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3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3

강원도 아저씨는 비명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면서 툴툴거리며 불평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일단 모르는 곳에 들어갔으면 좀 가만히 있던가.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아버지, 어머니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니까요. 신령님들을 뵌 적이 없잖아요.”

“에이, 너가 몰라서 그렇지. 신령님들이 노하시면 무섭다구. 잡아먹으실 지도 몰라.”

그 말에 건수는 크게 당황했다.

“예? 그럼 이곳의 신령님이 제 부모님을 공격하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아아.... 큰일났다.”

건수는 힘을 내서 아저씨를 추월하더니, 그의 부모를 구하려고 전력 질주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뒤에서 그에게 외쳤다.

“이 녀석아. 통행 허가를 받은 건 난데, 네가 나보다 앞서간다고 뭐가 달라져? 내가 그 분과 얘기를 해야 통하는 거라구!”

* * *

건수는 급한 마음에 마구 달려서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가 가서 보니, 그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그의 부모는 벽을 등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자동차만큼이나 큰 비둘기가 있었는데,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구구구구구! 이놈들, 감히 인간 주제에 뭐 나더러 괴물? 이 자식들을 그냥 콱 물어 죽여 버릴까? 확 눈알을 쪼아서 파먹어 버릴까? 구구구? 아니면 확 뱃대지를 터뜨려서 라면에 넣어 터진 만두마냥 후루룩 먹어버릴까? 구구구? 구구구구구!”

아무리 겉모습만 그렇다지만,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는 거칠기가 짝이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건수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예전처럼 케르케로우스의 힘을 받은 육체가 아닌 지금의 새로운 육체로는 그가 도무지 저 흉포한 비둘기 신령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도 건수를 따라 힘을 다해 달려오느라 숨이 차서 헥헥 거렸다.

“헤엑. 헤엑. 멧돼지 산신령님이 그러셨는데 도시 쪽에 계시는 신령님들일수록 좀 거친 면이 있다고 하셨어. 아마, 저 비둘기 신령님은 좀 많이 복잡한 동네에 계시는 분인가 봐. 에이.... 도시가 뭐 다 그렇지.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안 그렇냐?”

“아저씨, 저 비둘기 신령님이 너무 무서운데요! 어쩌죠? 우리 부모님 좀 구해주세요.”

“알았...어. 헥헥헥.”

아저씨는 잠시 숨을 좀 가라앉힌 다음, 비둘기 신령에게로 가까이 접근했다.

“하이고오.... 신령님. 헥헥. 잠깐만 기다히세효오오.... 헥헥헥.”

그러자 비둘기 신령은 목을 기계적으로 끊듯이 움직이며 아저씨를 봤다. 음. 겉모양뿐만 아니라 목의 움직임도 진짜 비둘기를 닮았잖아? 신기하네.

“구구구구.... 넌 내가 길을 통과시켜 줬던 멧돼지 신령의 사자 녀석이구나. 너는 내가 알겠는데, 이 잡것들은 뭐냐? 내 먹이로 바치는 것들이냐?”

“헥헥.... 아히요. 하아.... 하아.... 아니에요! 이들도 저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래? 근데, 왜 이 자식들, 이렇게 예의를 밥 말아먹었어? 너희들 누가 나 같은 신령에게 그렇게 예의 없이 행동하라고 가르쳤어? 혹시 멧돼지야? 구구구구!”

비둘기 신령이 다시 화를 내기 시작하자, 건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팔로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아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아저씨가 허리를 굽히며 비둘기 신령에게 사과했다.

“아유, 죄송합니다. 이 사람들이 오늘 처음으로 신령님을 뵈어서 그런 거에요. 이번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초보 때는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비둘기 신령은 기계적으로 딱딱 끊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구...? 그래? 나 같은 신령을 아예 처음 봤다고?”

“그럼요! 요즘 도시 것들이 다 그래요. 순 지네들만 알고, 이웃끼리 정도 없고 그렇잖아요. 누가 아파트에서 고독사하면 한 달도 더 지나서 발견되고 그런다는 뉴스도 있고요.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보다 더 빨리 각박해지지 않습니까.”

“구구... 그렇긴 하지. 도시의 삶이 좀 그런 면이 있지.”

“그러니 어디 신령님을 뵈옵는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눈 뜰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이 도시 사람들이 말입니다.”

“구구구구. 그렇군. 구.... 내가 너무 빨리 흥분했었나? 구구구?”

건수는 비둘기 신령의 어투를 듣는데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음... 저런 말투가 많이 귀에 익단 말이야. 아.... 맞다. 텔리님. 쩝, 그분과 좀 비슷하네.’

아저씨는 대충 설득에 성공했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비둘기 신령에게 부탁했다.

“잎으로 제가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철저하게 시킬 테니 저를 보내신 멧돼지 산신령님을 보셔서 한 번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이들을 그분께 꼭 데려가야 하거든요.”

비둘기 신령은 무슨 고장 난 로봇처럼 이리저리 목을 꺾어대더니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구구구.... 알았어. 대신 한 달 안에 알파벳 초콜릿 한 봉지만 내게 갖다 줘. 소화제도 몇 알 갖다 주고. 요즘 상한 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영 소화 불량이네. 그럼 내가 이번 한 번만 살려서 보내줄게.”

“예. 그럼요. 그렇게 준비해서 갖다 드릴께요.”

아저씨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건수도 어느새 그의 곁에 와서 그와 똑같이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와 어머니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 * *

비둘기 신령이 모든 오해가 풀고 건수 부모로부터 사과를 받아들였으니, 이젠 그가 다음 신령의 구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열어줄 타이밍이었다. 그는 숨을 한껏 들이마셔서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통로를 향해 큰 소리로 울었다.

“구구구구구구구~!”

그러자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아지랑이 비슷한 것이 피어오르더니 일부분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건수의 부모는 공간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공간이 열리는 것을 가리키며 감탄했다.

“아...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아저씨는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쉬었다.

“이 양반들아, 뭔 구경났어? 아까처럼 그냥 몸만 저 틈에다가 쑥 집어넣으면 된다고. 어서! 어서 움직여요. 아직 하나 더 다른 신령님의 구역을 통과해야 한단 말이야. 잠깐! 잠깐! 비둘기 신령님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또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하고 떠나야지. 이게 다 인연인 거야. 언제 또 뵐지 모르는 거잖아.”

아저씨의 말대로 건수의 부모가 예의바르게 인사하자, 비둘기 신령이 그것을 보고 만족해하며 말했다.

“구구구... 옳지. 그렇게 예의를 지켜야지. 예의만 지키면 도시에서의 생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야. 언제나 예의 없는 새끼들이 문제인 거지. 구구구구구.....”

아저씨와 건수네 세 식구는 비둘기 신령이 만들어준 공간의 틈에 들어갔다. 그들은 그저 몇 발자국만 움직였는데, 도시의 골목이 배경이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연못가로 변했다. 비둘기 신령의 공간에서 다른 신령의 공간으로 들어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