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7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7

알렉시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좀 전에 그녀의 연락을 받고 아파트로 올라가려던 죠셉과 일행은 엘리베이터에서 그녀가 내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마피아들을 한 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죠셉은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겼나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 저희는 알렉시스, 당신의 연락을 받고 위로 올라가려고 했는데요.”

“음. 일이 좀 있었어.”

“일이요? 안 좋은 일인가요?”

“그래. 지금 올라가면 죠셉, 네가 원하는 걸 텔리님께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을지 몰라. 내가 올라가보니, 여기 네 떨거지들에 대해 말씀드릴 상황도, 네 사정을 부탁드릴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 지금 그 분은 어떤 일로 인해 몹시 분노하시고 허탈해하셔.”

그녀의 말을 들은 죠셉과 동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분노와 허탈.....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얘기입니까? 며칠 전만 하더라도 텔리님은 분명 절 돕겠다고 하셨....”

“안 도와주실 거라는 게 아냐. 다만 지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네가 원하는 때는 지금이잖아. 그렇지?”

“예..... 그럼요.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의미가 뭡니까?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요?”

알렉시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야. 그런데 그게 그 기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거지. 경우에 따라선 몇 일, 혹은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르지. 알다시피, 네 일이 끝나야 텔리님께서 내가 부탁드린 일도 신경써주실 텐데. 그래서 나도 지금 몹시 실망한 상태라고.”

“아... 그게 무슨. 몇 년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죠셉은 아쉬워하면서 곁에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죠셉의 말만 듣고 따라온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지만 많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돈테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이봐, 여배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놓고는 이제 와서 당신들의 그 ‘죽음의 신’인지 뭔지 하는 자가 우리를 안 만나주겠다고 하는 거야? 앙?”

알렉시스는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닥쳐. 너야말로 그 분이 어떤 신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헛소리 하지 마. 그분은 기분에 따라 이 뉴욕 전체를 멸망시켜 버리실 수 있는 분이다. 그리고 죽음의 신이 아니라 살육의 신이시다.”

그녀는 다시 죠셉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신께 거짓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어. 그래... 어쩔 수 없이 말이야.”

까를로는 인상을 쓰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신께 거짓을 말씀드린다고요? 그거 그럼 큰 일 나는 거 아닙니까? 신은 우리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시는데요!”

“음. 아니야. 우리 세계의 신들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신들과는 좀 차이가 있어. 특히 까를로, 아까 보니까 성호를 긋던데..... 네가 믿는 신과는 다르지. 그래. 전혀 달라. 텔리님은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으셨고, 인간들의 미래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으시니까 말이다.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건.... 그것과 조금 비슷한 걸 하시긴 하지만 너가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하시진 않는단다.”

“그것 참 희한하네요. 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좀 놀랍구요. 꼭 인간을 대하는 것 같잖아요.”

“그건....”

알렉시스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게 될 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어차피 이렇게 동료들을 불러놨으니, 텔리님을 접견해야 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아. 그래서 조금 수를 써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어쩔 수 없이 조금 진실이 아닌 것을 말씀드려야 한다는 거지. 내가 한 가지 생각한 게 있어. 자, 들어 봐봐.”

죠셉과 세 마피아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은 아무 것도 따지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자신을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소개해.”

그러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엔터테인먼트요? 그건 혹시 쇼 비즈니스를 말하는 건가요? 알렉시스, 그게 무슨 황당한 얘깁니까? 우린 마피아라고요. 갱스터란 말입니다.”

죠셉이 웃으면서 특유의 손을 휘젓는 손짓을 하면서 알렉시스에게 말하자, 그녀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황당했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숨을 쉬었다.

“알아. 나도 안다고. 너희들이 뭐하는 놈들인지는 온 세상이 다 알거야. 그런데 텔리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그러면 일단은 내 아이디어를 따라 해보자고. 왜냐면 지금 그분은 왠 괴상한 코리안 소프 오페라에 온 관심을 쏟고 계시니까.”

“코리안... 소프... 뭐요? 오페라?”

