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 (3)
침입 (3)
“이 정도면 그들을 제압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거야. 이제 이것들을 들고 건물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아버지만 모시고 나오면 돼. 간단하잖아”
AI가 마온제약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신상을 빼냈다. 건물 안에 모든 구조물을 분석하고 준비하는 동안 한 달이란 시간이 또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착실하게 내 몸의 에너지를 제어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가 생기면 며칠씩 잠을 안 자며 집중해 연구하였기에 지금도 내 몸에 에너지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10년을 혼자 지내다 보니 생긴 버릇이었다.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2~3일만 안 자도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는데 지금은 전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에너지도 아버지가 의도하고 만드신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데?'
아버지가 생명체를 고체화시킨 것에 비하면 내가 지금까지 성공한 실험들은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연구한 내용은 수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뭐 어쨌든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작은 가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넣고 약병들을 넣을 수 있게 수선된 옷을 입었다.
이곳에 온 지 10년이 되는 동안 2번째 외출이었다.
정진기를 만나기 위해 세상에 나가보니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인터넷을 이용해 도시가 변화되는 모습은 보았지만, 실제와는 다른 게 너무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통카드와 스마트폰 그리고 화폐였다.
어렸을 때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태워줬기에 택시 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쇼핑할 때도 전화 인증을 해킹해 구매하였기에 스마트폰이 필요 없었다. 화폐가 바뀐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 인터넷을 통해 쇼핑몰에서만 물건을 구매하다가 얼마 전 정진기를 만나러 가면서 이전 화폐를 사용하였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단지 10년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말 그대로 완전 촌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준비할 것은 철저하게 준비했다. 특수 분장을 이용해 얼굴과 몸을 30대 중반의 남자로 변장한 후 등산복을 입고 산을 넘어 이동했다.
택시를 갈아타면서 마온제약 본사 근처까지 도착하여 그 근처에서 양복을 사 입었다.
10년 전에 내가 이곳을 들락거릴 때는 겨우 12층짜리 빌딩이었지만, 지금은 50층도 넘어 보이는 빌딩으로 바뀌어 있었다.
AI가 만들어준 출입증을 이용해 당당하게 마온제약 빌딩으로 들어와 가볍게 입구를 통과했다.
아버지가 갇혀 있을 만한 곳은 3곳.
그중에 한 곳으로 이동하며 주머니 속에 준비한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이제부터 몇 시간 동안은 CCTV에 보이는 모든 영상이 몇 달 전에 찍혔던 영상이 보이게 될 것이다.
출입제한 구역까지 이동하면서 아직은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았다.
'역시 내가 AI 하나는 잘 만든 모양이군. 생각보다 해킹 실력이 좋은데? 그나저나 이제 곧 첫 번째 장소에 도착하게 되니까 좀 더 신경 써서 움직이자'
손에 5개의 앰풀을 들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첫 번째 장소에 도착한 후 문을 열자 안에는 여러 사람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빠른 시선으로 둘러보며 아버지를 찾았으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나를 힐끔 쳐다봤을 뿐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그 방에도 마찬가지로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없었고 휠체어만 보였다.
조심스럽게 휠체어 쪽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문이 닫혀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빠르게 문 쪽으로 뛰어갔다.
'들켰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천정에서 뭔가 분사되기 시작했고 그대로 쓰러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몸이 묶여 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겁도 없이 우리 회사에 기어들어 오다니. 누가 보내서 온 거지? 이곳에 온 목적이 뭐야?”
저음에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협박을 하면서 질문을 해 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내가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군. 너는 이제 앞을 볼 수 없어. 너의 각막에 침을 찔러 넣었거든. 그러니 보려고 노력해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
또한, 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모든 인대를 끊었지.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악당이 너무 멍청해서 반전의 빌미를 주잖아? 그러나 이곳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너 말고도 이곳에 기어들어 온 놈이 많았지만 살아서 나간 놈은 없거든. 힘 빼지 말고 네가 아는 것들을 다 불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그건 내가 확실히 보장해줄 수 있어.
참고로 마지막까지 버틴 놈은 검찰이었는데 살아있는 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분쇄기에 갈렸지. 우리는 심장이 사라져도 뇌에 피를 공급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그놈은 자신의 눈이 갈리기 전까지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거든. 얼마나 끔찍한 일이야. 이런 일은 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듣자 암담했다.
결국, 나의 조급함과 미숙한 정보 습득으로 최악의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혹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천운으로 이곳을 나간다 해도 이 몸 상태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 제기랄. 그렇다면 내가 이 마온 제약을 감시하고 있던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이잖아? 거기다 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까지 모두 말이야. 이들이 함정을 파고 날 기다리고 있었어.'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휠체어에 타고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나? 혹시 마온을 감시하고 있던 자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아버지를 미끼로 사용한 걸지도 모르겠군. 내가 너무 경솔했어.”
