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66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66

건수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 보고 싸이언스에게 말했다.

“싸이언스, 너도 방금 지진이 온 걸 느꼈지? 바닥이 이렇게 막 흔들렸었잖아.”

“오브 콜스. 분명 바닥이 이렇게 솟구쳤었어.”

싸이언스는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바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주었다.

“그렇지? 싸이언스, 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어. 그렇다면, 혹시 내가 착각한 거였을까?”

“그게 말이 되냐? 나도 같이 느꼈는데? 어떻게 우리 둘 다 동시에 착각할 수 있겠어?”

“이런.......”

둘은 서로 멍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체육관을 빠져 나갔다.

* * *

건수는 아까 그가 앉아 있었던 공원의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싸이언스는 마치 친구가 어디 갈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를 따라갔다. 둘은 그 빈 벤치에 나란히 앉자마자 긴 한숨부터 쉬었다.

“후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여신님이 자꾸 내게 나타나서 놀라게 하시는 거지?”

건수의 말을 들은 싸이언스가 멍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아... 난 처음에 그 여자를 링 위에서 보고 진짜 내 정신이 어떻게 된 줄 알았어. 귀신을 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일단 네 말을 듣고 그 여신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한 일이라고 알게 되니까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싸이언스는 강원도에서 돌아온 이후 한 동안 불안정했던 정신 상태가 건수를 다시 만난 후 많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자 아주 잠깐 자신이 진짜 미쳐버렸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뿐 아니라 건수도 함께 이상한 일을 목격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다. 잠시 쉬면서 정신을 차린 그는 건수에게 물었다.

“너, 그 여신인가 하는 여자랑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아무래도 내게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이거 말이야. 어느새 나까지 이 일에 휘말려버린 것 같거든.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이야?”

“그 힘.... 바뀌기 전의 내 몸이 내던 그 힘 말이야. 여신님은 자꾸 그걸 말씀하시면서 나더러 그걸 되찾고 싶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내가 몇 번 대답했지. 난 그냥 이제 모든 걸 다 잊고 평범하게 살겠다고. 그런데 그 분은 자꾸 나더러 그 힘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 같아.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계속 강요하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네 옛날 몸에 관한 일이라고?”

“응. 실은 일주일 전에 내가 다시 돌아오자마자 좀 희한한 일들이 일어났었어.”

건수는 일주일 전 자신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에 일어났던 일부터 들려주었다. 강원도 아저씨가 집안 거실로 찾아왔던 일, 그의 부모와 함께 다른 신령들의 공간을 통해 강원도의 멧돼지 산신령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일, 그리고 신기 할머니를 만나서 벌어졌던 일,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주문을 듣고 기절한 후, 머릿속에서 이디레이아가 남겨둔 그녀의 의식을 만났던 일까지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이디레이아님을 만날 동안, 난 3 일이나 잠자고 있었어. 그 후,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세상에. 시간이 마치 정지했었던 것처럼 우리가 집을 떠났을 때 그대로 였던 거야. 아, 그래. 우린 산신령님의 공간에서 적어도 3 일을 있었는데도 세상 밖에선 겨우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었던 거였어. 상 위에 차려 놨던 음식이 그대로 있더라고. 음... 그 음식... 우리 아버지께서 음식들을 보시자 마자 허겁지겁 드셨는데 말이야. 사실 나도 그 중에 족발을 정말 먹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맛있게 드셔서 나도 먹고 싶다고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 진짜 아쉽게도 한 조각도 먹지 못....”

주위가 산만한 건수가 딴 얘기를 시작하려 하자 싸이언스는 잽싸게 그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래. 그래. 다른 사람들은 네 말을 못 믿어도 나도 멧돼지 산신령님의 공간에 들어가 봤으니까 그곳이 어떤지 잘 알지. 거긴 시간이 이상하게 흐르잖아. 다른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계속 그 여신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봐. 그러니까 넌 이미 일주일 전에 그 여신을 만났던 거구나.”

“그래. 아무튼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오늘 여기 왔는데 아까 바로 이 벤치에 앉았을 때 말이야.”

건수는 아까 싸이언스가 오기 전까지 이 벤치에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이디레이아를 만났던 일을 설명했다. 건수로부터 모든 얘기를 듣고 이제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파악한 싸이언스는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오케이. 아 갓 잇! 그런 일들이 있었구만. 이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겠다.”

“그래? 난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르겠어.”

