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3)
또 다른 시작 (3)
정연이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불이 꺼졌어.”
“대통령님. 결단을 내려 주셔 감사합니다. 이 사실을 국민이 알게 된다면 대통령님을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지도 모르고요”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백신 이야기나 해보게”
“저는 화학자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학을 전공했거든요.
무원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저의 아버지와 동생이 바이러스에 걸렸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백신 정보를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그냥 드렸으면 좋겠지만, 돈에 욕심이 생기더군요.
무원 바이러스에 마비 증세가 있긴 하지만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제약 회사를 차리고 백신 발표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돌연변이가 생겼나 사람들이 죽었다는 정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통령님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무례한 방법인 줄은 알지만, 대통령님에게 직접 연락을 드린 겁니다. 지금 이 문제를 제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님밖에 없으니까요. 대신 백신 값으로 1조를 받고 싶습니다.”
“1조라고 했나?”
“네 1조라고 했습니다. 1년 예산액 중 대통령님의 직속 권한으로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는 금액입니다. 지금 전 세계 인구 13분의 1 정도가 무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백신을 발표하면 이 백신을 구하기 위해서 전 세계 부자들이 엄청난 가격을 부르게 될 거고 그들만으로도 1조 원이 넘는 금액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타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한국의 인지도도 상승할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신다면 1조는 정말 싼 금액이죠. 거기다 백신 가격을 10만 원씩만 받아도 수십조를 벌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제약 회사를 차려서 백신을 보급하고 싶었지만, 백신 배양 시간도 시간이고 임상 시험 하는 동안 국민이 모두 죽을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대통령님이 거절하신다면 저는 빠른 백신 보급을 위해 초대형 제약 회사에 1조의 금액을 불러 백신 공식을 판매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거절해도 이 백신 공식을 사줄 국가는 많습니다. 현재 중국이나 인도도 감염자가 상당해서 1조 이상의 금액으로 사줄 겁니다.”
“내가 자네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그럼 지금 당장 마온 제약으로 사람을 보내십시오.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 뒤 바닥에 앰풀 두 개가 있을 겁니다. 그걸로 무원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에게 투약해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참고로 무원 바이러스의 구조상 제가 보내드린 백신의 앰풀로는 배양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무원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그 백신을 맞게 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니 특별히 조심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무원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감염 속도가 파급 적입니다. 살상력을 가진 무원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해 전파된다고 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알았네. 확인해 보도록 하지.”
“그럼 한 시간 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다.
“와 오빠 정말 대단한데? 어떻게 대통령하고 통화 할 수 있어? 거기 보안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다 사람이 만든 건데 길이 없겠어? 그리고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아. 병에 걸리면 죽고 나이 들면 늙는 똑같은 인간이거든. 아마 지금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불안해서 밖에는 절대 나가지 않을걸?”
“그렇긴 하지. 그런데 언제 백신 앰풀을 그곳에 두고 왔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두고 온 거지. 정말 제약 회사를 만들고 싶었지만, 정상적인 몸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런 몸으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감염된 후에도 제약 회사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았거든.”
“와 오빠는 보면 볼수록 볼매네.”
“볼매?”
“볼수록 매력 있다고.”
“내가 매력 있는 걸 지금 알았냐? 어쨌든 대통령이 무슨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켜보자고. 1시간 후면 알게 되겠지!”
“지니 지금 사용한 IP 모두 제거해버려”
“예 알겠습니다.”
1시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빨간불이 들어왔고 정연이가 바로 알려줬다.
“약속드린 데로 전화했습니다. 대통령님. 혹시 지금 저를 추적하시는 것은 대통령님과의 거래가 무산된 것으로 생각해도 되나요?”
“그런 건 아니네. 단지 나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일 뿐이야.”
“그건 이해해 드릴 수 없는 답변이군요. 그럼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알았네. 잠시만 기다리게”
집안에 반짝이던 빨간 불이 바로 꺼졌다.
“말보다 행동이 빠르시군요. 지금 불러드리는 계좌로 10억 달러를 입금해 주십시오”
“왜 갑자기 금액이 늘었지?”
“대통령님의 행동으로 제가 대통령님을 믿을 수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나도 자네를 어떻게 믿어야 하지?”
“그럼 이 거래는 성사될 수가 없겠군요”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 말대로 10억 달러를 입금해 주겠네”
“한국으로 돈을 송금하려면 세금을 내야 할 테니 나머지 금액은 세금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은행으로 직접 받으면 되잖나?”
“그럼 국정원에서 저를 찾아오겠죠”
“하지만 나도 보험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치료제는 보내드렸습니다. 그 백신을 맞고 10분 후에 마비 증세는 풀렸을 텐데요?”
“그 두 개는 진짜라 해도 자네가 불러주는 백신 공식이 가짜이면 어쩌나?”
“현재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만약 만들었다면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거기다 한두 푼도 아니고 1조가 넘는 금액입니다. 제가 그 돈을 받고 백신 공식을 넘기지 않는다면 세계 어디에 있든지 국정원에서 평생 쫓아다닐 것 아닙니까? 저는 쫓겨 다니려고 대통령님에게 연락 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 전에 세계적인 제약회사에 백신 공식을 팔았겠죠.
아무래도 그쪽이 거래는 더 깔끔할 테니까요. 거기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대통령님은 국민을 위해 제가 백신 정보를 판매한 제약회사에서 수십조의 금액을 내고 백신을 구매해 오셨을 겁니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백신 공식을 구매하시든 다른 제약 회사에서 구매하시든 금액과 시간차만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구매하실 수 있으실 테니까요”
“알았네. 송금해 주겠네”
“지정 계좌로 10억 달러가 입금되었습니다.”
나는 버튼을 눌러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고 지니에게 말했다.”
