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9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9

이디레이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아주 귀한 총알들이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겁니다.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무려 검은 방을 통해 몰래 들여온 물건이니까요. 아마 이런 물건이 있다는 게 우리 세계의 신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들 중 몇몇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걸 손에 넣으려고 전쟁이라도 불사할 겁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얌전히 있던 11번이 흥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따졌다.

“여신님! 왜 이런 물건을 이 멍청한 놈들에게 주십니까? 차라리 제게 주시면 더 잘 사용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디레이아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11번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겐 내가 이미 다른 총알을 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겐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게르네, 설마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 그건 아닙니다만.... 텔리를 죽인다고 한다면 저 말고 누가 더 그 일에 적임자이겠습니까? 제,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제게도 똑 같은 걸 또 주신다면 더 확실히 텔리 놈을 죽일 수 있는 확율 생기는데요.”

“게르네, 욕심이 과하군요. 내가 이런 물건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일을 겪어야 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겁니다. 이 물건들을 내게 전해준 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도요. 그 메신저는 텔리에게 당해 몇 번이나 죽었다가 나중엔 내 입으로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암흑에게 잡아먹혀 부활을 할 수도 없게 되었지요.”

“그런 일이.... 그 메신저는 혹시 엘리시움의 신이셨습니까?”

이디레이아는 쓴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그건 당신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과는 별개의 일로, 당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권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총은 만약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리, 당신이 보바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면 혹시 쓰게 될 지도 몰라서 말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총 말고는 보스를 구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어서 챙기세요.”

그 말을 듣고 그리고리가 총을 가져오려는데, 바빌로프가 재빨리 손을 뻗어 총 위에 손을 얹었다.

“응? 보바, 당신이 왜 총을 가지려고 합니까?”

이디레이아의 질문에 바빌로프는 그녀와 그리고리를 번갈아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총은 제 안전을 위해 준비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요. 만에 하나 텔리가 당신에게 찾아올 것을 대비한 겁니다.”

“그런 미래를 보셨던 겁니까? 네? 여신님?”

“네. 내가 본 미래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니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스닉, 그가 절 찾아오면 전 끝장이겠군요.”

“아마도요. 특히 그 총의 총알로 그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텔리는 움직이는 재앙입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아니 그가 죽일 생각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바빌로프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몹시 흥분해 있는 상태 같았다.

“여신님, 얼마 전 제게 찾아오셨을 때, 보로니의 아들이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그를 찾아내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물건을 주시면서 미스닉이 절 찾아온다니, 그게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보로니의 아들, 죠셉이 텔리를 만나기 전에 제거하면 그렇게 된다는 얘기였어요. 그런데 당신이 한 발 늦었어요. 어쩌면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운명이었나 보죠. 게다가, 혹시라도 텔리가 당신이 그의 사제를 처참하게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언제 당신을 찾아오게 될지 몰라 공포에 떨며 사는 것 보다는 이 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더 이상 걱정할 것도 없고 말이에요.”

“호... 혹시 제게 일부러 죠셉에 대해 늦게 알려주신 건 아니겠죠? 제가 한 발 늦도록 일부러... 말입니다.”

“글쎄요. 죠셉이 살아 있으면 당신을 찾아오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었지만, 내가 본 미래에서 당신의 목숨을 빼앗는 쪽은 그가 아니라 텔리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겐 그가 아니라 텔리가 문제인 것이지요. 그리고 난 어디까지나 텔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는 입장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내겐 텔리를 목적으로 하는 이 길이 더 유리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운명이 여기 있는 두 도망자들을 내게 보낸 것인지도 모르죠. 텔리를 정면에서 상대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보바, 계속 그렇게 그 총에 손을 대고 있을 건가요? 그건 그리고리가 당신을 지키게 하려고 주는 것입니다.”

바빌로프는 다시 한 번 그리고리를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이 총은 제가 갖겠습니다. 사실 제 몸은 제가 지키는 게 제일 안전합니다.”

“그래요? 그건 그리고리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 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이 지니도록 하세요.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그 총의 총알 말고는 무시무시한 텔리에게 효과적인 무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여기 있는 두 사람이 그를 제거한다면 그 총은 영영 쓸 일이 없을 거예요.”

바빌로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디레이아가 내어준 총을 다시 천에 잘 싸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11번은 이디레이아에게 물었다.

