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62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62

싸이언스는 건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건수야, 여기 있었구나. 경기 보러 가야지.”

건수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이디레이아를 찾았다.

“그거 참 이상하네. 방금까지 여기 계셨었는데 어디로 가신 거지?”

그 말을 들은 싸이언스도 주위를 둘러보며 건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방금 여기에서 누구랑 같이 있지 않았어? 어떤 외국 여자랑 같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던데?”

건수는 놀라며 친구를 바라봤다.

“맞아. 너도 봤구나? 이디레이아 여신님이 여기 오셨었어. 잠깐만..... 너 지금 내가 외국인 여자랑 같이 있는 걸 봤다고 그랬어?”

“그래. 외국인 여자. 아니, 이디레이아님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그 분이 여긴 왜 오셨다는 거냐?”

“뭐? 여자라고? 그럼 너 이디레이아님의 모습을 본 거라는 거야?”

건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 나타났던 것은 소년의 모습을 한 이디레이아였는데, 싸이언스는 그녀의 본 모습을 봤다고 하는 거였다.

“글쎄. 나야 잘 모르지. 내가 본 것은 어떤 외국인 여자가 네 옆에 앉아 있었던 건데, 너가 여신님이라고 하니까 그런 거겠지.”

건수는 싸이언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다시 물었다.

“설마. 네가 잘못 본 거 아닐까? 왜냐면 방금 여신님은 어떤 남자애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었거든.”

“여자애라구? 아닌데. 분명히 다 큰 어른이었는데. 그것도 금발의 서양 여자였고. 모르겠어. 내가 본 건 분명히 외국인 여자였다구. 그런데 워낙 멀리서 본 거니까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겠지.”

“거 참 신기하네.”

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싸이언스를 따라 실내 체육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싸이언스와 건수는 줄을 서고 입장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자 입구 앞에 있는 사람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큰 볼륨의 음악이 경기장 내부에서부터 쿵쿵 거리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건수는 그 소리를 듣고 체육관 내부로 들어서기도 전인데도 벌써 가슴이 쿵쾅거리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또 입구에 북적이는 인파를 보자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것이었다.

“와아.... 이거 완전 축제 분위기네. 왠지 모르겠지만 막 기분이 업 된다. 이야.”

그렇게 말하는 건수를 내려다보며 싸이언스는 싱긋 웃었다. 실은 그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맞아. 나도 오늘 이런 걸 처음 경험하는 건데, 진짜 재밌을 것 같아. 일단 우리는 원광이가 앉아 있는 데로 가야 돼. 걔가 우리 자리까지 맡아두고 있을 거야.”

싸이언스는 앞장서서 친구 도원광이 앉아 있는 자리를 찾아갔다. 건수는 그를 따라가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이런 시합이 열리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내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네. 요즘 프로 레슬링이 좀 유행인가? 난 이런 세계가 있는 지도 몰랐는데.’

그들이 도원광이 앉아 있는 곳을 찾아 그에게 다가가자, 도원광이 일어서며 앉을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이 앉을 곳은 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나름 좐슨이 신경 써서 마련해 준 자리인 듯 했다.

“건수야, 너 어디 갔었어?”

주위가 워낙 시끄러운 지라 도원광이 큰 목소리로 건수에게 물었다.

“아, 그냥 좀 잠깐..... 그냥 주변에 어디 있다가 왔어.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꽤 왔는데?”

건수 역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시합은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음악은 크게 틀어 놓은 거야.

“어. 한 9,00명? 1.000명? 그쯤 왔다고 하더라.”

“우와. 1,000명이나? 사람들이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나봐?”

“순이가 그러는데, 예전엔 더 유명했대. 그 후에 계속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작년부터 다시 붐이 일었다고 하더라고. 순이는 강원도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선수가 되려고 준비했는데, 마침 잘 됐지. 뭐.”

“그렇구나!”

건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원광에게 물었다.

“그런데 원광이 넌 어떻게 프로 레슬링에 대해 그렇게 잘 아냐? 난 너가 옛날에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혹시 내가 병원에 있어서 그걸 몰랐나?”

도원광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나도 프로 레슬리에 관심을 가진 건 오래 되지 않았어. 순이가 데뷔하려고 하길래 옆에서 좀 도와주다 보니까 그러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지.”

“어... 어. 그렇구나.”

건수는 왠지 모르게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더 물어볼 것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도원광은 건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지,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순이 시합은 제일 처음에 하거든. 이제 곧 시작할 거야. 아무튼 오늘 시합은 걔한테 데뷔전이니까, 모두 잘 되길 바라자구.”

그 때, 싸이언스가 건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야, 어차피 프로 레슬링은 시합 결과 다 짜놓고 하는 거 아니냐? 우리가 바라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크크크.”

도원광은 눈을 부릅뜨면서 대꾸했다.

“넌 아까 순이한테 당수 한 방 얻어 맞고도 또 그 얘기냐? 내가 잘 되길 바라자는 건, 다치지 않고 잘 끝나게 되길 바라자는 거 잖아. 인마.”

도원광의 표정이 꼭 아까 좐슨이 싸이언스에게 말할 때와 비슷했다. 그러자 싸이언스가 건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원광이 이 자식이 좐슨 팬클럽 카페의 매니저야. 그래서 오늘 시합을 되게 기대하고 있더라고. 모르겠다. 나도 오늘 좐슨이 하는 걸 봐서 나중에 까페 부매니저나 시켜 달라고 해야지. 헤헷.”

“아...... 그래?”

건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뭔지 모를 씁쓸한 맛이 입 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함께 하는 친구들, 또 자신을 위해 강원도에까지 찾아와줬던 친구들이었지만, 그는 지금 또 그들과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나한테 얘네들 말고 친구들이 또 어디 있다고. 얘네들이 강원도에서 나 때문에 얼마나 심한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잖아. 그 전에 내가 병원에 8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을 때도 날 잊지 않고 기억해 줬던 애들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섭섭하고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거지? 아니야. 얘들한테 거리감을 느끼면 안 돼. 나한테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야.’

건수가 그렇게 자신도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쓸리면서 동시에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장내가 어두워지면서 진행자의 멘트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 MKWA 5차 블라스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