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41 화

루시 – 41

이제 수호자는 자기가 직접 이디레이아를 만나러 가겠다고 케르케로우스의 허락을 요청했다.

“그럼, 이제 내가 검은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디레이아를 만나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

“아니, 내가 직접 갈 수 있다니까요. 별문제도 아닌데, 뭐하러 수호자 당신이 직접 이디레이아를 상대하려고 합니까? 자기 입으로 위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굳이 올라와서는. 그리고 언제까지 그녀가 검은 문을 두드리겠습니까? 저러다 지치면 돌아가겠지요.”

“허락해주시오.”

“당신은 비상시에만 날 돕는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다 할 수 있다니까요. 평소의 당신답지 않게 왜 이래요?”

“허락해주시오.”

아무래도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수호자는 검은 방의 주인인 케르케로우스의 허락을 받아야지만 행동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케르케로우스가 반대하는 데도 그는 한사코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케르케로우스는 그런 수호자의 모습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 원 참. 오늘 뭘 잘못 드셨나.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하면······ 아, 수호자, 당신이 사람은 아니죠. 커허허. 그 말은 취소. 컹! 컹!”

“검은 방의 주인이시여. 내가 이디레이아를 보러 갈 수 있게 어서 허락해주시오.”

수호자는 지치지도 않고 케르케로우스의 허락을 받아내려고 했다. 케르케로우스는 그의 고집이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어후.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모르는 남이 보면 둘이 연애라도 하는 줄 알겠네. 왜 그렇게 그 여신을 만나지 못해서 안달입니까?”

“고맙소.”

수호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케르케로우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옆에 서 있는 건수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그리고 이계의 아이도 나와 함께 가야 하오.”

그러자, 케르케로우스는 날카롭게 그르렁거리며 몇 번 짖었다.

“크르르...... 컹! 컹컹! 수호자, 건수의 손을 놓아주세요. 당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나의 사제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요?”

“조금 전 내가 이 아이의 기억을 읽었소. 지금 이디레이아는 이 아이를 이용해서 내 아들 텔리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소.”

“뭐요? 이디레이아가 텔리를 죽이려고 한다니!”

“네? 텔리님이 수호자님의 아들이라고요?”

이디레이아가 텔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케르케로우스는 깜짝 놀랐다. 수호자에게 손이 잡힌 건수는 텔리가 수호자가 아들이라는 말에 놀랐다. 케르케로우스는 눈이 휘둥그레해서 수호자에게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디레이아가 텔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게?”

“음......”

수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게 다문 그의 입술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그는 지금 신중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이 이계의 아이에게서 읽은 기억은 분명히 오염되지 않은 진짜 기억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난 확신이 서지 않는구려. 전에 이디레이아는 내게 말했었소. 텔리를 다시 엘리시움으로 데려가겠노라고······.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텔리를 죽이려고 이 아이까지 끌어들이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오. 그녀의 말과 이 아이의 기억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하니 내가 직접 알아보려고 하오.”

케르케로우스는 건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건수야, 수호자가 네 기억에서 읽었다는 게 사실이니? 왜 그걸 내게 빨리 말하지 않았어?”

“아, 그게······ 죄송합니다. 어제 들어왔을 때도, 오늘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 때에 말씀을 드리지 못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여신님이 텔리님을 해치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이번엔 수호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군요. 조금 전 당신은 이디레이아가 내 사제를 이용해서 텔리를 해칠 계획을 세웠다는 알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그녀를 만나러 가는데 왜 건수를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그녀에게 건수를 넘기겠다는 말입니까?”

“내 생각엔, 이디레이아는 텔리나 이 아이 중 하나를 골라 엘리시움으로 데려가려는 것 같은데, 아마 텔리보다는 이 아이를 택한 것 같소. 만약 그녀가 텔리를 택한다면 이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르오. 차라리 여신 곁에 두는 편이······.”

수호자의 말인즉슨, 이디레이아가 텔리 대신 건수를 선택한 이상, 그를 그녀 곁에 두어 계획을 실행시키도록 하는 편이 그의 안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수호자가 직접 말한 것처럼, 텔리는 그의 아들이 아닌가. 어떻게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고 생판 남인 건수를 살리겠다고 하는 것일까. 건수는 솔직히 그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호자의 말에 동조했다.

“이디레이아가 왜 건수나 텔리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걸까요? 이디레이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말이 맞다면······ 과연 그렇게 하는 것도 일리가 있군요. 그래서 건수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뭐? 일리가 있다니? 케르케로우스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수호자는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는 여자에게 건수를 넘겨서 그녀의 계획을 돕겠다는데, 그게 뭐가 말이 된다는 거야? 건수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텔리가 죽어도 된다는 거야, 뭐야? 케르케로우스의 말은, 아무리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마치 텔리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건수는 생각보다 이기적인 케르케로우스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검은 방의 두 존재에게 말했다.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수호자님은 절 여신님께 보내시겠다는 거잖아요. 텔리님이 당신의 아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지금 여신님은 당신의 아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요! 심지어 케르케로우스님도 수호자님 말씀에 동의하시다니······. 전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전 검은 방에서 나가기 싫습니다. 제 안전만을 위해서 텔리님을 희생시킨다는 건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에요. 만약 제가 밖에 나가면, 전 분명 그분의 계획을 위해 이용당할 거라고요. 그렇게 되면, 그분이 예전에 보셨던 미래에서처럼 텔리님이 살해당하실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신님은 보셨던 미래의 장면에 등장하는 저를 비롯한 모든 인물이 정확히 어떤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있어야지만, 텔리님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만약 그 정확한 때에, 그곳에 있지 않으면, 그 미래의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거래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 검은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텔리님은 안전하실 겁니다! 제가 이번에 어떻게 해서 검은 방을 열고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전 여기 오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전 여기에 꼼짝하지 않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살고 텔리님도 사실 수 있어요.”

“.......”

건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케르케로우스와 수호자는 그의 말이 끝나자, 각각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후, 다시 건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씨익 하고 웃었다. 케르케로우스가 웃으면서 건수에게 말했다.

“쿠하하. 건수야. 너 설마 살육의 신, 텔리를 걱정해주는 거냐? 우린 널 걱정하는 거라고. 텔리는 알아서 잘할 거다. 하하하. 녀석. 깜찍하네.”

그러자, 수호자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의외의 일이로군. 나도 설마 이 이계의 아이가 텔리를 걱정할 줄은 차마 몰랐소. 이계의 아이야. 남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넌 참 마음이 따뜻하구나.”

“네?”

둘이 그렇게 말하자, 건수는 두 눈을 깜박였다. 설마 이 두 존재들은 이디레이아가 얼마나 무서운 여신인지 잘 모르는 것인가 싶었다. 케르케로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건수, 네가 텔리를 그만큼이나 생각해줬으니, 만약 그가 알았다면 네게 고마워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지금 넌 너 자신만 걱정해도 된다. 텔리는 저~언혀 걱정할 필요 없어.”

“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 그건 네 착각이고 또 오지랖이야. 푸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