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4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4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한 로니는 그와 파비노 사이에 오고 갔던 대화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죠셉은 처음엔 아무 말 없이 그가 말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그가 보로니의 이름이 언급하자,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는지 욱하는 마음에 로니를 겨누고 있는 총의 방아쇠에 살짝 올려놓은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도 했다. 파비노는 자신이 했던 말을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고자질하는 로니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마지막으로, 바빌로프는 오늘 오전 보스에게 연락해서 정말 너가 죽었는지 확인했었어. 내 변명을 섞었지만 실제로 벌어졌던 일은 그랬어.”

거기까지 말한 로니는 죠셉의 반응을 기다렸다. 죠셉은 여전히 총을 든 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뒤통수를 긁었다.

“죠셉, 날 살려줘. 정말이지 난 보스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인 것뿐이야. 내가 뭔 죄가 있겠어? 내가 너한테 딱히 나쁜 감정이 있어서 총을 쐈던 건 아니라고.”

죠셉은 입을 한 번 삐죽거리더니 로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크윽!”

죠셉이 쏜 총알은 로니의 복부를 뚫고 나가면서 그를 뒤로 쓰러뜨렸다. 죠셉은 총을 든 채로 그에게 걸어간 후 그의 가슴을 겨눴다. 로니는 손으로 피를 흘리는 복부를 잡고 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아... 왜.... 나를....? 내가 진실을... 다... 말해줬는데..... 그건 명령.... 이었다니까. 널 쏜 거....”

죠셉은 침을 한 번 끌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거야.”

그는 로니를 내려다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로니는 가슴에 총을 맞고 즉사해버렸다. 의도했던 것인지 몰라도 총 맞은 위치들은 그가 죠셉을 쐈던 그 위치들이었다. 죠셉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니의 시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등을 돌려 다시 아까 총을 겨누었던 자리로 돌아갔다. 파비노가 죠셉과 알렉시스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그럼 나는? 아까 분명히 우리 둘 중 하나만 죽인다고 했잖아? 그 얘기는 난 살려준다는 걸로 들렸는데? 그렇다면 나는.....”

죠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파비노. 내가 아까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지. 네 말대로 널 살려주마.”

“뭐라고? 그거 진짜야?”

“내 입으로 직접 말했던 거니까 지킬 거다.”

파비노는 충혈된 눈으로 죠셉을 노려보며 재차 물었다. 아무래도 로니의 희생으로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니, 왜 날 살려준 거지? 로니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던 건 나잖아. 로니는 내 말을 따른 것뿐이었는데, 왜 나 대신 저 녀석을 죽였나?”

“어쨌거나 총을 쐈던 건 저 녀석의 선택이었으니까. 아무리 네 명령이 있었다지만 거부할 수도 있었겠지. 로니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거야.”

“그렇다면 나는? 나 역시도 널 죽이려고 결정했던 거잖아?”

“파비노, 살기 싫어진 거야? 왜 널 살려주겠다는 데도 자꾸 따지고 들지?”

“로니가 죽은 이유는 제대로 알아야겠으니까. 그래야 네게 제대로 복수할 수 있지 않겠나?”

그의 말을 듣고 알렉시스는 기가 막혔다,

“아니, 이 녀석이 뭐라는 거야? 정말 살기 싫은 건가? 그리고 복수를 한다니? 이 놈이 정신이 나간 거야,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

죠셉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아냐, 신경 쓰지 마. 나름 험한 바닥에서 구르며 산 세월이 있다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니까. 파비노, 복수하겠다는 얘기는 잘 들었다. 널 지금 살려주는 건 빅 마이크의 복수가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뭐, 뭐야? 그렇다면, 로마노를 죽이지 못한 거냐?”

“그래,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빅 마이크를 죽인 건 로마노가 아니었어. 그건 재앙이었다. 그는 그걸 피해가지 못했던 거고.”

“무슨 헛소리야? 로마노가 마이클을 죽이는 걸 삐에뜨로가 바로 옆에서 봤었는데! 너 왜 기회가 있었는데도 로마노를 죽이지 않았지? 혹시 로마노와 무슨 꿍꿍이라도 꾸미는 거야? 그래서 이 마술 쓰는 여자와 함께 날 찾아온 거냐?”

“설명해줘도 넌 어차피 이해 못 해.”

알렉시스가 웃으며 말하자, 죠셉은 말을 이어갔다.

“이 여자 말이 맞다. 아무튼 내가 널 살려둔 건 빅 마이크의 권유로 네가 날 한 번 받아줬었던 빚을 갚으려는 것, 그리고 빅 마이크 때문이다. 내가 널 어떤 이유로라도 죽였다면, 그는 분명 나와 의절해버렸을 거야. 그래, 복수를 하겠다고 날 죽이려고 찾아오진 않더라도 분명 친구 관계는 끝냈을 거야. 그런 좋은 친구의 복수를 다 갚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널 살려주는 거다. 그러니까 파비노, 더 이상 나와 말 섞으려고 하지 말고 꺼져.”

파비노는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죠셉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흥! 어디 두고 보자! 명심해. 이제 내 부하들뿐만 아니라 바빌로프의 개들까지 미친 듯이 네 뒤를 쫓을 거니까. 내가 너라면 저 미친 방화범과 함께 타고 온 차를 타고 세상 끝으로 도망갈 거야. 하지만 네 뜻처럼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을까? 흐흐흐.....”

파비노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알렉시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그녀를 보고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말했다.

“뭐야? 왜 길을 막아? 비켜, 미친년아. 네 년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억... 큭!”

알렉시스는 빠르게 손을 뻗어 두터운 파비노의 목을 잡더니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빛이 나며 뜨거운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르르륵!’

얼굴에 불이 붙은 파비노는 외마디 변명도 지르지 못하고 팔을 흔들며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몇 초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녀가 목 위로 새카맣게 탄 그의 시신을 바닥에 던져버리는 것을 본 죠셉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알렉시스! 왜 그런 거야? 내가 분명 이 놈에게 살려준다고 했는데!”

알렉시스는 감정의 동요가 없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죠셉을 바라보았다.

“그건 네 사정이지. 난 이 녀석을 살려 보내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걸. 내가 능력을 사용하는 걸 본 이상, 두 녀석 다 반드시 죽어야만 했어.”

죠셉은 머리가 새카맣게 탄 파비노의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이렇게 잔인하게.....”

“잔인하다고? 네 놈처럼 몸속에 쇳조각을 넣어 내장을 터뜨려 죽이는 건 이것보다 덜 잔인하다는 건가? 이건 내가 한 때 속해있었던 불새군의 처형 방식이다. 컬처럴 디퍼런스(cultural difference)니까 함부로 남의 고유한 방식을 평가하지 마.”

알렉시스는 가볍게 그를 무시하고는 파비노의 시신과 로니의 시신을 한 데 모았다. 그리고는 옆에 꿇어앉아서 두 시신에 손을 대고 불을 일으켰다. 즉석에서 시신을 화장하려는 거였다. 그녀의 행동을 보자, 죠셉은 속이 역겨워져서 얼굴을 홱 돌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문 옆에 서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혼잣말을 했다.

“세상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화장까지 하다니... 저거 완전히 사이코 같은 년이네. 아니지... 게다가 저 년, 외계인이라잖아. 하아.... 모르겠다. 어제, 오늘 정말 내 정신이 딱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