죠셉의 동료들은 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미 텔리가 혼자 드라마를 보는 모습을 구경했던 죠셉은 그가 얼마나 그것에 푹 빠져있는지 알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황당해서 코웃음을 치고 괜히 손으로 얼굴을 긁는 행동을 했다.

“소프 오페라가 뭐야? 뚱뚱한 여자가 나와서 노래 부르고 그러는 거 말하는 거야?”

돈테가 마르코와 까를로를 보며 물었다. 죠셉이 그들을 대신해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거, 주로 주부들이 보는 TV 드라마야.”

“뭐? 주부? 그럼 여자들이 보는 드라마라는 거야? 하! 돌아버리겠군!”

돈테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알렉시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야, 여배우! 지금 당신 세계에서 온 신이란 자가 겨우 시시껄렁한 소프 오페라 따위를 보고 막 분노하고 그랬단 말이야? 그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져서 우리가 하는 일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냐고?”

알렉시스는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는 돈테의 말에 조금 화가 났지만, 실은 그녀도 현 상황이 무척 황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 그런 게 있어. 그런데, 절대 절대 그 분 앞에서 그 드라마에 대해 나쁘게 말씀드리지 마. 그랬다간 정말 1 초도 걸리지 않아 네 목이 몸에서 분리되어 버릴 테니까. 알겠어?”

“으윽!”

돈테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분했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말투가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을 힘으로 압도해 버린 여자가 이만큼이나 덜덜 떨며 공포스러워 할 정도라면, 텔리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죠셉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쇼 비즈니스입니까? 총기나 뭐 다른 물건들이라면 모를까, 우리 중에 그런 일에 정통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텔리님도 너희가 어떤 인간들인지는 한 눈에 알아 보셔. 다만 엔터테인먼트 쪽 일에 좀 아는 척 허풍을 좀 치란 말이야. 마치 준비만 되면 당장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만큼 그 업계를 많이 아는 것처럼 행동하란 말이지. 그 다음엔 내가 어떻게 잘 말씀 드려 볼 테니까. 지금 상황에선 그 얘기 말고는 그분의 흥미를 끌 토픽이 없으니까. 그럼 너희 중에 누가 엔터테인먼트 쪽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 바로 그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할 거야.”

그러자 세 마피아의 시선이 까를로에게 모였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까를로는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응? 뭐? 뭐? 엔터테인먼트라니? 난 그런 거 몰라.”

돈테는 한 번 고개를 꺾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까를로, 너가 그 일에 적격이야. 아까 너 타블로이드지도 본다고 했잖아. 그런 신문을 읽는 정도면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거라고.”

“응. 응. 그래. 내 생각도 그래. 내 주위에서 그런 신문 읽는 사람은 평생 단 한 명도 못 봤어.”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아까 알렉시스의 동생이 실종이니 자취를 감췄다느니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 정도면 엔터테인먼트 일에 관심이 꽤 많다는 거 아냐?”

다들 그렇게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알렉시스는 까를로의 눈을 똑 바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꼬맹이. 그렇다면 너로 당첨. 올라가서 텔리님 앞에서 말실수 하지 마. 또 너무 심하게 허풍 떨지 말고. 그 분은 워낙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분이니까 너만 잘 해준다면 꽤 괜찮은 결과가 나올 지도 몰라. 하지만 은은하게 하란 말이야. 엔터테인먼트 쪽에 정통한 것처럼 은은하게 티만 내란 말이야. 알겠지? 은은하게...”

“으으으..... 난 자신 없는데.”

까를로는 뭐가 두려운 건지 자꾸 안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의 곁에서 마르코가 조용히 입을 뗐다.

“너무 걱정하지 마. 왠지 일이 잘 될 것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죠셉과 돈테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죠셉은 알렉시스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르코가 그렇게 감을 잡았다면 아마 분명할 거야. 알렉시스, 일이 잘 될 지도 몰라요. 마르코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특이할 정도로 감이 뛰어나거든요. 이번에 저도 퀸즈에서 일을 당했을 때, 이 녀석의 소문난 그 감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꽤 정확하니 한 번 믿어보세요.”

“그렇군.”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회의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