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48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48

2층에 올라간 그리고리와 비피는 바빌로프와 인사한 후 그가 앉아 있는 소파에 함께 앉았다. 바빌로프는 앉자마자 웃으며 그리고리에게 말했다.

“이봐, 그리고리. 왜 이 친구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내가 폐차장으로 데려가라고 했잖아!”

잠깐. 폐차장? 폐차장이라고? 비피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까 차 안에서 들었을 땐, 이들 갱스터들이 그곳에 사람을 데려가 험한 짓을 한다고 했었다. 비피의 얼굴이 사색이 되자, 바빌로프는 시가 연기를 내뿜으면서 껄껄 웃어댔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이 친구가 뭘 좀 주워 들은 게 있나보지? 폐차장이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변한 걸 보면 말이야. 그리고리, 이 친구에게 우리 폐차장에 대해 알려줬었어? 하하하!”

“하하하. 보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농담을 하지 말아요. 진짜인줄 알잖아요.”

“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워. 이름이....?”

“체스터 블랙. 아니, 비... 비피입니다. 그냥 비피라고 불러주세요.”

비피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비피. 여기 잘 왔네. 난 바빌로프야. 아마 내가 누군진 자네도 이미 잘 알겠지? 맞아.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지.”

“네......”

“내 썰렁한 농담이 자네에겐 잘 통하지 않았던 것 같군. 아, 안 되겠어. 아무래도 우린 지금 술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는 그게 최고지. 보드카 어때? 비피, 자네는 평소에 뭘 마시나?”

“예? 저요? 전 맥주를 마십니다만......”

“그래? 맥주라... 아마 하드 리쿼는 잘 안 마시나 보네. 알겠어. 그럼 보드카를 주지.”

“예?”

비피는 분명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아닌 맥주를 마신다고 했는데 보드카를 준다는 것이었다. 바빌로프는 껄껄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 어벙한 친구야. 왜 여기서 엉뚱하게 맥주를 찾아. 난 러시안이야. 내 방엔 보드카 말곤 없다고.”

흠... 그럼 처음부터 뭘 마실 건지 물어보지도 말았어야지. 바빌로프는 자기 앞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보드카 병을 잡더니 세 잔에 나눠 따랐다.

“자, 일단 한 잔씩 쭉 마시자구. 오늘 우리가 만난 날을 기념해야지. 즈다로비예!”

* * *

바빌로프는 그리고리와 비피를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비피가 보기엔 그랬다. 그들이 일상적인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술잔이 몇 잔씩 채워지자 그는 훨씬 비피를 친근하게 대했다. 비피는 그가 평소에 마시는 맥주가 아니라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마시느라 조금 힘들어했지만 생각보다 분위기를 맞추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다행인 것은 무엇보다 바빌로프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이웃집 영감처럼 웃기도 잘 웃고 농담도 즐기는, 어쩌면 상당히 평범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자 바빌로프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늘 비피, 자네를 여기로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오전 자네 가게에서 발생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그랬던 거야. 듣자하니 미하일과 세르게이.....”

바빌로프가 죽은 부하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 그리고리가 웃으며 바빌로프에게 말했다.

“보바, 세르게이가 아니라 니콜라이입니다.”

“아, 그래. 니콜라이. 뭐, 이름이 무슨 문제겠어. 우린 어차피 다 세르게이라고. 그 이름 하나면 다 통해. 하하하. 그.... 니콜라이가 오늘 자네 가게에서 죽었잖아. 그래서 깜짝 놀라서 알아보니 미하일과 세르... 아니, 니콜라이가 몇 달씩이나 자네 가게에서 자네 일을 도와줬었다면서?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렸나 보더라고.”

뭐라고? 몇 달 동안이나 일을 도와줘? 비피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지만 뉴욕에서 제일 무서운 갱스터 두목을 상대로 화를 낼 정도로 용기 있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바빌로프가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먼저 내가 그 일에 대해 사과하겠네. 내 부하들과 몇 달 동안이나 함께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런 엄청난 일을 경험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네. 자네 샵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미리 알아보지 않았던 내 잘못이 커.”