싸이언스는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더니 건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건수야, 내 말 잘 들어. 일단은 말이야. 그 여신한테 절대로 네 몸을 되찾으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마. 절대. 절대 하지 마.”

“응? 나도 이미 예전의 내 몸을 찾겠다는 생각은 포기했어.”

싸이언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 드라큘라 알지?”

아니, 왜 갑자기 드라큘라 얘기는 꺼내는 걸까? 건수는 눈을 깜박였다.

“어. 흡혈귀.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들어봐. 어떤 전설에 따르면 드라큘라, 아니, 흡혈귀들은 말이야. 주인이 먼저 허락하지 않으면 그 집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해. 그러니까 먼저 주인을 속이는 거지. 자신이 그 집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말이야. 그 다음에 그 집 안에서 무슨 짓을 하던 하는 거라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여신님은 흡혈귀도 아니신데.”

싸이언스는 뒤로 눈알을 굴리면서 답답해했다.

“아니, 생각해 보라고. 그 여자가 왜 그리 집요하게 너의 대답을 들으려고 애쓰겠냐고.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가 알아서 네 몸을 다시 찾아오던가. 뭐 하러 자꾸 너한테 네 몸을 찾으러 다른 세상으로 가겠냐고 묻냔 말이지.”

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네. 처음에 내 몸을 가지고 엘리시움으로 가져가신 게 여신님이라면 그냥 갖다 주시면 되는 건데 말이야.”

“그렇지! 그래서 내가 흡혈귀를 떠올린 거라구. 보니까 여신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아마도 그녀는 널 엘리시움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것 같아.”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랬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엘리시움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어차피 넌 거절할 거였네?”

“응.”

“그런데 그 여자는 절대로 널 거기로 보내야 하는 입장이라면?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널 거기로 보내야 한다면? 처음엔 말로 꼬시려고 하다가 나중엔 네가 거절할 수 없게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겠어?”

“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셨던 거구나.”

건수가 박수를 치며 탄성을 질렀다. 싸이언스는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 절대 절대 네 몸을 되찾겠다고 다른 세상으로 가겠다고 하지 마. 그 여자는 뭔가 음흉한 것 같으니까 일단은 네가 믿는 그 늑대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케르케님.... 그런데 그 분은 지금 검은 방에서 부활 중이시라고 아까 여신님이 그러셨는데. 보름달이 뜬 밤에만 그 분과 연락을 취할 수 있어.”

싸이언스는 핸드폰을 꺼내서 인터넷을 접속하더니 다음 보름달이 언제 뜨는지 검색했다.

“내가 찾아 봤는데, 바로 다음 주에 보름달이 뜬다고 하네. 그때까진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도 어떻게든 버텨봐. 널 이렇게 만든 게 그 늑대인데, 뭐든 좋은 생각이 있겠지. 그도 나름 그쪽 세계의 신이라면서.”

“그래. 네 말대로 해야겠다. 싸이언스, 이렇게 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건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건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싸이언스가 먼저 벤치에서 일어나 체육관쪽 으로 걸어가려는데, 순간 건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잠깐. 싸이언스.”

“응? 왜?”

“그런데 한 가지 네가 생각하지 않은 게 있다. 너 말이야. 왜 네 일은 생각해보지 않는 거야? 아까 내가 여기서 대화를 나눴던 건 어린 남자 애의 모습을 한 여신님이었다고. 그런데 넌 그분의 진짜 모습을 봤잖아. 그리고 링 위에선 재규어의 모습을 하고 계셨는데도 넌 그 분의 진짜 모습을 봤고. 그건 왜 그런 거야?”

싸이언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나도 계속 생각 중인데. 왜 내 눈에 그녀의 진짜 모습이 보였는지 그건 도저히 감도 안 와.”

“여신님이 떠나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있었잖아. 너더러 누구 같다고 하셨는데.”

“글쎄. 나도 뭐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모르겠어. 하지만 나중에 무슨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이상해. 왠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거든. 아케... 아케... 뭐라고 했는데. 미안하다. 잘 기억이 나질 않네.”

건수가 자신의 얘기를 꺼내자 싸이언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친구에겐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건수는 왠지 여신이 언급한 어떤 이의 이름이 한 번 들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싸이언스. 그럼 내가 다음 주 보름달이 떴을 때, 검은 방으로 가서 케르케님께 네 문제도 한 번 여쭤볼게. 혹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둘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레슬링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