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8 화

루시 – 8

텔리와 2 명의 마피아들이 차이나타운의 후미진 지역에서 아직 작업을 하고 있을 그 시간, 한 때 텔리를 섬기던 50인의 암살단의 최후의 생존자들인 11번과 23번은 건수와 함께 맨하탄을 향해 차로 이동 중이었다. 23번은 이디레이아가 건네준 두 장소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손에 쥐고 운전하고 있었다. 11번은 맨하탄이 보이기 시작하자, 글러브 박스에서 CD 한 장을 꺼내어 카 오디오에 넣었다. 곧 밴드 Kansas의 ‘Carry On My Wayward Son’이란 곡이 흘러나왔다. 그는 그 곡을 듣자, 살짝 흥분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Carry on, my wayward son.

There'll be peace when you are done.

Lay your weary head to rest.

Don't you cry no more. 예에에~!”

아까 식당에서 이디레이아로부터 텔리가 저지른 일의 처리를 부탁 받았을 때 화를 냈던 것은 이미 잊었는지, 아니면 그새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23번은 의외의 행동을 하는 동료를 보고 의아했다.

“이봐, 친구. 자네는 뭐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아까 다이너에선 그렇게 화를 내더니 말이야.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건 그 때고, 지금은 기분이 좋아졌어. 왜냐면 내가 NYC에 처음 와보는 거거든. 하하하.”

“정말? 자네, 정말 단 한 번도 맨하탄에 온 적이 없었던 거야?”

“그래. 이번이 처음이야. 오, 빌딩들! 저 높은 빌딩들을 보니 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는군.”

“자네, 이런 도시에 와 보는 게 처음은 아닐 거 아냐. 그 동안 시카고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곳도 매우 번화한 곳인데.”

“맞아. 사실 높은 빌딩이야 큰 도시라면 어디에든 많지. 그런데, 난 미국에 온 지 몇 십 년이 되었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은 와보지 않았어.”

“그럼 그 긴긴 세월동안 어디에서 있었던 거야?”

“그냥 세계의 여러 곳들... 그러니까, 유럽, 중동.... 여기저기 많이 떠돌아다녔지. 그럼 23번, 자네는 어디 있었어? 미국에만 있었던 건 아닐 거 아냐?”

“나도 이 미국이란 나라가 생기기 전에는 다른 곳에 있었었지. 자네처럼 여러 나라에서 지냈었어. 하지만 오래 전 뉴욕에 온 다음엔 계속 이 곳에 있었어.”

“그랬군. 흠.... 방금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고 했는데, 만약 유럽, 그러니까 혹시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등에 있었다면 말이야. 어쩌면 23번 자네나 나나 예전에 어떤 곳에서 서로 우연히 지나치지 않았을까?”

“혹시 그랬더라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겠지. 우리 둘 다 이렇게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을 테니 말이야. 아무튼 내가 이 미국에 왔을 땐 아직 자동차란 게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었어. 사람들은 말과 마차를 타고 다녔지. 정말 그 옛날엔 이런 물건을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 눈앞에 보이는 저런 스카이스크레이퍼들도 그저 놀랍지. 이 지구라는 곳은 말이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세상이 바뀐단 말이지. 겨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여기 인간들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살고 있어. 정말 모든 것을 다 짜내면서 자기들 인생과 여기 세상을 바꾼다고.”

“아암. 23번, 자네 말이 옳아. 우리 고향 엘리시움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변화지.”

11번은 자신의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건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늑대의 하수인. 너 말이야.”

“네? 저, 저요?”

가만히 11번과 23번의 대화를 듣고 있던 건수는 흠칫 놀라며 반응했다.

“그래, 케르케로우스의 하수인. 너 말이야.”

“전 하수인....은 아닌데요. 뭐라더라? 그... 뭐... 사, 사제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건수의 말에 11번과 23번은 크게 놀랐다.

“뭐라고? 너가 늑대 신수의 사제라고?”

“네... 네. 뭐... 일이 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아아.... 쩝.”

“너 이 자식! 누구 앞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는 게야! 23번, 아무래도 이 자식 수상해. 지금이라도 당장 목을 부러뜨려 죽여야겠어.”

11번이 갑자기 화를 내며 건수를 때릴 것처럼 손을 들자, 건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쳤다.

“아니에요! 진짜 저더러 사제라고 했단 말이에요! 절대 거짓말 하는 거 아니라고요!”

23번은 핸들에서 한 손을 떼어 11번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렸다.

“11번. 진정해. 이 아이는 여신님의 손님이야. 자넨 아까도 그러더니 또 이 아이를 죽인다고만 하는군.”

“아니, 이 자식. 아무래도 영 수상하잖아. 이곳의 사람이면서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것도 그렇고. 늑대 신수의 이름을 아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이젠 자기가 늑대 신수의 사제라고까지 말하는데! 너 이 녀석! 다시 한 번 묻겠어.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케,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 맞아요. 거짓말 아닙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절 죽이지 마세요!”

11번과 23번은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23번, 이게 말이 되는 얘기야? 그 늑대 신수가 이곳 지구의 사람을 자신의 사제로 삼았다는 게?”

“놀랍군. 그 얘기가 진짜라면 정말 놀라워. 그런데 거짓말 같지는 않아. 일단 11번 자네 말대로 이 아이는 우리 고향의 언어를 쓰고 있어. 자기가 모시는 신수의 이름도 알고 있고. 이 땅의 사람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어쩌면 그 늑대 신수가 정말로 이 녀석을 사제로 삼았는지도 몰라.”

11번은 올렸던 손을 내리면서 말했다.

“허... 그렇다면 그 신수는 큰일났구만. 엘리시움의 다른 신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일을 눈감아 줄 그들이 아니잖아?”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보지. 그러지 말고 지금 도로에 차도 좀 막히는데, 잠시 이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좋아.”

11번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무서운 눈빛으로 건수를 쏘아보았다.

“너! 짧고 굵게 설명해 봐. 어떻게 이 곳 사람인 네가 늑대 신수의 사제가 되어버린 거지?”

“그건요..... 그, 그건..... 아.”

방금 전 11번의 위협에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린 건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 놀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빨리 말 안 해?! 이 핏덩이 같은 놈을 확!”

“11번! 11번! 이 친구야. 제발 화 좀 그만 내게. 애가 너무 겁을 먹어서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이 애의 이름은 컨쑤야.”

“컨쑤.... 으으음.”

건수는 23번이 자신의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부르는 것이 순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신의 이름은 ‘건수’라고 제대로 된 발음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작은 일에 연연할게 아니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11번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려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어 모기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 제 이름은 소, 소... 손 건수고요. 대한민국, 그러니까 코리아에서 왔어요. 그리고 어떻게 케르케로우스님과 알게 되었냐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