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3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3

이디레이아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건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제 예전 육체를 되찾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요? 훨씬 낫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지금 당신을 한 번 보세요. 체격은 작고 힘도 약해요. 그것뿐인가요? 털만 북실북실한 못난이잖아요? 당신이 한 일 주일만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으면, 남들은 당신을 원시인으로 착각할 거예요. 내 말이 틀린가요?”

그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건수는 하루에 한 번씩 혼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면도를 해야만 했다. 특히 수염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겨우 몇 시간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남들이 이틀정도 면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귀찮음은 남들은 절대 모르는 것이었다.

“하아.... 맞습니다. 여신님 말씀이 다 옳아요.”

“그 전의 당신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큰 키에다 건장한 체격, 그리고 남들보다 몇 배는 강한 힘..... 심지어 사람보다 덩치가 더 큰 무서운 검은 늑대를 맨손으로 상대하기까지 했었죠. 당신은 그 때가 그립지 않나요?”

“네. 그 때가 더 좋았어요.....”

건수는 과거 그와 좐슨 사이의 일도 알고 현재 괴로운 그의 마음까지도 훤히 알고 있는 이디레이아에게 더 이상 숨길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옷이 날개란 말도요. 어떤 사람들이 말하길, 겉모습은 소용없고 속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매사에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 좋다고 하는 것과 믿고 의지하는 부분이 있을 때 사람은 좀 더 당당해져요. 예를 들면, 돈, 힘, 지위, 아름다움... 그런 것들 말입니다. 아직 당신은 젊어서 크게 와 닿지는 않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 또 없으면 아쉽게 느낄 거예요. 한 번, 솔직히 말해 봐요. 건수, 당신은 예전의 강한 육체를 가졌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지금보다 행동이 더 당당하지 않았던 가요? 남들보다 몇 배나 되는 힘을 쓸 수 있을 때 내심 자랑스럽지 않았나요?”

“더 당당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건수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그렇게 목소리가 작은 거예요?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죠. 그래요! 당신은 옛날 육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케르케로우스로부터 받은 힘을 가지고 우쭐하진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의지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렇죠?”

“네... 그 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그랬나봅니다.”

건수는 여전히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다시 되찾으란 말입니다. 남의 것도 아니라 자기 건데 왜 버려둡니까?”

“그 육체는 제가 버린 게 아니라,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 보니 사라졌던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살게 되었어요.”

건수의 말대로, 그는 절대 예전 자기 육체를 버리지 않았다. 육체를 버린다니? 방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건수와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자, 이디레이아는 빠른 템포로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당신 말대로 당신이 그 육체를 버리지 않았죠. 그건 케르케로우스가 한 일일겁니다.”

케르케로우스가 자기의 옛 육체를 버렸다는 말에 건수는 깜짝 놀랐다.

“네? 케르케로우스님이요?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충격 받았군요. 내가 보기엔 분명 그가 그랬습니다. 아마 당신이 솔로우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입은 부상을 치료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솔로우스라면, 그 때 이마에서 빛을 내던 그 할아버지! 으으으...”

그는 강원도 산 속에서 만난 솔로우스로부터 받은 공격을 떠올렸다. 불새 에피로제의 대사제의 무서운 공격이 생각났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때 당신은 심한 부상을 당했는데 겨우겨우 목숨만 붙은 채로 케르케로우스와 함께 검은 방으로 빨려 들어갔던 겁니다. 아마 케르케로우스와 검은 방의 암흑이 당신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겠지요. 하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서 예전 육체를 포기했던 겁니다. 난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당신의 예전 육체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검은 방의 통로를 통해 엘리시움으로 보냈던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 그것을 두고 있어봤자 되살릴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당신의 예전 육체가 엘리시움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맙소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제가 어떡하면 되나요?”

이디레이아의 말을 듣고 건수는 그저 놀랍다는 반응밖에는 할 수 없었다.

“자, 건수. 그 몸을 되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내 제안을 수락하면 됩니다.”

“여신님의 제안을 수락한다고요?”

“네! 당신의 입으로 엘리시움에 가겠다고 말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내가 당신을 엘리시움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아아아...... 제 입으로 직접....”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며칠 전 레슬링 경기 전에 싸이언스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건 뱀파이어가 피해자 집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피해자 본인의 허락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싸이언스가 했던 말.... 그래, 뱀파이어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지.’

이디레이아는 건수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그를 종용했다.

“뭘 망설이는 거예요? 한 마디 말만 하면 되는데, 그게 힘든 가요?”

그는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여신님. 그럼 제 가족은요? 제 친구들은요? 이곳에서의 제 생활은요? 어렵게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왔는데 제가 또 어디를 가야한다는 건가요? 제 가족과 친구들은 제가 이런 모습이어도 절 받아줬는데, 제가 또 어딜 간다고 하면 슬퍼할 거예요.”

“오우, 이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당신을 설득하는 게 힘든 걸까요?”

이디레이아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건수의 우유부단함에 대단히 실망한 모양이었다.

“잘 들어요. 건수. 내가 아까 뭐라고 했죠? 난 지금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주려고 하고 있다고 했어요. 만약 내가 그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서 건네주지 않는다면, 그는 이 물건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운명이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당신이 잃어버린 예전 육체를 맡아놓지 않았다면 그 육체는 버려져서 영영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지도 몰라요.”

“제 예전 몸을 영영 잃어버린다고요?”

“그래요. 영영 되찾지 못할 겁니다. 운명의 실타래가 꼬였을 땐 그렇게 잃어버린 게 있기 마련이지요. 운명의 여신인 내가 그것을 되찾아줌으로써 꼬인 운명을 풀 수 있는 거예요. 이 간단한 걸 당신만 모르는 것 같군요. 그리고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놓치고만 있으니.... 쯧쯧쯧. 전에 순이씨에게 먼저 고백할 수 있었던 기회도 놓쳤으면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나요?”

“죄송합니다.....”

건수는 풀이 죽어서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지금은 내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아.. 이런. 이디레이아님....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건수는 혹시라도 자신이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남아 몇 번이나 이디레이아의 이름을 불러봤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응답하지 않았다. 건수는 다시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마음속엔 허전함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