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22 화

루시 – 22

바빌로프가 그리고리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미스닉이 활동을 시작하다니?”

“오늘 뉴욕시가 난리 난 이유가 바로 미스닉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셨다면 이미 알아차리지 않으셨습니까? 분노에 휩싸여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살해하는 붉은 얼굴의 싸이코패쓰들 얘기 말입니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서 주위 사람들을 공격하고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에 우리가 폐차장에서 봤던 그 괴물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미스닉과 함께 등장했던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있었던 괴물들 말입니다. 그 괴물들은 원래 우리 형제들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변해서 같은 편을 공격했습니다. 기억나시죠?”

바빌로프는 순간 예전에 폐차장에서의 일을 기억해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그리고리. 거기서 잠깐 스톱!”

바빌로프는 손을 들어 경호원 대장을 부르더니 그에게 바텐더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바빌로프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여긴 듣는 귀들이 너무 많아. 폐차장 일과 미스닉 얘기를 할 때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어서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 제길, 그 빌어먹을 미스닉. 아직도 놈을 무슨 영웅처럼 생각하는 녀석들이 조직 안에 많이 있어. 심지어 어떤 얼빠진 놈들은 자기들이 미스닉의 수호를 받는다고 착각까지 하더라니까.”

바빌로프는 폐차장 일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와 그리고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차장 사건이 그가 조직의 배신자들을 소탕한 일로 알고 있는데, 아무도 진실을 알아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조직원들이 아직도 미스닉, 즉, 텔리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직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 원인은 전부 그에게 있었다. 예전에 텔리가 그의 조직을 거의 괴멸했었을 때, 그는 큰 위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탁월한 임기응변으로 텔리를 구워삶아서 용케 그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또한, 텔리를 꼬셔서 자신의 조력자로 탈바꿈하게 했고, 유력한 마피아 패밀리의 보스였던 보로니를 해치우는 데 사용했다. 어디 그뿐이었는가. 그것도 모자라서, 텔리를 미스닉(도살자)으로 칭하며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히트맨으로 둔갑시켰다. 이후, 미스닉의 인기가 점점 치솟자, 그를 마치 조직의 수호신인 것처럼 몰래 홍보했다. 그 한 방편으로 조직원들을 부추겨 몸에 미스닉 타투까지 하게 만들었다. 즉, 현재 조직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미스닉 광풍은 그들의 미숙함에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빌로프의 우상화 계획의 결과였다. 하지만, 막상 그가 텔리를 배신하고 이디레이아와 11번, 23번과 힘을 합치려고 하자, 이젠 조직원들의 텔리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괴물들? 아, 그 좀비들! 암, 기억나고말고. 살면서 그런 이상한 일을 겪고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미스닉이 돌아왔다는 건 너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내게 그를 죽일 수 있는 총을 준 여신이 이미 다 알려줬잖으니까.”

“네.”

“그럼 지금, 이 난리가 난 것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미스닉이 한 짓이라면.”

그리고리는 조금 더 바빌로프 쪽으로 몸을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오늘 난리가 시작된 곳이 차이나타운이라고 합니다. 괴물들이 처음 나타난 곳이 그곳이라는군요.”

“차이나타운! 여신이 내게 전화해서 내 부하들을 메신저로 보내라고 말했던 곳이잖아. 스모크 샵 주인의 사진과 메시지를 돌에 매달아서 거기 있는 누구에겐가 전하라 하지 않았나. 그럼 우리의 뜻이 미스닉에게 전해질 거라고.”

“예. 보스의 말씀대로 제가 부하 둘을 거기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즉.......”

“여신이 알려준 대로 되었다는 거겠지요. 그리고 아마도 미스닉이 우리의 메신저들을 처리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뜻은 그가 메시지의 의미를 잘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보바, 당신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것 말입니다.”

“잠깐, 잠깐만!”

