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41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41

맨하탄 모처에 위치한 한 주차장. 이제 막 정오가 된 시각이었다.

한 대의 은색 렉서스가 주차장에 진입한 후, 주차 차단기 앞에 섰다. 어둡게 틴팅한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고 그리고리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리. 그는 갱단 내에서는 ‘침착한 그리고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자로, 한 때 브라트바의 보스,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를 경호했던 헨치맨이었다. 그의 특유의 과묵한 성격과 성실함, 그리고 여러 번의 우연이 겹쳐 현재 갱단의 2 인자의 자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다만 지금은 브라트바의 2 인자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왜냐고? 지금 그는 아침 면도도 하지 못해서 얼굴에 짧은 수염이 자라 있고, 무척 피곤해서 그런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인데도 용케 그를 알아보고 주차 차단기 뒤에 있는 작은 부스 안에 앉아 있던 청년이 걸어 나왔다. 그는 차단기에서 나오는 티켓을 뽑아 자기가 입고 있는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행동은 이 은색 렉서스의 주인에게서는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주차 차단기 봉이 올라가자, 그리고리는 마른 목에서 나오는 나른하면서도 건조한 목소리로 청년에게 물었다.

“보스는 안에 계시나?”

“아뇨. 오늘은 안 오셨습니다. 아마도 클럽에 계시지 않을까요?”

청년의 대답을 들은 그리고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뭐야? 이 자식아, 누가 너더러 주제넘게 보스가 어디 계신지 추측하라고 했어? 난 그저 그 분이 안에 계시냐고만 물었잖아.”

갑자기 꾸중을 들은 청년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해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아무튼 전 오늘 아침부터 있었는데, 여기로 오시진 않았습니다.”

“음.....”

그리고리는 고개를 들어 주차장 안과 옆 건물을 차례대로 힐끔 살펴보더니, 운전석에 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라는 사인을 주었다.

“내가 1 층에 차를 댈 테니까 내가 나갈 때까지 1 층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청년은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가더니 “1 층은 자리 없음” 이라는 사인을 밖에 내걸었다.

* * *

주차를 마친 은색 렉서스에서는 모두 4 명의 사람이 내렸다. 제일 먼저 2 명의 부하가 내렸고 다음으로 그리고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 스모크 샵에서 도망쳐 나온 미하일이 차례대로 내렸다. 미하일은 왠지 주눅이 든 표정이었는데, 그리고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의 심리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리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긴장할 거 없다. 네 동료가 죽은 것은 파칸께서 충분히 이해하실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운이 없어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인데 뭐.”

“네? 보스께서 이해해 주신다고요?”

미하일의 얼굴은 창백해지다 못해 거의 병색까지 느껴졌다. 그리고리는 2 명의 부하들을 힐끔 쳐다본 후, 그들을 등지고 미하일에게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에.... 1 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내 밑에 있었던 녀석은 아니고, 이름이 레오니드라는 녀석이었는데, 그 때도 그 스모크 샵에서 혼자서만 살아 돌아왔었지.”

미하일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이 진정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리고리의 말을 듣고 스모크 샵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 그러니까 텔리가 니콜라이의 머리를 들고 서있던 장면이 다시 그의 머릿속에 떠올려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

“하아... 하아... 하아.... 스모크 샵에서 그 놈...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맨손으로 니콜라이의 머리를 잡아 뜯어버렸다고요. 맙소사! 저... 저... 전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온 몸의 뼈가 흔들릴 정도로 떨려서 꺼... 꺼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 그래. 무슨 말하는 지 알 것 같다. 파칸도 네 얘기를 들어보시면 널 이해하실 거야.”

그리고리 역시 예전에 조직이 소유한 폐차장에서 텔리가 자기들 갱단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미하일이 지금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들어가자. 그래야 보바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지.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얘기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그리고리가 미하일의 등을 두드리며 주차장 1 층의 문 앞에 서자, 귀에 있던 2 명의 부하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리, 아까 부스에 있던 놈이 그랬잖아요. 보스는 여기 안 계시다고. 클럽 2층에 계실 것 같은데 거기부터 가 보는게 낫지 않아요?”

그리고리는 고개를 돌려 둘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멍청이들아. 보바는 클럽에 안 계셔. 그분은 금요일 밤의 클럽을 정말 싫어하시는 거 몰라? 내가 장담하는데 옆 호텔에 계실 거다. 따라 와.”

그리고리는 문 옆에 있는 전자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주차장의 오피스로 들어갔다.

* * *

주차장 오피스에 들어간 4 명은 바닥에 있는 해치를 찾아 열었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계단이 하나 나타났다. 미하일은 전에 몇 번 이 오피스에 온 적이 있었지만, 지하실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리를 포함한 3 명이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가자 그도 그들을 따라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을 열자 전등이 켜진 통로가 하나 나왔다. 그리고 그 통로 끝에는 옆 건물로 들어가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옃 건물, 그러니까 호텔로 곧장 들어가지 뭐 하러 이렇게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었을까?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고 있는 미하일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리고리가 그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지난 1 년간 우리 조직의 세가 확장되면서 현재 여러 곳으로부터 감시의 눈초리와 외압이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파칸은 매일 밤 거처를 옮겨 다니고 계시지. 전화로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아예 보스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 하필이면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아예 전화도 받지 않으시더군. 늦은 오후라면 분명 받으실 텐데. 그런데 네가 그 분께 알려드려야 할 일은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늑장을 부릴 성격의 것이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보스가 계실만한 곳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어. 내 생각에 어젯밤엔 분명 여기에 계셨을 게 분명해.”

러시안 갱단의 보스,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는 원래 겁이 많기도 했지만, 또 그와는 상반되게 지난 1 년간 누구보다 과감하고도 빠르게 갱단의 세를 넓힌 교활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이렇게 조심스러운 성격이 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1 년 전 텔리와 만난 후 그의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단순히 라이벌 갱들의 급습을 걱정하는 수준이라면,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불편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분명 예전에 폐차장에 찾아온 텔리가 또 찾아올까봐 두려워서 이러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라도 그게 아니라면, 1 년 동안 너무 많은 악업을 쌓아서, 혹시라도 그가 다른 이들에게 가했던 피해가 고스란히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리가 다시 또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넣고 옆 건물과 연결된 철문을 열자, 4 명은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곳 지하실에서부터 펜트하우스까지 연결된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리고리가 펜트하우스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자, 미하일. 뉴욕의 주인을 뵈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