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6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6

평화로운 주말, 그것도 가장 여유가 넘치는 토요일 오전이었다. 평일에는 창밖에서부터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음이 좀 잦아들고 오랜만에 아침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알람시계에 표시된 시간은 오전 9:30. 미스터 황은 아직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반쯤 잠에서 깬 상태로 뒹굴 거리며 모처럼 갖게 된 느긋함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그의 방문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열리기 전까지 말이다.

‘쾅!’

노크도 없이 소음을 내며 문을 갑자기 열고 들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텔리였다. 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던 미스터 황은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 씨X! 간만에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깨우고 지랄이야!’

그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텔리의 화를 돋우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깐 더 자겠다고 영원히 잠들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단은 시치미를 뚝 떼고 계속 잠자고 있는 척 연기했다. 텔리는 뭔가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미스터 황에게 다가왔다.

“야, 황! 일어나! 인마! 빨리 일어나서 준비해!”

“...... 드르릉... 드렁... 드렁.”

준비하라니? 뭘 준비하라는 것일까? 미스터 황은 못 들은 척 하고 코고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자는 척 했다.

“야, 쾅식. 일어나라니까.”

텔리는 발을 들어 누워 있는 미스터 황의 등을 밀었다. 한쪽 다리를 들었더니 비대한 복부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온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팔을 허우적대다가 끝내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우당탕탕!’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넘어진 곳에 미스터 황이 작업하던 옷감 재료들과 기타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미스터 황은 패션 디자인 인스티튜트에 다니고 있었는데, 텔리가 엉덩방아를 찧은 곳에 하필 그가 작업하던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 황은 화들짝 놀라며 마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와아악!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아앗! 내 작품! 월요일에 중간 발표한 건데!

텔리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로 깔아뭉갠 옷을 쳐다보면서 미안했는지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는 계속 입에 뭔가를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아이... 그러게 내가 깨울 때 빨리 일어나지. 쩝쩝쩝.”

“아이...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고 만들던 과제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게 하실 말씀이에요!”

“그래, 쩝쩝. 미안하다. 야, 근데 이제 일어났으니까 빨리 옷 입고 준비해서 앤디 공한테 다녀와.”

“공 사장님에게는 왜요? 아직 가게도 안 열으셨을 텐데요.”

“뭔 소리야. 걘 코리안이잖아. 코리안들은 새벽부터 가게 열잖아. 가서 걔가 맡아둔 내 돈 좀 찾아와. 몇 십 만 불쯤 모아놨다고 하니까, 한 5 만 불? 아니야. 그냥 다 가져와.”

“예? 공 사장님이 텔리님 돈을 맡아두고 계신다고요?”

“그래. 내가 몇 십 년간 알렉시스 밑에서 일해주고 받은 돈인데 걔가 통장에 차곡차곡 저금해 뒀다고 나한테 전에 말했어. 그 돈 좀 받아와. 전부 현금으로. 알겠지?”

미스터 황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텔리님. 오늘은 토요일이라고요, 주말! 주말에 어디 은행이 문을 열어요?”

텔리는 두 눈동자를 위로 올리면서 잠깐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짜증을 냈다.

“아, 그런가? 토요일엔 은행 안 하지? 아이, 그럼 안 되는데. 오늘 큰 판이 열리는데. 에이, 젠장.”

“그 돈은 왜요? 어디 또 불법 도박장 가시려고요?”

“그래. 그게 어때서. 오늘은 아침부터 큰 거 하나 물 것 같은 좋은 예감이 있었단 말이야. 어제 잃은 거 몇 배로 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에이씨. 근데 자금이 없으니 이거, 다 틀렸네.”

미스터 황은 한심한 듯 텔리를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켰다.

“야, 그럼 비피네 스모크 샵에 가서 클로브 담배라도 좀 사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딱 오늘 피울 것까지만 있단 말이야.”

