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조언 (2)
아버지의 조언 (2)
“이제 나는 사과만 생각할 거다. 지금부터 내가 보는 영상이 바뀔 때마다 내 뇌에 신호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고 연구해라”
“예 알았어요”
아버지와 함께 역사의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르는 연구를 시작했다.
나에게 하루를 혹사당해 파김치가 되신 아버지는 영양보충을 하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호텔 식당으로 가자고 했으나 인사동 인근에 있는 오래된 설렁탕 집으로 데려왔다.
“이런 구석에 식당이 있네요?”
“내가 40년 전에 자주 들리던 곳이다. 할머니가 끓여 주신 설렁탕이랑 비슷한 맛을 내는 곳이지.”
“가게가 오래됐나 봐요?”
“한국에 몇 안 되는 100년이 넘은 가게인데 중간에 주인이 한번 바뀌고 상호도 바뀌었지만, 내가 처음 맛본 40년 전과 거의 비슷하다. 맛을 유지하려면 재료가 바뀌지 말아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물과 동물을 키우는 방식이 달라지기에 맛을 유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너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는 이 맛을 40년 후에 기억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다.”
“글쎄요? 4년 전에 아버지를 구하러 마온 제약으로 들어갔을 때 성우가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아버지인 줄 착각했거든요. 10년밖에 안 됐는데도 기억을 못 하는데 40년이면 이 맛을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맛이 100년 전의 맛이라고 생각해 찾아온단다. 저 뒤를 보아라. 6~70대가 많이 앉아있지?”
“그렇네요.”
“왜 그럴 거로 생각하느냐?”
“뇌에 맛이란 느낌이 남아서요?”
“인식 탓이란다. 인간은 뇌에 강한 인식이 박히면 웬만해서는 그 인식이 변하지 않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것도.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모두 다 같은 이유 때문이지. 네가 새로운 방식을 못 만드는 이유가 이 이 인식이란 것에 갇혀 있어서다. 네가 만든 지니를 어떻게 생각하니?”
“제가 생각해도 잘 만든 것 같아요. 성능이 정말 좋거든요.”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한다면 만들 수 있겠니?”
“아니요. 그때는 너무 절박해서 만들었는데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한다면 힘들 것 같아요.”
“만약 지금부터 지니에게 인간의 습성을 익히게 한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의 획을 그을 수도 있다. 너는 인지를 못 하겠지만 지니는 그만큼 성능이 뛰어나거든.”
“그래도 지니가 아직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데요?”
“그건 인간의 습성을 아직 익히지 않아서다. 네가 아직 알려주지 않았겠지. 인공지능도 인간의 인식을 프로그램화해서 체계화시킨 거다. 만약 네가 지니를 프로그램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면 지금 고민하는 것도 한 번에 해결했을지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는 뇌가 꼭 머리에 있지 않은 것들도 있고, 아예 뇌가 존재하지 않는 생물도 있다. 반대로 몸 전체가 뇌로 된 생명체도 존재하지. 그런데도 그 생물체들은 나름 잘 살아가고 있어. 인간 중에도 본인의 뇌가 거의 다 소멸했는데 평생 모르고 잘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은 뇌의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인식으로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내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실험을 했지만, 결국 내가 만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원래 자연에 있던 것들을 아주 조금 발견했을 뿐이지.”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아버지.”
“이해했다니 밥이나 먹자.”
아버지와의 대화로 인해 막막했던 안개 속에서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
한편 삼별 전자에서는.
“그래 내가 준 USB 메모리는 분석을 잘하고 있나?”
갑자기 찾아온 이건호 총수로 인해 회의가 잠시 끊겼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예. 지금 연구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냐고요.”
“가짜는 아니었나 보군?”
“그럼 회장님도 긴가민가하시고 구매하신 겁니까?”
“그놈을 내 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끼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많은 주식을 그놈에게 줄 이유가 없지.”
“어떤 놈인데 회장님께서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십니까?”
“앞으로 이 삼별에 큰 도움이 될 놈이지. 그놈에게 연락 좀 넣어 봐.”
“예 회장님.”
잠시 후 비서가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잘 지냈는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르신도 잘 지내고 계시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무슨 일이 있었겠는가?”
“어르신이 주신 주식과 로열티 계약서는 잘 받았습니다. 역시 하루도 안 됐는데 상당히 꼼꼼한 계약서를 보내셨더군요. 보기보다 성격이 화통하신가 봅니다. 그래서 제가 선물 하나를 더 드릴까 합니다.”
“또 뭐가 있는가?”
“제가 드린 USB 메모리 칩을 확인해 보라고 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게만 전하시면 아마 연구들이 알아들을 겁니다. 회장님 제가 지금 식사 중이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았네. 식사 맛있게 하게.”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 USB 메모리 칩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나 보군. 확인해 보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놀라운 정보가 삼별 회장과 사장에게 전해졌다.
“뭐? 그 USB 메모리 칩이 그자가 준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그럼 저쪽에서는 아직 우리가 개발하지도 못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들이 놀라고 있는 동안 회장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그놈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야. 하긴 이런 기술이 있으니 그 정도로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런데 신문 좀 분석하라고 시켰더니 왜 아무것도 안 가져와? 이수연 사장 빨리 튀어오라고 해.”
“예 회장님”
잠시 후 부랴부랴 이수연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신문 몇 장 분석하라고 했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죄송합니다. 지금도 분석 중이라.”
“신문 가져와”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각종 신문이 펼쳐졌다.
