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4 화

루시 – 4

까를로와 마르코는 건물을 빠져나온 후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골목을 달려갔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나오자 그들은 더 이상 뛰지 않고 빠르게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게 되어 쓸데없는 의심을 받으려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어도 그들의 얼굴은 방금 빠져나온 골목의 회칠한 담벼락만큼이나 하얗게 질려있었다. 건물 안에서 목격한 끔찍한 광경이 둘의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까를로는 맥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 속이 울렁거렸지만, 바쁘게 이동하는 마르코의 뒤를 기를 쓰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바로 기절할 것 같이 현기증이 났다. 비가 와서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둘은 이마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며 이동했다.

* * *

몇 분 후, 그들이 주차해놓은 차에 도착하자, 뒷자리의 창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텔리가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돈은 다 챙겨왔어?”

“......”

마르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니 트렁크를 열어 돈이 든 가방들을 넣었다. 둘이 차 문을 열자, 조금은 특별한 클로브 담배 냄새가 차 안에서 풍겼다. 텔리는 입에 클로브 담배를 물고 한 모금 빨더니 후욱 내뱉으며 두 갱스터들에게 물었다.

“야, 너희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딱 1분만 더 늦었으면 내가 너희도 죽여 버리려고 했어. 알아? 돈은 빠짐없이 다 챙겨온 거 맞지?”

보자마자 자신들을 죽여 버리려고 했다니? 참 기분 나쁘고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그들을 맞이하는 텔리에게 마르코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러자, 두 눈이 벌겋게 충혈 된 까를로가 몸을 틀어 뒷 좌석의 텔리를 보며 소리 질렀다.

“당신!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을...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제기랄!”

텔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이 새끼는. 나야 그냥 일을 한 것뿐인데 왜 갑자기 흥분을 하고 난리야?”

“일이라고? 당신은 그걸 일이라고 말하는 거야?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 놓고는 그게 일이라고? 오, 주여. 오, 주여!”

까를로는 고개를 흔들며 한 손으로 이마와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마르코가 텔리의 표정을 보니 분명 까를로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까를로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살짝 흔들며 흥분한 동료를 제지했다.

“아... 아닙니다. 이 녀석이 선생님, 아니, 신께서 하신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텔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흥. 그렇지. 그래봐야 인간이니 어쩔 수 없겠지. 제깟 놈이 뭘 안다고 이해하고말고 해?”

“이해? 웃기지 마! 저기 안에 사람이 몇 명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 죽고 터지고 잘려서 완전히 다진 고기가 되었단 말이야. 당신!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이 살인자! 백정! 악마 같은 놈아!”

까를로는 눈이 뒤집혀서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마르코는 동료와 텔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갑자기 주먹을 들더니 까를로의 코에 한 방 먹였다.

‘퍽.’

“어억!”

까를로가 코를 잡고 고개를 뒤로 젖히자, 마르코는 까를로를 대신해서 텔리에게 급히 사과했다.

“소.. 솔직히 저희가 그 건물 안에서 너무 심한 상태의 시신들을 봐서 살짝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저흰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시... 신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무슨 소린지는 알아. 그런데 내가 기분이 확 나빠져서 말이야. 앞으로 이 입 큰 놈이 또 뭐라고 한 마디 더 지껄이면 그냥 죽여 버릴 거야. 그러니까 너희 둘 다 알아서 행동해. 알겠어?”

텔리는 조금 불쾌했는지 클로브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리고는 피 흘리는 코를 잡고 있는 까를로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손가락을 차의 지붕에 살포시 갖다 대었다. 아주 잠깐 그의 손가락에서 빛이 나더니, 그대로 차의 지붕을 뚫어버렸다. 그 다음,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지붕은 ‘끼이이-’ 소리를 내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마르코와 까를로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텔리는 까를로의 머리 위까지 차의 지붕을 찢어놓고는 손가락을 다시 빼더니 입에 물고 있는 클로브 담배를 쥐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까를로의 얼굴을 향해 연기를 뿜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봤지? 이 입 큰 개구리 같은 놈아. 너 앞으로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린다.”

