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39 화

루시 – 39

케르케로우스는 앙증맞은 앞발로 건수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네가 가진 새로운 몸은 이 검은 방에서 만들어진 거야. 이곳의 암흑은 좀 퉁명스러워도 일은 제대로 하는 편이지. 새로운 몸은 어때? 이제 많이 익숙해졌어?”

“예······ 아니오.”

건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가로 저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케르케로우스는 조금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아니, 왜? 내가 보기엔 아주 훌륭한데? 뭐가 맘에 안드는 거야?”

건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게······.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몸은 좀 이상해요. 일단 몸의 털이 너무 빨리 자라요. 자꾸 이발과 면도를 해야 하니 힘들어요. 하루에 세 번씩 머리를 자르거나 수염을 깎아야 할 정도예요. 그 밖의 털도 쑥쑥 자라는데, 감당하기 힘듭니다. 심할 때는 다섯 번 털을 깎아야 할 때도 있고요.”

“음. 그건 아무래도 내 몸을 베이스로 제작해서 그런 모양인데? 알다시피 내가 털이 좀 많잖냐. 에이······. 사실 털이 많은 건 좋은 거야. 얼마나 많은 남성이 탈모를 고통받고 있는지 넌 모르지? 그건 네가 아직 젊어서 모르는 거다. 좀만 나이를 먹어 봐. 빗질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샤워할 때마다 하수구가 막힐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지면 그거 얼마나 눈물이 나는 일인지 아냐? 그런 사람들 앞에서 그런 푸념하면 너 욕 먹는다.”

“세상에. 무슨 말씀이세요? 전 인간이잖아요. 인간! 털이 많은 것도 어느 정도지, 이렇게 털이 많으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합니까? 지금 제 머리를 좀 보세요. 하루 만에 이렇게 자라서 머리가 턱밑까지 내려온다고요. 이틀이면 단발머리가 된다고요! 그리고 수염은요? 제 수염을 좀 보세요. 조선 시대도 아니고 누가 이렇게 수염을 기르고 다녀요?”

“흠. 엘리시움에선 꽤 먹어주는 스타일 같은데. 건수야, 어차피 스타일은 돌고 돌아. 언젠가는 네 스타일을 알아줄 시대가 올 거야.”

“으아아아! 전혀 말이 안 통합니다! 아무튼, 전 털은 싫어요. 이건 너무 불편하다고요.”

“흥. 난 늑대라서 그런지, 털이 많은 지금 네 모습이 아주 보기 좋구나. 털 정도야 별 것 아닌 문제지.”

“그리고······. 아, 아닙니다. 그냥 말씀 안 드릴게요.”

건수는 또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왜? 털 말고 또 다른 문제가 있어?”

“으으음. 사실 오늘 케르케님이 어떻게 제 목숨을 살려주신 걸 알게 되니, 자꾸 불평을 늘어놓는 게 좀 배은망덕한 것 같아서요.”

“아냐. 아냐. 나 배은망덕한 거 아주 좋아해. 그냥 얘기해. 편하게. 응.”

“배은망덕한 걸 좋아하신다고요? 그건 나쁜 거잖아요. 설마 배은망덕이란 말의 뜻을 모르시는 건······.”

“그 뜻을 모르긴 누가 몰라. 내가 배은망덕한 인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놈들이 맛있으니까. 일단 네 말도 들어보고 널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쩝쩝.”

“아······. 이제 그런 류의 농담은 유통기한을 넘긴 거 같습니다. 거의 옛날이야기 신령님 수준이에요.”

건수는 아직도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입맛을 다시는 흉내를 내는 늑대 신수에게 가슴 아픈 충고를 했다.

“으음, 재미없다는 말은 좀 따끔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내가 재미없다는 말인데. 뭐, 알았어. 더 노력해볼게. 그럼, 두 번째 문제는 뭐야?”