한편 식사를 끝난 후 아버지와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인간의 뇌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진정 본인 스스로 무언가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다 본인 의지대로 이렇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요?”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처인 자신이 한 이야기라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타인이 만든 인식을 고스란히 전달받으면서 무언가에 속박되어 산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만남을 끊고 자기 자신이 체험해서 직접 깨달아 얻은 내용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지.”
“어렵네요.”
“지금 하는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처음에는 화학, 과학,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결국, 종교, 민간신앙, 사회, 철학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 공부해야 했다. 내가 한 실험 중 하나를 이야기해 주마.
정액 배출자와 정액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체에서 정액을 추출한 후 정액만 가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간 적이 있다.
실험체와 정액은 분리된 독립 개체이기에 특별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한 실험인데 이 실험으로 우리의 상식을 깬 결과가 도출했다.
실험체에 전기적 자극을 주었더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정액이 격하게 반응했다.
민속신앙에 부모의 묘를 이상한 곳에다 만들면 꿈에 나타나 자리를 옮겨 달라고 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실험으로 새로운 통신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험체가 반응한다는 것 외에는 밝혀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주고받은 고통은 전기적, 전자적, 전파적인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했다. 지금의 너라면 그 비밀을 밝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제 조금 이해가 되네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없이 많은 과학이 지금 이 자리에도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1MW의 발전소를 가지고 다닐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쉽네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야기를 들었으니 앞으로 더 많은 과학력을 밝혀낼 거다.”
“알겠어요. 아버지.”
“네가 부족한 건 경험뿐이다. 넌 이미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느냐?”
“그렇긴 하죠. 거기다 직원들이 많은 아이디어를 내주고 있거든요. 그들이 주는 아이디어는 정말 획기적인 게 많아요.”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저 혹시 시간 되시면 인터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너무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주위를 보지 못하다가 그녀의 말에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네?”
“저희는 케이블 방송 TVO 인데요. 인사동에 관해 몇 가지 질문 좀 드리려고 하거든요.”
“저는 인사동에 관해 아는 게 없어서 인터뷰에 응해 드릴 수가 없네요.”
나는 그렇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서서 인터뷰한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인터뷰에 응해드리죠. 한데 TV에서 본 것보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감사해요. 그쪽도 참 잘생기셨네요. 이쪽으로 오실래요?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아버지는 설명을 듣기 위해 아나운서를 따라갔다.
'뭐야? 결국, 그거였어? 원래 아버지가 이렇게 바람둥이셨나? 아무리 봐도 지영이보다 이쁘지도 않고만.'
다음 날.
“지니야. RG 그룹에 대해 브리핑해봐.”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지니가 설명해 주었다.
“그럼 차기 RG 전자 사장은 누구로 정해졌어?”
“현재 그의 둘째 아들인 최천기 사장이 병행하고 있습니다.”
“RG 그룹 회장의 움직임은 어때?”
“전문가를 풀어 다방면으로 살인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을 죽인 대상으로 그의 가족들도 용의 선상에 올려 함께 조사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관련자를 도청·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가는 어때?”
“사고 전 107,500원이던 주가는 최천태 큰아들의 죽음과 동시에 한 번의 하한가를 맞았고 계속 떨어져 61,700대에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직도 매입하기에는 너무 비싸군. 다른 특별한 것은 없어?”
“최천태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담당 검사의 브리핑을 듣고 그들이 돌아가자 RG 그룹 회장이 “그 새끼들이 내 아들을 납치해 죽였다면 내 모든 재산을 걸어서라도 그놈들 뿌리를 뽑아 버리고 말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뭐? RG 그룹 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잡아먹기엔 자금도 부족하고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뚫고 들어갈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좋은 방법이 떠오르는군.”
잠시 눈을 감고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더라도 분노와 원한 앞에서는 침착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부분을 최대한 살려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려고 한다.
미론들이 지금 RG 그룹 회장과 그 측근들을 감시하고 있기에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뇌관이 되어 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적을 공격할 것이다.
그 후 RG 그룹 회장의 생각하고 있는 적이 누군지 알게 된다면 그 둘의 싸움을 더 크게 만들어 RG 그룹을 흔들어 볼 생각이다.
모든 생각이 정리되자 지니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다른 곳에 있는 미론들을 최소화시키고 모두 RG 그룹으로 모아줘. 이제 우리의 전쟁터는 RG 그룹이야.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감시해줘. 특히 회장 측근들을 집중적으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니에게 지시하고 1시간이 지났다.
나도 놀지 않고 그동안 최대한 많은 미론들을 만들었다. RG 그룹은 지오 전자와 같이 겨우 하나의 꼬투리로 무너트릴 수 있는 어정쩡한 기업이 아니다.
“다른 곳에 미론들을 모두 RG 그룹에 배치하였습니다.”
'이제 슬슬 뇌관을 터트리자.'
“RG 회장에게 전화 연결해줘. 지금부터 모든 내용은 음성 변조해줘.”
“음성 변조를 동작합니다.”
전화벨이 울리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아들 하나로 끝났지만, 한 번 더 나를 실망시킨다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상대는 아무 말 없었다.
“그럼 충분히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이만 끊지.”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다.
'누굴까? 누가 도대체 한국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을 건드릴 수가 있는 걸까? 아 모르겠다. 지금까지 커오면서 수없이 많은 적을 만들었을 테니 그중에 하나겠지. 지금 찔러 봤으니 조만간에 무슨 행동을 하겠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고 그때까지 지켜보자.'
역시 내 생각대로 전화가 끊어지는 순간부터 RG 그룹의 전문가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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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재미있는 글로 독자님들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 놓고 글을 쓰겠습니다.
2018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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