그 동작 한 번에 완전히 압도된 까를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눈만 껌벅거리다가 몸을 돌려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마르코는 텔리가 찢어놓은 지붕을 보면서 아까 뜯겨버린 금고문을 떠올렸다. 그가 신기하게 생각했던 미스터리의 답을 찾은 것이었다.

‘헉! 이 사람... 아니, 분명 사람은 아니다. 초... 초능력자? 아님 어쩌면 정말 신이 아닐까? 맨손으로 강철을 뚫고 찢어버리다니! 어떻게 그 방의 금고문을 잡아 뜯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마르코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 자동차 키를 잡고 돌렸다.

“그... 그럼 바로 추... 출발하겠습니다!”

“아, 맞다. 내가 깜박하고 있었네. 야, 잠깐만 기다려.”

텔리는 뭔가 생각난 듯 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마르코를 말렸다. 그리고 차 문을 살짝 열고 몸을 숙이더니 손을 차 밖의 땅에 댔다.

“뒤처리는 꼼꼼하게 해야 하는 법. 훗훗훗.”

그는 땅에 손을 댄 채로 눈을 감고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르코와 까를로가 몸을 돌려 텔리를 보니 웅크린 자세로 주문 같은 것을 외우고 있었다. 그가 꼼짝않고 그러길 몇 분 정도 하자, 서서히 그의 이마가 빛에 물들기 시작했다. 또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나 싶더니 이마의 빛은 그의 머리와 목까지 점점 번져가는 것이었다. 두 갱스터는 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하자, 이젠 이 괴짜 살인마가 무섭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들의 머리털이 삐죽 서고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을 때쯤 되자, 텔리의 주문과도 같은 중얼거림이 순간 멈췄다. 그는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에헴. 자, 다 끝났어. 이제 가도 돼.”

“후우... 설마 땅에 손을 대고 교황님처럼 축복의 기도를 드리신 건 아닐 테고, 그럼 혹시 악마의 저주인가요?”

마르코는 한숨을 쉬며 슬쩍 농담을 건넸다. 텔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풉’하고 웃더니 대답했다.

“축복의 기도? 악마의 저주? 훗훗훗. 너희 미국인들은 정말 아무 때나 농담을 던진단 말이야. 그것도 방금 하마터면 내게 목숨을 잃을 뻔 했으면서도 그런 싱거운 농담이 절로 튀어나온단 말이지. 그건 아무리 내가 여기 오래 살았어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군. 내가 기도를 했건 미지의 친구와 대화를 했건 너흰 알 것 없어. 알려줘도 알 수 없을 것이고 보여줘도 못 믿을 거야. 정 궁금하면 내일 아침 뉴스를 보면 알게 되겠지.”

“뉴스요?”

“그래. 오늘 밤 이곳 맨하탄에 아주 큰 난리가 날 거니까.”

“큰 난리....?”

사실 방금 텔리가 한 일은 자신이 정해놓은 지역의 일부 사람들을 하익티스라는 괴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면 몹시 난폭해져서 주위의 모든 살아있는 것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되어 있었다. 즉, 텔리가 말했던 뒤처리란 이 지역 전부를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했던 일이지만, 텔리를 오늘 처음 만난 두 갱스터는 그 사정을 알 리 만무했다.

마르코가 다시 차의 시동을 켜고 막 출발하려는 바로 그 때였다. 한 푸른 색의 낡은 차가 그들의 차 바로 옆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그 차가 옆을 막고 있는 상태로는 도저히 차를 뺄 수가 없을 것 같아 마르코는 쌍욕을 뱉으며 창문을 내렸다.

“야, 미친 XX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그와 거의 동시에 상대방 차의 창문도 스르륵 내려갔다.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상대방이 탄 차 안에서 두 괴한이 손에 총을 들고 마르코를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르코는 너무 놀라 핸들을 잡고 있던 두 손을 재빨리 어깨 위로 올리며 외쳤다.

“쏘... 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