건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실은, 제가 예전엔 키도 크고 몸집도 많이 컸잖아요. 힘도 아주 셌고요. 그런데 지금은 키도 작은 편이 되었고 몸집도 다른 사람보다 왜소한 편이에요. 힘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게 많이 아쉬웠어요. 아. 그렇다고 이 몸을 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만 하더라도 아주 감지덕지죠.”

“하!”

건수의 말을 들은 케르케로우스가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이 녀석아. 넌 지금 네가 뭘 가졌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지?”

“네? 제가 뭘 가졌는데요?”

“세상에. 네 녀석에게 슈퍼카를 줬더니 똥차처럼 굴리고 있었네. 아니지. 그 정도 비유로는 부족하지. 우주 탐사용 로켓을 줬더니 종이비행기가 더 좋았다는 말을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케르케로우스는 자기가 건수에게 아주 좋은 몸을 줬는데도 그가 잘 사용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건수는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케르케님.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늑대 신수는 살짝 삐쳤는지 주둥이를 양옆으로 움찔거렸다.

“안 가르쳐 줄 거야. 네 말대로 넌 배은망덕한 녀석이니까. 쩝.”

“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좀 알려주세요. 이 불편한 몸이 어떻게 좋은 건가요? 예전에 전 키도 정말 컸고요. 힘도 아주 세서 단번에 침대 매트리스도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겹쳐서 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하잖아요.”

“그게 다 네가 어렸을 때 양떼목장에서 내게 물려서 그렇게 되었던 거란다. 원래대로 컸다면 그런 몸을 가질 수 없었을 거야.”

“예? 어렸을 때 케르케님께 물려서 그랬던 거라고요?”

“그래. 그때 내 힘이 네게 흘러 들어가서 그런 체격과 힘을 갖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 네가 강원도에서 검은 늑대들까지 상대할 수 있었던 거 말이야. 보통 사람은 그런 힘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가끔 몸에서 하얀빛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했었어? 그게 다 내게서 힘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그런데, 그것만 알고 또 다른 건 모르지? 지금 네 몸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 말이야. 지금 네 몸은 예전의 육체와 비교하면, 아예 설계부터 다른 거야. 예술의 수준이지.”

“지금 제 몸이 대단하다고요? 하지만 전 원래 제 몸이 더······.”

물론 건수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가 가졌던 힘도 케르케로우스에게서 받았다는 것도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엘리시움에까지 가서 이디레이아가 빼돌린 자신의 원래 몸을 찾고 싶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부모로부터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네 부모가 준 몸이라서 찾고 싶은 거 아니겠냐. 이해한다.”

“네. 맞아요. 그래서 꼭 되찾아야 합니다.”

케르케로우스는 마치 건수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했다. 그는 건수가 자신의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넌 네 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기겠지만, 넌 꼭 그럴 거라고 본다. 우리 신이나 신수와는 달리, 너희 인간들은 가족이 아주 중요하잖아. 그런 가족과 함께 살과 피를 나눈 네 예전 육체가 왜 새로운 육체보다 못한 거겠니. 어떻게 보면 내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

이디레이아는 엘리시움의 신과 신수는 절대 잘못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케르케로우스는 벌써 몇 번이나 건수에게 사과하는 거였다. 건수는 이미 이디레이아의 거만함을 엿봤기 때문에, 그녀와 동등한 등급의 존재인 케르케로우스가 얼마나 자신을 잘 대해주는지 느꼈다. 그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건수를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목숨까지 건 도박을 무릅쓰고 마련해준 육체라면 대단히 좋은 것이 분명했다. 건수는 케르케로우스 앞에서 새로운 육체의 단점만 늘어놓은 것이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했다.

“아닙니다. 신수님께서 위험도 무릅쓰시고 제게 주신 이 육체도 정말 소중합니다. 제가 감사할 줄 모르고 푸념했던 게 부끄러워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 육체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체험해볼게요.”

케르케로우스는 건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래. 지금 네 몸은 참 대단한 거야. 그 증거로, 그 몸엔 이 검은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열쇠가 들어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지.”

이때까지만 해도 건수는 검은 방의 열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전혀 몰랐다.