“아, 거긴.... 어휴, 거긴 진짜 가기 싫은데....”

“뭐, 인마? 이 자식은 내 사제인 주제에 신이 시키는 데도 안 갔다 오겠다고?

“아니,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신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만 사제지 뭐 하는 게 있다고. 그리고 신이라면서 담배 같은 건 그냥 손가락으로 뿅 하면 나오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신이 사제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다니. 미스터 황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뭐!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어떤 신이 그런 걸 할 수가 있어?”

“여기 신들은 다 할 수 있어요. 세상도 만들고 비도 내리게 하고 태풍도 불러오고, 또 세상이 맘에 안 들면 멸망도 시켰다가 또 새로 만들기도 하고 그런다고요.”

“음.... 그건 옛날 신들이나 가능했던 건데. 아이, 몰라. 난 그런 거 못해. 아무튼 일어난 김에 클로브 담배나 좀 사와.”

“아휴... 내 팔자야.”

미스터 황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손을 내밀었다.

“뭐?”

“돈이랑 차 키 주세요. 그리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전 비피씨네 스모크 샵에 진짜 가기 싫어요.”

“돈? 차 키? 없는데.”

미스터 황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텔리를 보더니 말했다.

“아니, 돈도 없이 뭘 사오라는 거에요?”

“어제... 어제 마지막 판에서 다 날려가지고.... 없어. 이번만 네 돈으로 좀 사와. 내가 갚을께.”

“미치겠다. 진짜..... 와. 아이... 쯧. 알았어요. 신이시니까 당연히 갚으시겠지, 뭐. 그럼 차 키 주세요.”

“차 키.... 차도 없어. 어제 마지막 판에서.....”

“뭐라고요? 도박으로 차도 잃었어요? 진짜 제 정신이세요? 그럼 당장 장은 어떻게 봐요? 어떻게 마트에 가냐고요!”

텔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하아아..... 그러니까 오늘 판에서 다 만회하려고 한 건데, 은행이 문을 안 여는 바람에....”

미스터 황은 내밀었던 손을 다시 뒤로 가져가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전 못 갑니다. 비피씨네 가게는 운전해서 가는 거 아니면 대중 교통으로는 가기 힘들어요. 그랬다간 너무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고요. 전 오늘과 내일 이틀 내내 방금 전 텔리님이 망쳐놓으신 과제물을 다시 손 봐야 하고요.”

“그럼 어떡해. 난 지금 모습이 달라져서 직접 갈 수는 없단 말이야. 그랬다간 비피에게도 내 정체를 밝혀야 하는 거잖아.”

텔리는 현재 자신이 예전과는 겉모습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 비피의 스모크 샵에 직접 가기엔 좀 무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미스터 황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곳에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데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비피씨 가게엔 무서운 사람들이 있어서 가기 싫어요.”

“무서운 사람들?”

“네. 전에 거기 갔을 때, 가게 안에 이상한 사람들이 죽치고 앉아 있었는데요. 텔리님 심부름으로 클로브 담배를 왕창 사가려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이 제게 가까이 와서는, 그 클로브 담배를 제가 피우는 거냐, 아니면 누구에게 가져가는 거냐 꼬치꼬치 캐물었다고요. 엄청 겁났었던 말이에요.”

텔리는 다시 고개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미스터 황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어떤 놈들이 감히 내 사제에게 그 따위 식으로 말을 걸었단 말이야?”

“모르겠어요. 마치 텔리님이 클로브 담배를 피우시는 것을 알고 그랬던 건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자기들은 클로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어요. 암튼 거긴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다시는 클로브 담배를 사러가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 사람들, 한 눈에 딱 봐도 무서운 일을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는데, 다시는 그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텔리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먼 산을 보면서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아무래도 누군가 날 찾는 것 같은데? 그 놈들이 클로브 담배 피우는 자를 찾는단 말이지? 흠. 네 말이 맞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