을 다 헤매고 다녔다고. 그런데 이런 곳에 있으면 어떡해? 길을 잃은 거야?”
“어. 산책 나왔는데 길을 잃어서 계속 걷다 보니 비가 오더라고 연락할 방법도 없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앉아 있었지? 그런데 나 어떻게 찾은 거야?”
“어떻게 찾긴. 마을로 내려간 줄 알고 마을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오빠를 본 사람이 없더라고. 혹시나 해서 다시 올라와 등산로를 뒤졌지. 그런데 비가 오는 거야. 다행히도 이 비로 인해 땅이 물러져서 그런지 오빠 발자국이 이쪽으로 나 있더라고. 그거 보고 따라왔어”
“아 그랬구나”
“이 꼴은 또 뭐야? 넘어졌어?”
“어 집에 가려고 이동하는데 비가 와서 바닥이 미끄럽더라고. 그래서 많이 넘어졌어. 그런데 집은 괜찮아?”
“그럼 괜찮지. 아저씨가 얼마나 걱정하시는 줄 알아? 새벽에 사라지고 나서 오빠 찾는다고 정신없었다고”
정연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어 그럼 집이 멀쩡하다는 소리잖아? 그럼 아까 들었던 그 소리는 뭐였지? 분명히 폭발 소리였는데? 설마 나를 데려가려고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집이 폭발한 것을 못 본 건가?'
반나절을 고생 고생하며 헤맸지만 결국 정연이에게 발견되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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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재미있는 글로 독자님들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 놓고 글을 쓰겠습니다.
2018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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