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19 화

루시 – 19

이디레이아 여신은 왜 이상한 일을 벌여서 텔리를 자극했을까? 그것도 애들 장난하듯이 노래 가사를 적어서 말이다. 아, 물론 누군가에게 엉망으로 구타당한 스모크 샵의 비피의 모습을 보여준 사진을 전한 것은 결코 장난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알렉시스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이 미련한 종은 지혜가 모자라서 감히 신들의 일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알렉시스, 넌 이디레이아의 진짜 무서운 점이 뭔지 알아?”

“죄송합니다. 이 미련한 종은 그것도 잘 알지 못합니다.”

텔리는 코에서 길게 클로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여기 봐라. 자신이 미래를 보았다고 하는 문구를. 그게 이디레이아의 무서운 능력이다. 평소 우리 세계에서 잘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는 그녀는, 그래서 굳이 사람들에게 잘 언급이 되지않는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 거기까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신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것도요.”

“그야 자기가 미래에 직접 관여하다 보면, 세상의 일이 바뀌게 되기 때문이지. 그러다 보면 꼭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고, 엉뚱하게 역사의 흐름이 틀어지니까 그녀는 늘 조용한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과거에 난 죽음의 신인 아버지의 명령만을 쫓아 일했지, 그녀와 직접 같이 일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젠 그녀를 자주 만나다 보니 그녀 심정의 뚜렷한 변화가 느껴진다. 또, 최근에 바뀐 그녀의 태도를 보아하니, 왠지 그녀는 절대 숨어지내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자신의 위력을 내보이는 타입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리고 어쩌면 내 아버지와는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주인님의 부친이신 죽음의 신께서는 세상 모든 이의 죽음의 순간을 관장하시는 분이시고, 이디레이아님은 세상의 미래를 미리 보실 수 있는 여신이셔서, 사안에 따라서는 서로 의견을 공유하셔야 했던 부분이 있던 것이었을까요?”

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그녀는 나와 형제보다는 우리 아버지와 주로 그랬을 거라 생각해. 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주로 신과 사람들의 생명을 추수해야 하는 입장이었지. 내 형, 바이베노파시스나 동생인 키쥬아가 좀 더 큰 스케일의 파괴를 담당했었고. 그런 의미에서 난 좀 더 은밀히 임무를 수행하는 처지였다. 그러니 늘 혼자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뭐, 적어도 그 정신 나간 괴수, 베토케로우스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이디레이아는 나보다도 더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던 여신이었어. 거의 전혀 없었지. 어쩌다 한 번씩 돌아오는 신들의 모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녀를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이 이것으로 벌써 몇 번째냐? 우리 세계에선 천년, 아니 몇천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를 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만났냐 말이야.”

알렉시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영민한 그녀는 텔리의 말에서 무슨 실마리를 찾았는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신님은 세상일에 적극적인 개입이 허락되지 않으셨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셨던 게 아니었고······. 만약 필요하다면 죽음의 신과 연락하셔서 어떻게든 뜻대로 하셨던 게 아니었을까요?”

텔리는 클로브 담배를 손가락에 낀 채 그녀를 가리켰다.

“과연 알렉시스는 똑똑하단 말이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야. 아니지.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 그래서 그녀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예전에 한국에서 그녀를 한 번 만났었던 적이 있었는데······.”

텔리는 한국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는지 피우고 있던 클로브 담배를 구겨버렸다.

“그녀가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어. 그래서 화가 나서 그녀를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거꾸로 그녀가 날 제압해버렸다. 물론 내가 온 힘을 썼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기에 조금 놀랐던 게 사실이다. 그 뒤로 난 그녀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지.”

그의 솔직한 말을 들은 알렉시스는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며 대꾸했다.

“그러셨군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작정하셨다면 분명 여신님께 큰 피해를 입으셔야 했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합니다. 아마 신께서 사정을 봐주셔서 무사히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건 네 말이 옳아. 네게 사정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내게는 다른 신들에게 없는 큰 능력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뿐만 아니라 신들의 생명까지도 추수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까짓 여신 따위야 분명 내 힘으로 생명뿐 아니라 그 정수까지 뽑아버리는 것이 불가능할 리는 없겠지만······.”

텔리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자신 없는 그의 모습을 본 알렉시스는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녀가 전에 모셨던 놀라운 능력의 불새 신수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텔리의 말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텔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이디레이아가 내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기, ‘it is murder’라고 하는 가사를 통해 말이야. 난 그녀가 날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 즉, 이건 선전포고하는 거지.”

“으으음. 사실 말씀하신 그 메시지가 한낱 노래의 가사라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만······.”

“그럴지도. 하지만 그녀가 그런 덜떨어진 인간 메신저를 보내면서까지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본다.”

“내게 신이시여,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텔리는 손을 턱에 대고 잠시 생각해보더니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까를로를 가리켰다.

“너!”

“네? 저요?”

텔리와 알렉시스 사이의 대화가 워낙 자신의 관심과 동떨어져 있어서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었던 까를로는 자신이 지명 당하자 놀라며 반응했다.

“그래, 입 큰 개구리 같은 놈. 너.”

“제, 제가 왜, 왜요?”

“너, 이놈. 내 앞에서 자, 자, 자꾸 말 더듬으면 주, 죽여버린다. 저 놈은 그냥 말 한마디를 해도 아주 띨띨하게 해요.”

“끄으응······.”

“너가 아까 이 가사의 노래를 잘 안다고 했지? 그 노래 좀 당장 구해 와봐. 이디레이아가 가사를 통해 내게 뭘 말하고 싶은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어. 중요한 노래가 아니면 우리가 라디오에서 듣는 타이밍까지 그녀가 맞추지 않았을 거야.”

“이, 일단 그, 그 노래는 누가 불렀는 지도 잘 모르고요. 가사는 ‘따따 따따 따따... 잇 이즈 머더. 어쩌구 저쩌구 퓨처’ 그, 그, 그 부분만 알고 있는 거, 거에요.”

“아으, 저게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을 더듬네. 확 저걸 그냥!”

몹시 긴장한 까를로가 순간 말을 더듬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진 텔리가 마치 그를 해치려는 듯, 빛나는 손을 들었다. 그때, 스마트 폰으로 노래를 검색하던 미스터 황이 소리쳤다.

“아! 그 노래 찾았어요! 여기 있네. Leonard Cohen의 The Future. 곡 이름이 The Future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