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5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5

건수와 사람들은 모두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건수의 건강과 전에 있었던 일로 대화를 시작한 후, 그 다음으로 건수가 전할 이디레이아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건수는 산신령들과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 이디레이아를 만났던 일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건수가 발견한 그녀의 새로운 면에 꽤 흥미 있어 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에 대해서 산신령들과 신기 할머니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멧돼지 산신령은 그녀의 말대로 몇 달 동안이나 그녀가 자기 구역에 다시 찾아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수준의 결계를 유지하느라 많은 힘을 소비하고 있던 터라, 다시는 이 공간에 함부로 찾아오지 않겠다는 여신의 말을 반겼다.

“꿀꿀. 다행이다. 안 그래도 너무 신경 쓰였다. 이 공간을 지키려고 오랫동안 애썼다. 꿀꿀..... 이젠 좀 쉴 수 있겠다.”

할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아이고, 나도 이제 걱정을 좀 덜었다. 다시 내게 찾아오시지 않으시겠다는 그 말씀이 내겐 참 다행이구나. 이디레이아님은 아주 오래 전 내게 찾아오신 신령님인 줄만 알았어. 그래서 이디레이아님께 내 육체를 빌려드렸는데, 알고 보니 영 다른 분이시지 뭐냐. 착각한 내가 잘못이지만, 그분과 합일된 상태에서 풀렸을 땐 후회가 막심했었다. 물론 내가 이 밖을 나간다면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 내 눈이 다시 보이게 되면 죽을 거라는 얘기를 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것. 죽기 전까지 편한 마음으로 살다 가고 싶구나.”

이번엔 강원도 아저씨가 그에게 한 가지 물었다.

“뭐, 네가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게 깨어나서 다행이다. 네 부모님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셨거든. 그런데, 그 여신이 얘기한 대로 네 몸을 되찾으려면 말야. 그 이상한 동네... 뭐, 여기도 충분히 이상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그 다른 세계인가 뭔가 하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데, 너 진짜 그곳으로 떠날 생각이냐?”

건수는 입을 열어 뭐라고 대답하려다가 그만두고 몇 분간 침묵을 지켰다.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음... 후우... 솔직히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는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또 이상한 일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 같아서 사실 좀 두려워요. 전 이 모습으로 그냥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아, 모르겠어요. 당연히 제 진짜 몸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맞긴 한데......”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예전 일은 다 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부모를 보니 차마 그들이 준 원래 몸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그들이 아니라면 자신은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었을 텐데 그들의 선물을 자기가 쉽게 포기하겠다는 게 얼마나 그들에게 큰 상처가 될까 싶었다.

“아니다. 건수야. 우린 너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일이야. 네 겉모습이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너가 어떤 모습이어도 우리 아들인건 변함없으니까.”

그 말을 들은 건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홱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으으윽. 분위기를 깨버려서 죄...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혼자 달려가는 것이었다. 건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눈을 껌벅이며 이상하게 보고 있는데, 강원도 아저씨가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네 아버지가 왜 저러냐 하면, 배탈이 났어. 제대로 배탈이 나서 그래. 쯧쯧쯧.”

“배탈이요?”

“그래. 산삼을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거야! 네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여기서 얼마나 산삼을 많이 먹던지 말이다. 세상에. 몸에 좋은 건 알아가지고 끊임없이 먹고 또 먹는데..... 아마 이 땅의 역사 상 네 아버지만큼이나 산삼을 많이 먹은 사람은 없을 거다. 한 천 년 어치는 다 먹어 치운 것 같다. 그리고 또 산삼은 어찌나 기가 막히게 잘 찾던지! 어떻게 된 게 산신령님으로부터 특별한 코를 받은 나만큼이나 산삼을 잘 찾더라. 근데 그게 다 얼마어치야. 어휴, 아까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가 아저씨를 째려보며 말했다.

“이눔아. 네놈이 건수 아버지더러 뭐라고 할 것 아무 것도 없어. 네놈은 전부 산삼을 찾아다가 세상에 팔아서 돈을 그렇게 벌었으면서 뭐 남 욕을 하고 그러냐? 둘 다 욕심들은 많아가지고. 쯧쯧쯧.”

“할매! 그렇게 얘기하지 말아요. 내가 멧돼지 산신령님 시키시는 심부름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리고 난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집도 잃었잖아요. 우리 셋째도 결혼시키려면 준비도 좀 해놔야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정도도 못합니까?”

“이눔아! 네놈이 뚫린 입으로 함부로 말하지 마. 산삼은 산신령님 간식거리인데 그걸 내다 팔아 돈을 버는 게 말이 되냐? 말이! 얼마나 내다 팔았는지, 그걸로 건물을 다 지었잖냐!”

건수와 그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강원도 아저씨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허름한 차림새로 다니기에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건물주였던 것이었다. 그것도 여기서 캔 산삼을 내다 팔아서 그렇게 돈을 벌어 성공했다니 깜짝 놀랄 일이었다. 아저씨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대꾸할 수 없었는지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할머니는 이제 건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건수야, 네가 그곳에 가기 싫다면 안 가도 된다. 내가 여신님께서 네게 하신 말씀을 곰곰이 듣다보니, 아마 그 분이 네가 그 곳에 가도록 유도는 하시되, 강요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굳이 안가도 되겠지. 내가 예전에 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갈 때 해줬던 얘기 기억나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고.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운명에 순응해야 하지만, 또 그 운명이란 게, 네가 스스로 만드는 것일 때도 있다. 난 네가 그 동안 떨어져 있었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내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네 원래 몸이 중요한 게 아니지. 그건 여신님 말씀처럼 이젠 네 것이 아닐 수도 있잖니. 오히려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하다가 잘못하면 네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내 말 알겠지?”

건수는 할머니의 진심 어린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할머니.”

이렇게 건수는 사람들에게 이디레이아와 있었던 얘기 전부를 털어놓으면서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할머니의 얘기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