“알았어! 분산 시작해. 그리고 X-0821011232785에 INSO-157 백신 정보를 보내준 후 모든 추적 IP와 기기들을 파괴해 버려”
“예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지니에게 모든 명령을 내린 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
“입금 확인하였습니다. 역시 행동이 빠르셔서 마음에 듭니다. 대통령님에게 한 표 드린 것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지금 수석 비서관 태블릿 PC에 백신 공식을 넣었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잠시만 기다려주게”
수화기 너머로 많은 사람이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대통령이 이야기했다.
“이쪽 분야에 전문가들이 백신 공식이 맞는다고 확인하였네. 이 공식으로 백신을 바로 만들기 시작할 거야”
“제 말을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백신에 특별한 부작용은 없겠지만 그래도 임상 시험은 하셔야 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이 이해는 되지 않네. 자네는 국가보안법을 상당히 위반했어. 차라리 나에게 직접 찾아오지 그랬나?”
“백신을 들고 찾아가도 대통령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국가 공무원들을 믿지 않거든요. 특히 대통령님과 가까운 사람들은 더욱 더요. 제가 직접 갔다면 그곳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을지 의문마저 드는군요. 하여튼 백신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주신 10억 달러보다 분명히 더 큰 이득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에 자네에게 연락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청와대 홈페이지에 저를 찾는다고 글을 올려주십시오. 그럼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받은 돈으로 편안한 생활 하도록 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정원에서 저 찾겠다고 난리 칠 텐데 그 돈을 제대로나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엄살이 너무 심하군. 자네가 제대로 된 백신 정보를 주었다면 나는 이 일로 자네를 찾지는 않을 걸세”
“뭐 어쨌든 애국한 것 같아 기분은 좋군요. 한국에 모든 감염자를 치유하려면 한두 곳의 제약 회사들로는 힘드실 겁니다. 이 소식이 외국에 보도되면 한국의 모든 제약 회사가 24시간 백신을 만든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백신 정보를 타국에 공개해야 하니 그 부분도 주의하시고요. 물론 잘하시겠지만 그래도 당부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대통령과의 전화를 끊었다.
“와 오빠 다시 봐야겠는데?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
“그러게 말이다. 10년 동안 혼자 살다 보니 연기만 늘었다. 연기만”
“그런데 받은 10억 달러는 사용할 수 있는 거냐?”
“그럼요. 지금 지니가 자금 세탁 중이에요.”
“뭐 인공지능이 자금 세탁도 해?”
“네. 세상에는 자금을 세탁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어요. 저는 추적이 더 불가능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죠. 마지막에는 비트코인을 구매할 거에요. 요즘 대세가 비트코인이거든요. 10억 달러로 비트코인을 구매하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해요.
나중에 돈이 필요해지면 은행에 갈 필요 없이 비트코인을 조금씩 팔아서 사용하면 되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자꾸 상승한다는 거죠. 지금은 개당 10만 원 정도 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만 원밖에 안 했어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불법적으로 돈을 벌었는데 그때마다 비트코인으로 자금 세탁을 했거든요”
“와 들으면 들을수록 오빠 정말 대단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도 있었네. 그때 가격이 너무 낮아서 망하는 줄 알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뭐 어쨌든 백신 문제는 해결했으니 대통령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죠?”
며칠이 지나고 한국은 난리가 났다.
전 세계 대형 제약 회사들도 만들지 못한 무원 바이러스의 백신을 한국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주 작은 제약 회사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타국에서는 이 백신 정보를 공유하자고 한국 정부에 압박을 넣었지만, 정부가 개인 업체를 협박하여 특급 비밀 정보를 받아넘길 수 없다고 거절했다.
국가 간 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사이 대형 제약 회사들이 돈으로 이 회사를 기업 합병을 하려 하였지만, 이 회사는 상장 회사도 아닌 일반 개인 기업이었기에 사장이 팔지 않는 한 기업 합병을 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이 회사에 백신 정보를 해킹하려 하였으나 회사 내에 모든 전산 장비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해킹을 우려해 회사 자체 내에서 특수 컴퓨터 몇 대를 제외하고는 아예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당연히 되지 않았다.
임상 시험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널리고 널린 게 감염자라 천명을 기준으로 무료 백신 투약을 공고하였고 신청자가 쇄도해 조기 마감되었다.
백신을 맞은 천 명의 감염자 중 단 한 명도 부작용이 없어 3차 임상 시험까지 끝낸 후 전 세계에 무원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고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백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돈 많은 자는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개당 수천만 원에 백신을 암거래로 구매했다. 이들은 부작용을 생각해서 백 개 단위로 백신을 구매했고 그들 나름대로 임상 시험을 끝낸 후에야 투약했다.
이날 이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며 피해를 주었던 무원 바이러스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 작은 회사는 나라별로 계약을 맺어 순식간에 수백조의 돈을 벌어들였다.
“역시 대통령도 머리가 좋네요”
“왜?”
“백신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대통령의 지인이거든요. 아마 제가 전화를 했을 때 본인의 친구 중에서 이 일을 맡길 합당한 사람을 찾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이지. 역시 사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니까”
“그래도 좀 아깝긴 하네요. 제약 회사 하나 만들어 백신 공식만 팔았어도 수십조는 벌었을 텐데”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있는 돈도 우리 죽을 때까지 다 쓰지 못하고 죽으니까”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뭐 어쨌든 살겠다는 욕망으로 인해 백신이 퍼지는 속도가 장난 아니네요”
“그게 인간이란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하는 그런 족속들이지”
“뭐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네요”
“그렇긴 하구나”
어쨌든 내가 살려고 벌여 놓은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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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재미있는 글로 독자님들을 즐겁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 놓고 글을 쓰겠습니다.
2018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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