나의 미숙함에 욕을 내뱉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말씀하신 인간을 믿지 말라는 말을 무시한 대가로 나는 아주 큰 것을 잃었고 앞으로 나의 목숨마저 위태로웠다.
혼자 살아온 10년 동안 비교 대상이 없어 나만 똑똑한 줄 알았지 다른 사람들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기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때 누군가 뛰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방금 나에게 말한 자에게 뭔가를 보고 했다.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뭔데 그래?”
“저놈이 가지고 있던 앰풀에서 박진성 박사가 사용했던 제품과 비슷한 성분의 바이러스를 발견했습니다.”
“비슷한 바이러스?”
“네 그렇습니다. 박진성 박사가 사용했던 바이러스와 거의 흡사한 DNA 구조로 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살상력이 떨어지는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그날 사용한 바이러스는 너무 강력해서 우리가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잖습니까? 아직 면역제가 없다고 박진성 박사도 말했고요.
그런데 저놈이 가지고 있던 앰풀은 주위 환경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마비시킨다고 합니다. 만약 이 바이러스의 백신만 있다면 저놈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를 퍼트려서 사람들에게 감염시킨 후 백신을 보급해 엄청난 수익을 벌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10년 동안 매달린 X-288 프로젝트의 백신을 저놈이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이런 몸이라도 우선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남아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뇌를 혹사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기억력을 짜내었다.
근 10년 동안 마온에 관련된 기사들을 기억해 내며 이 상황을 벗어날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고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 지경의 몸이 됐어도 살아남기만 한다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저는 이곳을 염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발견한 그 바이러스를 확인받고 싶어서 이곳에 찾아온 겁니다. 물론 제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니라면 담당자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했다.
눈이 손상되어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 변장한 모습이 그대로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불안하긴 했으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뭐라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10여 년 전 제약 회사들의 CCTV를 해킹해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를 찾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곳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꾸며낸 이야기였다.
당시 아버지가 오지 않아 마온 제약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으고 있었는데 내가 도망친 후 며칠이 되지 않아 마온 제약의 대표이사와 이사진이 모두 바뀌었다.
당시 대표이사와 이사진들은 모두 조폭의 서열대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20명이 넘는 경영진들이 바뀔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아버지가 혹시 나에게 주신 바이러스 폭탄을 사용하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그 사건을 이용해 지금 시나리오를 만든 것이다.
“방역복을 입은 자들이 많은 시체를 나르는 모습을 보고 저는 바이러스라고 생각했고 그 시체를 찾아보았지만, 시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에 시체를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었고 회사의 경영진이 몰살한 것이기에 특정 장소로 이동해 모두 태워 묻어 버렸다.
그 사건으로 인해 기존에 있던 12층의 건물을 부수고 지금 이 건물을 새로 지었다.
좀 더 바로바로 시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건물 내부에 분쇄기와 화장을 할 수 있는 기계들도 들여놓았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저는 이 건물을 재건축할 때 버려진 이전 건물의 파편들을 뒤져 바이러스를 찾아냈습니다.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 파편들 주위에 많은 생명체가 죽어 있었으니까요.
그 후 지금까지 그 바이러스를 분석하는데 모든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왔던 앰풀이 그 증거입니다. 이전 바이러스는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죽였지만 제가 변이시킨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신경을 마비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 왜 이 건물에 몰래 들어와서 출입통제 구간에서 얼쩡거린 거지?”
“저는 박진성 박사님을 찾았습니다. 그 바이러스는 분명히 박진성 박사님이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
“당시 박진성 박사님이 연구개발본부장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아시겠지만 이런 바이러스는 어중이떠중이가 만들 수 있는 그런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저는 제가 변형시킨 이 바이러스를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박진성 박사님에게요”
“그 부분은 조사해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바이러스의 백신은 만들었나?”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곳에 찾아왔죠”
“네가 실험장 장소가 어디지?”
“그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장소에 가봐야 연구에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원래 연구자들은 죽으면 죽었지 본인이 가진 정보를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거든요”
그랬다.
박진성이 본인이 존경하며 아버지로 모신 두목과 형님들을 모두 죽였을 때 바로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마온 제약의 이름값을 해주는 이가 바로 박진성이다.
김정만은 박진성을 죽일 수 없다면 그를 최대한 이용하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고 생각했다.
경영진을 한 번에 싹쓸이시킨 이 바이러스를 이용한다면 자신의 적들을 한 번에 일망타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행동대장이 된 건 비열한 면도 있었지만 치밀한 성격과 사리 판단이 빨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자도 함께 죽게 되겠지만 효과는 확실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진성은 온갖 고문에도 백신 만드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박진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자를 붙이고 그의 다리 인대를 끊어 버렸다.
지금까지 살려둔 이유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해 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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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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