“여신님, 전 지금이라도 텔리, 그 망할 자식을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아실 것 아닙니까? 어딘지만 알려주시면 저와 23이 당장 그 놈에게 달려가 결판을 내겠습니다. 저 총을 쓸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네, 어디 있는 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미래에서는 게르네 당신과 데피아우스가 텔리와 함께 그 장소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장소가 텔리를 치는 곳입니다. 그 곳 외에는 오히려 일의 성공 확률이 더 낮을 거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시간도 맞지 않습니다. 텔리는 일 주일 정도 후에나 비로소 움직일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그는 몹시 예민해져 있습니다. 만약 지금 그를 건드린다면 몹시 화가 나서 더 잔인해질 겁니다.”

23번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은 아니라고요? 그렇게 무서운 분이 평소보다 더 잔인해진다고요?”

그는 예전에 텔리와 함께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공포에 온 몸을 부르를 떨었다. 이디레이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지금 그는 어떤 일에 아주 열중하고 있어요. 늦어도 일주일 안에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딱 클라이막스라서 지금 그를 건드렸다간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클라이막스라고요!”

11번과 23번이 놀라며 동시에 말했다. 11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새끼를 절대 방해하지 않는 편이 낫겠군요. 잠자고 있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니까요. 녀석이 워낙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다 지금 그런 상태라면 가까이 가기도 전에 알아차려버려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겠습니다. 전 여신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텔리가 가진 가공할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터라 그녀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네. 일이 끝나서 홀가분한 마음에 긴장을 풀고 있을 때 더 빈틈을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은 기다리세요.”

이디레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폐차장..... 텔리가 한 번 방문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던 곳이라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군요. 아주 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 정도로 큰 힘을 쓴 것 같군요. 두 분은 한 번 그 흔적들을 주의 깊게 조사해보세요. 그러라고 이곳에서 미팅을 가진 거니까요. 혹시라도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점을 찾을 지도 모릅니다. 난 이제 이 몸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모두 다시 만나요. 그럼 난 이만....”

그녀가 그 말을 마치자, 노파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녀는 몸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눈이 뒤로 돌아가서 흰자위를 보였다. 바빌로프와 그리고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피했다.

“뭐야! 여, 여신님! 괜찮으십니까? 여신님!”

노파는 계속 몸을 비틀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몇 마디 내뱉더니, 한, 두 번 매우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이내 멈추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바빌로프는 그 모습을 보고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여신님!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911! 어서 911을 불러야지!”

그리고리가 노파 곁에 가서 그녀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어보더니 보스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죽었습니다.”

“뭐라고? 정말 여신님이 돌아가셨다고?!”

바빌로프가 깜짝 놀라 소리 지르자, 그 때까지 차분히 소파에 앉아 있던 노파를 지켜보던 11번과 23번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들갑 떨지 마라. 바빌로프. 그 여자는 여신님이 아니다. 여신님께서는 그 육체를 사용하시다가 이제 육체의 수명이 다해 버리고 떠나신 거야. 그러니 그저 한 이름 모를 노파가 네 사무실에서 죽은 것뿐인 것이지. 그 육체는 너희가 알아서 잘 처리해. 우린 여신님 말씀대로 밖에 나가 텔리가 이 폐차장 곳곳에 남겼다는 흔적을 살펴보다가 떠날 테니까.”

“아, 네.... 네.... 알... 알겠습니다.”

바빌로프는 등을 돌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두 침입자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11번과 23번이 사무실에서 나간 후 잠시 아무 말 없이 노파의 시선을 보고 있던 바빌로프는 긴장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괴물들!”

그는 뒷짐을 지고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어두운 폐차장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텔리의 흔적을 조사하는 두 명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둘의 모습을 생각처럼 쉽게 찾지 못하자, 그는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쉬며 그의 부하에게 말했다.

“그리고리,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게 꿈이냐 생시냐.....”

“모르겠습니다. 저도 꼭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끔찍한 악몽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저것들, 도대체 사람이야, 귀신이야? 지금 보니까 저들의 우두머리인 여신이란 여자는 다른 사람 몸에도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모양이네.”

“네. 하지만 제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보바, 아무래도 이상한 부류와 엮이게 된 것 같습니다. 큰일입니다.”

“음. 경찰들 말고는 이 세상에서 무서운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괴물들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그래도 침착한 그리고리, 자네 별명대로 침착하라고. 다행히 저 괴물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야. 뭐, 돈을 달라거나 우리가 하는 일의 프로핏을 잘라서 내놔라 이러지는 않잖아. 우리가 침착하게 대처하면 이 위기도 극복할 수 있어. 알겠어? 침착하라고.”

“네, 보스.”

그리고리는 혼자 노파의 시신을 한 쪽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그에겐 그리 무겁지 않은 시신이었지만 그는 온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인내심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극심한 공포심에 괴로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