바빌로프는 얘기를 듣다 말고 위스키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몹시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미스닉은 내게 화가 나서 우리 애들을 죽여버렸다는 거야? 제길! 뭐 어차피 언제든 알게 될 일이 아니었던가. 단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지. 언제고 그자에게 선전포고할 생각이었어. 다만, 그동안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몰랐으니 할 수 없었을 뿐. 오히려 여신의 도움으로 오늘 그 녀석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리고리는 바빌로프의 그런 반응을 예상했었는지, 또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말씀대로 그 여신이란 여자 말대로 그에게 우리 쪽으로 찾아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일단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과연 생각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까요? 미스닉은 역시 보통이 아닌 자입니다. 그가 오늘 차이나타운의 차이니즈 애들을 모조리 박살을 내버렸거든요. 그래서 여신이 차이나타운으로 메신저를 보내라고 했나 봅니다.”

“뭐라고? 차이니즈 갱이 박살이 났어?”

“네. 오늘 자그마치 세 곳이나 털렸습니다. 많은 수가 죽고 금고에 보관해 놓은 돈도 다 털린 모양입니다. 어떻게 뒤처리를 했는지 증거도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 다 불타버리거나 증발해버렸다는군요. 그래서 웃긴 얘기입니다만, 피해자인 차이니즈 애들은 자신들이 누구로부터 공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있더랍니다.”

“증거도 제대로 없다는데, 넌 어떻게 그게 미스닉 짓이라고 확신한는 거지?”

그리고리는 얼굴을 긁으며 대답했다.

“오늘 그 장소에 없었던 차이니즈 갱의 잔당들이 복수하겠다고 다른 아시안 갱들에게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아마 걔들은 같은 아시안계가 자기들을 습격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그런데 놈들은 거기서도 탈탈 털렸다고 합니다. 도망가던 일부가 우리 지역을 통과하다가 우리 애들에게 잡혔고요. 놈들을 어디로 끌고 가서 좀 주물러주고 다그쳤더니, 아는 대로 전부 불었습니다. 그 정보와 뉴스에 나오는 정보를 취합해보니, 미스닉이 한 짓 같더군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자가 저지른 일로 보였는데, 그러면 딱 미스닉이라고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 우린 한 번 당해봤으니 딱 보면 척하고 알 수 있지.”

“사실 최근 이번 일이 있기 전에 퀸즈에서 차이니즈 애들이 하는 지하 도박장이 습격을 받아 잿더미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상한 현상이 목격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붉은 얼굴의 괴물들이었습니다. 언론에선 몇몇 미치광이 광신도들이 날뛰었던 거로 보도했습니다. 전 그 일도 미스닉의 짓으로 봅니다.”

“아, 그래. 총격전과 살육이 있었다고 했어. 미치광이들. 잠깐 떠들썩하고 말았지.”

“그때 일도 오늘 난리에 비해 단지 스케일이 조금 작았을 뿐, 내용은 비슷합니다.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는 거지요. 경찰 돼지들이 놈들을 진압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 계셨습니까?”

“뭐?”

갑자기 그리고리가 이상한 질문을 하자, 바빌로프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뭐, 나야 원래 척하면 다 아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나 정도 위치에 올라와 있으면 한 번 쓰윽 훑어봐도 저기 끝까지 한 번에 다 보이는 법이잖아. 아래 사람들처럼 자세히 볼 수는 없어도······. 그래, 난 전체를 보는 사람이지. 에, 그러니까 전체적인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응? 뭐, 그런 거지. 자넨 모르겠지만, 내가 서 있는 곳에 있으면 자꾸 큰 것만을 보고, 큰 뜻만을 품게 되는 거야.”

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자긴 몰랐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하고 앉아 있었다. 원래, 바빌로프는 권모술수로 지금 위치까지 올라온 비열한 인간이어서, 보통 사람보다도 훨씬 눈치가 빠르고 두뇌 회전이 남달랐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저 주색잡기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져 있는 평범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이건 예전 그의 모습과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그리고리는 이제 자신의 보스가 스스로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느꼈다. 예전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