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3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3

“믿고 싶든 말든 사실이에요. 당신의 이전 육체는 엘리시움에 갖다 놨어요.”

이디레이아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건수와는 상반되는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건수의 눈엔 너무나 뻔뻔하게 보여서 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눈을 뜬 아침 이후 계속 황당한 일만 겪게 되니까 도통 화를 잘 내지 않는 그도 끝내 이성을 잃게 되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제 몸이 쓰레기가 되었든 말았든 내가 버린 적이 없는데 함부로 바꿔치기 해놓고 어... 어디 다른 곳에 보관했다고요? 그게 경기도 어디 창고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완전히 다른 세계라니! 왜 제 허락도 받지 않고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신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내뿜는 안광이나 다가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던지, 이디레이아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건수, 지금 뭐하는 거지요? 태도가 왜 그래요?”

건수는 어찌나 화가 나 있는지 콧구멍에서 뜨거운 바람을 내뿜으며 좀 전보다 더 언성을 높였다.

“그건 제가 여쭙고 싶습니다. 여신님, 왜 제 몸을 제 허락도 없이 함부로 가져가신 겁니까?!”

건수가 이 정도로 격렬하게 대응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순간 이디레이아의 눈길에 긴장과 당혹스러움이 내비쳤다. 그것은 지금 그가 그냥 화를 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에 놀라 긴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표독스러운 말투로 건수에게 물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 건수, 지금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아, 날 죽이려는 거군요? 그런데 그게 쉽게 될까요?!”

이디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 손을 앞으로 쭉 뻗어 올렸다. 마치 건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에라도 무슨 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이번엔 이디레이아의 반응에 건수가 놀랐다. 죽인다니?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건가? 건수는 맹세코 그런 흉악한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인다니요? 누가 누굴 죽인다는 겁니까?”

건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만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더 다가오지 말랬지!”

이디레이아의 손에서 밝은 빛이 한 번 번쩍였다.

“으윽!”

너무 밝은 빛을 보게 되자 건수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의 뺨에 강한 풍압이 느껴졌다. 그 후, 그는 다시 실눈을 뜨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이디레이아의 얼굴을 보니 그녀는 몹시 놀란 모습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건수를 보고 말했다.

“아니,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건수는 그녀가 방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아무 일이 없자 그 역시도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제게 뭘 하신 건가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그는 그의 몸이 얼어붙게 되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다.

“어엇. 내 몸이... 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건수가 자기에게로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된 것을 본 이디레이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휴우. 뭐야.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

그녀는 건수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이마 위에 올린 손은 하얀 빛을 내었다. 건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신이 너무 무서운 살기를 보내길래 나도 어쩔 수 없이 힘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보냈던 힘은 분명 몸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는데 그걸 맞고도 끄떡없다니.....”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고 힘을 썼다는 말을 들은 건수는 뒷목이 서늘해졌다. 그저 잠시 흥분해서 따지려고 했던 것일 뿐이었는데, 그 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니, 그녀가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하소연도 할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살기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까 멧돼지와 스라소니 산신령도 자신에게 살기 운운 하더니, 여신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살기라니요?”

“내가 묻고 싶습니다. 왜 갑자기 나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은 거지요? 난 당신의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이디레이아의 사념에 불과합니다. 나를 죽인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어요. 게다가 난 잠시 후면 내 역할을 다 하고 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지려면 진짜 이디레이아에게 따져야죠. 난 그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일 뿐인데 왜 본체를 놔두고 내게 화풀이를 하려고 한 겁니까?”

“네?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요? 제가 언제 여신님을 해치려고 했다고 그러십니까! 전 단 한 순간도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어휴. 당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군요.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메신저인 날 죽여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는 거였는데..... 쯧쯧쯧. 이렇게 모르는 것 투성이인 당신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끝이 없겠어요. 사실 난 허상입니다. 진짜의 복사본 같은 거라고요. 여기는 당신의 의식 속이고요. 물론 당신이 날 죽인다고 해도 다른 곳에 있는 이디레이아의 본체에는 어떤 영향도 가지 않아요. 다만 당신이 하도 무섭게 살기를 내비치기에 나도 모르게 힘을 사용해버린 겁니다. 그래요. 그건 정당방위였어요. 그리고 다행인 건지는 어떤지는 몰라도 당신도 무사하군요. 난 분명히 당신을 죽여 버리려고 힘을 쓴 거였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니, 이거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어요. 더 이상 내게 대응하려고 하지 말고 힘을 빼세요.”

그러니까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이 여신은 가짜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본체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지금 그에게 무슨 일을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영향도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을 마치고 힘을 집중시키자, 그의 이마에 댄 손에서 흰 빛이 나오면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는 그녀가 또 자기를 해칠까봐 두려움에 휩싸였다.

“뭐... 뭘 하시려는 겁니까?”

“이젠 더 이상 당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어떻게 내 공격을 이겨냈는지 그게 궁금할 뿐입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건수의 이마에 댄 손을 통해 몸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으음... 이런. 이거, 검은 방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육체를 선물한 것 같군요. 네, 이건 당신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입니다. 당신의 태도를 보니 날 굳이 해치려는 일단 살기를 내뿜는 것부터 봉인해야 할 것 같네요.”

그녀가 힘을 집중하자 그녀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 건수의 이마로 흘러 들어갔다. 이마가 타는 듯한 느낌에 건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그만하세요. 뭐하시는 거예요? 그만하세요!”

“잠깐만 참아요. 지금 이런 상태의 몸은 당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요. 내가 잠깐 힘을 억누르려고 하는 거니까.”

몇 분 후, 건수의 힘을 억누르려고 했던 이디레이아의 메신저는 끝내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녀가 손을 떼고 그의 이마를 바라보니 거기엔 밝게 빛나는 문양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하! 어이없네. 이건 아무도 풀 수 없는 검은 방의 인이잖아. 케르케로우스, 그 늑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신에게 이 인을 박은 걸까요?”

이디레이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감해 하는 그녀를 보며 건수의 표정도 함께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