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33 화

루시 – 33

‘짝!’

웨이트리스 재닌의 모습을 한 이디레이라가 다시 한번 손바닥을 부딪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자, 그럼 어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합시다. 11번. 컨시우스. 두 폴 버니언(Paul Bunyan – 북미 나무꾼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민담의 주인공)도 자리에 앉고요. 거기, 또 다른 나도 서 있지만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지금 우리에게 겨우 식사를 하는 게 중요할까요? 차라리 그 시간이면 변한 미래에 맞게 대비할 수 있도록 다시 계산하는 게 낫죠.”

동양인 남성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는 아직도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순순히 식탁으로 다가와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씩 식탁에 둘러앉아 두 이디레이아 때문에 늦어진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무척 배가 고팠는지 말을 아끼며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두 이디레이아는 계속 서로 간에 하고 있었던 논쟁을 이어나갔다. 뭐, 예전에 텔리가 밝혔듯이, 그들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인간과 달라 굳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거나 아주 적게 먹어도 대충 생명 유지가 되지 않던가. 그들에게 있어 음식 섭취는 오로지 즐거움을 얻는 일이라고 했다. 또, 이디레이아는 혼자 있을 때도 원래 말이 워낙 많은 편인데, 그걸 또 둘이나 붙여놨으니 둘은 잠시도 입을 닫지 못했다.

“식사를 하는 게 뭐 어때서요? 당신이 얘기한 대로, 이제부터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전사들에게 할 일을 제대로 설명해 주자고요. 그럼 당신이 얘기한 미래의 장면과 똑같이 전개되지 않겠습니까?”

동양인 남성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는 손을 흔들며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다고 미래가 바뀌었던 게 다시 돌아올까요?”

“어이가 없군요. 그 정도 바뀐 거로는 미래의 일이 쉽게 바뀌지 않아요. 그건 당신도 알 텐데요. 이런 일이 한두 번 생겼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굴어요?”

“그야 대상이 다른 이도 아닌 텔리니까 더욱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를 해야......”

남자의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조금도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다. 대신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원래보다 약간 바뀐 미래에 일어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아! 잠깐만!”

그녀는 계산하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꽂혔다.

“또 다른 나. 뭐에요?”

“쉿. 조용히. 잠깐만요. 정말 미래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본 미래의 장면, 당신도 머릿속에서 보일 것 아닙니까? 안 되겠어요. 이건 다시 계산을 할 필요가 있어요. 새로운 경우의 수가 갑자기 많아졌네요. 빨리 결과를 얻어야 하니, 우리 함께 계산합시다.”

남자 모습의 이디레이아는 웨이트리스 재닌의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에게 빠르게 손짓하며 자신이 하는 일을 같이하자고 했다.

“으음. 어디 보자.”

두 이디레이아는 동시에 동작을 멈추고 경우의 수를 위한 계산을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비록 겉모습이 서로 달랐지만 하는 행동의 타이밍이 기계처럼 정확하게 같아서 누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조금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른다. 겨우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이번에도 둘이 동시에 눈을 뜨고 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탄성을 질렀다.

“아, 이런! 안 돼!”

그러더니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건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눈에 들어온 건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그는 멍한 눈으로 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이디레이아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는 식당의 창문 밖,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있었다. 두 이디레이아는 깜짝 놀라 토끼눈을 뜨고 손가락으로는 식당 창문의 작은 커튼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동시에 11번과 23번에게 소리 질렀다.

“큰일 났다! 당장 저 커튼을 닫아요. 당장!”

11번과 23번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얼떨떨했다. 11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쪽으로 갔다. 그는 손을 뻗어 커튼을 닫으려고 했지만, 아까 이디레이아와 대화할 때처럼 갑자기 몸 여기저기에서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커튼을 닫기 전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먼저 어깨와 등을 벅벅 긁었다. 그런 다음 커튼을 닫게 되었는데, 아마 그렇게 지연된 시간이 겨우 1초나 되었을까? 그의 등 뒤에서 두 이디레이아의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컨시우스가! 컨시우스가···. 저 멍청이 때문에! 아아아악~!”

11번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건수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서 없고 두 이디레이아가 벌떡 일어나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11번은 덜컥 겁이 났다.

“컨, 컨시우스가······. 사라졌잖아?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어디로 갔나요? 조금 전까지 분명 저기에 앉아 있었는데······?”

“이 더러운 자식아! 네가 지금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너 때문에 컨시우스를 잃어버렸단 말이다. 그가 보름달을 보고 있었잖아! 네가 더러운 몸을 긁느라고 재빨리 커튼을 닫지 않아서 사라졌단 말이다! 아까부터 추접스럽게 몸을 벅벅 긁어대더니! 이, 이, 이 몸을 씻지도 않는 더러운 놈! 에라이!”

‘뭐야?! 컨시우스가 사라져? 어디로?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욕을 먹고 있는 거지? 그가 사라진 것이 왜 내 잘못이라는 거냐? 겨우 이 커튼을 빨리 안 닫아서?’

사실 11번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두 여신이 자기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기에 저절로 바닥에 꿇어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아아아······. 여신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어버려. 이 똥멍청이!”

“요, 용서해주십시오!”

건수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려서 11번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 걸까? 그리고 아무리 여신이라지만, 그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이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게 너무 치욕스러웠다. 웨이트리스 재닌의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는 화가 잔뜩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건 신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이렇듯 당장이라도 무슨 큰일이 날 분위기였는데도, 곁에 있는 23번은 차마 여신을 막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11번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여신을 보고 생각했다.

‘제길. 이거 잘못하다간 여기서 여신의 손에 죽겠구나. 그런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개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텔리나 이디레이나나 다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의 운명을 정해버리지 않는가. 그래, 결국 신이란 다 똑같은 거야. 하지만 이대로 이렇게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11번은 이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