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18 화

루시 – 18

차이나타운을 급습했던 1, 2, 3조가 다 모였으니, 그들은 소호의 아지트로 이동했다. 그들은 2대의 차량으로 나눠 탔는데 트렁크에는 차이니즈 갱들로부터 빼앗은 많은 양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큰일을 겪고도 무사히 복귀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지만, 텔리와 미스터 황은 돌아가는 길 내내 투덜거렸다. 텔리는 아까 출발했을 때 말했던 것처럼 일이 끝나면 당연히 중국음식점에 갈 줄 알았는데 못 가서 불만이었고, 미스터 황은 텔리와 떨거지들이 애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만들었다는 게 불만이었다. 또, 혹시라도 남에게 들킬까 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서 완벽한 여장을 하고 나왔는데, 돈테 같은 녀석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게 너무 짜증 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돈테와 다른 차를 운전하고 가게 되었지만,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춰 세워야 할 때마다 일부러 돈테가 탄 차 옆으로 가서는 차창을 내리고 돈테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도발하였다. 그때마다 돈테는 그저 정면을 응시하며 애써 그를 무시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벌써 여러 번 울컥거림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미스터 황은 그의 몸에 메이크바나 비알리쉬크바 등의 여러 정령석의 능력이 내재하여 있는 옴니테바를 지니고 있어서, 돈테가 그에게 총을 쏜다고 한들, 총알을 막는 방어막이 펼쳐질 것이므로 그다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돈테 옆에 탄 죠셉이 동료를 제지하고 있었다. 돈테는 귀에 미스터 황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좀 앵앵거리라고! 저 푸타(puta)새끼, 정말 확 죽여버리고 싶군!”

“안 돼, 돈테! 저 녀석은 텔리님의 심복이야. 혹시 네가 총이라도 쐈다간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제발 참아!”

“으으윽. 너무 참고만 있으려니까 위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아.”

돌아가는 길 내내 미스터 황에게 너무 시달리게 된 돈테는 실제로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견디고 있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죠셉도 초긴장 상태로 있느라 가시방석에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무시무시하고도 우락부락한 마피아 녀석들이 동양에서 온 호리호리한 여장남자인 미스터 황에게 꼼짝을 못 하고 당하며 눈치나 보고 있다니. 누가 그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 * *

알렉시스의 아파트에 도착한 텔리와 일행은 차에서 강도질한 돈을 옮기고 배달 차이니즈 음식을 주문해서 나름 성대한 연회를 가졌다. 그의 직속 부하들인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을 비롯해 마피아들은 그 음식에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그리고 차이니즈 갱을 급습해서 조직을 엎어버리고는 차이니즈 음식을 먹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그림이 잘 못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음식은 거의 텔리의 몫이 되었는데, 그는 몇 끼를 굶었던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도대체 얼마나 그동안 중화요리를 먹고 싶었길래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건 또 다른 방식으로 차이니즈 갱들을 능욕하는 의미였을까? 마피아들은 음식을 빠르게 먹어치우는 텔리를 보고 기가 차서 서로 얼굴을 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텔리는 순식간에 요리 하나를 먹어치운 후, 술과 콜라를 번갈아 입에 붓듯이 마시고는 용트림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선을 음식이 아닌 모인 사람들의 얼굴로 향했다.

“꺼어어억~! 자알~ 먹었다! 뭐, 음식점에 가서 바로 나온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알렉시스가 하도 말리는 바람에 이렇게 배달 음식을 먹게 되었지만, 맛없다고 절대 말할 수 없겠어. 이 중국집, 스윗 앤 사워 포크 참 잘하네. 어쩌면 숨겨진 맛집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까 차이니즈 타운에서 힘을 많이 빼고 먹어서 그런가? 아주 맛있었어! 차이니즈 타운에서 힘을 쓰고 차이니즈 음식을 먹고 기운을 낸다. 이것 참 아무리 생각해도 절묘하지 않아? 훗훗훗훗.”

텔리는 더욱 뚱뚱해진 배를 두드리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흡족해 하는 그의 표정의 얼굴을 보고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모두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알렉시스가 입을 열었다.

“텔리님, 음식이 만족스러우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또한, 오늘 큰 성과를 내셔서 축하드립니다! 이 미천한 종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으으음.....”

텔리는 그녀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에 클로브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아, 그래. 식후땡은 진리지. 알렉시스는 얼른 일어나 자신의 손에 불을 붙여 텔리의 클로브 담배에 가져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차이니즈 갱들을 쓸어버린 일도 잘되었고 음식도 맘에 들었던 것 같은데, 또 뭐가 불만인 걸까? 그래, 1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이건 또 무슨 변덕일까? 알렉시스는 슬슬 불안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알렉시스.”

“네. 신이시여.”

“3조 일을 보던 내 분신이 좀 이상한 일을 겪었는데 말이야.”

“이상한 일이라니요? 3조가 조금 늦게 복귀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 아무튼, 일을 다 보고 나서 좀 이상한 상황이 생겼었지.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야······.”

텔리는 그렇게 운을 떼고는 알렉시스와 3조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일이 끝낸 후, 그에게 접근한 두 명의 괴한과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아까 차이나타운에서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한 텔리는 입에서 클로브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고는 알렉시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까 그 놈들이 내게 스모크 샵의 주인, 비피의 사진을 전해준 건, 다 이디레이아의 아이디어였다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구겨진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알렉시스에게 건넸다. 알렉시스는 그 사진을 앞뒤로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요? 아니, 여신님은 무슨 이유로 텔리님께 이런 메시지를 보내신 걸까요?”

텔리는 어깨를 한번 들었다 내렸다.

“나도 모르지. 그런데 신경이 쓰인단 말이다. 이디레이아, 그 썩을 년이 또 내 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비피든 누구든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을 붙잡아서 흠씬 패 놓고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그런 거.”

“네. 제 눈에도 분명 거슬리긴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스모크 샵의 비피가 텔리님께 아주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목숨 따위야 애써 무시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텔리는 손을 들어 구레나룻을 긁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다시 흔들었다.

“그래. 네 말대로 비피는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닌데······. 아니, 그것보다 왜 그동안 잠잠했었던 이디레이아가 굳이 날 자극하려고 하는지 말이야. 내 성격을 잘 아는 그녀가 뭐하러 그러느냐는 거지.”

“예. 굳이 여신님께서 주인님을 자극하실 이유는 없지요.”

텔리는 다시 한번 클로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정말 기분이 나쁜 건, 사진의 뒷면에 그녀가 남긴 한 문장이야. ‘I’ve seen the future, baby. It is murder’라는. 알고 봤더니 그게 어떤 노래의 가사의 한 부분이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