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60 화

루시 – 60

‘지금이 7시인데 누가 이리로 오고 있다고? 미스닉, 그놈이 틀림없다.’

그리고리는 급히 샵을 빠져나갔다. 거구인 그가 번개처럼 계단을 내려가자, 온 건물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가 밖에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부하들이 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가 부하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보자, 과연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키가 일반인보다 좀 크고 뚱뚱했다. 이디레이아가 미리 알려준 텔리의 인상착의와 일치했다.

“모두 총 넣어. 저놈을 절대 쏴선 안 된다.”

그러자, 부하들이 그리고리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혹시 저놈이 파칸이 얘기하신 놈 아닙니까? 파칸은 우리더러 저놈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지금 여기에 모인 부하들이 전부 그의 직속이었다면,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파칸의 명령으로 각 브리가다에서 모인 녀석들이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브라트바의 세력이 강대해질 때 들어온 녀석들이어서 텔리의 진면목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브라트바 중에서 텔리의 진짜 무서움을 아는 놈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를 마주한 녀석들은 거의 다 죽어 없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리는 그에게 질문한 녀석에게 되물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왔어? 브리가디어가 누구야?”

“레미요.”

“프루티 레미(Fruity Remy)? 이 병신아. 너 예전에 이 장소에서 몇 명이 저 한 놈한테서 죽어 나갔는지 알고 있어? 프루티가 미스닉에 대해 얘기해준 적 없어?”

“모, 모르겠는데요. 없습니다.”

“하아. 이런 병신들을 데리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토르피도들이 내 곁에 있어도 미스닉에겐 소용없는 일인데.”

그리고리는 주변의 모든 브라트바 갱스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 모두 잘 들어. 지금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저놈이 바로 그 소문의 미스닉이다. 너흰 무조건 내 뒤로 비켜서 있어. 그리고 절대 총을 쏘지 마. 절대! 저놈에게 당해 순식간에 대가리가 따끈한 스트로가노프처럼 변하고 싶은 새끼만 저놈에게 총을 쏘라고. 물론 아무리 쏴봤자 소용도 없겠지만.”

부하들은 그의 말대로 모두 총을 옷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지금 그리고리가 미스닉에게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좀 과장된 표현을 써서 자기들을 겁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조직의 2인자인 그리고리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리는 잔뜩 긴장한 나머지, 정신이 다 혼미해졌다. 겉옷 안주머니에서 작은 힙 플라스크를 꺼내 그 안에 든 독한 보드카를 꿀꺽 삼켰다.

* * *

텔리는 클로브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전에 강탈했던 나이든 마피아의 뚱뚱한 체형으로는 뛰기는커녕, 제대로 오래 걸을 수도 없었다. 멍한 얼굴을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그저 평범한 중년 남성이라고 밖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 지금 그가 걸치고 있는 값비싼 수트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그를 본 사람들은 좋은 수트가 주인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려나?

텔리의 눈에 대략 10명이 넘는 브라트바 갱이 들어왔다.

“저것들은 뭐야. 설마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겨우 저 정도 한 줌밖에 안 되는 놈들로 날 상대하려는 거야? 도대체 이게 함정이야 아니면 환영식이야? 훗훗훗.”

텔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리고리는 한 발짝 나아오며 말했다.

“진짜 7시에 나타났군. 미스닉.”

“미스닉?”

텔리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뭐, 내가 초청받은 시간이 7시라고 하니까 이 시간에 맞춰서 오긴 했지. 그런데 내가 요즘 그 미스닉이란 단어를 자주 듣게 됐어. 그게 혹시 날 말하는 거냐?”

“그렇다. 우리 쪽에선 당신을 그렇게 불러.”

“아, 그렇구만. 훗훗. 그런데, 그거 별로 나쁜 뜻은 아니지?”

“글쎄.”

텔리는 실눈을 뜨고 그리고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잠깐. 넌 낯이 좀 익은데? 아, 그래. 보바 옆에 있던 그 덩치 큰 놈이구나.”

“그렇다. 그런데, 미스닉. 당신은 아예 몰라보겠군. 전에는 금발에 훨씬 호리호리한 체형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얼굴, 체형뿐만 아니라 아예 인종이 달라졌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디서 듣기로는,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변장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후하하하. 변장?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훗훗훗.”

텔리의 웃음소리가 그리고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품속에서 힙 플라스크를 다시 꺼내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누가 네게 내가 ‘변장’을 할 수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지? 아, 내가 한 번 맞춰보지. 혹시 이디레이아인가?”

‘음. 역시 이 자도 여신을 알고 있었군.’

그리고리는 텔리가 여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침을 꿀꺽 삼켰다. 요 얼마 전, 그는 이디레이아와 손을 잡고 그의 보스를 배신하기로 했던 일까지 텔리가 알고 있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혹시,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부하들 앞에서 발설하기라도 한다면 일이 상당히 꼬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텔리는 자기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리고리에게 다시 물었다.

“말해 봐. 내가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네게 알려준게 그 여신이냐고?”

텔리의 음성이 살짝 노기를 띈 것을 감지한 그리고리는 그와 여신이 좋은 관계가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둘이 사이가 좋았다면, 처음부터 여신이 이런 함정을 파고 이 자를 기다리지도 있지 않았겠지.

“그래. 여신이라고 하는 그 여자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모습이 완전히 바뀐 당신이 미스닉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어.”

“그래서 아까 너 뒤에 있는 시시껄렁한 녀석들이 총을 꺼내 들고도 날 쏘지 않았던 거군. 네가 나타나서 저놈들에게 한마디 하니까 전부 총을 집어넣더라고. 그런데, 아쉽네. 그럼 정말 화려한 환영식이 되었을 텐데. 훗훗.”

“환영식이라니? 우린 네놈에게 환영식을 열어 주려고 모인 게 아니다. 우린 다만 스모크 샵의 주인을 여기 데려다주려고 온 거야.”

“뭐야? 그럼 우리끼리 ‘뱅뱅! 쾅쾅!’할 일이 전혀 없다는 거야? 겨우 비피 한 사람을 여기 데려오려고 한 것치곤 너희들은 너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난 당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 수도 있고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지. 게다가 오늘은 겉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어. 우린 당신과 전혀 얽히고 싶지 않아. 뭐하러 일부러 개죽음을 당하겠나?”

텔리는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현명한 대답이네. 정답.”

그리고리는 손으로 스모크 샵이 있는 2층 건물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을 마쳤다.

“당신의 친구가 저 안에 있다. 그리고 다시 말해두는데, 나를 비롯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비피에게 생겼던 일과 1도 관계가 없어. 그건 모두 보바가 한 짓이다. 그러니 우린 살려주길 바래.”

텔리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역시 현명하네. 그래. 그러면 살 수 있지. 태풍엔 절대 맞서는 게 아니야. 피해야지. 훗훗훗.”

텔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건물의 입구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서 풍기는 클로브 담배 냄새를 맡자, 그리고리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이 냄새...... 이건 죽음의 냄새야. 앞으로 다시는 맡고 싶지 않다.’

이렇게 그리고리는 이디레이아의 도움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만약 오전에 그녀가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