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27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27

싸이언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

그녀는 도모가 자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너무 놀라 바닥에 엎어지며 대성통곡을 했다.

“뭐라고? 어머니라고? 날 어머니라고 불러주다니! 아아아, 내 아들! 미안해! 도모야.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으흐흐흐흑!”

아마도 그녀는 아들의 입에서 그렇게 빨리 “어머니”라는 소리가 나올 줄 몰랐던 것 같다. 예전에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났다는 죄의식이 오랫동안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싸이언스의 그 한 마디는 실로 그녀를 구원하는 말이었다. 아들이 자신을 어머니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하염없이 울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뻤던 순간도 잠시였다. 그녀의 아들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은 그녀를 혼돈에 빠지게 만들었다.

“어머니. 왜 다시 돌아오셨어요?”

“응? 뭐라고?”

그래.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다시 죄의식의 롤러코스터를 탑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전 그 동안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아버지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주시느라 다른 아버지들 보다 더 노력하셨어요. 저도 남들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크면서 많이 비뚤어진 적도 있었어요. 그 덕에 아주 큰 대가를 지불하고 지금도 그것이 인생의 족쇄가 되어버렸다고요.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오셔서 분란을 일으키시냐고요?”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도모야, 내가 곁에 없어서 너가 그렇게 힘든 삶을 산 거야. 정말 잘못했어.”

오죽하면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살면서 힘들었다는 하소연일까. 자신 때문에 아들이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미 너무 많이 울어서 퉁퉁 부어버린 얼굴이었지만 또 다시 눈물이 한 방울씩 뺨을 타고 흘러내리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가 보다. 놀랍게도 싸이언스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신세한탄과 원망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왜 천천히 다가오시지 않았냐는 거에요. 아버지도, 저도 시간이 필요한 거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시면.... 너무 당황스럽잖아요. 그리고 제 인생이 잘못 풀린 것을, 그 결과를 어머니께 탓을 돌리려는 게 절대 아니에요. 전 분명 불행한 시절을 보냈지만, 제 곁엔 저만큼이나 불행한 일을 당한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런데 그 녀석은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의 원인을 절대 남에게서 찾지 않아요. 아마 그런 친구가 없었다면 전 아마 어머니를 절대 용서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얘기는.... 날 용서해준 다는 거지? 흐흐흑. 고마워. 날 용서해줘서 정말 고마워! 으흐흑.”

싸이언스의 말을 자신을 용서하겠다는 것으로 들은 어머니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싸이언스는 잠시 큰 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용서고 뭐고 할 게 뭐가 있나요. 어쨌거나 제게 어머니는 절 낳아주신 어머니니까요. 너무 어렸을 때 헤어져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전 매일 만나고 싶었어요. 미국으로 가셨다는 걸 듣고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가려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영어 공부를 했어요.”

“어흠흠.”

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던 당사자인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아들의 말을 끊었다.

“네게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래야 네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엄마를 찾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그렇다고 너무 어린 네게 엄마가 널 버리고 갔다고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고 말이다.”

싸이언스는 아버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아버지를 원망하는 게 아니에요. 전 이제 다 이해합니다. 오히려 철이 너무 늦게 들어서 아버지 속만 많이 썩였던 제가 정말 잘못했죠. 그리고 그 덕분에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를 못 했는데, 영어만은 늘 성적이 좋았고요.”

아버지는 어린 싸이언스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기를 이해한다는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놀 키웠지만 네겐 늘 부족한 아버지였다. 그래도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제일 심했던 게 바로 너였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아버지.”

싸이언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말씀대로 전 정말 힘들었어요. 남들처럼 어머니가 안 계셔서요.”

“그래. 나도 안다.”

“아버지, 그런데 이젠 어머니가 이렇게 돌아오셨잖아요. 이제 겨우 제가 어머니를 만났는데, 또 떠나보내시려고 하면 전 어떡해요? 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 동안 어머니 없이 큰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데, 아들과 여전히 꼴보기 싫은 마누라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리며 콧구멍으로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버지, 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요. 혹시 어머니를 용서해주실 수는 없나요?”

“......”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망갔던 마누라에겐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지만, 자신에게 어머니를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는 아들에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은 바닥에 던졌던 칼이 달린 아버지의 의수를 주워 가지고 와서는 아버지께 내밀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용서해주세요. 저도 아버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하아.... 그래도 절 위해.... 안 될까요?”

“.......”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의수를 받더니 다시 손목에 결합하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차린 싸이언스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용서해주셔서, 잃어버린 어머니를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마지못해서 어머니를 용서한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을 질끈 감으며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세상에 그렇게 불편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싸이언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기쁨의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는 바닥을 기어와서 자신을 용서해준 남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여보. 정말 고마워요....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