바빌로프가 정중하게 사과하자 비피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동안 입은 손해를 청구하는 것도, 불편함을 초래했던 것에 대해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내 부하는 정말 억울하게 죽은 거야. 왜냐하면 그 둘은 정말 순수하게 사람을 하나 찾으려는 것뿐이었거든.”

“사람이요?”

“왜 있지 않나? 자네 가게에서 맨날 클로브 담배만을 사가는 그 사람 말일세.”

“아.....”

물론 비피도 미하일과 니콜라이가 그 동안 왜 자기 샵에서 매일 죽치고 앉아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텔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피는 왜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텔리를 찾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그 두 친구가 클로브 담배를 사가는 손님을 찾고 있었습니까? 그것도 몇 달 동안이나요?”

“왜냐면 내가 그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내가 예전에 여기 있는 그리고리에게 그의 행방을 찾아보라고 말했었거든. 그래서 그리고리가 미하일과 또 한 명 다른 친구를 시켜서 자네 샵에 있게 하고는 클로브 담배를 사가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었던 거야. 그러니까 미하일과 또 다른 놈은 자기들이 왜 그 손님을 찾아야 하는지 이유도 몰랐던 거지. 그들은 단순히 명령만을 따랐을 뿐이었다고.”

“그랬었군요.”

“그런데 그 클로브 담배를 사가는 손님이 좀 괴짜야. 자네도 그건 알고 있지?”

“괴짜요? 아... 예예.”

“그가 워낙 이상한 인물이라 그리고리가 분명히 그 두 부하에게 정중하게 모셔오라고 했을 텐데, 그게 잘 전달되지 않았던 건가 봐.”

그렇다. 사실 그 둘이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오전의 불상사는 피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피는 당시 가게에서 도망쳐 나가서 그 자리에 없었으니 텔리와 러시안 갱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바빌로프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 왜 내가 그 클로브 담배만 사가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냐면..... 음... 실은 그가 내 형제이기 때문이지.”

“뭐라고요? 형제라고요?”

비피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텔리와 바빌로프가 서로 형제지간이었다니 그건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의형제라네. 자넨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만, 그는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야. 아주 위험한 일을 하지. 그리고 또 아주 신비스러운 인물이기도 해. 좀처럼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이 없어. 그는 그렇게 비밀스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이 세계에서 우린 그를 미스닉이라고 불러. 미스닉.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바로 백정이란 뜻이야.”

“백정이라고요?”

“그래. 백정이야. 그쪽 방면에선 아주 놀라운 인물이지. 그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가 없을 정도라구. 아마 자네도 들어봤을 거야.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하룻밤 사이에 뉴욕의 한 마피아 패밀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일말이지.”

“아, 그 사건이요. 압니다.”

“그래. 뭐, 각종 매체에서 떠들고 난리가 났던 일말이야. 그게 바로 미스닉이 한 일이야. 그것도 단신으로 쳐들어가서 거기 있는 이딸리아 놈들을 싹 다 죽여 버린 거지. 거기에 경찰들까지 주르륵 죽어 나갔고 또 동네 사람들도 많이 죽고 그랬지. 그... 뭐라 그래? 이딸리아 놈들이 맨날 입버릇처럼 말하는 거 그거 있지? 바다 빙 바다 붐! 그랬던 거야. 바다 빙 바다 붐!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멈출 줄을 모르는 거지. 바다 빙 바다 붐!”

비피는 전에 텔리가 자기 가게에서 러시안 갱들을 몇 명이나 죽이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자 바빌로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 일 이후로 일 년 가까이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렸어. 내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말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됐겠는가? 내 의형제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자네라면 자네 형제가 사라졌는데 그냥 넋 놓고 앉아 있겠어?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 않겠냔 말이야?”

비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했겠죠.”

“그치? 그러면 안 찾아 볼 거야?”

“아니죠. 당연히 찾아보겠죠.”

“봐봐. 자네도 내 심정을 이해하잖아. 난 그저 내 의형제를 찾고 있었던 것뿐이었다고. 그리고 내 부하들은 자기들이 내 의형제를 찾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그런 봉변을 당한 거야. 그러니 내가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아아... 알렉세이..... 불쌍한 새끼.... 쯧쯧쯧.”

그러자, 그리고리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보스에게 말했다.

“보바, 니콜라이입니다.”

“어, 그래. 니콜라이.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